남자 배우들은 어떤 정서의 작품을 좋아할까? 사람마다 성향은 다를 테지만, 그래도 궁금한 마음에 여섯 명의 배우에게 느닷없이 가장 좋아하는 창작뮤지컬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제각각의 취향이 묻어나는 답변들을 들여다보자.
이건명
좋았던 창작뮤지컬이라… <서편제>, <형제는 용감했다>, <오디션> 등 여러 창작뮤지컬이 떠오르지만, 가장 생각나는 작품은 아무래도 역시 <쇼 코메디>다. 오은희 극본, 배해일 연출, 최귀섭 작곡가가 콤비를 이뤄 만든 <쇼 코메디>는 방송국을 배경으로 경비원과 쇼 탤런트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제목 그대로 엄청나게 코믹한 뮤지컬이다. 특히 1막 엔딩 신에서는 정말이지 미치도록 웃었던 기억이 난다. 문득 궁금해진 건데 20세기 작품인 이 뮤지컬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96년도 당시에는 토월극장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는데 말이다. 아, 지금은 캐나다에 있는 김민수라는 배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대한민국 뮤지컬의 전부’였던 남경주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요즘에도 가끔 배우들하고 내용을 세련되게 바꿔서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 이야기를 하곤 한다.
김산호
보통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신화 같은 서양 신화를 떠올리기 마련이잖아요. 우리나라 신화를 낯설어 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죠. 저 역시 우리나라 신화에 친숙하지 않았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우리나라 신화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그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제가 초연부터 참여했던 작품이라 애착이 크기도 하고요. <바람의 나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신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전쟁의 신’이에요. 15분간 쉬지 않고 춤을 추어야 해서 참여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힘든 장면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멋있는 장면이죠. 내일이면 이승을 떠나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아는 해명 태자와 새타니가 ‘저승새의 신부’를 부르는 장면도 참 예뻐서 좋아하고요.
조정석
많은 창작뮤지컬을 접해보진 않았지만 내가 참여했거나 보았던 작품 중에 굳이 하나를 꼽는다면 <내 마음의 풍금>을 이야기하겠다. 음악과 드라마의 탄탄한 구성력이 돋보인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꼭 내가 참여해서 정이 들었기 때문은 아니다. 초연에 강동수로 출연한 이후에 다른 배우들이 참여한 <내 마음이 풍금>을 관객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좋더라. 서울에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갓 부임한 총각 선생님과 시골 학교 소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는데, 그게 빤하지 않고 참 재밌고 신선하게 풀어낸 것 같다. 게다가 동수와 홍연이뿐만 아니라 다른 조연 캐릭터들도 극 속에 잘 우려냈고 모든 캐릭터들이 잘 융화되어 있지 않나. 좋아하는 노래는, 음, ‘나의 사랑 수정’이란 노래도 좋고, 딱 하나를 꼽지 못하겠다. 다 좋았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다. 곧 <내 마음의 풍금>이 재공연되는데 새로운 캐스트들이 선보이는 공연도 기대된다.
이창용
<내 마음의 풍금>을 정말 좋아해요. (조)정석이 형이 출연했던 초연을 보고 정말 반했던 작품이에요. 아무래도 뮤지컬이 외국에서 온 장르다 보니, 그 틀에 우리의 이야기가 딱 맞아 떨어지기가 쉽진 않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무대 디자인, 조명, 노래, 드라마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하나를 이루어서 참 좋았어요. 그중 제가 가장 아끼는 장면은 ‘나의 사랑 수정’이에요. 홍연이가 선생님의 고백이 담긴 일기를 읽으면서 처음엔 그 대상이 자기인 줄 알았다가 마지막에 양호 선생님인 걸 알게 되잖아요. 참 찡하고 아픈 부분이에요. 극 중 강동수 선생님은 스물셋인데, 전 스물다섯에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풋풋했던 시기에 맡아 다행이었던 것 같네요. 할 수 있다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조강현
<마이 스케어리 걸>은 우연한 기회에 보러 갔다가 반한 작품이다. 원작 영화를 워낙 재미있게 봤던 터라 ‘과연 무대에서 이 작품의 매력을 살릴 수 있을까?’라는 우려를 하고 봤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뮤지컬도 영화만큼 매력적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여성 전용’ 신. 자칫 잘못하면 한없이 가벼워질 수 있는 작품을 가볍지 않고 재미나게 잘 쓴 것 같다. 박장대소하게 만들 수 있지만 오히려 절제하는 듯한 느낌이 고급스럽게 느껴졌다고 할까. 세련된 음악도 좋았고. 그리고 (김)재범이 형의 소심남 연기! 정말 완벽 그 자체였다. 나도 굉장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언제 다시 재공연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내가 참여하는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셜록홈즈>도 굉장히 좋다. 음악이 굉장히 섬뜩하고, 고급스럽다. 배우들끼리 만날 이 작품 진짜 좋다고 이야기하는데,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최재웅
99년 말에서 2000년 초반까지 동숭아트센터에서 뮤지컬 <황구도>라는 작품을 했다. 원래는 연극인데 그해 뮤지컬로 다시 만든 작품이었다. 군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작품이라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무슨 이야기냐고? 개 이야기, 주인공이 개다. 조승룡 선생님께서 황구 역을 하셨고 연출은 작은신화의 최용훈 대표님이, 극본은 조광화 선생님이 쓰셨던 걸로 기억한다. 서현철 형도 나왔고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되게… 모르겠다. 그냥 재밌었다. 재미있는데 이유가 있나. 음악도 진짜 좋았고 승룡 선생님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게 참 좋았다. 여주인공은 이재은, 전수경 선배도 나왔다.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면… 개가 막 돌아다니면서 다른 개들도 만나고… 승룡 샘은 그냥 똥개인데 돌아다니다 보니 비싼 개도 만나고… 여주인공인 이재은이 비싼 개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어쨌든 그런 내용이다. 황구가 뭘 하려고 돌아다닌 건 아니고, 집이 없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겪는 일들에 대한 뮤지컬이었다. 작은신화 25주년 기념으로 연극판 <황구도>를 공연한다고 들은 것 같다. 1999년, 2000년에 동물을 주인공으로 창작뮤지컬을 한 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아마 창작뮤지컬로는 그게 처음이 아니었을까. 형식도 특이했고 재밌었다. 관객도 많았고 되게 재밌었는데 왜 다시 안하는걸까. 11년 전에 본 작품이라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제일 좋아하는 창작뮤지컬이 뭐냐고 하니까 생각나는 게 딱 이 작품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4호 2011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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