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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emory] 조정은의 앨범 첫 페이지 [NO.95]

정리 | 김영주 2011-08-08 4,605

고집쟁이 줄리엣은 그때 몰랐네

 

 

 


좀 뻔한 선택인 것 같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때 사진을 골랐어요. 진짜 초연 때 사진 두 장, 홍보용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사진 한 장, 그리고 <태풍>에서 미란다 역을 했을 때의 사진이에요. 지금 보니까 정말 어리네요. 포동포동하고 아무 생각도 없어 보여요.(웃음) 진짜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이에요. 처음 역할을 맡은 기쁨으로 충만한, 초등학교 입학하는 아이 같은… 경험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자기가 잘 하고 있는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던 때의 백지 같은 얼굴인데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게 예뻐 보이네요. 얼굴이 예뻐 보인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비어있다는 게 좋아 보여요. 지금 아는 걸 그 때 알았으면 어땠을 것 같으냐고요? 아뇨, 그 때 몰랐던 게 좋았던 것 같아요. 너무 많이 알고, 뭘 해야겠다는 야심이 분명하고,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는 생각이 뚜렷했으면 아마 그 때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예요.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으로 캐스팅 되었던 건 입단하고 1년 반 만이었어요. 그때 제가 정말 운이 좋았죠. 타이틀롤을 바로 맡은 건 아니고, 주인공이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얼터 배우로 캐스팅이 된 거였어요. 시켜봐서 잘하면 무대에 서게 해주고, 아님 마는 거였기 때문에 겁날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다는 마음이었죠. <로미오와 줄리엣>은 당시 서울예술단에서 정말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는데, 보통 주역은 외부의 스타 배우들을 캐스팅하다가 그때는 오디션으로 예술단 내에서 주역까지 뽑기로 해서 우리들 사이에서 큰 사건이었죠. 그렇게 (김)선영언니가 줄리엣 역으로 캐스팅이 됐는데, 언니는 그 역이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유모 역을 시켜달라고 저항을 했죠.(웃음) 사실 줄리엣 같은 역을 서로 하고 싶어서 나서는 게 보통인데, 언니도 참 평범하지가 않아요. 어쨌든 그때는 단체에 소속된 배우였으니까 언니도 결국 줄리엣을 하게 되어요. 그리고 신인에게 기회를 주자는 유희성 감독님의 생각으로 저와 민영기 씨가 같이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캐스팅이 됐어요. 사실 관 단체에서는 결과가 검증되지 않은 도전을 하기가 더 부담스럽고 힘이 드는데, 뭔가를 보여준 적이 없는 신인을 그렇게 큰 역에 기용해주셨다는 건 유희성 감독님과 신성희 이사님께 감사할 일이죠. 사실 저는 학교를 휴학한 상태에서 서울예술단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한 거였는데 관 단체 특유의 어떤 성향과 제가 맞지는 않아서 사실 고민이 많았어요. 예술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에서도 연기를 전공하면서 이게 재미있고 나한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게 되는 작품들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던 뮤지컬과는 달라서… 나는 배우를 할 사람이 아닌가, 내가 길을 잘못 선택한 걸까, 불안했거든요. 내가 봐도 내가 이 단체에 들어와서 이뤄놓은 게 너무 없었으니까 그만 두고 아나운서 시험을 볼까 고민을 하면서 그쪽 길을 가는 선배에게 상담을 하기도 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런 저에게 여러 가지로 답을 준 작품이었어요. ‘뮤지컬 계속 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고 할까… 아, 나 뮤지컬 해도 되는구나, 라는 마음을 갖게 해줬어요.

 


사실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제가 참 당돌했어요. ‘어린 게 죄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죠.(웃음) 제가 메인이 아님에도 남이 하는 걸 똑같이 하라는 게 싫다고 대들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뭘 몰라서 그랬는데,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표현하는지를 몰랐던 게 제일 컸던 거 같아요. 절대 언성을 높이지 않으시는 유희성 감독님이 ‘너 어디가!’라고 외치시는 데도 뛰쳐나와서 화장실로 도망가서 문 잠그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요. 내 생각은 다른데,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 생각을 전달하는 게 마음처럼 잘 안되고… 제가 융통성이 없었던 거죠. 사실 정말 혼날 일이었는데 신부님 역할을 하셨던 송용태 선생님이 혼내지 않고 잘 다독여주셨어요. 그게 무조건 똑같이 하라는 게 아니라는 걸 제가 이해할 수 있게 말씀해주셨죠. 저는 조용하긴 한데 싫고 좋은 게 너무 분명했어요. 지금은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하는지를 알게 됐는데 그때는 뭐든지 참 서툴렀죠. 연기도, 노래도, 내 의견을 전달하는 것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참 좋았던 거 같아요. 서툴러서 많이 다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게 그 때 저의 최선이었던 걸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5호 2011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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