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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저작권과 표절 [No.108]

글 |박병성 2012-09-24 6,591

“한 사람의 작품을 도용하면 표절이지만 여러 작가들로부터 훔치면 창작이다.” 미국 극작가 윌슨 미즈너의 말이다. 공연계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표절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인간의 사고가 크게 벗어나지 않다 보니 억울한 표절 시비가 발생하고, 때로는 창작자의 노력을 손쉽게 가로채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표절은 정당한 이유나 대가 없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경우이다. 창작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내세우면 다른 창작 활동이 위축되고, 방치해놓으면 창작할 의욕을 잃는다. 그래서 아이디어나 컨셉은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되, 창작자의 독창적인 표현은 저작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는 아직도 전반적으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 이번 호에서는 공연계의 표절과 저작권 문제를 짚어보았다. 창작자의 권리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표절과 창작의 줄타기              

최근 공연한 뮤지컬 <퍼펙트맨>을 보고온 관객들이 웹툰 <신과 함께>와 비슷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표절 논의가 일었다. 창작 분야에서 표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이 세상의 모든 창작물은 그 무언가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엄밀한 의미에서는 표절이다. “모든 사람의 생각은, 비록 그가 그 자신의 천재성에서 비롯된 오랜 숙고를 통해 수정하고, 강조, 발전시켰다 할지라도, 많건 적건 다른 사람의 생각의 조합이다.” 에머슨 데이비스 사건에서 스토리 판사가 내린 판결문은 ‘창작’과 ‘표절’이 얼마나 아슬한 경계를 지녔는지를 생각케한다. 표절은 법적 판단을 떠나 창작자의 양심 문제이다. 과거에 비해 저작권을 위반하는 사례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국내 저작권 인식은 낮은 것이 사실이다. 국내 공연계에 벌어졌던 저작권 관련 사건들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저작권 인식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표절인가, 아닌가?

표절의 문제는 창작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는 법정 분쟁이 성립하지 않지만, 최근에는 인터넷 환경이나 SNS의 보급으로 표절 의혹이 대중들에게서 먼저 제기된다. 그만큼 표절이 노출될 기회가 많아졌다. <퍼펙트맨>의 경우도 공연을 본 관객들이 표절 의혹을 제기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그 소식을 들은 <신과 함께>의 주호민 작가가 공연을 찾아봤고 표절 의혹을 블로그에 올린 것이다. 그에 따르면 뮤지컬과 자신의 작품 사이에 설정이나 심지어 대사까지 상당히 유사한 지점이 많아 표절 혐의가 짙다고 했다. 주 작가는 ‘저승 열차는 이승 열차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새벽 2시~5시에 다닌다는 점, 모든 영혼은 생전의 업에 따라 등급이 다른 국선 변호사가 있다는 점, 납골당을 메신저 알림이로 알려준다는 점, 납골당에 로열층이 있다는 점을 비롯해 여러 설정과 대사 20여 군데가 <신과 함께>와 같다’고 밝혔다.


<퍼펙트맨>의 연출가는 “웹툰을 본 적이 없으며 문제가 되는 대사는 배우들이 워크숍을 하면서 아이디어로 낸 것”이라고 했다. 문제가 커지자 해당 에피소드를 삭제하고 남은 공연 기간에는 삭제된 버전으로 공연했다. <신과 함께>의 누룩미디어 측은 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표절, 즉 저작권 침해를 판단하기 위한 법적인 중요한 요건은 ‘접근’과 ‘실질적 유사성’에 있다. <퍼펙트맨>의 연출가의 반론에서 눈여겨볼 점은 ‘웹툰을 본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말이다. 원 창작물의 ‘접근’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즉 표절이 아니라 우연히 그 창작자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주장이다. 웹툰같이 공개된 매체의 경우는 본 적이 없다(접근하지 않았다)는 말이 얼마나 신뢰를 줄지 모르지만, 미발표작의 경우에는 ‘접근’의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드라마 <선덕여왕> 역시 표절 의혹에 휘말렸다. 뮤지컬 <무궁화의 여왕, 선덕>(미발표)의 제작사인 그레잇웍스가 저작권을 침해당했다고 MBC와 드라마 작가 두 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서울대 ‘기술과 법 센터’에서는 두 작품의 유사성을 인정하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드라마 작가들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표절할 수 있냐’며 표절 의혹을 부인했다. 이처럼 미발표작의 경우 ‘접근’은 법적 분쟁을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표절을 판단하는 데 ‘접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질적 유사성’이다. 이것이 저작권 침해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며 저작권 관련 판결문을 보면 이것을 매우 중요한 판단 사항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상(아이디어), 주제(테마), 소재 등이 같거나 비슷한 것만으로는 저작권 침해를 주장할 수 없고, 그보다 근본적인 유사성을 증명해야 저작권 침해, 즉 표절이 법적으로 증명된다. 그렇다면 ‘실질적 유사성’이란 무엇인가? 실질적으로 유사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기준은 다음 사항들을 고려해야 한다.


캐릭터 자체가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도 있다. 저작권으로 보호되지 않는 캐릭터라 할지라도 캐릭터는 표절을 판단하는 중요 요소이다. 사건 자체는 독창성을 인정받기 힘들지만 사건의 고유한 연결 방식인 플롯은 실질적 유사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사용된 분위기가 동일한가 여부나, 주제나 배경, 리듬, 시퀀스, 대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실질적 유사성을 판단한다.


<점프>의 표절 소송은 법원이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은 경우이다. 황미나 작가는 넌버벌 퍼포먼스 <점프>가 자신의 작품 『웍더글덕더글』(1993)의 소재와 내용을 표절하여 정신적인 피해를 주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무술 고수 가족은 코믹물에 자주 사용되는 소재이고 집에 침입한 도둑이 가족에게 제압당하는 상황은 아이디어에 불과하므로 두 작품이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무술 가족이라는 설정은 아이디어일 뿐 나머지 등장인물의 관계나 사건 전개의 차이가 나므로 표절로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유사하다고 여길 수 있으나 법적 의미에서 실질적 유사성을 입증하여 표절임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뮤지컬 <롤리 폴리>의 경우 영화 <써니>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와 작품 구성으로 관객들이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제작자 측은 ‘복고풍 뮤지컬 제작은 영화보다 자신들이 만든 <진짜진짜 너무해>가 원조’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제작사 측은 의혹의 초점을 비켜갔다. 관객들은 복고풍 뮤지컬이라는 컨셉이 문제가 아니라 뮤지컬에 등장하는 고등학교 서클 멤버들의 캐릭터가 비슷하고 한 멤버의 죽음으로 다시 모여 회상하는 구성이 유사하기 때문에 표절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영화사 측에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법정 다툼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영화와 뮤지컬 사이에 유사성이 인정되지만 표절로 입증되기 위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실질적)인 증거들이 필요하다.

 

 

 

 

제호 사용은 YES, 부정 경쟁은 NO

저작권 침해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고, 지난한 수고를 요구한다. 설사 저작권 침해를 입증한다고 한들 실익이 크지 않다. 만에 하나 재판에서 패소하기라도 하면 피해는 막심하다. 그런 이유로 실제 저작권 침해를 받더라도 소송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것이 저작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저작권 분쟁이 복잡하고 처벌이 약하다보니 저작권 침해 요소가 있는데도 공연을 강행하기도 한다.


2009년 12월 <아가씨와 건달들>이 이화여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오픈런 공연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 공연은 우리가 아는 1950년대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Guys & Dolls)>이 아니라, 동명의 영화를 바탕으로 한국적 상황으로 각색한 창작뮤지컬이다. 프랭크 뢰써가 만든 <가이즈 앤 돌스>는 1983년 국내에 소개되면서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됐다. 당시는 세계 저작권 협회에 가입되지 않은 상태여서 불법 공연이 횡행했다. 국내에서는 2000년까지 <아가씨와 건달들>이란 제목으로 여러 차례 공연됐다. 이화여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공연한 <아가씨와 건달들>은 도박꾼 나싼과 스카이를 환과 민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 드라마 구성은 그대로였다. ‘브로드웨이 정통 댄스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티켓을 판매한 것으로 봐서는 <가이스 앤 돌스>의 영향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드라마 내용뿐만 아니라 포스터 이미지까지도 그대로 모방했다. 대신 영문 표기는 ‘Girls & Boys’로 바꿨다. 이에 <가이즈 앤 돌즈>의 한국 저작권자인 CJ엔터테인먼트(현 CJ E&M)는 성명권을 주장하며 제목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신청했으나 이미 상표권을 인정한 후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행히 이 공연은 제작사의 제작비 마련 문제로 공연을 하지 못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2008년 공연한 <브로드웨이 인 드림스> 역시 비슷한 경우다. 극단 대중은 를 기획했다.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1930년대 대공황을 금융 위기의 2008년 뉴욕으로 바꿨을 뿐 모든 내용이 그대로였다. 대중 측은 “이 작품은 1933년 상영된 영화 <42번가>를 소재로 했다. 저작권 보호 기간이 지난 영화에서 이야기 구조와 아이디어만 따왔을 뿐이고 춤과 노래는 새로 창작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대중 측의 말대로 노래와 춤은 한국 창작자를 통해 새롭게 구성했다. <42번가>의 국내 저작권을 보유한 CJ엔터테인먼트는 제목의 유사성으로 인해 CJ 측이 피해를 본다고 보고 ‘부정경쟁행위금지 처분’을 신청했다. 그러자 대중 측에서는 제목을 <브로드웨이 인 드림스>로 바꾸고 공연을 강행했다. 제목을 바꿔 공연중지가처분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CJ엔터테인먼트가 <브로드웨이 인 드림스>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와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지 검토하고 이를 증명한다면 저작권 침해로 보고 저작권료를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적어도 1~2년이 넘게 법정 다툼을 해야 한다. 그때는 이미 공연이 끝난 상태이다. 승소한다고 해도 그 권리는 해외 원작자에 있으므로 국내 제작사가 힘들여 법정 다툼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두 사건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제목의 성명권은 인정하지만 ‘부정경쟁행위금지’ 처분을 통해 그 제목으로 공연을 하는 것은 금지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부정경쟁행위금지’ 조항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제호는 저작물이 아니라고 본다. MBC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의 경우 2001년 상표권을 등록하려 했으나 ‘보통 명칭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상표법 제6조 1항) 상표는 상표 등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보통명사인 ‘수사반장’의 상표 등록이 거절됐다. 그러나 만약 다른 제작사가 ‘수사반장’이 상표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화의 제목으로 사용한다면 일반 관객들은 드라마 <수사반장>의 영화화를 상상할 것이다. 추후에 드라마 제작사인 MBC가 영화를 제작할 경우 소비자들의 혼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으므로 이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 그런 이유로 상표는 인정하였지만 그 제목으로 공연하는 것은 금지한다는 판결이 가능한 것이다.


2003년부터 공연해온 <어린이 캣츠>의 경우도 ‘뮤지컬 관람객 사이에 경합 관계가 있을 수 있고, <캣츠>와 유사한 공연이거나 적법한 라이선스를 받은 작품으로 혼동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부정경쟁행위 청구 소송에서 제작사인 설앤컴퍼니의 손을 들어주었다.


제호는 저작물이 아니라고 판단하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처럼 완성된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경우, 독자적으로 특정한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창작적 표현이라면 저작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소견도 있다(정상조, 『지적재산권법』, 홍문사 236p).

 

 

 

 

 

독립 저작물 VS 2차적 저작물

<롤리 폴리>의 경우의  제작사는 이 뮤지컬이 영화 <써니>에 근거하지 않은 독립 저작물임을 주장한다. 원작의 영향을 받지 않은, 받았다고 해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영향을 받은 순수 창작이라는 것이다. 반면 2차적 저작물은 원저작물의 창작적 표현이 어느 정도 재생되어야 하고, 동시에 원작과 다른 새로운 창작성이 부가되어야 성립한다. 원저작물의 영향을 받은 것이므로 당연히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창작성이 부가되기 때문에 저작권법에서는 2차적 저작물에도 창작성을 받아들여 원저작물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권리를 인정한다. 저작권법 제5조 1항과 2항은 바로 그 점을 규정하고 있다. 이들 항에 따르면 2차적 저작물은 독자적인 저작물로 보호되며 원저작물의 저작자의 권리와는 무관하다고 밝힌다. 바로 2차적 저작물의 독립된 권리 문제로 발생한 것이 <미녀는 괴로워> 사건이다.


KM컬처가 제작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일본 작가 스즈키 유미코의 만화 『간나상 다이세코데스』를 토대로 만든 것이다. KM컬처는 일본 출판사인 고단샤에게 영화 판권을 획득하고 영화를 제작하였다. KM컬처는 쇼노트와 영화를 바탕으로 2008년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를 제작하였다. 당시 고단샤는 이 뮤지컬 제작에 대하여 어떠한 권리 주장도 하지 않다가, 이 작품이 2011년 일본에 진출하게 되자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공연중지가처분을 신청했다. KM컬처는 ‘만화는 대학이 배경이었고, 뮤지컬은 가요계가 배경이다. 전신 성형을 한 것 이외에 같은 점은 없다’는 입장이다. 영화로 각색할 때 이미 새로운 창작성이 가미되었으며, 뮤지컬은 만화가 아닌 영화를 토대로 제작하였기 때문에 별도의 저작권료를 지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KM컬처의 말대로 뮤지컬이 만화가 아닌 영화에 근거했다면 저작권법 5조에 의거해 영화 <미녀는 괴로워>가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권리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뮤지컬을 제작한다고 해도 만화 출판사에 별도의 저작료를 지불할 이유가 없다. 단, 뮤지컬이 영화가 아닌 만화의 대사나 설정 등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결국 일본에서의 소송은 원만하게 해결됐고, KM컬처는 무사히 일본 공연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공동저작물과 결합저작물

뮤지컬은 결합저작물로 본다. 결합저작물이란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창작한 저작물로 각자가 이바지한 부분을 분리해서 이용할 수 있는 저작물이다. 이에 상반되는 개념이 공동저작물이다.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창작했으나 그 결과물(창작물)을 분리하여 이용할 수 없는 저작물을 말한다. 흔히 영상 저작물을 공동저작물로 본다. 뮤지컬은 작가, 작곡가, 작사가, 연출가, 제작자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다. 때론 제작 과정에서 누구의 아이디어라고 딱히 구분하기 힘들게 공동으로 제작되다 보니 그 권리를 분명하게 나눌 수 없는 공동저작물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이 경우 권리 관계를 명확히 해두지 않으면 후에 문제가 발생한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1995년 만들어졌다. 제작자가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가와 작곡가에게 제공하고, 연출가가 대본의 수정이나 가사 작성에 관여하여 완성되었다. 그런데 2004년부터 새로운 제작사가 작가와 작곡가와 <사랑은 비를 타고>를 제작하면서 연출가를 바꿨다. 이에 이전 연출가와 제작자는 작품이 공동 창작된 것이므로 자신들에게도 권리가 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제작 과정에서 의견이 반영된 것은 인정하지만 뮤지컬은 공동저작물이 아닌 결합저작물로 내용이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는 하나 작가와 작곡가가 자신의 예술적 감각으로 극본과 곡을 완성한 것이므로 원고의 주장을 기각했다. 그러자 제작사 측은 저작권은 창작자가 소유한다고 하더라도, 공연권은 공연을 개발한 제작자에게 주는 것이 암묵적인 관례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저작권자인 작가와 작곡가와 공연권의 양도나 이용 허락에 관한 아무런 계약을 하지 않았으므로 근거가 없으며, 그러한 관습을 법적 판단의 기준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여전히 국내 뮤지컬이 연극적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브로드웨이에서 프로듀서는 작품의 저작권자로서의 권리를 가진다. 그만큼 프로듀서의 지위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과거의 연극적 관행으로 이루어진 공연이 지속된 것이라 제작자들은 공연권조차 주장할 근거가 없었다. 현재 국내에서는 여전히 프로듀서가 저작권을 갖지 않지만 7년에서 10년 정도 공연 이용권을 위탁받는 계약을 한다. 뮤지컬을 결합저작물로 바라보기 때문에 어문저작물로서의 권리는 작가에게, 음악 저작물의 권리는 작곡가에게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친정엄마>에서 원작자와 각색자 사이에 벌어진 권리 다툼은 공동 작업을 인정한 것으로 이전의 판결과는 구별된다.


2004년 고혜정 작가의 책 『친정엄마』가 인기를 끌면서 연극과 뮤지컬로 각색되었다. 2007년 연극에는 문희가 각색자로 참여했다. 2010년에는 뮤지컬로도 제작되었는데 이때는 원작자인 고혜정이 직접 뮤지컬 극본을 썼다. 문제는 이 뮤지컬 대본이 연극 대본의 등장인물이나 대사 등 표현의 대부분을 그대로 옮겼다며 문희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약식 재판에서는 표절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앞서 살펴본 대로 연극 <친정엄마>는 2차 저작물로서 독립적 권리를 인정하여 원작자라고 하더라도 그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1심에서는 이 결과가 뒤집혔다. 1심 재판부는 연극과 뮤지컬의 실질적 유사성을 검토한 것이 아니라 책을 연극 대본으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원작자가 참여한 것을 공동 저작자로 판단하고 이 문제는 표절 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사례에서는 배우나 연출, 프로듀서가 대본 작성에 참여한 경우 공동 저작자로서 지위를 인정받지 않았다. 원작자의 경우라 차이는 나지만 이것은 이전의 판결과는 이례적인 결과였다. 

 

 

 

 

 

저작권은 누구에게

앞서 살펴본 대로 공연은 협업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그 권리를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발생한다. 협업을 통해 함께 작품을 제작한 후 해체되었을 때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특히 넌버벌 퍼포먼스는 대본이나 노래보다도 아이디어가 중심이 된 작품들이 많고 오랫동안 공동 작업을 통해 완성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창작 집단이 해체되었을 경우 그 권리 관계를 따져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비보이 퍼포먼스의 바람을 일게 했던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 예이다.


2005년 12월부터 홍대에 비보이 전용관을 마련하고 올린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두고 제작자와 창작자 사이에 저작권 분쟁이 발생했다. 이 작품은 이주노와 이근희, 팝핀현준을 주축으로 한 고릴라 크루 등이 참여하여 만든 <프리즈>를 토대로 만든 것이다. 문주철이 연출로 참여했다. SJ비보이즈의 최윤엽 대표는 <프리즈>의 저작권을 1억 원 지불해 샀고, 제목 역시 자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저작권 등록을 마쳤다. 고릴라 크루 측은 저작권이 없는 제작사에게 저작권을 산 것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S>, <비보이 앤 발레리나>라는 제목으로 유사 공연을 해왔다. 그러자 최 대표는 2008년 상표권을 등록하고 유사 공연을 그만둘 것을 경고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이에 불응하고 공연을 지속해온 문 연출에게 저작권법 위반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사건은 여러 가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드로잉쇼> 분쟁도 비슷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원제작사인 (주)드로잉쇼와 투자사인 펜타토닉이 재정적인 문제로 결별한 후 펜타토닉 측은 독자적으로 <드로잉쇼 히어로>를 제작해 공연했다. 이에 원제작사 측은 공연중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법원은 <드로잉쇼>가 미술의 창작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효과를 마술이나 안무, 무대장치의 기법을 가미하여 만든 무언극으로 그 방식이 기존의 기법에 의존한 면은 있으나, 그 표현 방법에 창작자의 정신적 노력을 인정할 만하다고 판단, <드로잉쇼>의 독창성을 인정하고 <드로잉쇼 히어로>의 공연중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제작을 함께했던 창작 그룹이 해체되면서 그동안의 고민을 각자의 방식으로 공연에 담아낼 때 비슷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공동 창작의 경우 저작권의 소유 관계를 명확히 배분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툼의 여지가 생기기 마련이다.

 

 

 

 

 

회복저작물이란

2000년 라이선스 획득 없이 무단 공연하여 공연정지처분을 받았던 <캣츠> 사건은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저작권의 개념이 희박하던 공연계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었다. 이후 국내 공연계가 저작권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다. 이 논쟁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제작사의 논리였다. <캣츠>의 제작사인 대중 측은 1980년대 창작된 회복저작물로서 2차 저작물에 관해서는 공연 금지를 요청할 수 없고 보상만을 청구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2차 저작물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이 국제저작권협정에 가입하기 이전에 원저작자의 동의 없이 제작한 작품들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까지는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회복저작물이다.


이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1995년 개정된 저작권법을 살펴보아야 한다. 저작권법 부칙(1996. 12. 6) 제4조 3항을 보면 ‘회복저작물은 1957년 1월 1일 이후에 형성된 저작권을 말하며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 저작물로서 1995년 1월 1일 전에 작성한 것은 이 법 시행 후에도 계속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원저작물의 권리자는 1999년 12월 31일 후의 이용에 대해서는 상당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즉 1981년 만들어진 <캣츠>는 회복저작물에 속하며, 1991년 판뮤지컬 컴퍼니가 제작하여 공연한 전례가 있으므로 앞서 언급한 저작권법 부칙에 의거해서 2000년에도 공연을 지속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작사인 RUG는 1999년 12월 31일 이후 공연에 대해서는 보상 청구할 수 있지만 공연을 정지시킬 수 없다는 것이 제작사의 견해였다.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는 의견이었지만 중요한 한 가지가 간과됐다. 바로 회복저작물은 2차 저작물에 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공연한 <캣츠>는 노래 가사와 대사를 한국어로 하고, 출연 배우의 분장이나 무대장치를 우리 실정에 맞게 일부 변형하였으나, 원작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는 만큼 2차 저작물로 보기 힘들다. 회복저작물은 지금으로서는 적용 대상을 찾기 힘든 경우이고, 이제는 보상청구권이 적용되는 시기이므로 사문화된 개념이다. 이는 저작권을 무단 사용해 오다가 국제저작권협정에 가입했던 과도기에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시적인 장치였다. 이제는 쓸모없는 항목이 되었지만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짐작케 해준다. 

 


* 이 글은 『엔터테인먼트와 저작권』 (홍승기 저/저작권 심의조정위원회), 『공연 예술 저작권의 이해』 (정영미/커뮤니케이션북스), 『공연 예술 저작권 분쟁에 관한 언급』 (오은실 석사학위논문) 등을 참고하였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8호 2012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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