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영범, 창섭, 순호
초연과 재연 배우들의 연기 대결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한국전쟁 중 포로 이송선이 난파돼 국군 2명과 북한군 4명이 무인도에서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단지 색깔이 다른 군복을 입고 있을 뿐인 동네 청년들처럼 보인다. 딸바보 아빠, 노모를 모신 무뚝뚝한 아들, 과부를 연모하는 순정남, 동생을 호강시켜주려는 오빠 등 저마다 지닌 사연 역시 정치적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있다. 이야기는 국군인 한영범 대위와 북한군인 이창섭 상위를 두 축으로 진행되지만, 적어도 무인도에서의 주도권은 살짝 정신을 놓은 북한군 병사 류순호에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초연 당시 캐스트에 새로운 배우들이 가세해 이들이 재해석한 세 캐릭터를 비교하는 재미를 준다.
처세와 잔머리의 대가 ‘한영범’ 이준혁 vs 최호중 vs 김종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한영범으로 시작해 한영범(과 그 일당)으로 끝나는 만큼 그는 작품에서 중심적인 기능을 한다. 무인도에서 포로 신세가 됐음에도 순호를 이용해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은 영범의 탁월한 잔머리 덕분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어린 딸에 대한 그리움과 피아를 초월하는 인간애를 지닌 휴머니스트이기도 하다.
초연 멤버로 한영범 역을 맡아온 최호중과 이준혁은 상반된 개성의 인물을 보여준다. 이준혁은 적당히 가볍고 잔정이 있으며, 무엇보다 코믹한 영범을 연기한다. 비주얼로는 제일 군인답지만, 상황이 역전된 후 빛의 속도로 무릎을 꿇으며 목숨을 구걸하는 대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 캐스트 중 가장 겁쟁이이기도 해서 포격 소리가 나면 부하인 석구의 옷자락 속에 머리를 감추는 꿩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진지함이 3초를 못 가는 태생적 가벼움과 이창섭에게 형이라고 부르며 그의 무릎을 베고 눕는 붙임성은 이준혁의 것이 최고다. 반면 최호중은 까칠하고 잔정이 없는 영범으로 이준혁과 차별화했다. 상황을 주도하기 위해 계속 머리를 굴리고, 늘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기 때문에 그는 방관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최호중의 영범은 군인보다는 잠시 민방위 훈련을 받으러 온 직장인 같다. 대신 애드리브는 발군이다. 이 작품에서 최상의 몰입감과 유머 감각을 보여주는 최성원의 석구가 특유의 불꽃 개그로 관객의 웃음을 터트리면, 최호중 영범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석구는 저런 거 참 잘해요” 하며 한마디 보탠다. 창섭에게 친근감을 표현하는 장면에선 원래 대사인 “나보다 형이잖아요” 다음에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를 덧붙여 방심한 관객들의 허를 찌른다. 새로운 영범인 김종구는 앞서 두 캐스트와 달리 개그보다는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나름대로 능글맞고 잔머리도 굴리지만, 뺀질거림이나 비굴함은 다소 봉인된 느낌이다. 대신 석구와의 만담 콤비, 순호의 ‘대안 형’ 등 사람 좋은 국군 아저씨의 냄새가 강하다.
잔혹함 뒤 감춰진 인간애 ‘이창섭’ 임철수 vs 박해수
얼굴에 난 칼자국이 보여주는 냉혈한 성격의 이창섭 상위는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군인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같은 편도 봐주는 것 없이 잔혹하게 처단하는 그는 부하들마저 두려워하는 폭군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그런 자신에 대한 거부감이 숨어 있다. 권위주의와 근엄함으로 무장된 성격 탓에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속내를 어머니 앞에서만 보일 수 있는 연약한 면도 있다.
1984년생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중후한 매력을 발하는 임철수의 창섭은 그런 근엄함 속에서도 깨알 같은 코미디의 포인트를 짚어낼 줄 안다. 극 초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표정 연기로 무인도 멤버 최연장자로서의 카리스마를 잘 표현한다. 영범과 석구 일당의 ‘장군님이 살아계셔’ 작전에 휘말린 후 그의 캐릭터는 급전환한다. 마치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 같은 양면적 성격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이런 양극단의 디테일한 연기 변신을 오갈 수 있는 인물은 임철수 창섭과 최성원 석구 두 사람뿐이다. 가부장의 속내와 깊은 속정을 나타내는 연기는 오리지널 캐스트답게 최고라고 할 만하다. 한편 새로 합류한 박해수의 창섭은 덩치로 ‘먹고 들어간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적이고 무서운데 웃음기를 제거한 연기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임철수 창섭의 분노는 ‘화났다’라는 감정을 읽게 한다면 박해수의 것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한다. 잡히면 진짜 맞아죽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전반적으로 코믹함을 줄이고 정극 연기에 가까운 창섭을 보여준다.
퇴행 연기를 통한 평화주의 ‘류순호’ 윤소호 vs 정원영 vs 박정원
정신이 멀쩡할 때의 순호는 의외로 의젓하고 어른스럽다. 게다가 소속감과 의리도 있다. 동생의 목숨이 최우선인 형의 탈영 선택을 그는 비난한다.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에 형의 총구가 자신을 향하고, 잠시 후 형이 자신의 눈앞에서 목숨을 잃자 그는 갈등과 폭력에 대한 거부감을 표하듯 유년 시절로 퇴행한다. 그가 바라는 건 아무도 싸우지 않고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내는 것. 무인도는 그런 그의 의지를 실험하기에 좋은 공간이며, 여신은 순호의 그런 내면을 실체화한 존재다. 오직 본능이 지배하는 무인도에서 순호/여신은 군인들이 자칫 ‘파리대왕’스러운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막아준다.
훤칠한 키와 예쁘장한 얼굴, 해맑은 표정의 삼박자를 갖춘 윤소호의 순호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얼굴’이다. 망아지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뻣뻣한 춤과 함께 부르는 윤소호의 ‘그대가 보시기에’는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는 귀여움으로 이 작품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윤소호 순호의 특징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주의산만함이다. 콩을 가지고 놀다가 객석에 뿌리는 건 다반사고, 다른 순호들처럼 무릎을 끌어안고 가만히 있는 대신 다른 캐릭터들의 연기에 온몸으로 반응한다. 특히 ‘맛이 간’ 상태의 순호는 윤소호 특유의 초점이 맞지 않는 시선 처리와 만나 최고의 시너지를 보여준다. 한편 정원영의 순호는 세 순호 중 최강의 귀여움을 보여준다. 그건 윤소호의 것과는 다른 귀여움이다. 윤소호 순호의 매력이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라면 정원영의 순호는 막내 동생 같은 보편을 지닌다. 특히 누나 관객들의 ‘광대 폭발’을 유발하는 ‘그대가 보시기에’ 장면은 여기저기서 육성으로 ‘귀여워’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윤소호 순호가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 무인도를 ‘순호 월드’로 만든다면, 정원영의 순호는 적절히 존재감을 발휘하면서도 균형을 맞추는 느낌이다. 디테일한 표현도 인상적이다. 모두가 평온하게 잠든 걸 흐뭇하게 쳐다보다 잠드는 연기가 그렇다. 미친 척할 때와 연기를 멈추고 원래의 모습을 보여줄 때의 눈빛의 변화도 좋다. 다른 두 순호가 18살 소년병의 느낌이 강하다면 박정원의 순호는 뭔가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어 보인다. 마냥 순수한 동생의 느낌보다는 트라우마가 있는 병사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윤소호 순호와는 정반대로 내성적인 순호여서 영범에게 많이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대가 보시기에’에서는 미쳤다기보다는 바보 같다는 느낌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7호 2013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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