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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Time Travel] 컨셉 뮤지컬의 등장 <컴퍼니> [NO.104]

글 |이민선 도움 | 조용신 2012-06-01 7,928

화려한 쇼가 중심을 이루던 브로드웨이에 <오클라호마!>를 필두로 드라마 구성이 중요한 북 뮤지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주인공이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됐는지 세세하고 드라마틱한 플롯을 가진 작품들이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 그러던 중 1970년, 스티븐 손드하임과 해롤드 프린스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컴퍼니>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주인공이 결국 어떻게 됐다는 건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려주지 않고 끝나버린 작품을 보고 의아했던 것. 하지만 이것은 창작자의 실수가 아니라 의도였다. 드라마보다는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총체적인 연출 방식을 중요시했던 이 작품을 사람들은 ‘컨셉 뮤지컬’이라고 불렀다.

 

 

 

 

 

스티븐 손드하임과 해롤드 프린스의 만남
어린 손드하임은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함께 펜실베이니아로 이사를 왔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의 이웃에는 유명한 작곡가 오스카 해머스타인이 살고 있었다. 손드하임은 그를 양아버지처럼 따르며, 십대 때부터 그에게서 뮤지컬 작법을 배웠다. 손드하임이 20대이던 1950년대는 소위 뮤지컬의 황금기였다. 많은 유수 창작자들이 이미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던 때라 신인인 손드하임이 브로드웨이에 작품을 올릴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레너드 번스타인과 아서 로렌츠, 제롬 로빈스가 참여했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의 작사를 맡으면서, 브로드웨이에 데뷔하게 된다. 이후 <집시>(1959)의 작사가에 이어, <로마에서 일어난 기묘한 사건>(1962)에서 브로드웨이 작곡가로서 첫 번째 이력을 얻게 된다. 손드하임은 밀튼 배빗에게 가르침을 받은 바 있는데, 밀튼 배빗은 같은 멜로디가 여러 차례 반복되는 고전적인 쇼튠에서 벗어나 좀 더 전위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음악을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후 손드하임은 드라마와 연출적 요소와 결합됐을 때 재미를 안겨주는 음악으로 그만의 스타일을 드러냈다.


해롤드 프린스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극장을 자주 찾았으며, 대학 졸업을 앞두고 보조 무대감독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가 곧바로 취직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베테랑 연출가이자 제작자였던 조지 아보트에게 ‘일단 나를 무보수로 고용해보고 쓸모가 없으면 쫓아내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던 그의 패기 덕이었다. 이후 몇 년간 무대감독 및 프로덕션 매니저로 일한 후, 1954년 <파자마 게임>에 제작자로 참여하여 작품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와 <로마에서 일어난 기묘한 사건>(1962), <지붕 위의 바이올린>(1964)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브로드웨이의 전도유망한 제작자로 성장했다. 조지 아보트는 그에게 연출가 경험도 해보길 권했다. 그래서 프린스는 <가족문제>(1962)를 시작으로, <카바레>(1966)와 <조르바>(1968) 등의 작품을 연출했다.


손드하임과 프린스는 <남태평양>(1949)의 오프닝 날 처음 만났다. 당시 손드하임은 19세, 프린스는 21세였다. 젊은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귀엽게도 햄버거를 먹으며 날이 새도록 뮤지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해지는데, 역사 속에 묻혀버릴 수도 있었을 60여 년 전의 그날이 그들의, 아니 브로드웨이의 운명을 바꿔놓으리라 예상했을까. 두 사람이 같은 작품에서 재회한 것은 8년이 지난 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제작자와 작사가로 참여하면서였다. 그리고 손드하임이 작사·작곡가로, 프린스가 연출가로 참여하여 완성한 <컴퍼니>(1970)를 통해 두 콤비의 예술적 성취가 브로드웨이에 엄청난 족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컴퍼니>, 컨셉 뮤지컬의 등장
<컴퍼니>에는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맞는 싱글남 바비와 그의 세 여자 친구, 친구인 다섯 부부가 등장한다. 바비가 주인공으로서 작품의 중심에 서 있지만, 주·조연의 구분 없이 나머지 배역들이 고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바비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처음과 같은 장면이 반복되면서 끝을 맺는다. 그 사이에 바비와 여자 친구들의 데이트, 바비와 각 부부들과의 만남이 나열된다. 바비는 자유롭고 화려한 싱글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무언가 아쉽다. 친구들은 각자의 결혼 생활을 바비에게 솔직하게 드러내며, 바비가 결혼하지 않고 부부 두 사람과 함께 셋이라는 ‘컴퍼니’를 이루면 완벽한 관계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바비와 세 여자, 그리고 다섯 커플이 보여주는 각각의 에피소드는 모두 다름 아닌 ‘결혼’에 관한 것이다. 결혼, 현실적인 문제이지만 이렇다 할 해답을 내리기 쉽지 않은 주제이다. 극작가 조지 퍼스와 스티븐 손드하임, 해롤드 프린스는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고 결혼에 대한 고민을 주인공에게 남겨두고 공연을 끝맺었다.


평범하지 않은 것은 스토리뿐만이 아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시간적 순서나 맥락 없이 나열되는데, 음악 역시 에피소드의 내용과 유기적으로 엮여 있지는 않다. <컴퍼니>가 나오기 이전에, 대부분의 뮤지컬에서 노래의 기능은 대사를 대신하는 것이거나 내면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컴퍼니>에서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설명하는 그리스 코러스식의 노래가 나오거나, 주인공 내면의 목소리를 그가 아닌 다른 캐릭터가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뮤지컬 넘버들은 일관되게 뉴욕에 사는 싱글남 바비가 마주하는 일상과 결혼에 대한 소회들을 담고 있다.


무대 디자인 역시 관객들에게 생소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무대디자이너 보리스 아론슨이 선보인 <컴퍼니>의 무대는 전환이 없는 단일한 세트였다. 기본 세트는 두 층으로 나뉜 철골 구조물. 차가운 도시 뉴욕임을 느끼게 하는, 상징적이지만 묘하게 리얼한 세트였다. 도시인들의 대부분이 고층의 공동 주택에서 살고 있듯이, 친구 커플들은 2층의 개인적인 공간에 대기하고 있다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층에 내려와서 바비를 만난다. 공간의 변화는 오브제의 사용이나 대사로 이루어졌다.

 

 

 


<컴퍼니>의 작가와 작곡가, 연출가는 한 몸이 되어서,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맞는 대본과 음악을 쓰고, 배우들의 동선과 무대 디자인, 무대 효과 등을 활용해 그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손드하임과 프린스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스토리를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지 않고, 플롯보다는 어떤 아이디어나 주제가 작품 전체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것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컴퍼니>에 뚜렷한 기승전결은 없지만, 이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무엇인지는 명확하다는 데서 관객과 평단은 독특함과 신선함을 느꼈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이 작품에 ‘컨셉 뮤지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컴퍼니>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컨셉 뮤지컬’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지만, 이런 표현 중심의 작품이 <컴퍼니>가 처음은 아니었다. 1940년대에 쿠르트 바일이 선보였던 <레이디 인 더 다크>(1941)나 <러브 라이프>(1948)는 하나의 테마에 따라 비선형적으로 전개되는 작품이었다. 북 뮤지컬의 대가인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콤비도 이례적으로 <알레그로>(1947)라는 제목의, 그리스식 코러스가 드라마를 설명하고, 빈 무대에서 소품과 프로젝션의 활용으로 공간을 표현한 실험적인 작품을 만든 적이 있다. 이것이 후에 젊은 손드하임과 조지 퍼스가 <컴퍼니>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좀 더 <컴퍼니>와 맞닿아 있는 작품은 존 칸더와 프레드 엡, 그리고 해롤드 프린스가 참여하고 1966년에 개막한 <카바레>이다. 프린스는 모스크바에서 보았던 한 공연이 내내 컨셉을 유지하는 연출 기교에 놀라워했는데, <카바레>는 그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듯하다. <카바레>는 1930년 나찌 정권하의 베를린을 배경으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변화하는 현실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소시민들의 군상을 보여준다. <카바레>는 선형적인 연극과 비선형적인 쇼가 반반으로 분리돼 펼쳐진다는 점이 특이하다. 극 중 인물들의 스토리가 이어지는 사이사이에, 현실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카바레에서 벌어지는 쇼가 삽입됐다. 전혀 다른 장면들을 이어 붙인 것 같지만, 쇼에서 들려주는 노래의 가사는 쇼 바깥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브레히트의 신봉자였던 해롤드 프린스는 관객으로 하여금 극 속에 몰입하지 않고 극으로부터 소외되도록 하면서도, 작품의 주제를 명확하게 전하려 했다. <카바레>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드라마와 쇼를 번갈아 보여주는, 북 뮤지컬과 컨셉 뮤지컬의 중간에 놓인 작품이었는데, 몇 년 후에 프린스가 손드하임과 함께 선보인 <컴퍼니>에서는 컨셉이 한층 뚜렷하게 드러났다.

 

 

 

 

컨셉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 남긴 것
컨셉 뮤지컬은 줄거리보다 표현 방식이 더 중요한 작품을 일컬을 때 쓰이는 용어이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뚜렷한 주제가 있고, 그것이 잘 드러나도록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컨셉 뮤지컬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쿠르트 바일을 비롯한 몇몇 작곡가들과 함께 쓴 음악극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1940년대의 몇몇 작품에서 컨셉 뮤지컬의 성격이 드러났지만,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파격적인 소재와 형식의 <헤어>로 꽃 피우기 시작했고, 1970년 <컴퍼니> 등장으로 더욱 인기를 얻었다. 매거진 <뉴요커>의 마틴 고트프리드가 내러티브보다는 연극성과 회화성이 짙은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하면서, 컨셉 뮤지컬이라는 개념이 통용되었다. 이런 형식의 뮤지컬은 명확한 줄거리보다는 연극적인 설정과 시각적인 연출이 중시되므로, 연출가의 취향과 역량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컴퍼니>는 지금까지도 가장 대표적인 컨셉 뮤지컬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손드하임과 프린스가 합작한 또 다른 작품 <폴리스>(1971)도 그러하다. <폴리스>는 오늘을 사는 중년 미국인들의 과거에 대한 추억과 후회를 이야기한다. 왕년에 폴리스 무희였던 두 부인은 철거를 앞둔 극장에서 부부 동반으로 만난다. 이들은 쓰러져 가는 극장에서 과거를 추억하는데, 현재의 중년들과 대비되도록 과거를 상징하는 젊은 무희들이 무대에 등장해 화려하게 춤을 춘다. 과거 폴리스 스타일의 음악과 현대적인 가사가 대비되고, 다른 시공간에 있는 젊은 무희들과 중년 부인들의 어긋나는 춤 실력이 드러나면서, 중년의 그들이 느낄 씁쓸함이 전해진다.


그 이후에 등장한 작품 중에서도 줄거리보다 표현이 중요시된 예는 많다. 오디션을 보러온 배우들 각자의 사연을 묶은 <코러스 라인>(1975)이나, 고양이들을 의인화하고 각 고양이들 각자가 자신을 소개하는 쇼를 보여주는 <캣츠>(1981)도 컨셉 뮤지컬이라고 부름직하다. 손드하임과 제임스 라파인이 함께 내놓은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1984), 프린스가 연출했던 <태평양 서곡>(1976)이나 <퍼레이드>(1998), <러브 뮤직>(2007) 등도 표현 방식이 눈에 띄는 작품들이긴 하나 <컴퍼니>처럼 선명하게 컨셉을 유지하고 있지는 못하다. 컨셉 뮤지컬이라는 용어는 <컴퍼니>가 선보인 독특한 스타일을 설명하기 위해 생긴 것으로, 컨셉 뮤지컬을 뮤지컬의 하위 장르로 인식하고 어떤 작품이 이에 속하는지 규정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지금 컨셉 뮤지컬을 이야기할 때 어떤 작품이 컨셉 뮤지컬인가를 논의하기보다는, 컨셉 뮤지컬이 추구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스티븐 손드하임과 해롤드 프린스가 합작하여 소개한 일련의 작품들은 당시에 주류를 이루고 있던 통합 뮤지컬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들이 뮤지컬 극본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플롯이 아니라 아이디어였고, 거기서 대사와 가사, 음악, 연출, 디자인 등 공연의 모든 요소들이 우러나와서 어우러지길 바랐다. 해롤드 프린스는 흥미롭고 효과적인 무대 그림을 만드는 데 정통했다는 평을 듣곤 하는데, 공연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해서 컨셉이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는 작품을 완성했다. 독특한 표현 방식을 선보이기 위해 애쓴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필요로 하는 표현 방식을 활용했던 것이다.


컨셉 뮤지컬에서 무대 디자인의 중요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각적인 효과를 주는 데 세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프린스와 함께 <카바레>부터 <컴퍼니>와 <폴리스>, <리틀 나잇 뮤직>, <태평양 서곡> 등을 작업했던 무대디자이너 보리스 아론슨은 이전의 브로드웨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상징적이고 기하학적인 세트를 선보였다. 영국과 유럽, 또는 실험극에서는 이미 이러한 무대 디자인을 볼 수 있었지만, 브로드웨이에 이런 사실적이지 않은 단일 세트를 도입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는 화려하고 사실적인 무대들이 매 장면마다 전환되어 볼거리를 제공하는 브로드웨이에서도, 단일한 세트와 작은 소품, 연극적 약속만으로도 다양한 공간을 표현하는 모던한 무대 디자인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런 디자인으로 무대 위에서 시각적이고 감성적인 메타포를 창조할 수 있었다.


컨셉 뮤지컬은 주인공의 행동 변화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주제를 은유적으로 드러내곤 한다. 그러므로 관객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스토리를 따라가기보다는 각 장면에 숨겨진 메타포를 찾기 위해 행간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관객들에게 컨셉 뮤지컬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이유이다. 손드하임과 프린스가 보여준 컨셉 뮤지컬은 비교적 지적인 관람 태도를 요구한다. 이들의 예술적 성취 덕에 브로드웨이 관객들의 관람 수준이 향상됐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또한 뮤지컬을 볼 때, 관객들이 드라마에 빠져들지 않고도 무대에서 볼 수 있는 표현 형식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현대 뮤지컬 창작자들 역시 두 대가의 작품들에 자극을 받고, 이전보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을 선보이게 됐다는 것도 두 사람의 만남이 브로드웨이에 미친 중요한 결과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4호 2012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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