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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No.72] 배해선, 김선영 -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이름, 친구

글 |정세원 사진 |박진환 장소협찬|B.B cafe by Hanskin 2009-10-06 7,906

 

김훈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토대로 한 뮤지컬 <남한산성>과 안중근 서거 100주기를 기념한 뮤지컬 <영웅>이 오는 10월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두 작품 모두 역사적 사실을 뮤지컬로 옮기는 과정에서 가상의 여인을 설정했다. 사랑하는 오달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기생 매향(<남한산성>)과 명성황후의 마지막 궁녀로 나라를 위해 게이샤가 되어 이토를 유혹하는 설화(<영웅>)가 그들이다. 서로 다른 작품 속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두 여인은 기생과 게이샤라는 직업 외에도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드라마의 한 축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2006년 <에비타>에서 주인공 에바 페론 역으로 더블 캐스팅되어 연기 대결을 펼쳤던 동갑내기 배우 배해선과 김선영이 매향과 설화 역에 나란히 캐스팅되어 눈길을 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친구끼리 무슨 특별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걱정하던 두 배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나눈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꽃을 피웠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기


김선영(이하 김): 이게 얼마만이야. 잘 지냈어? 살이 좀 붙은 것 같아 보기 좋다.

배해선(이하 배): 그러게. 1월에 보고 처음인 거지? 그때 이후로 잠도 잘 못자고 쉬지도 못하다가 <삼총사> 끝나고 먹고 자고 했더니 살이 좀 붙더라. 한 6킬로그램은 찐 것 같아. 어쨌든 서로 잘 살고 있으면 되는 거지 뭐. 그동안 뭐하며 살았어?
김: <지킬 앤 하이드> 끝나고 여행 다녀왔잖아. 파리로다가. (배: 부럽다 야~.) 파리 찍고 베니스, 로마, 프라하… 3주 반 동안 두루 돌아다녔어.
배: 무엇보다 여행을 ‘갔다’는 게 부럽네.
김: 내가 좀 한량이잖아. 여행 다니는 거 좋아해서 짧게는 종종 다녀왔는데 이렇게 긴 시간을 낸 건 오랜만이었어. 2005년부터는 거의 쉬지 않고 공연을 했으니까. 너도 좀 다녀와야 하지 않겠니? 아니다. 일단 넌 연애를 먼저 해야 해. 도대체 너 애인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언제냐?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배: 나도 기억 안 난다. 서글퍼지려고 하네. 그래도 다행인 건 사람들이 내가 연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좀 외롭긴 하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은 해. 소개팅 뭐 이런 건 체질상 못하지만 TV 보면서는 연애하고 있어.
김: 너 여전히 비 좋아하냐? 요즘은 아이돌 시대야. 2PM 같은 아이들의 샘솟는 에너지 보면 얼마나 좋은데.
배: 그게 과하면 추해지는 거야. 우리 나이 들어서 너무 욕심내지는 말자고.
기자: 나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 배우가 점점 어려지고 있지는 않나요?
배: 난 거의 오빠들과 작업을 했던 것 같은데. 동생이라고 해봐야 수용이, 건형이 정도? 준모가 제일 어렸던 것 같다.
김: 그래? 난 정한 오빠, 성화 정도 빼면 다들 동생들이었던 것 같아. 승우, 광호, 우형이, 준모, 상윤이….
배:남자 복이 많았구나? 나도 더 나이 들기 전에 형제들처럼 지내는 배우들 말고 새로운 친구들과 작업해보고 싶어.
김: 나이를 떠나서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교감하는 게 재밌는 것 같아. 문제는 내 나이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거지. 나이에 맞게 역할도 자연스레 바뀌어야 하는데, 청춘의 끈을 놓지 못하고 예쁜 역할만 하려는 여배우들이 있어. 난 그게 참 싫더라. 다행히 나는 내가 절대 어려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 어린 것과 어려보이는 건 다른 거잖아. 무대에서 어려 보이려고 애쓰는 거 관객들도 눈치 챌 텐데 뭐하러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르겠어. 균형감 있게 사는 게 좋은 것 같아.
배: 무대라는 곳이 좀 애매한 게, 진짜 스무 살 배우에게 스무 살 연기를 시켜야 하는 작품도 있지만 30대 배우가 연기함으로써 20대가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도 있다는 거지. 예전엔 젊은 배우가 나이든 역할을, 나이든 사람이 젊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배우 층이 두터워져서 배우들이 빨리 순환되는 것 같아. 정원 언니나 경주 오빠 시절에는 30대 배우가 20대 역할을 한 10년 정도 했다면 우린 4~5년 정도밖에 못하게 된 거야.
김: 작품마다 선택할 수 있는 배우들이 많아졌으니까. 우린 나이에 맞게 자연스럽게 작품을 하면 되는 거야. 마음과 정신 상태는 젊게 유지하고.

 

무대 위에서 쌓은 우정

 

기자: 두 분이 처음 호흡을 맞춘 작품이 1999년에 공연한 <페임>이죠?
김: 그렇죠, 내 데뷔작. (배: 그때 선영이 정말….) 나 용 됐지?(웃음) 그때 해선이 네가 나한테는 롤 모델이었어. 나이는 같았지만 넌 연기를 전공했고 성실하고 또 작품도 이미 많이 했고…. 지금이야 나이 들어가니까 편하게 지내지만 그땐 네가 정말 멋있어 보였어. 뭐든 너처럼 해야 할 것 같았고.
배: 그게 뭐가 중요해. 친구끼리. 넌 노래를 너무 잘해서 한 작품 하고 신인상까지 탔잖아. 노미네이트만 수차례 된 선배들을 다 물리치고 말야.
김: 그것 때문에 말 많았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만 했던 것 같아.
기자: 공연 끝나고 우연히 선영 씨를 본 기억이 나요. 분명히 메이블이 맞는데 너무 날씬해서 깜짝 놀랐거든요.
김: 아마 그때가 제일 말랐을 때였을 걸요? 어떤 관객분은 ‘쟤는 저렇게 뚱뚱해서 어쩌나?’ 하며 걱정해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배: 그땐 정말 재밌었어. 나라, 채봉이(박동하), 덕선이(윤길)… 또래 친구들도 많았고.
김: 얼마 전에 <42번가> 보고 채봉이 때문에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웃음 코드가 정말 독특한 애잖아.
기자: 이후로 <토요일밤의 열기>와 <에비타>에서도 같이 작업했죠. 그러다보니 두 분을 놓고 ‘선의의 경쟁자’라고도 하잖아요. 
김: 우리 <토요일밤의 열기>도 같이 출연했구나. 잊고 있었네. 그럼 1999년에 처음 만났고, 2003년, 2007년에 같이 출연했으니까… 내년이나 내후년쯤 다시 만날 수도 있겠다.
배: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닌데 어쩜 이렇게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을까? 경쟁 구도는 이슈를 만들다보니까 그렇지 사실 우린 공생이에요. 내 작품, 네 작품이 어딨어, 다 잘 되어야지. 선영이 너랑 같이 하지 못해도 각자 자기 자리에서 진득하게 일하고 있다는 게 의지가 되는 것 같아. 누가 너 만났다고 하면 괜히 더 반갑고.
김: 10년 넘게 인연을 맺고 있는 친구이고 같은 일을 하는 동료잖아 우리가. 매일 통화하지 않아도 내가 외롭게 뭔가를 하고 있을 때 너도 어디선가 나처럼 지내겠구나 생각하면 든든해지는 것 같아. 앞으로 또 10년 뒤에도 서로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더 그렇고.
배: 그래야지. 그래도 한편으로는 좀 서글프더라. 우리가 인터뷰를 통해서 만나야 하나 싶고,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말야. 작품을 같이 하면 할 얘기도 많고 자연스럽게 만날 일이 생기는데 다른 작품하면 또 그쪽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니까. 그래도 중요한 건 내가 응원하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 싶어. 우리 나이 또래 친구들 중에 뮤지컬 하는 친구가 별로 없었잖아.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것 같아.
김: 친구라고 해도 너의 패밀리와 나의 패밀리가 다르니까 그렇지 뭐. 나는 네가 건강하게 멋있게 그 자리에 있어주면 좋겠어. 내가 외롭지 않게. 난 끝까지 건강하게 무대에 설 거거든.

 

새 무대를 앞두고

 

배: 그래야지. 참, 공연은 언제야?
김: 10월 26일이었나? (배: 우리보다 한참 뒤네. 9일에 시작하거든.) 그럼 너희 연습 시간 별로 없는 거잖아. 연습은 잘 되고 있어?
배: 일찍 시작은 했는데 대본을 계속 수정하고 있어. 실화를 바탕으로 하다보니 우여곡절이 많네. 너도 연습 중이지?
김: 뮤직비디오 찍는다고 연습을 조금 일찍 시작했어. 재밌는 건 사람들이 나한테 <남한산성> 연습 잘 되고 있냐고 물어본다는 거. 왜 그러나 했더니 네가 출연하더라. 너랑 나랑 헷갈리나봐.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지? 너나 나나 몇 년 동안 라이선스 뮤지컬을 많이 했는데, 약속한 것도 아닌데 비슷한 시기에 창작뮤지컬에 출연하게 됐으니 말야.
기자: 두 분의 역할이 작품 속 가상 인물 기생과 게이샤라는 점도 닮았어요.
김: 그래요? 난 해선이가 <남한산성> 한다는 것만 알았지 어떤 역인지는 몰랐어요.
배: 나도 대본을 받고 나서야 알았어. 원작에 없는 인물이니까. 처음엔 황진이나 논개를 연상시키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었는데 많이 압축 돼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못 잡겠어. 역사적인 사건들 속에서 인위적으로 설정한 삼각관계가 잘 드러나게 하는 것도 힘들고.
김: <영웅>은 내게 많은 자극을 줄 것 같아. 설희는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그것을 계기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여자거든. 러브 라인을 아예 없애고 오롯이 대의를 갖고 움직이는 인물이 될 것 같아. ‘조국’이라는 단어, 나보다 어리고 자식까지 있는 사람이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게 낯설게 다가왔지만, 그들에게 조국이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어. 그래서 더 많이 공부하게 되는 것 같아. 안중근은 ‘진짜’ 사내였더라.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됐어.
배: 우리 팀은 마음을 비우고 대화를 많이 나누고 있어. 나만 생각하면 매향의 캐릭터가 약해져서 아쉬울 수 있겠지만 이제는 작품 전체를 생각하게 되더라. <남한산성>은 치욕을 겪었던 역사의 순간을 다루고 있어서 감동이나 후련함이 부족할 수 있어. 치욕스러운 역사 속에 삶과 죽음 앞에서 고민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기대되는 건 앙상블 친구들이 정말 열심히 한다는 거야. 왜 앙상블이 좋으면 마음 든든하고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 힘을 실어주는 선배님들과 같이 작업하게 된 것도 고마워.
김: 이제는 우리가 좋은 창작뮤지컬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시점이 온 것 같아. 작품에 참여해서 내가 얼마나 기여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힘을 한데 모아야겠다는 책임감도 들고.
배: 진짜 응원을 좀 해줬으면 좋겠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지지해주면 좋겠는데, 관심이 금방 식어버리는 것 같아 아쉬워. 한번에 좋은 작품이 나오기가 쉬운 일이 아니잖아. 고민하고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기회는 줘야하는 게 아닌가 싶어. 비평을 하더라도 애정을 담아서 말야. 가끔 리뷰들 보면 다른 라이선스 뮤지컬 보면서도 이렇게까지 얘기할까 싶은 글이 있거든. 말이라도 파이팅 해주면 얼마나 좋아. 그건 창작뮤지컬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아. 라이선스 뮤지컬 중에서도 새로 창작한다고 생각하고 참여한 작품들도 꽤 많거든.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긍정적인 기운들이 모이면 조금씩 좋아지지 않을까.
김: 맞아. 가끔 기자들이 작품 잘 나올 것 같냐고, 계몽적인 작품 나오는 거 아니냐고 물어볼 때가 있는데 그냥 모른다고 얘기하곤 해. 이왕이면 잘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듣고 싶은데 쉽지 않더라. <남한산성>이나 <영웅>은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니까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잖아. 내가 하는 작품뿐만 아니라 지금 준비 중인 모든 작품들이 다 잘 되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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