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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생계형 연출가 이기쁨의 생존기] 한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글 |이기쁨(연출가) 사진 |. 2025-08-04 478

<생계형 연출가의 생존기: 장르는 넘으라고 있는 것>

8월의 이야기: 연극

 

2009년 2월, 연극 연출가로 데뷔한 이기쁨은 올해로 16년째 ‘창작집단 LAS’를 이끌고 있다. 연극, 국악 극, 아동극, 뮤지컬, 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만들어온 그는, 그 어떤 한 분야로도 쉽게 규정하기 어려운 연출가다. 이기쁨 연출이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생계형 연출가’로서의 현실 때문이다. 생활인으로서의 생존, 극단 대표로서의 책임, 그리고 연출가로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삶이 얽히고설켜 고단한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주어진 작업을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니, 어느새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필모그래피가 쌓여갔다. 화려한 능력으로 쌓아 올린 결과라기보다는,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행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성격은 이런 여정을 가능하게 했고, 그 속에서 이기쁨만의 배짱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금부터, 이렇게 고군분투하며 버텨온 이기쁨 연출가의 ‘생존기’를 매달 장르별로 하나씩 살펴보자.

 


 

대학교 입학식도 하기 전, 왕십리의 컴컴한 술집에서 열린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했다. ‘이기쁨’이라는 이름의 신입생이 있다고 선배들 사이에서 꽤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귀엽고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진 스무 살 여학생을 상상했겠지. 그때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짧은 머리에, 다나까 말투로 대답하던, 군기가 바짝 든 상태였다. 선배들 앞을 일일이 돌며 인사하는데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마주했던 남자 선배들의 흥미가 한순간에 꺾이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흥, 뭐 어쩌라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저 웃으며 “아이~ 선배님~” 하고 허리를 숙이며 그들의 기분을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그중 한 선배가 반갑다며 손을 내밀었고, 나는 긴장한 탓에 악수 하나도 깍듯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그는 악수를 마치고 말했다. “영화부라고? 근데 너, 연극 할 거 같다.” 나는 영화 공부를 하겠다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던 터라, 그 말이 어이없게 들렸다. 속으로 ‘흥, 진짜 뭐 어쩌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정말이지, 그의 말처럼 나는 연극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지금도 연극을 하고 있다. 그 선배는 대체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그런 말을 했던 걸까. 연극을 할 것 같은 관상이라도 있는 건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 말은 가끔 생각이 난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자면, 당시 남자 선배들의 반응은 꽤 불쾌했다. 논리적으로 그들의 잘못을 따지고 들 수는 없었지만, 여성적인 매력이 덜하다는 이유로 나를 불청객 취급하고는 담배 심부름을 시키며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던 그 분위기는 지금도 결코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은 여전히 ‘야생의 시대’였다. 지금이라면 혐오 발언으로 취급될 말들을, 당시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농담 삼아 주고받으며 웃고 지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넘은 시간이 지났다. 시대도 바뀌었고 나도 변했다. 나는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로서 두 발을 딛고 선다는 것이 어렵지만 반드시 해내야 할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나의 연극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전통적인, 서사를 중심으로 한 보편적인 형태의 드라마를 만드는 것을 여전히 선호하지만 그 안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은 점차 하나의 화살표를 향해 모이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여성 서사’다. 이 변화의 분기점에 있었던 작품이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이하 <헤.아.아>)였다. <헤.아.아>에 대한 이야기는 인터뷰에서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고, 함께 작업한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초연을 올린 직후,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한 계기가 되었고, 자연스레 <헤.아.아>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매 회차 극장을 가득 채운 채 함께 웃고 우는 관객들을 보니 이런 이야기가 정말로, 절실하게 필요한 이야기라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와 동료들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풀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어진 작품이 <헤카베>, <줄리엣과 줄리엣>, <우투리: 가공할 만한>, 그리고 <선택>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늘 여성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하고 싶어 했다. “왜 주인공은 죄다 남자야?”,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디 있어?” 그렇게 술 한잔 기울이며 투덜대던 순간들이, 답답함을 토로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답답함을 거름 삼아 만든 작품이 <헤.아.아>였고, 그 작품을 통해 나의 무대 언어도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연극 <선택> 공연 장면. 사진=창작집단 LAS

 

<우투리: 가공할 만한>을 처음 기획했을 때, 홍단비 작가에게 ‘아기장수 우투리’ 설화를 내밀며 말했다. “여자 영웅을 만들자!” 아주 대놓고(!) 여자 영웅을 만들고 싶었다. <헤.아.아>도, <헤카베>도 이런 선언과도 같은 시작은 아니었다. <우투리: 가공할 만한>은 전형적인 히어로물 구조 안에서 여성이 주체가 되는 작품이었다. 총 한 발이 세상을 바꾸는 신호탄이 되는 그 순간, 관객들이 새로운 여성 영웅의 탄생을 고스란히 체감하길 바랐다. 호흡과 움직임 하나하나에 여성 영웅의 서사가 보이길 바랐다. <관부연락선>도 떠오른다. 일제강점기, 조선과 일본을 오가던 실제 배였던 ‘관부연락선’을 배경으로, 다른 계층의 여성들이 각자의 삶과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서로 연대하는 이야기다. 특히 당시의 가장 유명했던 신여성 ‘윤심덕’이라는 실존 인물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희준 작가님은 심덕을 그저 시대를 ‘버텨낸’ 여성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낸’ 인물로 그려주셨고, 난 그 밑그림을 바탕으로 ‘희생’이나 ‘상징’으로 소모되지 않는, 독립적인 감각을 가진 존재로서의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고자 했다. <줄리엣과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브로 삼되, 남녀 간의 사랑을 여성 간의 사랑으로 전환하며 기존 로맨스 구조를 정면으로 비틀었다. ‘줄리엣’이 두 명이라는 설정만으로도 이 이야기는 완전히 새롭게 읽히기 시작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남성 중심 서사의 배경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주체의 감정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이렇게 내 연극은 점점 명확해졌다. 내가 다룬 많은 이야기들은 결국 ‘여성의 위치에서 느끼는 흔들림’에서 출발했다. 불합리함에 대한 분노, 자기 부정에서 비롯된 고통, 소외의 외로움—이런 감정들은 단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연결된 이야기라고 여긴다. 내가 만드는 연극은 그 감정을 담는 그릇이고, 나는 그 그릇에 형태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그릇은 사회로, 구조로 확장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기쁨 연출가

 

이런 생각으로 작업을 하다 보면, 내 작품 속 남성 캐릭터는 종종 악역이거나 비중이 작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미움을 받는 역할도 많다. 일부러 욕먹는 역할을 만들고자 한 의도는 아니었다.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결과가 그렇게 보여졌을 뿐. 하지만 세상 어떤 사람이 욕먹고 미움받는 것을 즐길 수 있을까? 실감 나게 그 역할을 표현했기 때문에 돌아오는 반응이라고 위로하더라도, 그 반응들은 배우 본체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에 막을 내린 <선택>이라는 연극에서는 미성년자인 연아가 임신 중지를 결정하자, 연인인 한솔이 이를 만류하며 내뱉는 대사들이 있다. 그 대사들에 대해선 이하 생략하는 것이 여러분의 정신 건강에 좋겠다…. 한솔의 대사를 들은 관객들의 반응은 매우 예견된 것이었다. 관객들은 그 대사들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한숨, 탄식, 때론 욕설까지—이렇게 다들 한마음일 수 있나 싶을 만큼. 너무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관객석의 그런 반응과 기운은 무대 위 배우들도 정확하게 느낀다. 그럴 때 배우는 머리로는 자신의 연기 때문임을 알지만, 마음으로는 괴로워진다. 매일 그런 부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있으면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동안은 남자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에 난항을 겪었던 적이 있다. “미안한데….” 라는 말로 시작되는 캐스팅 과정은 힘들지만, 고심 끝에 거절하는 그들의 입장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한솔 역할의 동훈 배우도 초연 땐 많이 힘들어했지만, 재연 땐 훨씬 긍정적으로 그 감정을 받아들여 주었다. 이렇게 함께 해주는 배우들을 볼 때마다 고맙고 또 미안한 마음이다.

 

결국 연극은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예술이다. 누가 옳고 그르다는 이분법을 위해 무대에 올리는 것이 아니다. 10년 전에도 이 이야기들이 더는 유효하지 않은 세상이 오길 바라며 공연을 올렸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이야기로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바라는 변화가 무엇인지 잊지 않고, 그 방향만을 바라보며 연극을 만들고자 한다. 물론 나는 생계형 연출가이기 때문에 언제나 이런 이야기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배우들이 오디션을 거쳐 선택받아 작품에 참여하듯, 연출가 또한 제작사나 투자사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니까. 하지만 내 안의 생각을 놓지 않고 묵묵히 이어가다 보면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는 기회가 온다. 이런 이야기들이 낡은 이야기가 되는 세상이 될 때까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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