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발, 정성화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라카지> 이전에도 정성화는 동성애자 연기를 선보인 적이 있다. 이성애자 정치범 발렌틴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한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의 몰리나를 연기했다. 건장한 체격과 어울리지 않는 섬세한 몸짓과 애교 섞인 말투와 목소리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의 감정과 심리를 여과 없이 보여준 정성화의 게이 연기는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게이 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뮤지컬 <라카지>의 국내 공연 소식이 들렸을 때 앨빈 역으로 정성화를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다른 배우들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앨빈 역의 출연이 결정되어 있었다.
정성화가 새롭게 도전하는 앨빈은 20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을 위해 기꺼이 앞치마를 두르는 가정적인 아내로,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다정하고 헌신적인 엄마로, 클럽 ‘라 카지 오 폴’의 카리스마 넘치는 전설적인 여가수 자자로 평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여자보다 더 여성스럽고 감성적이며 예민하고 섬세한 이 남자의 성별을 초월한 사랑이 정성화의 마음을 두드렸다. “온 정성을 다해 키운 아들의 상견례에 초대받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 엄마의 심정을 한 곡의 노래로 표현한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요. ‘I Am What I Am’은 뮤지컬 솔로 넘버 중에서도 가장 멋진 곡이 아닌가 싶어요. 또 다이내믹하게 급변하는 앨빈의 캐릭터도 정말 매력적이었고요.”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디테일한 연기를 선보여 온 정성화가 누구보다 앨빈을 잘 표현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의 앨빈에게서 몰리나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없지 않다. 이에 정성화는 “몰리나가 한 여인으로서의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면 앨빈은 여성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내면인 모성애를 보여주는 인물”이라며, 전작에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기에 자신감을 보였다. 투박한 자신의 외모와 비교되는 김다현을 보며 질투어린 마음도 없지 않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른다.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덧붙인다. “작품이 제 삶과 함께 가는 것 같아 참 좋아요. 결혼을 앞두고 참여했던 <거미여인의 키스>가 제게 여자에 대해, 그들의 감성과 사랑에 대해 알려줬다면, 이번 공연은 엄마의 마음을,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주고 있거든요. 2세 계획을 세우고 있는 지금 이때에 말이에요.”
뮤지컬 첫 무대에서 관객들이 보낸 진심어린 박수에 감동받은 정성화가 앞만 보고 달려온 지도 어느덧 9년이 지났다. 애드리브 하나까지 철저히 계산하고 연습해 선보이는 뛰어난 연기와 단단하고 묵직한 음색, 흔들림 없는 눈빛, 여유로운 웃음…. 잊혀진 개그맨이었던 그가 선입견을 깨고 관객과 평단에 믿음을 주는 정상의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을지는 상상만으로도 알 수 있다. ‘진심을 가지고 무대에 오르면 관객들도 알아줄 것’이라는 신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를 개그맨으로,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는 조연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아직도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정성화는 “지금 좀 잘 나간다고 넋 놓고 있을 틈이 없어요. 그분들에게 뮤지컬 배우로 다가가려면 죽을 때까지 열심히 하는 수밖에요” 하며 초심을 되뇌인다.
뮤지컬 배우로 인정받기 위해 30대를 보낸 정성화는 화려한 40대를 맞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담배를 끊었고, 그동안 한 번도 정식으로 배워본 적 없는 발성과 보컬 레슨도 받았다. “나이 먹었다고 퇴물이 되고 싶지 않아요. 적어도 10년 정도는 지금보다 더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는 그에게서 마스카라를 덧칠하며 희망을 노래하는 앨빈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6호 2012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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