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공연을 보는 것이 맞선보는 일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생각해보시라. 처음 만나 세 시간여를 서로에게 집중해서 마주 대하는 상황은, 지나치게 단정적이긴 하지만, 이 두 가지 경우밖에는 없다. ‘그’에 대한 사전정보를 들었다면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클 것이고 아무 정보도 없다면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나가는 심정도 비슷하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앉아있어도 사실은 저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낼 ‘그’를 상상하느라 마음은 굉장히 울렁일 터. 바로 그때, 입구의 문이 열리고 드디어 ‘그’가 들어온다! 첫인상에 대한 평가가 벌써 머리 위에 맴돈다. 하지만 섣불리 단정 지으면 안 된다. 외모에 혹한 자 외모로 망할지니, 이 만남의 시간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그’의 ‘속’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보고 이야기 나누면서 찬찬히 알아가야 하는 거다. 어떤 상대라도 한 가지 이상의 장점은 있는 법. 그 숨겨진 미덕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상대를 향한 예의이다. 공연이든 사람이든 만남이란 소중한 거니까.
<투란도>와의 만남을 20자로 정리하자면 ‘진지하지만 지루한 상대와 긴 시간 맞선을 본 기분’이랄까. <투란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억양 하나 바뀌지 않는 모노톤으로 상대방의 기분이나 의견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 할 말은 장황하게 다하는 그런 상대방 같다. 보통 이런 만남이 좋은 결론으로 끝나긴 어렵다. 하지만 <투란도>의 진지함을 무시할 수도 없다. 이런 상대방을 만나면 자리에서 매몰차게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 진지함이 현실에서 통용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것인지 좀 더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자면 <투란도>의 가장 도드라진 장점은 겉모습의 소박함을 초라함이 아니라 자신감으로 내세웠다는 데 있다. 팸플릿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대형 라이선스 공연이 아니면 스타를 내세운 공연이 득세하는 요즘 같은 때에, 빤한 소규모 예산으로, 흥행과는 상관없을 것이 확실한 창작뮤지컬을, 대중에게 알려진 배우 한 명 없이 무대에 올리는 실천은 어지간한 결기 없이는 실행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오페라 <투란도트>라는 원작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 텍스트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대중성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노릇 아닌가. 한 TV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불러 유명해진 아리아 ‘공주는 잠 못 들고’를 빼고 나면 오페라 <투란도트>는 대중들에게 여전히 친숙하지 않은 원작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뮤지컬 <투란도>가 내세우는 자기네 정체성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뮤지컬은 스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극적 상상력과 음악적 완성도로 만들어지는 진지한 무대예술임을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있음이 넘쳐나는 곳에서 없음을 통해 존재의 무게를 더하겠다는 진지한 역발상. 그래, 나 가진 것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 그건 본질이 아니다, 그런 거 없이도 잘 살 수 있다! 이런 호기로움은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그냥 하는 말인가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뭔가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기도 한다.
그 자신감과 진지함이 근거 없지는 않은 것이, 일단 눈에 보이는 모양새가 단정하고 말쑥하다. <투란도>의 무대를 채운 장치는 4개의 판넬형 구조물이 전부다. 심심할 정도로 간결하지만 이 구조물들이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공간에 포착되지 못할 장소는 없다. 다양한 장소의 구현은 물론이요 이야기의 흐름을 잡을 뿐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기에도 넉넉한 무대 운용은 기능적이면서도 상징적이었다. 영상과 조명, 그리고 의상 등 무대 위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요소들 또한 무대의 간결함과 성실한 조화를 이루었으니, 무대는 단순히 배경막이 아니라 배우와 함께 연기하는 또 다른 주체임을 잘 보여주었다.
<투란도>의 시작점이 작금의 뮤지컬 세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인 만큼 이 작품의 성공 관건은 그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느냐의 여부에 있다. 이러한 비판이 진지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화살의 방향이 서울시뮤지컬단 스스로를 향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뮤지컬단도 아이돌 멤버를 기용한 작품으로 적잖은 관객 몰이를 한 적이 있었지만 현재의 뮤지컬 판도에서 명백히 비주류인 서울시뮤지컬단의 정체성을 주류의 논리와 같은 방식으로는 도저히 강화할 수 없다는 진단을 내린 셈이다. 많은 관객이 몰리는 공연은 아니라 하더라도 ‘실험성’과 ‘독창성’으로 뮤지컬의 예술적 가능성을 탐색하겠다는 틈새 전략은 적절하면서도 나름 신선하다. 자, 그렇다면 그 실험성과 독창성의 현실태를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투란도>의 숨겨진 매력일 테니 말이다.
먼저 이야기에서부터 찾아볼까. 뮤지컬 <투란도>가 기존의 이야기를 매만지는 방식은 연결의 매무새를 촘촘히 이어주는 것이다. 공주가 수수께끼의 틀에 갇히는 계기를 음모의 결과로 설정한다든지, 그 음모를 꾸민 환관에게 원한의 동기를 만들어준다든지 등등 이야기의 면모를 극적으로 만드는 설정을 덧붙였다. 이러한 보충의 목적은 이야기를 뒤집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이야기를 더 잘 설명하는 것에 있는 셈이다.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관점은 애초에 이 작품의 관심사가 아니었으니, 실험성이 태동되는 곳이 여기는 아닌가 보다. 그런데 실제로 공연을 볼 때 이런 이야기의 보충이 그리 중요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왜냐.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사가 많기도 하고 배우의 대사 전달이 그리 훌륭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시적 언어로 구성된 가사는 흰말 궁둥이 백말 엉덩이처럼 비슷비슷해서 스토리를 전개하는 언어로서 적절치 않았던 탓이 제일 크다. 레치타티보로 던져지는 수많은 말들을 관객들이 다 잡아챌 수 없음을 만드는 이들도 알았나보다. 자막을 설치해서 모든 가사를 ‘읽게’ 하는 친절함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국내 창작뮤지컬을 보면서 공연 시간 내내 무대가 아니라 자막을 읽는 것은 정말 ‘이국적인’ 경험이었다. 그 말들을 ‘듣게’ 해줄 수는 없었던 걸까.
어쩌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건 이 작품의 음악적 정체성이 뮤지컬과 오페라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사 없이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만 구성된 것이나 배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음역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선율 등등 때문에 이 작품의 음악을 뮤지컬이라는 장르로서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뮤지컬로 전환된 이 작품에서 굳이 오페라의 음악 문법을 활용한 이유가 뭘까. 원작이 오페라인데. 긍적적으로 보자면 뮤지컬과 오페라의 음악적 공통분모를 장르를 넘나들며 확보하려는 실험적 시도였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뮤지컬로서의 음악적 성취가 너무 약하다. 일례로 왕자를 죽이려는 투란도와 왕자를 살리려는 류의 대면 장면은 이야기상으로는 긴장된 상황인데도 음악은 둘 사이의 관계를 극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극적 긴장이 점층적으로 쌓이기는커녕 오히려 극의 진행이 멈춰버리는 식이다. 이러한 경향은 극 전반에 걸쳐있다. 노래가 시작되면 배우들은 가던 길도 딱 멈춰서니 제일 동선이 많은 건 배우보다 오히려 무대이다. 이 작품의 음악 전체에서 드라마틱한 면모를 찾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 음악은 장르에도, 배우에게도, 관객의 귀에도 맞지 않는 셈이다.
<투란도>의 진지함이 맘에 들긴 하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루함을 감출 수 없었던 건 이 때문이다. 뜻은 원대한데 그것을 현실화할 방법은 아직 찾지 못한 거다. 나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가만 보니 진짜 아무것도 없는 거다. 진지함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현실감을 획득해야 한다. 현실감이 거세된 진지함은 검증된 바 없는 자기 확신이나 위장된 자기 연민에 그치기 쉬운 법이다. 대형 뮤지컬이나 스타가 등장하는 작품에 왜 대중들이 반응하는지를 속속들이 염두에 둘 때 비로소 그 현실을 뚫고 나갈 구체적 전략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아직은 그 전략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할까. 계속 만날까 말까. 근거 없는 이상주의자인지 아니면 뜻을 향해 시행착오를 하고 있는 전략가인지 알아보려면 몇 번은 더 만나봐야겠지. 투란도 씨. 마음을 열기에 아직 당신은 너무 힘든 상대이지만 그래도 나중에 다시 한번 뵙고 싶군요. 만나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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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3호 2011년 6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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