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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셜록홈즈> 성실함이 빚어내는 기분 좋은 과잉 [No.96]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HJ컬쳐 2011-09-15 4,100

먼저 미안한 고백부터. <셜록홈즈>가 뮤지컬로 공연된다고 했을 때 의심도 없이 라이선스 작품이라고 생각했더랬다. ‘셜록홈즈’ 시리즈는 추리문학의 고전이자 탐정의 전형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작품이니만큼 이 매력적인 원재료를 뮤지컬로 장르 이동시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일이려니, 했던 거다. 그런데 이번에 공연되는 <셜록홈즈>는 창작뮤지컬, 그것도 원작소설의 에피소드를 번안하는 개념의 창작이 아니라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창작 작품이란다. 여기서 미안한 고백 하나 더. 그렇기에 뮤지컬 <셜록홈즈>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기대하는 마음은 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추리라는 장르 때문이다. 추리의 내러티브는 우선 시간과 공간의 구성이 역순으로 짜여 있다. 보통의 내러티브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반면 추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촘촘히 이야기의 코가 엮이는 것이다. 그래서 추리의 내러티브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계속 교차할 수밖에 없고, 지나간 사건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언제 어느 순간 단서로 탈바꿈할지 모르는 시간적 현재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바로 여기에서 추리물의 섹시한 매력인 긴장감이 생겨난다. 거기에 ‘모든 인물은 범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반드시 열어둬야 한다. 사건이 일어났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모두가, 범인이 되거나 또는 범인이 되지 않을 ‘그럴 듯한 이유’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모든 사건과 인물이 톱니바퀴처럼 잘 연결되어야 할 뿐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설득력 있는 알리바이를 갖출 때 비로소 완성되는 장르가 추리물인 셈이다. 이런 퍼즐을 만들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셜록홈즈’다. 셜록홈즈 시리즈는 다른 추리소설에 비해 사건에 대한 거리두기가 도드라진다. 물론 대부분의 추리물은 제3자의 시선, 즉 탐정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범인이 사건이라는 하나의 퍼즐 조각에 매여 있다면, 탐정은 그 퍼즐 조각이 놓일 그림판을 멀찌감치 서서 상상하면서 조각을 맞춰 나가는 사람이니까. 사건의 당사자는 숨어있고 그 사건을 바라보는 탐정의 시선 아래에서 모든 사건은 새롭게 배치되고 다시금 구성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추리물은 기본적으로 서사적이고 설명적이다. 그런데 셜록홈즈 시리즈는 그런 측면이 더 강하게 개입되는 텍스트이다. 이 시리즈에서 서술자는 셜록홈즈가 아니라 왓슨 아니던가. 셜록홈즈라는 인물도 왓슨의 시선에 잡히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그렇다면, 왓슨을 없애지 않는 이상, 이런 서사성은 극의 형식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서사적인 극적 장치의 결과는 둘 중 하나이다. 세련되거나 촌스럽거나.

 


이리로 보나 저리로 보나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터다. 그런데 말이다. 뮤지컬 <셜록홈즈>에서 그런 힘겨움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감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시즌제 뮤지컬을 표방하며 벌써 다음 시리즈를 예고할 만큼 적잖은 준비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겠고,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요구하는 언어와 문법에 충실했음을 자부했기 때문이겠으며, 캐릭터의 틀 안에서 성실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을 충분히 신뢰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여기에서 잠깐. 자신감과 ‘자뻑’의 차이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자신감은 근거있는 자기만족인 반면 ‘자뻑’은 제멋에 겨운 흥분이 근거의 빈약함을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자신감은 덜어내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그에 반해 ‘자뻑’은 채워 넣어야 할 것이 많은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셜록홈즈>의 확신은 자신감이지 분명 ‘자뻑’은 아니다.


이런 자신감의 시작은 이 작품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일례로, 앞서 말한 형태의 서사적인 구조는 소설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뮤지컬이라는 장르에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관객의 코앞에 서있는 주인공 셜록홈즈가 왓슨의 시선이라는 틀 안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잖은가. 만일 원작대로 하자면 셜록홈즈는 매력적인 탐정이 아니라 지독하게 수동적이고 지루한 캐릭터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관객 앞에서 직접 말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그러자면 조용히 생각하는 우울질의 탐정이라는 캐릭터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이 작품에서 선택한 두 가지 해법. 셜록홈즈의 캐릭터를 천재적인 괴짜로 설정함으로써 캐릭터 자체를 캐릭터의 행동보다 더 도드라지게 내세운 건 적절한 수였다. 그러니 왓슨의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터. 서술자의 옷을 벗겨버리고 그저 홈즈의 친구이자 조력자로 극 속으로 들여보내는 건 당연한 결론이다. 왓슨을 여성으로 설정한 이유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거다. 사실 그런 설정은 출연진에 여배우가 한 명 더 늘어난다는 것 외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물론 좀 더 살림꾼이 된 왓슨 덕분에 홈즈의 캐릭터가 돋보인다는 장점은 있지만, 아무래도 여자인 왓슨과 남자인 홈즈가 한집에 기거하며 우정을 나눈다는 설정은 어딘지 어색하다. 홈즈는 한번, 파자마만 걸치고 설치기도 했다. 목적은 분명했지만 의도는 충분히 살지 않은 설정이랄까. 그래도 뭐, 괜찮다.


극을 이끌어나가는 방식에서도 이 작품은 뮤지컬의 방법을 잘 활용한다. 극 초반부에 홈즈의 캐릭터와 그의 뛰어난 추리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노래 한 곡 안에 추리의 과정을 담아내는 연출은, 추리의 단서가 너무 단순해 보이긴 했지만, 뮤지컬의 장점을 잘 활용한 예였다. 두 발의 총성이라는 단서에서 시작해 메인 에피소드와 서브 에피소드를 연결하는 솜씨도 매끄러웠다. 단지 많은 사실을 짧은 시간에 보여주기 위해 적잖은 대사와 가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것을 놓치지 않으려면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것이 좀(사실은 많이!) 피곤했을 뿐이다. 무대예술의 묘미는 눈에 보이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많은 서브 텍스트를 관객에게 던진다는 데 있는데, 그러기에 이 작품은 추리의 긴장감을 설명적인 대사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아쉬움도 생긴다. 그래도 이 작품의 음악은 사건을 설명하는 서사의 역할이나 내면의 복잡함을 그려내는 서정의 역할을 무난히, 그리고 아름답게 잘 넘나들었다. 왓슨이 의뢰인의 관점으로 사건의 전모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음악과 무대장면이 조율되는 방식이라든지, 한 배우가 동시에 두 인물을 연기할 때의 장면 설정은 연출의 개념과 음악의 표현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결과일 게다. 특히 여러 작품에서 반복됐던 <지킬 앤 하이드>류의 일인이역 묘사가 이 작품에서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이 꽤나 신선하다.

 


여러모로 <셜록홈즈>는 의욕이 돋보이는 공연이지만 그런 의욕이 작품에 득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중극장이라고 하기엔 좀 작은 무대 공간에서 대극장에 더 어울릴 만한 무대 운용을 한다든지, 그다지 높지 않은 극장의 규모에서는 효과적일 수 없는데도 굳이 조명으로 심리적 연기 구역을 설정한다든지, 마지막 반전을 위해 1막에서 애써 깔아놓은 ‘모두가 범인일 가능성’을 2막 시작하자마자 특정 인물에게 성급히 몰아준다든지, 각각의 인물에게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려고 과거의 살인 사건과 현재의 살인사건을 뜬금없이 원한 관계로 엮는다든지, 의욕이 작품의 용량을 초과할 때도 있다. 인물들 간의 관계는 좀 더 치밀하게 엮여야 할 테고, ‘범인일 가능성’도 더 그럴 듯해질 필요가 있다. 시즌제 뮤지컬로 다른 시리즈를 선보이기 전에 이 작품부터 더 손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런 과잉은 반갑다. 내러티브를 엮는 고민, 음악적 화술의 시도, 꼼꼼한 무대그림과 장면전환의 성실함은 대중의 취향만을 우선시하는 요즘의 창작뮤지컬에서 찾아보기 힘든 미덕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결이 잘 다듬어져서 재미있는 시즌 뮤지컬로 이어지길 바란다. 창작뮤지컬의 흥행 코드가 다양해질 거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6호 2011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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