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는 최초의 뱀파이어 소설 ‘뱀파이어 테일’을 둘러싼 영국의 낭만주의 작가 조지 고든 바이런과 그의 전 주치의 겸 작가 지망생 존 윌리엄 폴리도리의 저작권 논쟁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다. 2022년 초연 이후 꾸준히 사랑받는 이 작품에 배우 변희상이 바이런 역의 새로운 얼굴로 합류했다. 인물의 본질과 형태에 대한 오랜 고민 끝에 자신만의 바이런을 만들어낸 그는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세 번째 시즌의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변희상은 2013년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의 앙상블로 데뷔한 뒤 2017년 일본으로 넘어가 극단 사계의 일원으로서 활약했다. 일본에서의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 하고 신인의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온 지 어느덧 6년. 그는 6년 만에 대학로에서 가장 뜨거운 배우로 거듭났다.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를 만난 소감이 어떤가요. 한 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작품인데,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의 생각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솔직히 한 번에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배우가 채워 나가야 하는 부분도 많고, 어떠한 환상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들이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정말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기분이었는데, 여러 참고 자료를 읽고, 지난 시즌에 참여했던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방향이 잡히더라고요.
초연 이후로 바이런 역할에 새로운 배우가 참여하는 건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기존에 참여했던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방향성을 이해하는 것도 제게는 중요했어요. 그들이 이걸 어떻게 만들어 나갔으며, 어떤 과정을 밟아 어떤 결과에 도달했는지 우선 이해하고자 했죠. 바이런으로서 마주해야 하는 세 명의 존의 특색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고요. 그렇게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연출님과 동료 배우들이 저에게 수많은 퍼즐 조각을 던져줬는데, 이 조각들을 어떤 그림으로 맞춰나가야 할지에 대한 물음표는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더라고요. 그런데 처음으로 분장을 하고, 의상을 입고 바이런으로서 무대에 섰을 때, 비로소 그 조각들이 딱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희상 씨가 맡은 바이런이라는 캐릭터는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하지만, 일부 장면에서는 뱀파이어인 루스벤으로서 존재하기도 해요. 바이런 그리고 루스벤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나요.
루스벤을 중심에 두고, 루스벤의 본질과 바이런의 형태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래서 바이런은 조지 고든 바이런을 다룬 콘텐츠나 그 시대의 귀족의 모습을 많이 참고해서, 예측할 수 없는 괴짜 같으면서도 동시에 ‘귀족스러운’ 형태를 찾아보려고 했어요. 루스벤의 본질에 대해서는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루스벤은 존이 만들어낸 또 다른 나, 혹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시련이라고 생각했어요. 쉽게 말해 만화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고민할 때 옆에서 속삭이는 천사 혹은 악마 같은 존재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루스벤의 시작에는 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다음 고민은 '왜 뱀파이어를 모티프로 했을까' 였어요. 물론 소설을 바탕으로 하지만, 뱀파이어라고 하면 흡혈의 상대방과 피로 얽힌다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존 폴리도리와 존이 찾고 있는 '나', 그리고 루스벤이 얼마나 많이 연결되어 있는지 고민했고, 거기에 더해 ‘루스벤이 어떻게 하면 현실에 존재하는 캐릭터로 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관객분들께 뱀파이어로서의 특색을 많이 보여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루스벤이 존과 대화할 때 뱀파이어로서 자극을 받는 순간이나 바이런을 질투하는 순간을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루스벤이 '존의 또 다른 나'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존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겠네요.
처음에는 루스벤은 존이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놨던 자아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제 안에서 부딪히는 게 많더라고요. 그래서 루스벤이 어떻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봤을 때, 존이 '진짜 나'를 마주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써 내려간 또 다른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를 가장 잘 아는, 거울 맞은편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 자신의 본질을 찾고 싶어 하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존이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소설 속에 또 다른 나를 써낸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잖아요. 저는 무대에서 관객분들에게 이 캐릭터를 보여드려야 하는 입장이기에 제 나름의 길을 만들어 낸 거고요. 제가 공연을 준비하면서 동료 배우, 연출님께 여러 개의 퍼즐 조각을 얻었듯이, 관객분들도 공연을 보시면서 다양한 퍼즐 조각을 찾아내서 자신만의 완성품을 만드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말한 저의 생각들은 그저 퍼즐 조각 중 하나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관객이 <더 테일>이라는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언어의 매력이 크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문장으로 채워져 있는 작품이거든요. 무대 비주얼도 아름답고요. 눈으로 보는 매력과 귀로 듣는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관객분들도 많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귀로 듣는 매력'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많이 노력했어요. 일상어를 사용하는 작품을 주로 해왔다 보니 <더 테일>처럼 시어 같은, 인용구가 많이 사용된 대사를 익히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대본을 잘 외우는 건 당연하고, 말투를 손보거나 목소리 톤을 낮추는 등 대사와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런데도 대사가 온전히 입에 붙지 않아서 의도치 않게 실수를 하는 순간이 생기는데, 그런 날에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새벽까지 잠이 안 올 정도로 속상해요. 단어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작품인데, 그런 작품의 아름다움을 그 순간 제가 탁 깨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관객분들이 귀한 돈과 시간을 들여서 공연을 보러 오신 만큼 제가 그 기대를 잘 충족시켜 드리고 싶은데, 그 마음이 너무 커지면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긴장되는 날도 있거든요. 그게 요즘 저의 가장 큰 고민거리예요.
희상 씨의 단어로 <더 테일>을 표현해 본다면,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마주하는 것. 사람은 항상 가면을 쓰고 살잖아요. 그 가면은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만나는 사람에 따라 바뀌고요. <더 테일>은 한 사람이 그 가면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를 마주하는 여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일본에 처음 갔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일본에 있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본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변희상은 30년 가까이 한국에 있었던 변희상과는 다른 부분이 꽤 많았는데, 그 점이 저 스스로 되게 놀랍고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더 테일>을 보면서도 존이 자신의 가면을 내려놓고 또 다른 나의 조각을 찾는 순간들에 마음이 갔어요.
이 작품을 통해 '나를 마주하는 것'에 대한 생각도 많아졌겠어요.
맞아요. 저를 다시 돌아보게 됐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일본에 가기 전, 한국에 있을 때의 나와 일본에서 활동하던 나,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떤 차이가 있나. 이런 생각을 오랜만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줄곧 바쁘게 살아서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거든요.
한국에서의 변희상과 일본에서의 변희상, 그리고 일본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의 변희상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일본 가기 전의 저는 우선 되게 어렸고, 그래서 무서울 게 없었어요. '걱정할 시간에 뭐라도 해보자!' 이런 마인드의 사람이었죠. 근데 일본에서는, '나도 이렇게 겁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느꼈어요. 타지에서 살다 보니 의지할 사람도 없고, 내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해외 생활을 했던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처음 1년은 행복하고, 2년째부터는 조금씩 외롭고, 3년째가 되면 그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순간이 온다는 거예요. 제가 그랬어요. 3년째가 되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근데, 그렇게 외로운데 한국으로 못 돌아가겠더라고요. 겁이 나서요. 일본에서 활동하는 사이에 나이 앞자리가 바뀌기도 했고, 내가 이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요.
일단, 가족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몇 개월에 한두 번씩 보는 거 말고, 같은 공간에서, 언제든 함께하고 싶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내 언어로 내 연기를 자유롭게 하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일본에서는 연기, 노래보다 그 언어 자체를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클 수밖에 없었거든요. '한국어로 연기하고 싶다.' 이 생각이 처음 시작된 후로 정말 오랜 시간, 깊게 고민했어요. 긴 고민 끝에,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더라고요. 겁이 나더라도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에요. 그때 마침 <더블캐스팅>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아무 계획 없이 돌아가는 것보다는 뭐라도 계획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한국 생활에 다시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돌아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도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냈겠죠? 앞서 말한 것처럼 30대에, 내가 쌓아 올린 것을 뒤로 한 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압박감이 정말 컸고요. <더블캐스팅> 촬영하면서는 '내가 이렇게까지 긴장할 수가 있구나' 싶게 떨었어요.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때의 저는 돌아갈 곳이 없었어요. <더블캐스팅>에 참여하려고 급히 캐리어 하나 들고 귀국했는데, 그 사이에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일본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됐거든요. 3년 동안 번 돈, 옷, 집 다 거기 있는데. (웃음) 그때의 감정을 나열하자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오히려 도망갈 곳이 없는 현실이 제 원동력이 됐어요. 절벽 끝에서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더블캐스팅>을 마친 후에도 코로나 때문에 활동을 할 수가 없으니까 '멘붕'이 오더라고요. 서른 넘어서,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돈도 한 푼 못 벌고.... 그러면서 반년 가까이 방에서 안 나갔던 것 같아요. 인생 처음으로 제가 저 자신을 가둔 시기였죠. 저희 가족은 정말 끈끈하고 사이가 좋은데, 그때는 가족들의 애정 어린 걱정의 말도 제게는 상처가 될 정도로 힘든 시기였어요. 그러다가 하루는 제가 이성을 잃고 막 화를 낸 적이 있어요. 누군가에게 활을 쏘는 게 아니라, 그냥 저 혼자 제 안에 있는 울분을 쏟아내는 거에 가까웠어요. 다 쏟아내고 나니까 '현타'가 오는 거예요.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생각하다가, 우선 나가서 움직여야겠다 싶어서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돕기로 했어요. 그렇게 나가서 아버지 트럭 조수석에 탄 채로 문득 운전석을 봤는데, 운전석 시트가 다 닳아서 거의 반쯤 주저앉은 거예요. 그걸 딱 보는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싶었어요.
제가 빚지는 걸 정말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고, 그래서 부탁도 잘 못 하고.... 근데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저를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모든 분에게 연락을 드렸어요. '선배님, 감독님. 저 한국 돌아왔습니다.' 하고요. 배우 에이전시 같은 곳에도 메일을 몇백 통씩 보냈어요. 그렇게 간절하게 행동하다 보니 하나둘씩 손을 내밀어 주셨고, 그렇게 얻은 기회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일본에서 익숙해졌던 발성을 바꾸려고 노래 레슨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했고요.
<더블캐스팅>이 2020년에 방송됐으니, 한국 활동을 재개한 지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희상 씨에게 지난 6년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진짜 치열했고, 진짜 행복했어요. 배우는 결핍에서 시작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결핍이,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우는 그 결핍이 채워졌을 때 인정을 받고, 인정받았을 때 제일 행복한 직업인데, 하나둘씩 인정받는 경험을 쌓는 그 시간이 정말 행복했어요.

뮤지컬 <일라이>(2023)를 시작으로 대학로를 중심으로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관객과 가까이서 호흡하며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무엇인가요.
감사함이요. 관객분들에게 감사하고, 저를 찾아주시는 동료분들에게도 감사하고, 이렇게 버티고 있는 나에게도 감사하고. (웃음) 사실 배우가 되게 독특한 직업이잖아요. 한없이 사랑받다가도, 그 사랑으로부터 한없이 멀어질 수도 있는. 그런데도 저를 계속해서 응원해 주시고, 찾아주시는 분들을 향한 감사함이 제일 커요.
그리고 또 제 팬분들은 약간 귀여운 면이 있거든요. (웃음) 예를 들어 제가 팬카페에 '우리 행복했던 일을 적어볼까요?'라고 글을 남기면 다들 매일 '행복 일기'를 공유해요. 그걸 보면서 저뿐만 아니라 서로서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요. 또, 제가 몸이 안 좋을 때는 팬카페에 '아재 개그 모음집'을 올려주시는 분도 있어요. 제가 재미있는 걸 좋아하니까, 그거 보고 빨리 컨디션 회복하라고요. (웃음) 그렇게 저를 이해해 주고, 믿어주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만으로 힘이 나서, 무대에 설 때도 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럼, 이제 배우 변희상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가요.
무대 위에서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을 때도 있고, 속상할 때도 있어요. 정말 여러 가지 감정이 오가죠. 하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는 건 행복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제 삶을 돌아봤을 때, 다른 감정들보다 행복함이 많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무대 위에서 오랫동안 행복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