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가문의 후계자인 황태자가 이루지 못할 사랑 때문에 어린 연인과 함께 동반 자살을 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는 사건 직후부터 100년이 넘도록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소설, 영화, 발레, 만화에 이어 뮤지컬로 만들어진 <황태자 루돌프>는 자신의 의무와 감정, 그리고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비운의 젊은이로 루돌프의 초상을 다시 그려내고 있다. 실제 사건을 추적해보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불편한 구석이 많지만,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이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한국 연출을 맡은 로버트 요한슨은 국내 뮤지컬 관객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것이 루돌프의 생애 중에서 어떤 점인지에 집중해서 새로운 버전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프레데릭 모턴의 소설 『A Nervous Splendor』를 바탕으로 프랭크 와일드혼이 빈극장협회의 의뢰를 받아 만든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는 지금까지 헝가리, 오스트리아, 일본에서 공연한 바 있으며 각 국가별로 관객들의 성향에 맞춘 제각기 다른 버전으로 완성되었다. 2006년 헝가리 초연이 루돌프의 비극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오스트리아 공연에서는 자국의 역사를 좀 더 부각시켰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헝가리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넘버와,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어느 쪽에도 없었던 추가곡이 포함된다. 추가곡은 로버트 요한슨 연출과 상의를 거친 프랭크 와일드혼이 새롭게 내놓은 넘버이다. 루돌프 황태자의 정적인 냉혈한 타페 수상과 그의 옛 연인이자 마리 베체라의 친척인 라리쉬 백작부인의 듀엣곡, 그리고 마리와 스테파니 황태자가 함께 부르는 노래이다. 역사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부분이 적은 한국 관객들이 비운의 연인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노래가 추가된 것이다.
헝가리 공연에서는 마치 <엘리자벳>의 루케니처럼 황태자를 감시하는 타페의 심복 빌리 굿이라는 인물이 해설자 역을 하는데, 오스트리아 버전에서는 이 인물의 역할이 축소되었다. 한국 공연에서는 빌리 굿이 그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공연의 중간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작품 전체를 해설하지는 않지만 도입부에서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한다. 프랭크 와일드혼과 로버트 요한슨이 이미 <몬테크리스토>로 공동 작업을 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이번 작업에도 원활한 소통이 가능했고 매우 흡족한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 제작사의 자랑이다.
올해 최대 히트작 <엘리자벳>의 성공으로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루돌프 황태자라는 인물에 대한 인지도가 급상승한 것이나, 한국 관객의 감성에 최적화된 작곡가로 정평이 난 프랭크 와일드혼이 참여한 것만으로도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엘리자벳>의 후광은 이 작품이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무대 디자인의 경우, <엘리자벳>과 역사적 배경이 같고 등장인물들도 동일하다보니 시각적인 이미지까지 겹칠 경우 사실상 전혀 다른 관점의 독자적인 작품을 관객들이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정반대로 접근을 했다. <엘리자벳> 한국 공연이 오리지널 빈판의 건조하고 냉소적인 미니멀리즘과는 달리 황실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뽐내는 데 공을 들였다면, <황태자 루돌프>는 모던하고 심플한 디자인 컨셉을 선택했다. 대신 빈 공연에서 이 작품의 모든 소품을 그대로 공수해 와서 무대의 모던함을 커버할 만큼 화려하고 디테일한 요소를 채워넣는다는 계획이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시대로부터도 버림받은 비운의 황태자의 유일한 사랑에 대한 뮤지컬이라면 여성 관객들의 로맨티시즘을 자극할 것 같지만, 입소문에 의하면 의외로 남성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면이 있다고 한다. <황태자 루돌프>의 빈 공연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는 EMK 엄홍현 대표의 일화나, 런스루가 끝날 때마다 본인이 눈물을 보인다는 로버트 요한슨 연출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사회적으로 내몰리고 가정에서도 안식을 얻을 수 없고 유일한 위안처인 진정한 사랑은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남자의 고독은 언제나 대중들의 흥미를 끄는 소재이니만큼 프랭크 와일드혼의 호소력 강한 음악과 함께 합스부르크가 최후의 비극이 또 한번 한국 관객들을 사로잡을 확률은 좀 더 높아지는 듯하다.
2012년 11월 10일 ~ 2013년 1월 27일 / 충무아트홀 대극장 / 02) 6391-6333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0호 2012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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