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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타인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법,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No.74]

글 |이민경(객원기자) 사진제공 |극단 연우무대 2009-12-07 6,728

때는 크리스마스이브,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무료병원의 환자 ‘최병호’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혼자 힘으로는 휠체어조차 타기 힘든 그는 척추마비의 반신불수로, 더구나 밖은 차도 다니기 어려울 만큼 눈으로 덮여있다. 이 같은 상황에 새로운 병원장 ‘베드로’ 신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데, 이유인 즉 사회로부터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최병호’는 연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기부금을 받는 데 일조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신부는 그의 행적을 추적하기로 하고, 그가 병원 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고 같은 병실의 환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실에 주목하면서 그들과 담당의사, 병실 키퍼를 차례로 만나며 하나둘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은 ‘최병호’의 행적 추적이라는 큰 줄기를 기본으로, 알코올 중독자와 치매 환자, 자원봉사자인 병실 키퍼 등의 사연을 부수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최병호’ 외에도 순수하고 여린 마음씨를 가진 자원봉사자 ‘김정연’, 과중한 업무에 심신이 지쳐있는 의사 ‘닥터 리’, 치매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할머니 ‘이길례’, 알코올 중독자 ‘정숙자’ 등의 사연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알코올 중독, 치매, 반신불수자 등 몸이 아픈 사람들이지만, 그보다는 각기 다른 이유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거나 떠난, 버려야 했든가 버림받은, 마음속엔 더 큰 상처들을 안고 있다. 이들 외에도 이 병원에 있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노숙생활을 하거나 혹은 곁에서 돌봐줄 가족들이 없는 외로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며, 자원봉사자 ‘김정연’ 역시 사랑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최병호’는 그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사업실패로 빚을 지고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된 그는 설상가상으로 반신불수가 되었고, 이에 세상을 원망하며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한다. 그리고 이는 타인에 대한 적대감, 자기 비하, 세상에 대한 불신 등으로 표출되며 세상과 철저하게 단절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극의 말미에서 그의 숨겨진 사연이 밝혀짐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풀리는데, 평소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환자들과 의사가 먼저 호의를 베풀고 여기에 ‘최병호’ 또한 그 호의를 받아들이게 된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것으로, 이는 그들 모두가 상처를 지닌 이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극중 누군가 그들에게 그들의 상처를 극복해낼 수 있는 해결책을 친절하게 일러주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본인 스스로 그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극이 끝나는 시점에서도 어느 누구 하나 그 상처가 완벽하게 치유된 사람은 없다. 여전히 그들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별반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타인에게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또한 그들의 아픔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어 가는 것이다.
‘상처는 깊이만 있지 크기가 없어서 누구의 것이 더 큰지 알 수 없다’는 극중 대사처럼 상처의 크기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크든 작든,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만으로도 그들은 서로에게 아픔을 이해하고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가장 큰 치료제가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특히 등장인물 각자의 사연들을 단순한 병렬적 구현이 아닌,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극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함으로써, 큰 줄기 하나만으로 이끌어가기엔 다소 부족한 극에 힘을 보탠다. 그 과정에서 배우들 모두는 1인 다역을 훌륭히 소화해내며 재미를 더하고, 편지와 장미꽃 이벤트 등 관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호응도를 높였다.
이 외에 현실에서 과거, 과거에서 현실로 넘어가는 부분 혹은 장면간의 이동도 굉장히 자연스러운데, 이는 세련된 연출과 재치 있는 무대 활용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노래 또한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드라마와의 개연성을 높이는데 일조하며, 극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다만, 한 작품 안에서 시대와 장르를 초월하는 다양한 소재들이 등장하며 극의 일관성을 해치는 듯한 느낌이 든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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