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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빛을 잃은 추억 속 소녀의 춤, 뮤지컬 <플래시댄스> [No.87]

글 |정명주(런던통신원) 사진 |Michael Le Poer Trench 2011-01-10 7,194

추억의 댄스영화 <플래시댄스>가 화려한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지난 9월부터 런던 셰프스버리 극장 (Shaftsbury Theatre) 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플래시댄스>는 1983년 제니퍼 빌즈가 레오타즈를 입고 열정적으로 춤을 추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는 동명의 영화를 대폭 각색한 새로운 무대작품이다.

영화의 대본을 썼던 톰 헤들리가 신예 미국작가 로버트 캐리와 함께 뮤지컬 대본을 썼고, <토요일 밤의 열기> 등으로 유명한 안무가 알린 필립스가 다양한 스타일의 화려한 댄스 장면을 만들어냈다. 연출가 니콜라이 포스터를 비롯한  대부분의 창작 팀 및 출연진은 이 작품으로 웨스트엔드 데뷔를 하는 신예들이다. 남자 주인공 닉 헐리 역을 맡은 싱어송라이터 매트 윌리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그렇다.

 

 

뮤지컬 <플래시댄스>는 화려한 댄스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눈이 즐거운 작품이다. 단, 그 화려함은 보편적인 뮤지컬 작품의 댄스 신과는 다르다. 원작 영화 <플래시댄스>에서 보여주었던  연습복을 입고 땀 흘리는 모습의 건강미와 사뭇 다르고, <코러스 라인>과 같은 대표적인 뮤지컬에서 볼 수 있는 절도있는 군무나 탭댄스 와도 거리가 멀다. 뮤지컬 <플래시댄스>의 화려함은 토플리스 쇼에서 볼 수 있는 관능미를 살린 춤과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가 주를 이룬다. 

커다란 눈망울의 제니퍼 빌즈가 열연했던 청순한 모습의 알렉스는 이번 무대에서 신예 영국배우 빅토리아 해밀튼 배릿이 연기하는 씩씩하고 도전적인 소녀로, 단단한 근육질의 키 작은 댄서로 변신했다. 경제난이 한창인 80년대의 미국 피츠버그, 낮에 제철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밤무대, `스틸바`에서 아르바이트로 춤을 추는 주인공 알렉스를 보다 현실감 있는 인물로 재설정하고자 한 의도인 듯 하다. 알렉스는 밤무대의 댄서 친구들, 글로리아, 케이샤, 자즈민과 함께 토플리스 쇼와 뮤지컬 무대의 경계를 위험하게 넘나드는 섹시한 댄스, `플래시댄스`를 밤마다 선보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발레를 가르치는 전문 무용학교에 입학하는 꿈을 키운다.


그래서 뮤지컬 <플래시댄스>는 영화와 다르다. 원작 영화의 타이틀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기존 영화의 팬들을 주요관객으로 설정하지 않은 듯, 큰 폭의 각색이 감행되었다. 그 동안 영국의 연극무대의 연출가로 활동해 왔던 니콜라이 포스터와 공동 대본작가로 참여한 미국작가, 로버트 캐리는 원작영화에서 비교적 느슨했던 스토리의 구조를 강화하면서 인물과 상황을 상당부분 바꾸었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는 나이 많은 무용 선생이자 멘토로 나왔던 한나는, 뮤지컬에서는 알렉스의 친엄마로 설정이 바뀌었다. 남편 없이 혼자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딸의 재능을 살려 제대로 무용학교에 입학하게 하려는 열성 엄마로 탈바꿈 한 것이다. 입학원서를 쓰지 않고 계속 망설이기만 하는 딸을 수시로 재촉하는 것이 한나이고, 알렉스의 밤무대 공연 의상을 만들어 주는 것도 그녀이다. 그리고 나중에 알렉스가 학력 미달로 무용학교 서류심사에서 탈락할까봐, 헐리 제철소 사장인 닉에게 부탁하여 이력을 증명하는 전화 한 통 넣어달라고, 적어도 오디션은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도 바로 엄마, 한나이다. 이렇게 극적 구조면에서 기승전결을 명확히 하면서 세부 스토리를 만들어 넣은 부분은 나름의 노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청순가련형이었던 주인공 알렉스의 인물설정이 확연이 달라져 고집이 세고 활동적인 성격의 아빠 없는 열여덟 소녀로 재탄생 한 것은 약간의 부작용을 불러 오기도 했다. 특히, 수줍고 자신이 없어 알렉스가 춤 실력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정식 무용학교에 입학원서를 내는 것조차 망설인다는 원래의 설정은, 주인공이 자신감 넘치는 씩씩한 소녀로 제철소에서도 밤무대에서도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인정받는 알렉스로 교체되자, 그녀가 입학원서를 놓고 망설이는 모습에서 개연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봐도 당찬 그녀, 친구 글로리아가 그녀의 씩씩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 뒷모습을 좀 보라고, 혼자여도 늠름한 그녀를 좀 보라고 노래까지 부르기에, 그러한 알렉스가 입학원서 정도를 가지고 그렇게 소심하게, 1막이 끝나고 2막이 한참 지날 때까지 오랫동안 망설인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많이 부족했다.

 

 

 


댄스의 스타일에 있어서도 영화에서는 일부분에 불과했던 밤무대 댄스 장면은, 속옷차림의 여자 무용수를 대거 활용한 관능적인 댄스를 주로 하여 수시로 무대를 점령했다. 과연 타겟 관객층을 누구로 설정하고 만든 공연인가를 의심하게 하는 낯뜨거운 스타일의 춤도 상당했다. 이와 더불어 제철소 근처의 거리 풍경으로 화려한 브레이크 댄스 기교를 보이는 후드 차림의 남자 코러스 또한 자주 등장했다. 심지어 막 전환을 브레이크 댄서들을 활용하여, 무대 이쪽에서 등장한 무용수들이 등을 돌린 채, 혹은 옆으로 서서, 춤을 추며 반대쪽으로 퇴장하고 나면 다음 장면이 이어지는, 색다른 무대전환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 만큼, 댄스가 음악과 연기를 압도하는 뮤지컬인 셈이다.

 

그래서 뮤지컬 <플래시댄스>는 영화팬들에게는 매우 낯선 작품이며, 반대로 볼거리를 기대하고 온 남자 관객들에게는 기립박수를 받을 만큼 남다른 의미의 `예술적인`인 댄스를 선보이는 무대가 된다.  영화의 원작자이자 이번 공연의 프로듀서인 톰 헤들리에 따르면, `플래시댄스`라는 말 자체가 토론토의 밤무대에서 활약하는 아마추어 댄서들의 춤을 보고 자신이 직접 붙인 것이라고 한다.  원래 영화를 만들 게 된 동기 자체가, 80년대 초 토론토의 노동자들이 즐겨 가는 바의 밤무대에서 목격했던 아마추어 여자 댄서들의 록음악을 활용한 신선한 댄스였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바의 밤무대에서 스스로 의상을 만들어 입고, 직접 안무한 댄스 액트 (Dance act) 를 선보이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소녀댄서들은 `지나 지나 섹스 마키나`, `머슬즈 마리나라` 등 섹시한 이름의 댄스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섹시함을 셀링 포인트로 설정했던 세계적인 팝스타, 마돈나의 데뷔가 1982년인 것을 고려하면, 이렇게 관능미를 강조한 여성 댄서들의 출현은 당시 캐나다와 미국 시장에서 크게 유행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춤`을 위해서라면 과감한 노출도 마다하지 않았다.  록큰롤 음악의 흥겨움과 함께 이러한 언더그라운드 여성 댄서를 선보이는 것이 바로 영화 <플래시댄스>의 의도였으며, 이번 뮤지컬 버전에서는 숨겨진 댄서, 알렉스와 함께 그녀의 동료들인 삼총사 여성 댄스 그룹이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영화 <플래시댄스>이 크게 인기를 얻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신나는 음악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린 카라 (Irene Cara) 가 불렀던 ‘플래시댄스, 왓 어 필링’ (Flashdance, what a feeling) 을 비롯하여, 마이클 셈벨로 (Michael Sembello) 가 히트 시켰던  ‘매니악’ (Maniac) , 그리고 ‘글로리아’ (Gloria) 등 다섯 곡의 영화 음악이 뮤지컬에 그대로 사용되면서 추억을 불러왔다.  이렇게 유명한 곡들은 스틸바의 밤무대를 배경으로 세 명의 여성 댄서, 게이샤, 자즈민, 글로리아가 삼중창으로 불렀고, 현란한 조명과 댄스를 곁들인 뮤지컬 넘버로 구성되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팝과 록큰롤 선율을 활용한 열다섯 곡의 뮤지컬 넘버가 이번 작품을 위해 새로이 쓰였다.  토론토 출신의 신예 작곡가 로비 로스 (Robbie Roth) 가 새로 작곡한 곡들은 80년대 나이트 클럽의 분위기를 살리는 록과 팝음악의 신나는 선율을 중심으로 하여 힙합을 곳곳에 활용했다.  특별히 귀에 들어오는 곡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는 성공했다.

 

 

 


이번 무대에서는 알렉스 역의 빅토리아 해밀튼 배릿이 춤솜씨에 더불어 허스키한 톤의 가창력을 발산하는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첫 장면인 헐리 제철소에서 알렉스가 부르는 노래 ‘스틸타운 스카이’, 이어지는 장면인 세탁소에서 엄마 한나와 알렉스가 무용수로서의 꿈을 담아 부르는 ‘원 인 어 밀리언’ 등은 빅토리아 해밀튼 배릿의 풍성한 성량을 확인시켜주면서 이어질 장면들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를 높였다. 특히 알렉스의 엄마, 한나 역의 사라 잉그램은 영국 지역극장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해 온 중견 뮤지컬 전문 배우로서 이번 웨스트엔드 데뷔 무대를 통해 안정된 연기력과 함께 듣기 좋은 목소리를 선보였다.

 

영화 <플래시댄스>가 80년 인기를 얻었던 댄스 영화 <페임>의 인기를 확인한 후 만든 영화라고 한다면, 이번 뮤지컬 <플래시댄스>는 댄스영화를 뮤지컬화하여 성공한 <더티 댄싱>을 벤치마킹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호주에서 시작하여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성공을 거둔 댄스 뮤지컬  <더티 댄싱>은 올해로 5년차를 기록하며 성공신화를 기록하고 있다. 이 작품이 인기를 얻으며 흥행가도를 달리던 초반기에 <플래시댄스>의 기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2008년 로열 씨어터 플리머스에서 초연의 막이 오른 후, 영국 지방투어가 뒤따랐다. 그리고 지방 관객들로부터 화려한 뮤지컬로서, 볼거리가 많은 엔터테인먼트 공연으로 어느 정도 인기를 얻으며 2010년 9월 웨스트엔드의 입성을 맞은 것이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뮤지컬 <더티 댄싱>은 남녀 주인공이 노래를 한 곡도 부르지 않고 춤만 추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여, 원작영화에 충실하게 유명한 장면들을 모두 무대에 재현함으로써 40~50대로 이루어진 기존 여성 영화 팬들로부터 대대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와는 달리, <플래스댄싱>은 극적 구조에 있어 원작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인물의 설정과 디테일을 열심히 각색하였으며, 주인공이 춤과 노래에 모두 능한 재능 있는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동원에 실패하고 있다. 필자가 공연을 보러 간 날은 월요일로, 통상적으로 관객이 제일 적은 날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웨스트엔드에서 보기 드물게 2층과 3층 좌석을 모두 1층 좌석으로 바꾸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1층 객석이 다 차지 않았다. 분명, 스토리를 보완한다는 목적 아래 작품이 점점 원작에서 멀어지면서 주인공 알렉스의 이미지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크게 바꾼 것,  밤무대 여성 댄서들에게  초점을 두면서 폴 댄스를 비롯하여 속옷차림의 섹시함을 강조한 춤이 지나치게 많아진 것 등을 이유로 원작 영화의 애호가들에게, 특히 여성관객에서 어필하지 못하는 작품이 되고 만 탓일 것이다. 

 


 

그래서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무명의 배우를 기용하고도 흥행에 크게 성공한 <더티 댄싱>과는 달리 뮤지컬 <플래시댄스>는 재능 있는 좋은 배우들을 캐스팅하고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는 작품이 되고 있다. 특히 알렉스 역의 빅토리아 해밀튼 베릿은 춤과 노래, 연기의 삼박자가 잘 갖추어진 좋은 배우임에는 틀림없지만, 기존의 영화관객을 불러 모으기에 어려운 외모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원작 영화의 히로인, 제니퍼 빌즈의 전설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외모로 상당히 보이쉬한 느낌을 주는 배우이다.  물론, 제작자 입장에서는 제철소에서 일하는 여자라는 설정을 더욱 부각시킨 캐스팅일 수도 있겠으나, 관객들의 예상을 빗나가는 선택이 되고 말았다.  남자 주인공, 닉 헐리 역을 맡은 매트 윌리스는 영국에서 꽤 알려진 가수로 싱글 앨범 차트 10위권에 든 적도 있는 싱어송라이터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남자주인공의 가창력이나 춤이 돋보일 만한 상황이 별로 없기에 특별한 기량을 목격할 기회가 없었다.  <플래시댄스>는 제목에서부터 그러하듯 여자들이 추는 화려한 밤무대의 댄스인 플래시댄스, 그리고 그 춤을 추는 여자 댄서들이 작품을 조명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플래시댄서로 활약하는 알렉스의 친구들, 글로리아 역의 샬롯 하우드, 케이샤 역의 한나 르반, 자즈민 역에 트위닐리 무어 모두 열정적인 춤과 안정된 가창력을 보이며 각자의 매력을 발산했다.


모건 라지가 디자인한 무대 셋트는 셰프스버리 극장의 제법 넉넉한 무대 깊이를 활용하여 제철소와 밤무대의 배경이 되는 스틸바 및 경쟁 스트립 바, 스킨 딥, 그리고 한나의 세탁소 및 알렉스의 옥탑방 등을 제법 규모를 갖춘 무대로 구현했다. 하워드 해리슨의 컬러풀한 조명과 데이브 로즈가 지휘하는 9인조 밴드의 연주가 28명에 달하는 캐스트 멤버의 화려한 춤과 함께 상당한 제작규모의 신작을 선사하였다.

 

 영국의 지역극장에서 초연을 올리고, 다시 대폭 수정 후 여주인공을 제외한 전 캐스트를 교체하여 웨스트엔드에 입성한 <플래시 댄스>는, 영국에서 막을 올리기는 했지만, 엄격히 말하면 미국작품이다. 미국 영화에 근거했고, 토론토와 미국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톰 헤들리가 쓰고 제작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호주에서 제작한 댄스 뮤지컬 <더티 댄싱>이 평론가들의 냉대를 받고도 대흥행의 역사를 기록했고, 미국 창작팀이 주가 되어 제작한 댄스 뮤지컬 <플래시댄스>는 평론가들이 나름의 호의를 표하며 작품성의 의문을 던지는 정도의 평을 받고도 흥행에 참패를 거두고 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인들이 제작한 뮤지컬의 웨스트엔드 입성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같은 영어권이면서도 문화가 다르고, 비평가와 관객의 취향이 매우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굳이 영국에 와서 영국인 연출가와 안무가를 기용하여 제작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작품의 극적 구조와 인물 설정을 강화하기 위해 대폭적인 각색과 점검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작 영화의 성공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를 거두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뮤지컬을 한 편 제작한다는 것, 성공적인 작품으로 개발한다는 것은, 아무리 좋은 소재에서 시작해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고 말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7호 2010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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