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토니상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은 ‘빌리 엘리어트’를 연기한 세 명의 소년들에게 돌아갔다. 미국 전역을 돌며 진행된 꼼꼼한 선발과정을 거쳐 선발된 후, 1년여의 트레이닝을 통해 빌리 엘리어트로 거듭난 이 어린 소년들은, 브로드웨이의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 안에서 진정한 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아역 배우는 물론 어린이 관객을 위한 미국 공연계의 노력은 공연 예술의 영역 확장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아역 배우들이 이끌어가는 작품들
지난 시즌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던 뮤지컬 <13>은 주연이었던 13명의 배우들은 물론, 연주를 맡은 밴드까지 모두 10대 청소년들로 구성되어 화제를 모았다. 비록 흥행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뮤지컬 <13>은 10대 배우들이 풀어놓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비록 단 한 명의 성인 배우도 없이 경력이 길지 않은 어린 배우들만으로 극을 끌고 가려다 보니 다소 산만한 전개가 아쉽긴 했지만, 성인 배우들이 출연한 <찰리 브라운>이나 <스펠링 비>와는 달리 어린 배우들이 직접 자신들의 언어로 전달하는 성장 드라마는 신선한 시도로 평가받았다.
어린이가 주역이거나 극의 흐름상 놓칠 수 없는 주요 배역을 담당해왔던 작품들은 여러 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연되었던 <애니>, <사운드 오브 뮤직>은 물론 <라이온 킹>이나 <메리 포핀스>, <치티 치티 뱅뱅> 역시 아역 배우의 연기력이 극에 대한 몰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하는 작품들이다. 최근 런던에서 순항 중인 <올리버>나 <빌리 엘리어트>는 아역 연기자의 역할이 보다 큰 작품들이다. 어린 배우의 캐스팅은 단지 연기력과 가창력, 때에 따라서는 그 외의 재능까지도 겸비한 나이 어린 배우를 찾아내는 어려움뿐만 아니라, 신체적 성장이 빠른 그들의 교체 배우(replacement actors)를 계속 찾아내어 트레이닝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 요구된다. 게다가 한 명의 아역 배우가 주당 8회의 공연을 모두 소화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역할마다 두세 명의 배우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도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빌리 엘리어트>의 런던 오리지널 프로듀서들은 영국 북부의 리즈(Leeds) 지역에 빌리 엘리어트 학교를 설립하고 어린 배우들을 발굴하고 트레이닝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배우들의 성장 속도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언제든 공연에 투입할 수 있는 ‘준비된’ 아역 배우를 키워내기 위한 결정이었다. 11살의 빌리를 연기해야 하는 한계를 감안해 보통 6개월~1년 간격으로 새로운 배우들로 교체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캐스팅 디렉터가 주기적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오디션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선발된 많은 예비 빌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빌리 엘리어트 아카데미를 통해 육성되고 있으며, 1~2년여의 트레이닝을 거쳐 무대 위의 빌리를 연기하게 될 것이다.
배우 조합이 보호하는 아역 배우의 연기활동
미국의 배우 조합인 ‘액터스 에쿼티(Actors’ Equity)‘의 규정에 따르면 아역 배우가 맡은 배역이 반드시 몇 명의 배우들에 의해 나누어 소화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정해진 바 없다. 뉴욕주 노동부 역시 주정부 법으로 아역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주정부는 아역 배우가 연기하기 위해서는 특별 허가를 받기를 요구하며, 이를 위해서는 아역배우에 대한 교과과정 학습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배역이 몇 명의 아역 배우에 의해 연기될 것인가 하는 것은 작품 별로 다를 수 있고 각 프로듀서나 창작자들에게 그 결정권이 달려있지만, 어떠한 경우에서든 모든 아역 배우는 학업을 지속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제작진은 극 중 아역 배우의 역할이 클수록 실력이 비등한 다수의 배우를 번갈아 무대에 세운다. 만약 한 명의 배우가 주 8회의 공연을 소화해야할 경우에는 반드시 언더 스터디 배우를 배치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다.
<빌리 엘리어트>는 데이비드 알바레즈, 트렌트 코왈릭, 커릴 쿨리쉬 등 3명의 빌리가 번갈아 무대에 오르고 있고, 지난해 공연되었던 <조지와 함께 일요일 공원에서>는 아역인 루이즈 역할을 켈시 파울러와 앨리슨 호로위츠 등 두 명의 아역 배우를 캐스팅해 각각 주 4회씩 무대에 오르도록 했다. 또한 둘 중 한 명은 다른 한 명이 무대에 오를 때 무대 뒤에서 스탠바이 역할로 대기토록 했다.
하지만 켈시 파울러가 <그레이 가든스>에서 리 보비어 역할을 연기할 때는 그녀 혼자 주 8회의 공연을 소화하기도 했다. <메리 포핀스>의 경우는 6명의 아역 배우가 각각 짝을 이루어 3개의 팀으로 구성되어 돌아가며 제인과 마이클 역을 연기한다. 또한 <레 미제라블>의 경우에는 3명의 아역 배우가 돌아가며 어린 코제트, 어린 에포닌 역할을 맡았으며, 무대에 서지 않는 한 명은 두 배역의 언더 스터디로 무대 뒤에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했다. 이렇듯 배역의 분담은 각 작품마다의 특성에 따라 연출자와 프로듀서의 선택에 맡겨진다.
하지만 배우 조합은 법에 따라 아역 배우에 대한 계약 조항으로 ‘19세 미만의 배우이고 고등학교 교육을 마치지 않은 아역 배우를 고용할 경우 리허설 기간을 포함해 반드시 개인 교사를 함께 고용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투어 공연의 경우 프로듀서는 풀-타임 개인교사를 고용해야 하며,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도 16세 미만의 배우를 고용할 경우에는 아역 배우를 관리하는 수퍼바이저를 따로 고용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시즌에 공연되었던 연극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서는 리허설 기간을 포함한 공연 기간 중 한 명의 개인교사가 고용되어 두 명의 아역 배우를 가르쳤으며,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에 4시간씩 강의를 진행했다.
어린이 관객을 잡아라!
어린이 관객들을 위한 특별한 마케팅 방안도 지속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미국 프로듀서, 극장주 협회인 브로드웨이 리그는 브로드웨이는 물론 미국 전역을 통해 어린이 관객 계발 프로그램으로 ‘키즈 나이트 온 브로드웨이(Kids’ Night on Broadway)’를 운영 중이다. 매달 첫 번째 화요일과 수요일에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성인 티켓을 구입하는 어른 한 명당 동반하는 6~18세 어린이에 한해 무료 입장을 시켜주는 방식이다. 또한 공연 티켓 이외에도 브로드웨이 인근 레스토랑에서의 특별 할인 메뉴는 물론 공연 전후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어린이 관객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뉴욕은 물론 브로드웨이 리그 소속의 프로듀서들이 제작, 배급하는 투어 공연을 유치하는 지역 공연장에서도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키즈 나이트 온 브로드웨이’ 프로그램은 두 달 전 사전 예매를 통해서만 티켓을 판매한다는 제한 조건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프로듀서들에게도 사전판매의 이점을 노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점이다.
디즈니는 이와 유사한 프로모션인 ‘키즈 고 프리(Kids Go Free)’ 캠페인을 통해 경기 불황에 허덕이던 지난 1~2월에 4만5천 장의 티켓 판매고를 올렸다. 성인 티켓 한 장을 구입할 때마다 18세 미만의 관객에게 한 장의 티켓을 더 제공한 이 프로모션은 2009년 1월 6일부터 3월 12일까지 관람하는 디즈니 뮤지컬 ? <메리 포핀스>, <라이온 킹>, <인어공주> ? 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 역시 지난해 12월 1일부터 12일 사이의 예매분에 한해 적용되도록 예매 기간에는 제한을 두었다. 브로드웨이의 비수기인 겨울 시즌 동안 이 효과적인 프로모션을 통해 디즈니는 보다 많은 어린이 관객을 유치한 것은 물론 작품의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어린이 전문 극장의 다양한 프로그램
디즈니의 <메리 포핀스>가 공연되는 뉴 암스테르담 극장과 블록버스터 뮤지컬 <스파이더 맨>이 공연될 예정인 힐튼 극장이 위치한 뉴욕 맨해튼의 42번가. 브로드웨이에서도 가장 화려한 이 거리에 대작 뮤지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운영 중인 어린이 전문 극장 뉴 빅토리 시어터가 있다. 1900년 미국 뮤지컬계의 전설인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아버지이자 공연 제작자였던 오스카 헤머스타인 1세에 의해 ‘리퍼블릭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던 이 극장은, 뉴욕은 물론 미국에서도 오랜 전통과 체계적인 운영 프로그램으로 손꼽히는 어린이 전문 극장 중 하나이다.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패밀리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는 뉴 빅토리 시어터는 미국은 물론 해외 여러 나라에서 초청된 다양한 장르의 공연 프로그램들을 1년 내내 제공한다. 어른과 아이의 눈높이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공연을 찾아내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술적인 가치와 엔터테인먼트의 요소를 두루 갖춘 양질의 작품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실제로 뉴 빅토리 시어터의 프로그램 기획팀은 다양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매년 2백여 편이 넘는 작품들을 심사한다고 한다. 매년 약 14편의 작품이 선정되며, 보통 2~4주간 공연된다.
양질의 어린이 공연을 제공하는 것과 함께 뉴 빅토리 시어터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통해 공연을 교육의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학생들의 예술적인 경험을 증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자체 예술교사를 고용해 ‘뉴 빅 인 더 클래스룸’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면서 학교와 극장간의 지속적인 연계를 통해 교사와 학생들이 극장뿐만 아니라 그들의 학교와 교실에서도 수업의 자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워크숍 프로그램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무용, 서커스 기술, 아크로배틱 연기 등 실제 공연에 대한 경험을 쌓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직접 공연에 참여토록 기회를 제공하는 시어터 컴퍼니들도 다수 있다. 1984년 설립된 ‘타다 유스 시어터(TADA! Youth Theatre)’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8~18세의 어린 배우들을 극단 체제로 운영해, 직접 공연을 제작하고 공연함으로써 어린이들이 전문가들의 도움을 통해 직접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다. 메인 스테이지 프로덕션은 매년 3편의 작품을 약 35회에 걸쳐 공연하고 있으며, 타다 유스 시어터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은 어린이, 청소년 관객들의 지속적인 계발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 외에도 맨해튼 내에만 맨해튼 칠드런스 시어터, 바이탈 시어터 컴퍼니, 칠드런스 시어터 컴퍼니 등 다수의 어린이 전문 극장이 들어서 있으며, 각 지역마다 위치한 어린이 전문 시어터 컴퍼니들 역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좋은 공연과 프로그램들을 선보이고 있다. 배우를 꿈꾸는 어린이들은 이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공연과 무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브로드웨이로 진출을 위한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공연을 즐기고 공연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가는 어린이들. 이들이 바로 브로드웨이의 미래이자, 미국 공연계를 지탱하고 이끌어갈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