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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아버지의 삶이 담긴 환상적인 모험담 <빅 피시> [No.122]

글 |정예경 (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3-11-27 3,952

대한민국 청춘들은 나이 채 스물이 되기도 전에 ‘이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싶은 경험들을 많이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를 세상의 중심으로 키워줬던 아버지가 점점 허리가 굽어지고 머리가 희어지는 걸 보며, 그가 내 바람막이를 하느라 그리 되었다는 것도 깨닫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깨달은 즈음에도 여전히 어떻게 그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버지’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숙연한 ‘아픔’이 느껴진다. <빅 피시>는 바로 그 아버지의 말씀을 모토로 삼는다. “더 높게 꿈꾸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크게 살아가렴.” 그리고 <빅 피시>는 그 ‘아버지의 유산’에 관한 이야기로 재미와 감동을 자아낸다. 아름답디 아름다운 장면들로만 채워진, 이 신파 아닌 신파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결국 ‘너도 울고 나도 울게’ 한다. 

 

 

 


허풍쟁이 아버지의 삶을 좇아서                                        

어른스런 아들 ‘윌 블룸’과 철없어 보이는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이 한 방에 있다. 책을 읽어달라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런 재미없는 얘길랑 그만두고, 아버지의 왕년의 모험담을 들려주겠노라 한다. 아버지는 천생 이야기꾼으로,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같은 이야기를 수십 가지의 버전으로 하고 또 한다. 그 모험담은 ‘어떻게 반지로 ‘빅 피시’를 낚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마녀를 만나서 자신의 영광스런 마지막 날을 예언받은 이야기’, ‘동굴 속에 홀로 사는 거인을 마을로 데려온 이야기’, ‘첫눈에 반한 여인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늑대인간 서커스 단장 밑에서 3년간 무급으로 일한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윌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뭔가 미심쩍은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어느새 성인이 된 윌이 결혼하기 전날, 약혼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만 고백한다. 하지만 입이 근질근질했던 수다쟁이 아버지는 이 사실을 결혼식장에서 직접 발표해 버리고 만다. 그 일로 의가 상한 윌은 아버지와 연락을 끊는다. 세월이 흘러 센트럴 파크를 거닐던 윌은, 아버지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전화를 받는다. 윌은 ‘많은 세월을 함께해서 아버지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 난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아버지는 여전히 내게 낯선 존재’라고 노래한다.
윌은 자신이 자란 집으로 돌아와 부모와 재회한다. 그리고 정리를 하다가 아버지 에드워드와 어떤 여인의 이름으로 된 집문서를 발견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자신에게는 단지 ‘허풍이 심한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는 직업상 집을 오랫동안 비울 때도 있었기 때문에, 윌은 그가 혹시 몰래 딴살림을 차린 건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다. 윌은 늘 미심쩍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들을 토대로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급기야 그는 문서의 그 여인을 찾아가 모든 이야기를 듣기에 이른다.

 

 

                          

 


에드워드 블룸은 침수될 마을 전체를 구한 영웅이었다. 마을에 사는 사람 모두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에드워드는 자신이 옛날에 일했던 서커스단의 늑대인간 서커스 단장에게서 돈을 마련하고, 시장이 되어 성공한 거인 친구에게서 허가를 얻어 마을 전체를 이전시킨다. 에드워드의 고등학교 시절 여자 친구가 마을을 떠나지 않으려 하자 그녀에게 집을 사주고 마을을 빠져나오게 한다. 여인은 에드워드와 그 집에서 행복한 생활을 꿈꾸지만 에드워드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배신할 수 없다며 다시는 그곳을 찾지 않는다. 에드워드는 아주 조그마한 유혹에도 평생 가책을 느꼈을 만큼 가족을 사랑했던 것이다.
에드워드의 몸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가 어떤 것이 될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윌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위한 이야기꾼이 된다(이 신은 환상과 현실의 교차이며, 극 중 최고의 장면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감옥처럼 설정된 병실을 빠져나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그동안 아버지의 기억이 담긴 곳들을 하나하나 들른다. 그러면서 아버지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사람들을 하나둘씩 만나고, 그들이 모두 모이자 세트는 다시 병실로 전환된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자신이 도왔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예언대로 영광스런 죽음을 맞는다. 아들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완전히 맺어준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식 날. 윌은 아버지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동화처럼 무시무시하지는 않지만 정말 키가 큰 거인 등, 아버지가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러 찾아왔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된 윌은 아들과 함께 강에서 낚시를 한다. 윌은 아이에게 할아버지의 ‘빅 피시’ 이야기를 해주고, 그 순간 아들은 바로 그 ‘빅 피시’를 잡는다.

 

 

 

 

 

다 가졌어도 진화하는 스트로만의 별천지                            

장담컨대 특별한 이변이 없다면, 수잔 스트로만은 자신의 여섯 번째 토니상을 가져가게 될 것이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얼마나 깔끔하고 멋지면서도 경제적으로 만들었는지, 신이 인류의 세 명 정도에게만 하사한 듯한 눈부신 재능이 얄미울 정도다. <빅 피시>는 독특하고 재기 넘치는 팀 버튼 감독의 동명 영화가 원작이다. 팀 버튼의 색깔을 지우고 뮤지컬 그 자체로 의미있는 작품을 만들려면 그에 버금가거나 더한 재능이 있는 연출자가 필요할 터. 당연히 5회의 토니상에 빛나는 안무가 겸 연출가 수잔 스트로만만 한 사람이 있었겠나 싶다.
영화에는 에디팅이란 개념이 존재하여, 시공간의 전환이 상당히 자유롭다. 감독 외에도 필름 에디터들이 붙어서 실시간으로 많은 실험을 해본 후에 베스트 신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무대 예술은 그렇지 않다. 시공간이 한 번씩 바뀔 때마다 이런저런 실험에 많은 비용이 들고, 극장 안의 대부대를 이끌 수 있는 혼선 없는 커뮤니케이션, 극작가, 작곡가, 연출가의 충분한 상의와 강단 있는 결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스트로만이 영리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극장 예술’이 되기에 태생적으로 난점이 있는 이 이야기를 매력적인 뮤지컬로 확 바꿔놓은 것이다.
아버지의 상상과 허풍은 많은 버전이 있고, 그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마다 관객은 함께 시공간을 넘나든다. 연출가는 이야기가 가진 ‘비약’을 장치로 적절히 활용해, 괴리감 없는 의도된 비약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비약이 너무 심하면 현실감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그 점을 십분 활용해 꿈과 현실의 간격을 더 크게 만들고 색깔을 분명하게 구분지었다. 현실 장면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진행하고, 허풍 장면은 비약이 심해도 ‘상상 속’이라는 전제로 관객을 자연스럽게 납득시킨다.
특히 다른 색깔의 현실과 상상 신을 적절한 긴장감으로 나란히 진행시키며, 유려하게 전환해내는 연출은 놀랍다. 무대 장면이 지나치게 자주 바뀌면 정신없다고 생각될 법도 한데, 과감한 생략을 통해 이를 해결했다. 즉, 이야기의 초점을 흐리지 않고, 한 가지 키워드에 집중하면서 부차적인 것들은 과감히 쳐내어 이야기에 속도감을 실은 것이다. 2막은 현실의 부자가 함께 상상 속으로 여행을 가고, 반대로 상상 속의 인물들이 현실로 개입해 에드워드의 임종을 지키러 온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잠시 사라지며 아버지가 임종을 맞는 부분은, 대본과 연출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판타지를 선사한다.

 

 

 

 


스트로만의 특기 중 하나는, 깜짝쇼와 디테일이 아닌가 싶다. 가령 오케스트라 피트의 활용이 그렇다. ‘강’으로 꾸며진 피트는 3대의 이야기가 진행되며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장소로 설정된다. 아버지가 인어를 만난 옛날 이야기를 하면, 피트에서 갑자기 인어가 뿅 나타나는 등, 여러 가지 상상 속의 인물이나 사물들이 튀어나온다. 예상할 수 있는 연출이라도 극이 시작되자마자 이런 경험을 하면 신선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특히 마지막, 윌이 아들에게 할아버지의 빅 피시 이야기를 해주며 함께 낚시를 하는 장면이 그렇다. ‘빅 피시’가 정말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강에서 펄떡 뛰어오르는데, 그 순간 바로 암전이 되며 공연은 막을 내린다. ‘실물 빅 피시’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건 창작자로서 정말 조심스럽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비현실적인 소품으로 극의 주제를 보여주는 건 자칫 유치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지만 가능할 정도로 짧은 찰나에 ‘빅 피시’를 비추고 바로 암전시킨 엔딩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꿈은 이루어진다’ 같은 주제가 관객의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고, 그 어떤 것도 법칙으로 한정 지어선 안 된다는 교훈이 담긴 강렬한 장면이었다.
1막의 백미는, 청혼 장면이다. 배경은 그녀가 좋아하는 노란 들국화가 듬성듬성 나 있는 들판이지만, 노래가 진행되고 전조가 이루어지며 감정이 고조되자, 끝없는 노란 들판의 세트로 바뀐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낭만으로 다가온다. 클리셰라도 좋다. 이런 게 낭만이고, 이런 게 판타지다. 사람에게 힘을 주는 예술이다. 아버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숲 속 마녀들도 깨알 같은 디테일이 빛난다. 캄캄한 숲 속 나무들은 세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무 무늬 옷을 입은 마녀들이 밑둥으로 완벽하게 가장해 있었던 것이다. 또 에드워드의 전쟁 이야기 역시 깜짝쇼의 극치다. 이야기의 뒤로 전형적인 미국식 탭댄스 장면이 펼쳐지는데, 그때 배경이 되었던 커튼이 올라가면 오케스트라가 등장하며 깜짝 선물을 보여준다. 비주얼적으로 활용되는 악단의 압도감 역시 대단해, 관객들이 환호할 수밖에 없다.

 

 

 

 

세련미 넘치는 대본, 가사, 음악                                         

글쓰는 이의 재능 여부는, ‘사랑해’ 중 ‘ㅅ’자도 안 꺼내고 그 마음을 깊게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느냐에 달린 것 같다. ‘아버지’라는 한스러운 제목 없이, 구구절절하고 가난한 사연 하나 없이, 오로지 ‘빅 피시’라는 제목과 아름다운 장면들로 가득 채운 이 긍정적 에너지의 뮤지컬은, 그럼에도 어떤 작품보다 가슴을 아프게 한다.
신선한 느낌의 음악은 (티도 잘 안 나는) 편곡의 공이다.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팝 멜로디도 있고, 아메리칸 고유의 정서를 담은 다소 컨트리 음악스러운 면도 있다. 그런데도 음악에서 ‘유기농’ 느낌이 나는 것은, 바로 드럼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멜로디 자체가 팝적인 느낌이 있어서 규칙적인 드럼 비트가 들어가는 순간 팝의 느낌이 확 살 수밖에 없는데, 이를 과감히 뺌으로써 더 신선한 느낌을 주는 사운드가 가능했다.
극 스토리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빅 피시’는 사실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될 놈’이란 말로도 쓰인다. 아버지의 과장된 이야기들 속에는, ‘꿈을 크게 꿔라, 그 꿈은 이루어진다. 빅 피시가 되어라’라는 메시지가 깃들어 있었던 것 같다.

걸작이 낳은 진풍경                                                        

2막 중반부 이후, 극장 안의 사람들은 처음엔 숨죽여 흐르는 눈물을 닦다가, 부자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한 상상 여행부터는 결국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콧물까지 훌쩍거린다. 필자가 앉은 박스엔 공교롭게도 거의 혼자 관극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찌나 다들 서럽게 우는지, 불이 켜진 뒤 머쓱한 연대감마저 느껴졌다. 그중 어느 덩치 큰 근육질 남자가 눈물을 닦으며 했던 말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오 마이 갓! 이 사람들 내게 뭘 한 거죠? 내게 뭘 한 거냐구요!”
극장 밖의 풍경도 비슷했다.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정말로 서럽게 엉엉 큰 소리를 내며 울고 있고, 같이 온 친구들이 그의 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처럼 아버지는 누구에게나 ‘큰’ 존재라, 동시에 너무 큰 상처이자 아픔이기도 한 듯하다. 필자가 브로드웨이에서만 본 뮤지컬이 약 100편 정도인데, 작품성과 상업성을 다 감안해도 이 작품은 단연 ‘내 인생의 뮤지컬’에 오를 만하다. 한국 정서와는 분명 다른 부분이 많지만, 작품 자체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분명 이 작품을 알아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느낌과도 상당히 비슷했지만, 뮤지컬만이 줄 수 있는 장르의 아름다움 또한 최고로 느낄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플레이빌>의 크레딧을 본 후                                           

크레딧이 써 있는 <플레이빌>에 CJ E&M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근 10년 사이, 한국은 ‘중요한’ 뮤지컬 마켓으로 자리 잡았고, 브로드웨이 관계자들도 그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이제 하루가 다르게 모든 면에서 존재감 있는 나라가 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수요가 많다거나 돈을 많이 투자한다고 해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용광로에서 언제 대박이 터져 나올지 모르는 게 현재 한국 시장인 것 같다. 한국 관객들과 창작자들의 에너지는 거대하다. 그러나 거기에 걸맞은 프로듀싱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 아마도 한국 창작뮤지컬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데에도 이런 이유가 일부 있을 것이다.
한국이 중요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체계화된 프로듀싱 능력과 자본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CJ E&M 같은 단체들이 브로드웨이에 도전장을 내밀고, 또 빠른 속도로 배워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아무리 대기업이라 해도, 브로드웨이에 프로듀싱의 일부분으로 크레딧을 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브로드웨이는 폐쇄적이다. 돈은 분명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돈이 전부가 아닌 곳이 브로드웨이다. 세계 평화를 노래하는 행복한 작품들을 만들면서 백스테이지가 그렇게 폐쇄적인 건 모순이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여전히 아메리칸의, 철저히 백인 인맥과 자본의 산물이라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프로듀싱 쪽으로 길을 뚫어보는 쉽지 않은 시도는, 그래서 더더욱 옳고 의미 있고, 실로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엄밀히 말하면, 재능있는 배우 한 명이 브로드웨이에 가서 운 좋게 잘되는 것보다는 천재 창작자가 나와서 브로드웨이에 공연을 올리는 게 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보다 한국 뮤지컬 시장에 있는 모두에게 더 의미 있는 일은 ‘제대로’ 프로듀싱을 배워오는 ‘단체’가 생기는 것이다. 단지 브로드웨이에 투자자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몇 년에 걸쳐 작품 프로듀싱에 참여할 수 있는 입지를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작품에 돈을 넣어주고 이윤을 가져가는 건 꼭 CJ E&M이어야만 되는 일은 아니니까. CJ E&M이 기왕 뮤지컬 시장에 중요한 리딩 플레이어가 되었다면, 깃발 든 사람의 책임을 조금은 더 느끼면서 브로드웨이에 진출해주었으면 하는 작은 개인적 바람이 있다. 프랭크 와일드혼, 수잔 스트로만 같은 빅 네임에 베팅을 하는 것이 지금은 안전할지 몰라도, 경험을 쌓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금덩이를 발견해 스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긴다면 금상첨화 아닐까? 그리고 훗날에는 글로벌하게 통하는 한국 작품들을 만들어서 브로드웨이에 올려보는 것도 프로듀서로서 가질 수 있는 멋진 꿈 아닐까 싶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는 일들은 아니지만, 그 도전은 분명 값질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2호 2013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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