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학 경호부장은 좀처럼 마음속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경호원으로 산다는 것은 나무처럼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숲처럼 말없이 누군가를 감싸주는 일인 듯합니다.
* 이 글은 차정학을 연기한 배우 오만석과의 대화를 기초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이런 분은 처음 뵙습니다. 청와대 경호원으로 일한다는 건 어떤 건지 짐작도 안 되는데요?
저라고 특별한 사람은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처럼, 저 역시 묵묵히 제 일을 하며 사회 속에 묻혀 살고 있을 뿐이죠. 직업의 특성을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저희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지키는 일을 합니다. 돋보이는 사람 곁에서, 보이지 않게 그를 지켜내는 거죠.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을 경호하면 말 못할 비밀도 무척 많아지고 책임감도 막중할 것 같아요. 부담스럽거나 답답해서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었겠죠?
그렇지만 맡은 임무에서 벗어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젊었을 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경호원이 지녀야 하는 기본적인 가치에 대해 충실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경호원이 되려고 맘먹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저도 어려서부터 제가 잘하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찾았습니다. 사격 실력은 고등학생 때 전국체전에서 은메달을 받을 정도는 되었고, 운동도 좋아했습니다.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제 성격과 재능에 맞는 길을 생각해 경호원이란 직업에 마음을 굳히게 됐죠. 이곳에서 정말 최고로 잘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했고요. 물론 훈련받는 동안 저보다 더 실력이 뛰어난 친구를 만나,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자책한 적도 있지만, 어쨌든 이 직업이 제게 가장 잘 맞는다는 생각에는 변함없었습니다. 그렇기에 현재까지도 이 일을 해오고 있는 거겠죠.
부장님께서는 예전부터 단호하고 엄격하기로 유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경호 업무를 맡는 데 적격이겠죠?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모든 경호원들이 다 저 같은 것도 아니고요. 특히 임용 전 훈련에서 1등으로 통과한 제 동기 무영이는 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이었어요. 겉보기에 가벼워 보일 만큼 자유분방했지만 무척 재능 있는 친구였죠.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녀석을 뛰어넘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성격은 이 일에 맞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 친구의 성격이 경호원에 맞는지 아닌지 걱정하기 이전에, 그의 뛰어난 재능과 자유로운 사고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죠. 제가 결코 갖지 못한 것을 가진 것에 대해.
그럼 부러움을 넘어 질투심이나 시기심이 생기진 않으셨는지요?
제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동료애와 우정, 그리고 제 본분이었습니다. 제 임무를 다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를 향한 부러움이 제 이성과 감정을 지배하진 못했죠. 제 의무를 다하는 게 더욱 중요했습니다.
경호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지키고 있는 신념도 역시…?
어떤 일을 행할 때 우선 그것에 대한 명분이 확실한지 생각합니다. 무슨 일을 추진하든 필요한 절차를 밟고 규칙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함부로 나서서 일을 그르치기보다는, 올바른 절차를 통해 좀 더 명확하고 정확하게 상황을 풀어 나가는 게 옳은 일이라는 신념이 있지요.
그런 신념에 따른 결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까?
제가 한 모든 일의 결과가 좋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제가 잘못했다고 후회하진 않습니다. 20년 전에 무영이와 그녀가 사라진 후, 그런 경솔한 행동을 한 무영이가 많이 미웠습니다. 누군가는 죽었고, 또 작별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그 녀석을 끝내 붙잡지 못한 것, 그와 함께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진 않아요. 다시 또 그런 순간이 온대도 저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제가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할 겁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무척 가슴 아프죠. 그뿐입니다, 후회하진 않습니다.
소중했던 친구를 잃은 사건이 당신이 경호원으로서 더욱 책임감을 갖도록 한 계기가 되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그 일 때문에 경호원을 그만두려고 했죠. 하지만 다시 돌아오게 됐습니다. 제 의지 때문이든 명령 때문이든, ‘내가 있을 곳, 내가 가야 할 길은 결국 여기구나’, 제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요.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저는 전자일 겁니다. 무영이는 자신의 운명을 거침없이 뚫고 나가서 또 다른 운명을 맞았고요. 저는 제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죠.
20년간 한결같이 일하고 현재 경호부장의 자리에 오르신 것처럼요. 결국은 누군가의 그림자를 지워내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한우물만 파면서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농담 삼아 이야기하자면, 어릴 때 저희 어머니께서 점을 보셨는데, 제가 항상 누군가의 그림자에 가려있다고 하더랍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늘 2등을 하곤 했는데, 그게 제 운명인가보다 생각했죠. 1등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늘 분해하며 1등을 갈망했던 것 같지는 않아요. 그저 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고요.
그 원칙과 명분이 스스로를, 또는 주위 사람들을 얽매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죠. 하지만 그게 맞는 일인걸요. 가끔 고쳐보려는 마음도 들지만, 이제 와서 쉽게 고쳐지진 않네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6호 2013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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