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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마이클 리, 고요함 속에서 빛나는 강인함 [No.117]

글 |이민선 사진 |김호근 2013-06-12 6,017

예수를 신의 아들이 아닌 한 인간으로 재조명해
그의 인간적인 고뇌를 보여주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마이클 리가 연기한 지저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적인 연민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무척 성스러워 보였다.
<미스 사이공>으로 한국 관객들과 첫 대면을 했던 유약한 크리스가
누구보다 강한 신념을 지닌 지저스로 돌아왔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 무대에서 주로 활약했던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이번 한국 프로덕션이 정말 좋다”며
벅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수퍼스타)>는 이미 여러 차례 공연됐고, 미국 공연에 출연하기도 했다. 한국 공연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가?
지금까지 수많은 버전으로 공연됐고, 각각이 굉장히 달랐다. 하지만 지금 참여하는 한국 프로덕션이 가장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이전에 미국에서 공연했던 버전들은 모던했는데, 이번 한국 공연은 좀 더 고전적인 방식으로 연출됐다. 사막을 배경으로 모두가 예상 가능한 모습의 예수가 등장한다. 흰 의상을 입고 열두 제자에 둘러싸인 채로. 과거 어떤 버전들보다 무대 장치가 간소한데, 그 덕에 드라마가 더욱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이런 연출 방식이 무척 아름답다.


이지나 연출이 지저스 역에 특별히 요구한 것이 있나?
내 연기 스타일은 도발적이고 공격적인 편이다. 무대 위에서도 실생활에서 행동하듯이 강렬하게 행동하고 보여준다. 그런데 이지나 연출은 지저스가 차분하고 조용하길 바랐다. 그건 내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건드리면 난 더 강하게 밀쳐내는 성향의 배우인데, 지저스는 사람들이 달려들어도 육체적으로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아야 했으니 말이다. 차분하게 진정하는 연습을 무척 많이 했다. 우리 공연의 지저스는 대체로 평온을 유지하고, ‘겟세마네’ 이전에는 내면의 갈등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점은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연기했던 지저스와 아주 많이 다르지만, 굉장히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기존의 생각과는 다른 연출임에도 충분히 수용할 만했나 보다.
물론이다. 고요함의 힘을 배웠달까. 이지나 연출의 의도를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한국 공연에 참여하면서 배우로서 성장하는 기회가 됐다.


한국 관객에게 얼굴을 알렸던 <미스 사이공>은 데뷔작이라 특별할 테지만, 미국에서 시몬에서부터 지저스와 유다까지 연기한 <수퍼스타>도 무척 의미 있는 작품일 듯하다.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가톨릭 신자다. 학창 시절에 과학을 전공하면서 내부에선 과학과 종교 사이의 충돌이 일곤 했다. 당시 내겐 종교적 사고가 조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수퍼스타>를 공연할 때마다 조금씩 더 종교적인 믿음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물론 <수퍼스타>는 음악도 무척 좋고, 드라마도 정말 훌륭하다. 여기에다 종교적 믿음과 맞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예수가 살아 있는 마지막 7일 동안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의 운명을 완수하는지 보여주는 게 무척 흥미롭다. <수퍼스타>의 지저스는 인간적 면모가 부각되지만, 이번 공연의 지저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 속 예수의 모습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11년 시애틀에서 공연했던 <수퍼스타>에서는 성경 속 인물들을, 1999년에 시애틀에서 실제로 있었던 시위 속 인물들에 매치시켰다. 상당히 난해한 작품이었지만 굉장히 흥미로웠다.


시애틀 공연에서 매회 지저스와 유다를 번갈아가며 두 역을 모두 연기했다고 알고 있다.
정말 재밌었지만 되게 힘들었다. 지저스와 유다는 베스트 프렌드라고 할 수 있다. 유다는 지저스가 유일하게 믿는 인물이다. 유다가 지저스를 배신해야 지저스가 자신의 운명을 완수할 수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지저스와 유다를 연기하는 건 두 인물 모두를 100%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 흥미로웠다. 그 공연에서 지저스와 유다는 정말 말 그대로, 싸웠다. 서로 치고받고, 바닥에 내리치면서. 이런 연기가 내 스타일이었던 거지. (웃음)


의외다. 또 의외였던 것은, 마이클 리가 ‘겟세마네’ 같은 록 넘버를 그렇게 멋지게 소화했단 사실이다.
고등학생 때 록 밴드 활동을 했다. 그리고 내 꿈은 록 스타였다! 난 록 음악을 정말 사랑했다. 뮤지컬 배우가 된 것도 록의 영향이 크다. 록 콘서트에 갔는데, 로커들의 분장과 의상이며 불 나오는 세트며, 그런 연출 방식이 무대극과 매우 흡사해 보였다. 미국에서 처음 커리어를 쌓기 시작할 때, 나는 록 뮤직 액터로 알려졌다.


지저스를 연기하는 배우에게 우선적으로 기대하게 되는 건 ‘겟세마네’를 어떻게 부르느냐다. 당신의 가창력도 훌륭했지만, 더 놀라운 것은 무대에 홀로 서서 노래하는 동안 지저스의 내면을 섬세하고 강렬하게 전달해서 관객들이 드라마를 놓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아주 끔찍한 일을 겪어 신에게 ‘왜 내게?’라고 묻게 되는 순간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누가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정말 가슴 아픈 일이지만, 전쟁에 끌려가 왜 그곳에서 총을 들고 누군가를 겨누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자신의 가족 또는 소중한 무언가를 위해서라면 그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그처럼 지저스의 경우, 신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라고 하셨다. 지저스가 소리치고 괴로워하다 결국엔 신의 뜻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겪는 감정일 거다.

 

 


의대생이었던 당신이 뮤지컬 배우로 전향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학교에서 전공하지 않고, 연기 연습과 노래 연습은 어떻게 했나?
샤워하면서? (웃음) 영화나 뮤지컬을 많이 보고, 사람들을 많이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내 베스트 프렌드 말로는, 내 성격 중 가장 좋은 점이 경청하는 거라더라. 최고의 배우는 삶을 자연스럽게 무대 위로 옮겨놓는 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는 학교 강의로만 배울 수 있는 건 아닐 거다. 어떤 것을 경험하면 그것을 연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지지 않고선 사랑에 빠진 연기를 할 수 없지 않나?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관찰하고 느끼려 한다.


록을 좋아한 게 뮤지컬 배우의 시작이 됐으니, 아무래도 록 뮤지컬을 좋아하겠다.
2002년에 브라이언 요키를 처음 만나서 함께한 작품이 <메이킹 트랙스(Making Tracks)>였는데, 그것도 록 뮤지컬이었다. 정말 환상적인 작품이었다. 동양계 미국인이 미국에서 겪는 일을 3대에 걸쳐 보여준다. 이후 배우로 활동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많은 스타일을 배우게 됐다. <미스 사이공>을 통해 오페라를 공부했고, <왕과 나> 같은 고전적인 로맨틱 뮤지컬과 <태평양 서곡>,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도 소화할 수 있었다.


브라이언 요키는 한국에서 <넥스트 투 노멀>의 작가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그런데 <토미>와 <수퍼스타> 등을 연출했고, 당신과 함께한 작품도 여러 편이더라. 연출 방식이 결코 ‘노멀’한 것 같지는 않던데?
브라이언 요키를 만나면 아마 깜짝 놀랄 거다. 매우 노멀하고 나이스한 친구다.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그중에서도 브라이언은 단연 최고로 똑똑하다. 그와 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대 위에서 현실의 인간상을 보여주려는 거다. <넥스트 투 노멀>의 등장인물들은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가. 브라이언 요키와 내가 친하고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여러 작품을 함께했다. 2011년 <수퍼스타>의 경우, 그가 나의 스피릿을 잘 알기 때문에, 시위대의 우두머리 격인 거친 지저스에 나를 캐스팅했을 거다. 동양인이 지저스 역을 맡는 게 미국에선 정말 드문 일인데, 브라이언이 연출하고 그가 나의 성향을 잘 알아서 가능했다.


미국에서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지만, 그래도 역시 두드러진 건 아시아인을 연기했다는 사실이다. 그건 당신의 특장점인 동시에 불리한 점일 것 같다.
미국에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으니, 배우의 얼굴과 신체는 그의 악기가 된다. 나는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 내가 그렇게 특징 지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백인이나 흑인들이 맡지 못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릴 거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수퍼스타>의 지저스나 유다, <토미>의 토미,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의 유태인 제이미를 연기할 수 있었으니, 나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시나리오도 쓰고 곡도 만든다고. 하나만 하기에도 벅찰 텐데, 그렇게 끊임없이 다양한 작업에 도전하게 만드는 동력은 뭔가?
내 안에 많은 이야기와 음악들이 있고, 그걸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나를 더 젊게 유지시킨다.


과거 <베이징 스프링>과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로 LA 오베이션 어워즈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었다. 6월에 한국에서 열리는 더 뮤지컬 어워즈에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르지 않았나? 꼭 상을 받아야 맛은 아니지만, 이런 사실이 이슈가 되는 건 사실이다.
매우 영광스럽고 기쁘다. 한국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수준은 정말 최고다. (어쩔 줄 몰라 하다, 불쑥 튀어나온 한국말로) 부, 부끄러워요. (일동 웃음) 아, 크레이지, 벗 해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7호 2013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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