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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괴물 작가의 등장, 김지훈 [No.98]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1-11-15 5,491

한국 연극계 대표 극단 중 하나인 연희단거리패가 올해 25주년을 맞았다. 연희단거리패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이윤택이다. 작가로서 연출가로서 이윤택은 한국 연극계뿐만 아니라 문화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런데 마지막 기념 공연으로 ‘김지훈 3부작’을 선택했다. 대가에게나 쓸 법한 ‘김지훈 3부작’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도 붙였다. 그러나 김지훈은 2006년 <양날의 검>으로 대산대학문학상을 받고, 2008년 <원전유서>로 연극계에 데뷔한, 실제 연극 경력이 3~4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 신인 작가이다. 작품 역시 ‘김지훈 3부작’에서 발표하는 <방바닥 긁는 남자>, <길바닥에 나앉다>, <판 엎고, 퉤!>와 <양날의 검>, <원전유서> 이렇듯 다섯 작품이 전부이다.

 

 

그러나 김지훈의 등장은 연극계에 충격을 주었다. 김지훈은 2004년 신춘문예 시 부문에 등단한 시인을 꿈꾸는 문청이었다. 학교 과제로 본 연극에 격분하여 이런 거라면 나도 쓰겠다는 배짱으로 처음 쓴 희곡 <양날의 검>이 덜컥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윤택 선생은 ‘최인훈 이후 가장 한국적 정서를 잘 표현한 작가’라고 평했고, 그 인연으로 연희단거리패에 들어가 생활하며 써낸 것이 4시간 반이 넘는 희곡 <원전유서>였다. 그것도 이윤택이 무대화하기 위해 가지치기한 것이 그 정도였다.
신화가 바탕이 된 세상에서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들이 혁명을 노래하고 지치지도 않고 말들을 늘어놓는다. 그의 작품은 현실에서 도약하여 신화적인 세계를 담았다. 쓰레기산에 주소 없는 사람들이 새로운 형태의 주소를 요구하고, 하염없이 쓰레기산을 일구던 어진네는 두 아이를 잃고 마침내 그곳에서 나무 한 그루를 키워낸다. 비유의 세계에서 신화로 비약하는 <원전유서>의 신화적 공간은 다음 작품에서도 발견됐다. <방바닥 긁는 남자>는 먹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고 방에서 나가질 않는 네 남자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세상을 전복시키려 한다. <길바닥에 나 앉다>에서도 그러한 전복적 아이러니는 여전하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세상에 불만을 가진 걸인 또는 미치광이 같은 인물들이 참기름으로 아스팔트를 뒤엎으려 한다. 가장 현실적인 <판 엎고, 퉤!>는 실패한 연출가와 배우에게 사채업자가 찾아온다. 부채를 두고 갈등하지만 모든 것들보다 상위에 있는 것은 밥이다. 일상에 갇힌 사람들을 비유적이면서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었고 그래서 김지훈의 문학성 짙은 대사가 더욱 빛나는 <판 엎고, 퉤!>의 세계는 또 다른 신화적 공간을 창출한다.
한국 연극계에 이처럼 선 굵은 작가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색깔이 분명하고, 담고 있는 세계가 거대했다. 어느 작가보다 현실 비판적이고 문명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면서도 그것을 현실에서 비약한 신화적 상상력으로 풀어간다. 이러한 분명한 색깔에도 불구하고 김지훈의 가장 뛰어난 점은 그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자신이 누구보다도 그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극의 외곽에서 객관적으로 연극계를 바라보고 충격적인 작품을 연극의 심장부에 던지는 김지훈의 등장으로 한국 연극계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다. 그가 무엇이 되든 미래가 궁금한, 젊지만 결코 젊지 않은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모차르트와 만남을 약속한 살리에리처럼 가벼운 흥분과 긴장을 동반했다. 

 

시를 쓰다가 희곡으로 전환했다. 차이가 있나? 시는 혼자 하는 글쓰기이고 희곡은 극문학일 따름이지만 많은 조율을 거쳐야 한다. (쓴 글을) 빼고 집어넣고를 해야 한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괴로운 일이다. 그것의 기준이란 게 모호하다. 우리나라는 특히 작가의 힘이 약해서 연출가가 거의 주도한다. 이윤택 선생님의 말씀이 단순 명백하다. ‘해보면 안다’는 것이다. 어떤 괴팍한 작품도 글로 읽으면 모르지만 무대 위에 올려보면 되는지 안 되는지 안다. 그런 과정도 거치지 않고 연출가들이 작가인 양 재단해 버리는 건 문제다.


연희단거리패의 밀양 연극촌에서 생활했다. 그때 생활은 어땠나? 정말 괴로웠다. 군대 생활보다 더 심한 거 같다. 처음에는 작가라 개인 시간이나 공간도 주고 배려를 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단원들하고 똑같이 막일하고 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작가로서의 대우가 없었다. 10시 이후로만 내 시간이 난다. 글을 쓰기 위해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요즘은 그만큼의 열정이 안 나오는 것 같아 반성 중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무려 4시간 반짜리 연극 <원전유서>였다. 멋모르고 덤빈 거였다.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연극을 보거나 희곡을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막연하게 건축적인 공간감은 있었다. 처음에는 (A4지로) 200페이지 넘게 썼다. 그걸 다 쳐내고 반으로 만든 거였다. 다른 건 없었고 그냥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거 써봐야겠다는 욕심은 있었다. 멋모르니까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연극계에서는 종합적 사유와 직관적 언어가 결합된 문제작으로 평가했다.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글을 쓴다. 시대성을 가지고 쓰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대극장 전문 작가가 되고 싶은데 그 정도 규모의 작품들은 사회적 기능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담론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야 관객들이 연극을 보러 올 것이다. 마이너의 시대인 거 같은데, 좀 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철학이나 인문학적 사유가 깊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가 전진할 수 있는 것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무의미하지만 계속해서 해야 하고 무의미해도 무의미함 속에서 정수를 건져내야 한다. 그게 철학이고 역사라고 본다. 담론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 담론이다. 그것을 담고 있는 것이 좋은 연극이고 훌륭한 연극이라 생각한다.
최근에 그런 생각이 든다. 돈을 벌어들이는 글과 뜻을 벌어들이는 글이 있다. 뜻을 펼치는데 내가 한푼도 없으면 알량하고 치졸하지 않나. 또 한편으로는 나는 늘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해나가고 싶고 그게 내 임무라고 생각하는데, 내세울 것 없는 내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옹졸한가.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야 그 이야기가 옳고 좋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연극을 잘 안 보나. 매력이 있거나 꼭 봐야겠다는 연극이 별로 없다. 많이 보는 게 좋지 않겠냐는 분들이 있는데 나는 방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2007년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공연 때 이윤택 선생님이 2층에 가서 자막을 쏘라 해서 혼자 그 일을 했다. 그때 경험이 너무 강력하다. 2층에서 보면 동선이나, 세트가 어떻게 나오고 조명이 어떻게 변하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선생님의 <억척어멈>은 좋은 공연이었는데 그걸 보름 동안 했으니까 굉장한 공부가 됐다. 그러고 나니까 다른 공연은 글쎄. 막무가내로 보고 나면 오히려 악영향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희곡을 안 좋아했는데 이젠 많이 읽으려고 한다. 길게 갈 거니까 언젠가는 많이 보러 다닐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렇다.


‘김지훈 3부작’에 ‘우상 파괴 시리즈’란 부제가 붙었다. 다른 작품에서도 기존 권력의 파괴, 문명 비판 등 일관된 논조를 가지고 있다. 매 작품마다 내 연극을 보고 나가는 관객들에게 ‘김지훈이 한 꺼풀 벗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우상 파괴는 그저 기획 문구일 뿐이고 그저 계단을 밟아가는 과정의 한 모습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사회를 보는 삐딱한 시선이나 반골 기질, 이런 것은 작가의 역사에서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과정일 테이고, 나는 열심히 밟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그것이 순화되고 여과되더라도 이것보다 더 파괴적인 작품이 나올 수도 있을 테고. 그저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봐주었으면 좋겠다.

 

작품 속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세상을 뒤엎으려는 자들이 걸인, 은둔자, 미치광이 대부분 아웃사이더들이다. TV에서 이건희가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참 파렴치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게 사회의 모습이다. 내 연극에서는 보기에 가장 형편없는 사람들이 높은 철학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봤을 때 감동하고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번은 서울역 노숙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는데 길바닥에 살고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 같지만 그 사람들의 말이 삶처럼 그렇지는 않다. 우리와 똑같고 오히려 더 현명한 말도 한다. 그런 환기를 주고 싶었다. 우리가 현인이나 지성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은 정해져 있지 않나. 그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그런 캐릭터가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체호프를 이해하지 못한다. 체호프는 민중의 현수막을 걸어놓은 부르주아의 잔치판 같다. 딱 그 정도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내가 체호프를 이해하는 날엔 한 꺼풀 더 벗겨지지 않을까.


<원전유서>의 어진네는 쓰레기밭을 일궈 나무를 키운다. 작품에서는 무모하지만 끝까지 해나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내 연극은 최악의 조건에서 시작한다. 거기서 희망을 봐야 한다. 최악이지만 어떤 자그마한 빛이라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프로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점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작품마다 신화적인 설정을 한다. 이 시대에 신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람은 일상에 묶여 지내지 않나. 거기서 벗어나려면 딴생각을 해야 한다. 그것이 신화의 한 조각이라고 본다. 상상력으로 어떤 것이든 가능하지만 그것의 규칙을 주고 역사성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신화성에 몰두하는 것 같고 그것이 내 스타일이다.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게 매력 있고 좋다. <원전유서>는 내 굴레라고 생각한다. 작가로서 전진을 해야지 후퇴하고 머무를까봐 두렵다. 신화의 장치도 더 이상 사용할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과감히 버릴 것이다.


대사가 다변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라든가 어떤 영향이 있었나? 그런 것은 없었다. 어릴 때 가난해서 유치원이나 학원도 안 다녔다. 집에서 다리를 건너면 도시였고 반대편으로 건너면 논과 밭이 있고 너른 들판이 펼쳐졌다. 일고여덟 살 때 학교 갔다 오면 할 일이 없으니까 고기도 잡고, 풀도 뜯고 지평선 끝까지 가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말이 내 능력인 거 같다. 글을 쓸 때도 가만히 앉아 되는 대로 말을 하면서 자판을 친다. 


대사가 자동기술적인 면이 있다. 이성적인 대사인데도 논리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내면의 소리를 나열한다. 그런 면에서 소통하기 힘든 면도 있다. 아직 내가 치기 어리고 덜 여물어서 그럴 것이다. 항상 다르게 해야겠다는 강박도 있고, 내가 사용하는 대사가 일상어가 아니니까 또렷하게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이 하고 사는 말과 하고 살지 않는 말이 있다. 나는 그것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그게 내 연극이라고 본다. 안 하는 생각을, 잘 쓰지 않는 부분을 자꾸 더 건드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모든 작품을 보진 않았지만 내가 본 작품에서 캐릭터들이 공연 내내 그 누구도 변하지 않는다. 맞는 놈은 계속 맞고, 나쁜 놈은 계속 나쁘다. 어진네 같은 경우 저 정도면 한번쯤 반항하거나 도망칠 법도 한데 그러질 않는다. 극적인 변화는 없다고 본다. 최근에 역사에 녹아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조선왕조를 들여다보면 반복이다. 해선 안 될 짓을 그대로 하고 그러다 망한다. 거기서 얻은 것은 ‘인간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였다. 캐릭터가 변해서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버티고 버텨서 희망으로 가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소양을 쌓는다고 인성이 바뀌나. 더 노련해질 수는 있지만 본성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내 캐릭터는 대표성을 띠고 있다. 그런데 이리저리 흔들려도 되겠나 싶은 거다. (변하는 것은) 작품 속의 인물이 아니라 그것을 읽고 본 사람의 몫이다.


<판 엎고 퉤!>는 연출을 맡았다. 그전 작품들에 비해 현실적인 작품이다. 너무너무 현실적이다. 세 편을 시리즈로 구상했다. 방바닥 사내들(<방바닥 긁는 남자>)이 길로 나와서 길에서 사고를 쳐서(<길바닥에 나앉다>) 교도서에서 연극을 하는 것(판 엎고 퉤!>)이었다. 그런데 극단 사정이란 게 있고 그 배우들이 계속 출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 컨셉에서 프레임을 바꿔서 <길바닥에 나앉다>를 다시 썼다. 나쁘지 않더라. 그러면 3편은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을 했다. 앞선 두 편이 길을 뜯고, 집을 박살내고 무지막지하게 가지 않나. 다음은 어떤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야 하나 하다 배우 자신을 뜯어놓기로 했다. 그러려면 무대장치나 조명이 없어야 한다. 그걸 관철시키는 것이 힘들었다. 배우들이 조명 밑에 서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야 안정을 찾는데 아무것도 없다고 하니까 얼마나 힘들었겠나. 밀양이랑 부산에서 했는데 일반 관객들도 잘 보긴 했다.

 


첫 연출작이다. <원전유서> 할 때도 이윤택 선생님이 옆에서 보라고 하셨다. 어떻게 보면 도제 수업을 받은 거다. <방바닥 긁는 남자>나 <길바닥에 나앉다>도 선생님이 나한테 연출을 맡기려고 했다. 사정이 있어서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대단한 게 아니라 해봐야겠어서 했다. 작가랑은 굉장히 다르다. 연출은 하나부터 열까지 말로 풀어야 한다. 연출도 한번 안 해본 내가 연기를 수십 년 해온 극단 대표 배우와 부딪혀서 이해시키고 납득시켜야 했다. 굉장한 수업이었다.

 

연출 경험이 글쓰기에 영향을 미칠까.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작가는 지 맘대로 하는 게 있어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계산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고려하진 않을 생각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8호 2011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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