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은 무대라는 공간을 초월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마술 장치들을 곳곳에서 활용하며 놀라움을 자아낸다. 군무와 의상도 압도적인 장관을 연출한다. 한마디로 전 연령대에게 꿈과 희망과 재미를 주는 웰메이드 가족 뮤지컬이다.
다채로운 음악과 이미지의 향연으로 우리 유년기의 따뜻한 추억이 된 애니메이션 <알라딘>에서 램프의 지니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존재였다. 과연 이런 마법이 ‘무대’라는 리얼 타임의 한정된 공간 안에서 가능할까? 공간의 제약이 있는 만큼 영화보다는 아무래도 못하리라는 것이 뮤지컬 <알라딘>에 대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역시 디즈니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이야기 속 지니와, 상상의 세계를 이렇게 생생하게 재현해내는 디즈니 프로덕션의 능력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대단한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모든 장면에는 무대라는 제약을 극복할 기발한 아이디어와 마술 장치들이 응용되어 있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불꽃이 쉴 새 없이 터지고, 의상과 무대 장치는 순식간에 바뀌고, 마술 쇼가 벌어지며, 카펫이 날아다닌다. 군무와 의상도 압도적이다. 한마디로 전 연령대에게 꿈과 희망과 재미를 주는 수준 높은 웰메이드 가족 뮤지컬이다. 이처럼 ‘다 좋다’ 식의 비평은 모든 평자들이 피하는 것이지만, 이 작품은 곤혹스럽게도 일말의 꼬투리마저 잡을 여지를 주지 않는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것이다
이 작품의 가장 놀라운 점은 무대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가볍게 뛰어넘는 아이디어다. 영화에서 하는 건 무대에서도 다 한다. 심지어 스크린에서 느낄 수 없는 배우들의 땀과 노력도 진짜다. 가장 놀라웠던 순간은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지니의 등장과 동굴 속 알라딘의 구출 장면이다. 램프의 요정이 지닌 모든 능력을 보여주는 신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노래가 꽤 긴데도 편집이 빠르고 장면이 많아서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데, 무대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장면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면 바로 다음 장면이 이어진다. 모든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해져 ‘오 마이 갓’ ‘왓?!’을 대놓고 외칠 정도다. 지니는 램프 밑에서 드라이아이스가 나올 때 무대 바닥에서 올라온다.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면서 올라오는데, 그 속도가 상당히 빠르기 때문에 정말 램프 안에서 나온 것 같아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알라딘에게 자기의 능력을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손가락 끝으로 사인을 보내는 곳마다 불꽃이 터진다. 동굴 기둥은 상승 하강을 반복하고, 그 안에서 무희들이 차례로 순식간에 등장하며 장관을 보여준다.
토니상을 거머쥔 지니 역 배우는 과연 압도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휘저으며 수상을 납득하게 한다. 자파 역은 원래 영화에서 자파 목소리를 담당한 배우가 직접 연기를 했다. 이 극에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 어릴 때 <알라딘>에 대한 추억이 있어서 자파의 상대 배우는 자신이 자파와 연기한다는 생각에 감정이 벅차올랐다고 한다. 이런 것이 바로 디즈니, 나아가 아메리카의 힘이 아닌가 싶다. 추억이 추억에만 그치게 하지 않고 아이들의 꿈을 현실화하는 나라, 어른이 되어서도 꿈꿀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나라, 그런 기업들이 있는 나라.
혼신의 힘을 다하는 퍼포먼스가 쉴 새 없이 이어지다 끝나자, 극 중간인데도 모든 관객들이 5분 동안 기립 박수를 쳤다. 지니가 말을 더 하려 해도 관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는 바람에 잠시 진행을 멈추어야 했다. 알라딘과 자스민이 함께 매직카펫을 타는 장면도 멋지게 연출되었다. 극장 자체가 예술적이기로 유명한 뉴 암스테르담 씨어터는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동화 속 궁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매직카펫 라이드 장면은 ‘불을 끄고 별을 켜다’라는 시적인 표현을 그대로 시각화해 보여준다. 별이 켜지면, 카펫이 날아오른다. 아쉬운 것은 영화에서는 카펫이 속도감 있게 강과 여러 도시 위를 날아다니는데, 뮤지컬에서는 앞의 지니 장면에서 힘을 다 쏟아냈는지 다소 조용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로 처리됐다는 점이다.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객석 중앙 천장부터 무대 위로 순식간에 떨어지는 샹들리에가 주는 물리적인 감동이 있는데, <알라딘>도 극장 여건을 극복하고 <오페라의 유령>처럼 모든 장소에서 카펫이 날아다녔으면 좋았을 것이다. 무대와 객석의 암묵적인 경계를 배우들이 넘나들 때 관객들이 느끼는 입체감은 엄청나니까.
노래는 디즈니 역사를 다시 쓴 살아있는 전설, ‘앨런 멘켄’ 곡들이다.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로맨틱하고 재미있는 멜로디들이다. 다만 중간중간 극의 진행을 위해 끼워넣은 트랜지션 뮤지컬 넘버들은 아무래도 전체 색에서 약간 뜬다는 느낌이 있다. 편집의 예술인 영화에서 통일성을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이 무대로 나와 무대 예술로서의 여건을 갖춰가다 보면 이런 문제들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같은 디즈니사의 작품인 <메리 포핀스>도 현재 쓰인 곡과 영화에 등장하는 곡들 사이에는 그 완성도와 상관없는 창작자들의 작품 해석에 관한 세대 차, 온도 차가 느껴진다.
‘디즈니’라는 브랜드의 위력과 한계
작품을 보는 내내 무섭도록 완벽에 가까운 디즈니의 상품 프로듀싱과 마케팅, 관리 능력에 대해 감탄했다. 동시에, 훌륭한 대중예술을 만들기 위한 조건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디즈니 작품들은 ‘브로드웨이식’ 뮤지컬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대개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예술’이 ‘대중’을 만나는 느낌이라면, 디즈니 뮤지컬은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고도의 예술적 테크닉’을 이용해 보여주는 느낌이다. <메리 포핀스>, <라이온 킹>, <뉴시스>, <알라딘> 등 디즈니의 이름을 건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의 키워드는 ‘익스트래버갠저(Extravaganza)’, 즉 현란하고 놀라운 디자인과 연출이다.
디즈니 창업 이래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모토, ‘가족들이 모두 함께 볼 수 있는 콘텐츠’, ‘모든 사람들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을 만든다는 목표는 공연 내내 강하게 드러난다. 그런 명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투자금에 연연치 않고 현존하는 모든 첨단 기술을 활용해 시도하다 보니 예술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무대가 이렇게나 예술적으로 보이는데도 ‘예술적 무대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굉장히 아이러니한 점이다. 이것은 디즈니 작품들이 여타의 작품들처럼 작곡가, 작가, 연출가의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디즈니 작품은 ‘디즈니사’의 작품이다. 스토리와 추구하는 스타일이 이미 정해져 있다. 연출가도 자기의 아이디어로 작품을 만든다기보다 회사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기의 재능과 돈을 거래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럼 당연히 연출가의 색깔이나 특정 프로듀서의 개성이 나오기보다 회사가 요구하는 ‘디즈니적’ 색깔이 강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실 연출의 컨셉이 확실한데 프로덕션이 프로듀싱에 대한 주도권과 조율 능력을 갖지 못하면,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스파이더맨> 같은 작품이 나온다. <스파이더맨>은 정말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콘텐츠였지만 프로덕션과 연출가의 비전이 상당히 달랐고, 그것을 조율하지 못했다. 만약 디즈니였다면 애초 컨셉에 대한 조율은 아예 옵션에 없었을 것이다. 컨셉은 이미 영화에 정해져 있으니, 그에 뒤지지 않는 멋진 공연을 어떻게 구현할까에 대한 논의가 있을 뿐이다. 그만큼 연출가 개인이나 투자자, 프로듀서들의 재능과 노력이 아닌, 회사 차원의 거대한 프로듀싱 능력과 권력은 작품의 수준과 성향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알라딘>은 토니상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는 되어도 수상은 할 수 없다. 이런 작품이 작품상을 타게 되면, 업계에 종사하는 브로드웨이 토박이들에게 엄청난 허무감과 박탈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토니상의 수상 요건에는 흥행도 있지만, ‘얼마나 흥미 있는 작품을 만들었고 그것을 어떤 개성으로 풀어냈는가’ 하는 점도 당연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정된 자본과 시간 안에서 인생과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대다수의 브로드웨이 사람들은, 예술의 옷을 입긴 했으나 어딘지 모르게 ‘자본주의의 끝’을 보이는 <알라딘>의 성공에 진심 어린 박수를 쳐줄 수는 없을 것이다. ‘저만큼의 투자 금액이 있다면, 우리 모두 저렇게 할 수 있는 테크닉과 재능이 있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나는 것이다.
물론 <라이온 킹> 같은 경우는 다소 예외라고 할 수 있다. 분명 가족 뮤지컬이면서 무대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디즈니의 그것 이상으로 예술적이다. 원작의 내용 전달 방식 자체가 전형적인 전개를 살짝 벗어난 작품이어서 연출이나 무대디자이너가 자기 색깔을 낼 수 있는 여지가 많았던 것이다. 풍부한 자본력 덕분에 실현할 수 있었던 측면도 있지만, 가만 보면 돈이 많다고 다 실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천재들은 회사의 컨트롤을 받는 여건에서도 자신이 주역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작업에 임하는 것 같다.
디즈니 왕국의 생태계
생각해보면 디즈니가 작품을 대하는 방식이나 철학도, 브로드웨이와는 약간 다르다. 일단 모든 것을 ‘소유’해야 일이 편하게 돌아간다는, 뼛속까지 기업가적 마인드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 모든 것은, 말 그대로 그 모든 것이다. 한 예로, 브로드웨이에는 몇 군데 대표적인 작품 홍보 에이전시가 있는데, 디즈니는 이런 곳을 통하지 않는다. 보통 브로드웨이에는 홍보 대행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지만, 이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디즈니는 언론 매체에 실을 보도 사진들도 직접 관리하고 전달한다. 다른 작품들은 계약 기간 끝나면 방 빼듯 서둘러 극장을 뜨고 팀도 해체되지만,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디즈니는 팀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자체 홍보 담당자의 존재가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오히려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음악에 관해서도 출발점은 마찬가지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등의 히트작을 내어 디즈니의 전성기를 맞기 전까지, 우리는 수많은 ‘미키과 친구들’ 주연의 만화를 일요일 아침마다 봐왔다. 게다가 음악도 훌륭했다. 그 수많은 작품들의 작곡가가 기억나는가? 그 시절의 디즈니 작곡가들은, ‘회사원’이었다. 단, 고소득 전문직이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저작권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었고, 할리우드 생태계에 스타 작곡가라는 개념이 도입되어서 다르다지만, 디즈니 초창기에는 사정이 달랐다. <피노키오>나 <백설공주> 같은 작품의 작곡가들 역시 앨런 멘켄 뺨치게 재능 있었지만, 그 당시 작곡가들은 모두 월급을 받고 작곡을 했다. 다만 저작권을 침해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초강경 대응을 하기로도 유명하다. ‘내 것’에 대한 주인 의식이 엄청난 그룹이다. 태생적으로 이미 내재된 디즈니의 기업가 마인드는 지금까지도 여러 방식으로 전해지고 있다.
투어리스트들을 위한 추천작
뉴욕을 찾는 관광객들이 필자에게 늘 하는 질문 ‘뮤지컬 보고 싶은데, 뭘 보면 되죠?’에 대한 답은 이 작품 이후로 바뀌었다. 그동안은 <위키드>를 추천했다. 확실히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는 느낌을 주고, 무엇보다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제 필견의 작품은 <알라딘>이 됐다. 특히 시간과 옵션이 별로 없는 브로드웨이 관광객들에게 추천한다. 일단 <위키드>에서 볼 수 있는 무대 예술의 열 배 정도 되는 현란함을 볼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 나고, 적절한 감동도 있다. ‘내 인생의 뮤지컬 톱 10’에 들 수 있는 예술성을 지닌 작품은 아니지만, 현 시대에서 볼 수 있는 예술적인 장면들로 가득 차 있는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마디로, 보고 나서 절대 후회되지 않는,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은 ‘확실한’ 뮤지컬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도 장기 라이선스 공연으로 익숙해진 <위키드>와 달리, 앞으로도 한국에서는 라이선스 가능성이 낮은 ‘디즈니 뮤지컬’이라는 점도 <알라딘>을 봐야 할 이유 중 하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4호 2014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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