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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서니 애프터눈> SUNNY AFTERNOON [No.136]

글|조연경(런던 통신원) 사진|Kevin Cummins 2015-01-29 5,705

킹크스에게 바치는 노래 

1966년 월드컵, 개최국 잉글랜드가 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모두 행복했던 찬란한 여름, 그때 울려 퍼졌던 노래는 ‘킹크스(The Kinks)’의 ‘Sunny Afternoon’이었다. 1960년대부터 활동한 영국의 록 밴드 킹크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명의 뮤지컬 <서니 애프터눈>은 바로 그 순간을 멋지게 담아냈다. 그 시대를 살지 않은 관객들도 그때의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아름답게 재현한 그 시절 따뜻한 봄날의 노래는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킹크스의 리드 싱어이자 메인 작곡가였던 레이 데이비스는 극 중에서 ‘Sunny Afternoon’을 작업할 때 이런 말을 했다. “이 노래는 최고의 히트곡이 돼서 전국에 울려 퍼질 거야. 그리고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할 거야!”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결국 레이 데이비스의 말은 사실이 됐고, ‘Sunny Afternoon’은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영국 밴드를 향한 찬가

2014년 4월에 런던 북부의 햄스테드 시어터에서 개막한 <서니 애프터눈>은 밴드 킹크스의 음악을 이용해 그들의 결성부터 초기에 활동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작은 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이지만 입소문을 타고 제법 큰 성공을 거뒀고, 몇 개월 뒤 웨스트엔드로 옮겨 10월부터 레스터스퀘어 옆 해롤드핀터 시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다. 호응이 좋은 편이라 내년 5월까지 예매 기간을 연장해 관객들을 만난다고 한다.


영국 록 음악사에 강렬한 발자국을 남겼고, 데뷔한 지 50년이 넘어서도 사랑받고 있는 밴드에 관한 뮤지컬이 이제야 제작된 건 좀 늦은 감이 있는 듯하다. ‘퀸’에게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가 있고, ‘비틀스’에게는 <렛 잇 비(Let it Be)>가 있고, 하물며 ‘스파이스 걸스’에게도 <비바 포에버(Viva Forever)>가 있는데 킹크스의 노래를 엮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뮤지컬 <서니 애프터눈>은 레이 데이비스가 작곡한 킹크스의 음악과 킹크스가 겪었던 실제 삶을 바탕으로 극작가 조 펜할이 대본을 구성했고,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성인 빌리로 유명한 애덤 쿠퍼가 안무를 맡았다. 릭 피셔가 조명, 맷 맥켄지가 음향을 맡았고, 햄스테드 시어터의 예술감독이기도 한 에드워드 홀이 연출을 담당했다.




<서니 애프터눈>은 콘서트 무대처럼 T자형으로 무대를 설치해서 배우들이 관객 가까이 다가가서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했고, 무대 바로 앞에는 테이블이 있는 좌석을 두었다. 그렇다고 이 뮤지컬이 콘서트처럼 음악 공연 장면만 이어지는 작품은 아니다. 킹크스의 실제 이야기를 레이 데이비스의 관점에서 엮은 이 작품은 은근히 드라마가 강한 편이다. 킹크스의 전신인 ‘레이븐(The Ravens)’ 시절부터 킹크스의 탄생과 인기를 얻는 과정, 미국 투어, 그리고 멤버들 간의 갈등과 화해까지 연대기 순으로 쭉 담아냈는데 특히 세심하고 감정 기복이 심했던 레이 데이비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때문에 작품의 드라마적 요소가 더 풍부해졌다. 네 명의 액터뮤지션을 보조해주는 무대 위의 밴드와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다양한 악기들이 작품의 음악적인 요소를 강화해주었고, 더 풍성한 사운드로 관객들의 몰입을 도와줬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유행을 타고 다양한 작품이 쏟아져 나왔지만, <서니 애프터눈>은 레이 데이비스가 활동 당시 자신의 삶과 생각을 반영해서 썼던 곡들을 활용하기 때문에 다른 주크박스 뮤지컬에 비해 곡 선정이 설득력 있고 진정성이 강하다. 단순히 밴드의 음악을 이용한 주크박스 뮤지컬이 아닌, 킹크스를 더 깊이 파헤치고 알아보는, 1960년대의 킹크스에게 바치는 헌정 공연 같은 작품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킹키’한 매력의 밴드 킹크스

1960년대 영국 록 밴드들의 대대적인 미국 진출을 일컫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주도한 밴드 가운데 하나인 킹크스는 비틀스, 롤링스톤스 등과 그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꼽힌다. 레이 데이비스와 데이브 데이비스 형제가 피트 퀘이프, 믹 애버리 등과 런던에서 결성한 킹크스는 노동자 계층을 대표하는 밴드이기도 하다. 성적으로 특이하다는 뜻의 ‘킹키(kinky)’라는 단어에서 따온 ‘킹크스’라는 이름처럼, 개성이 뚜렷하고 좀처럼 길들일 수 없을 것 같은 멤버들이 모인 밴드다. 특히 데이브 데이비스는 파격적인 사건을 종종 일으키는 트러블메이커였다. 영국 카디프에서 투어 공연 중에 데이브 데이비스와 드러머 믹 애버리가 무대 위에서 난투극을 벌인 사건은 유명하다. 그렇게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늘 모난 구석이 있는 듯했던 킹크스는 주류 음악 시장에서 한발 물러난 위치에 머물렀다. 


런던의 소시민 가정에서 자란 레이 데이비스는 소시민의 삶을 묘사하거나 그들의 입장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가사를 많이 썼다. 젊은 시절 그의 고민이 솔직하게 담긴 가사는 마치 이런 뮤지컬을 만들 것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처럼 극 중 장면에 딱 들어맞는다. 
록의 황금기에 살아남는 법



고상한 파티장, 차분하게 연주하던 밴드가 갑자기 강렬한 사운드로 실내를 뒤집어 놓는다. 킹크스의 전신인 레이븐은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조용한 것을 못 참고 분위기를 바꾼 주인공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으로 유명한 데이브 데이비스. 활달하고 적극적인 데이브와 달리 형 레이 데이비스는 조용히 있다가 영감을 받을 때마다 수시로 노래를 불러대는 천재 작곡가로 그려진다. 거기에 레이의 친구이자 매사에 불만이 가득한 드러머 믹 애버리와, 그 사이에 소심하게 끼어있던 베이시스트 피트 퀘이프까지, 보통 사람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정신세계를 가진 밴드 킹크스는 뚜렷한 개성으로 무장하고 영국 음악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이어도 음악에서만은 통하는 두 형제는 여섯 누나가 들락날락거리며 무시하는 좁은 방 안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결국 앰프를 찢어서 강렬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그게 바로 킹크스를 알린 최고 히트곡 ‘You Really Got Me’의 대표 리프다. 킹크스의 특징을 단박에 보여주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이 뮤지컬은 킹크스의 색깔을 입고, 초반에 관객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 


자신 있는 무기를 갖췄으니 이제 음반을 제작해줄 회사를 찾을 차례. 킹크스 멤버들은 기존의 매니저 두 명과 함께 제작자를 찾아 런던 음악 산업의 중심지, 덴마크 스트리트로 무작정 향한다. 이때 킹크스의 노래 ‘Denmark Street’가 유용하게 쓰였다. 킹크스를 확실하게 띄워준다고 호언장담하는 매니저들과 제작자들이 딱 자기 노래라며 부르는 노래가 바로 ‘Well Respected Man’이다. 그렇게 드디어 음반 회사와 계약을 했지만, 멤버들 중 데이브가 미성년이라 이번엔 부모님 서명을 받으러 데이브 형제의 집으로 찾아간다. 레이와 데이브의 아버지는 서명을 해주기 전에 고된 일상과 사회생활에 대한 소시민적 불만을 터뜨리는데 이때 ‘Dead End Street’가 사용된다.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전 캐스트가 이 곡에 맞춰 무대를 뒤집어 놓는데 이때 비로소 이 작품이 하나로 단단하게 뭉쳐진다. 이후에도 킹크스의 노래는 적재적소에 사용된다. 킹크스를 대표하는 의상을 고를 때는 ‘Dedicated Follower of Fashion’이 사용되었고, 계약에 성공한 후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전, 레이가 불안을 내비칠 때는 ‘This Time Tomorrow’가 짧게 흘러나왔다. 이처럼 차분한 감정을 담고 있는 서정적인 노래는 이야기 전개에 활용되었고, ‘Till The End of The Day’처럼 록 사운드가 강렬한 노래는 작품 중간에 삽입된 콘서트 장면에 사용되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수많은 매니저들이 호언장담했던 것과 달리 킹크스는 쉽사리 자리를 잡지 못한다. ‘You Really Got Me’를 부드럽게 변형시켜서 녹음하라고 강요하는 프로듀서와 한바탕 다툰 뒤 킹크스는 주류 음악 시장에 반기를 들고 마침내 자신들의 색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덕에 ‘You Really Got Me’가 인기를 얻으면서 킹크스도 스타 반열에 오른다. 




스타가 된 킹크스는 영국 투어에 나서고, 그 길에서 레이는 후에 아내가 될 라사를 만난다. 이때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확인하며 부르는 곡은 ‘The Strange Effect’다. 갑작스런 라사의 임신으로 레이는 결혼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밴드 멤버들과 매니저들의 압박에 레이는 점점 구석으로 몰린다. 이후 킹크스는 미국 투어에 나선다. 하지만 미국에서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노동조합과 지루한 싸움을 하게 되면서 킹크스는 사방에서 밀려오는 금전적 사회적 압박에 부딪치게 된다. 외딴 호텔 방에서 레이 데이비스가 아내에게 전화해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할 때 삽입된 ‘Sitting in My Hotel’과 그 뒤에 이어지는 아내의 답가 ‘I Go to Sleep’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레이 데이비스의 혼란스러운 마음과 고민, 스트레스가 온전히 느껴졌고, 떨어져 있는 두 연인의 애틋한 마음이 짙은 여운을 남겼다. 


미국에서 노동조합과 싸운 끝에 공연을 금지당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레이 데이비스는 우울한 상태로 방에 틀어박혀 며칠을 보낸다. 아무리 작곡을 하고 공연을 해도 매니저들 네 명이 다 10%씩 떼어가는 바람에 돈이 한 푼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 분노하며 ‘Moneygoround’를 부른 레이 데이비스는 결국 회사에 찾아가 계약을 해지하고, 변호사를 찾아 자신의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을 찾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공연 중에 믹과 데이브가 난투극을 벌이면서 밴드에 다시 위기가 찾아오고, 레이는 천방지축인 밴드 멤버들을 보듬기 위해 애쓴다.


킹크스가 밴드 결성 초기부터 겪었던 다양한 사건들을 따라가면서 이 작품은 하나의 의문을 던지려고 노력한다. 셀러브리티라는 위치에도 아랑곳 않고 인기에 취해 자신의 취향대로 여자 옷을 입고 호텔 샹들리에에 매달려 날뛰는 데이브 데이비스의 모습이나, 인기에 연연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스타를 꿈꾸는 레이 데이비스의 모습을 통해 어린 나이에 유명세를 얻은 밴드가 어떻게 그 인기에 대처하는지, 스타가 되면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 생각해보려는 의도가 보인다. 하지만 그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세 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포커스는 거의 레이 데이비스에게만 맞춰져 있다. 다른 캐릭터들의 솔로곡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사생활이 어땠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함께 되새기는 추억

미국 투어 실패에서 회복하고, 새로운 매니지먼트 회사를 찾고, 1966년 ‘Sunny Afternoon’을 히트시킨 후에는 ‘Waterloo Sunset’이나 ‘Lola’ 같은 킹크스의 히트곡 메들리가 이어지면서 공연은 행복한 피날레를 맞이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이후 킹크스가 해체하지 않고 계속 활동했는지, 레이와 라사의 미래는 어떻게 됐는지, 다른 멤버들의 삶은 어땠는지 그런 사실들은 보여주지 않는다. 1960년대부터 50년 가까이 활동해온 레이 데이비스와 밴드 멤버들의 사생활은 영국 관객이라면 누구나 이미 다 알고 있을 사실이기에 굳이 작품에서 다루지 않은 것이다. 그런 것보다는 킹크스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보여주고 그들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작품의 의도였다. 


그런 제작진의 마음에 화답하듯 객석에는 나이 든 관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옛날 밴드를 소재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의 한계는 관객층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젊은 시절에 즐겨 들었던 음악, 좋아했던 밴드가 무대 위에 다시 펼쳐지는 것을 보며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니 애프터눈>의 경우 사건 사고가 많은 편인 킹크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제시했고, 그들의 히트곡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명곡들도 작품을 통해 소개하면서 관객층을 넓혀보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비록 밴드 킹크스는 해체했지만 레이 데이비스가 솔로 활동으로 최근까지 관객을 만나고 있다는 점도 <서니 애프터눈>에 호재로 작용했을 것 같다.


이제는 대세가 되어 작품에 흔하게 등장하는 액터뮤지션들은 여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레이 데이비스 역의 존 대글리시를 비롯해 데이브 데이비스 역의 조지 맥과이어 피트 퀘이프 역의 네드 데링튼, 믹 애버리 역의 애덤 솝, 이 네 명의 킹크스 멤버들은 수준급의 연주와 함께 당시의 킹크스를 멋지게 무대 위에 재현했다. 특히 존 대글리시는 유약한 레이 데이비스의 고민을 잘 표현하면서 은근한 눈빛과 미소로 무대를 이끌어 나갔고, 레이 데이비스의 무대 매너와 노래 스타일까지 완벽하게 되살려냈다. 네 명의 액터 뮤지션들이 펼쳐내는 킹크스의 음악만으로도 <서니 애프터눈>은 볼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흥겨운 커튼콜을 보며 누군가는 자신의 추억을 되새기고, 누군가는 새로 접하는 명곡에 가슴이 설레었을 것이다. 좋은 음악과 따뜻한 이야기가 있는 <서니 애프터눈>은 아름다운 과거로 떠나고 싶어 하는 추억 여행의 바람을 타고 한동안 웨스트엔드를 따뜻한 노란색으로 물들일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6호 2015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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