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남자의 사연
팬텀과 크리스틴이 <오페라의 유령>이 아닌 <팬텀>으로 돌아온다. <오페라의 유령>과 마찬가지로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하는 <팬텀>은 극작가 아서 코핏과 작곡가 모리 예스톤의 제작으로 1991년 미국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후 독일, 캐나다, 호주 투어에서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일본 다카라즈카 공연(2010)으로 전석 매진을 달성하는가 하면, 영국 프리미어(2013)도 성사시키며 또 하나의 팬텀 신화를 쓰고 있다.
<팬텀>은 <오페라의 유령>과 원작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것을 다루는 시각은 상당히 다르다. <오페라의 유령>이 크리스틴을 사이에 둔 팬텀과 라울의 삼각관계를 보여줬다면, <팬텀>은 대부분 팬텀의 인생을 그린다. 바로 이 점에서 <팬텀>은 원작을 충실하게 살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은 처음부터 이름 대신 ‘그’나 ‘유령’으로 불린다.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등장과 함께 ‘완성된 괴물’로 묘사되는 셈이다. 반면 <팬텀>의 팬텀은 ‘에릭’이라는 원래의 이름이 지닌 상징성이 있다. 극은 그가 팬텀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조명하면서 사랑받기를 원했던 ‘가련한 남자’ 에릭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점에서 <팬텀>은 스릴러와 서스펜스가 가미된 판타지 같았던 <오페라의 유령>과 달리,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춘 서정적인 드라마에 가까워진다.
또 <팬텀>은 기존의 인물들 외에 흥미로운 캐릭터와 장면들을 추가해 익히 알려진 원작의 스토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팬텀의 선대 인물들인 제라드 카리에르와 벨라도바의 이야기는 <오페라의 유령>의 프리퀄적 성격을 띤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정통 클래식 발레로 표현한 장면은 <팬텀>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실제 프리마 발레리나가 선보이는 우아하고 고혹적인 발레와 19세기 말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를 재현한 무대는 <오페라의 유령> 못지않은 화려한 비주얼을 기대하게 한다. 팬텀이 감정 상태에 따라 바꿔 쓰는 다양한 가면들도 그의 내면을 극적으로 드러내주는 의미 있는 수단이 된다. 또 모리 예스톤은 특별히 한국 프로덕션만을 위해 작곡한 네 곡의 새로운 뮤지컬 넘버를 추가했다. 이 곡들은 오페레타 스타일의 음악에 일렉트로닉 스타일을 가미한 편곡으로 주요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할 예정이다.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룬 작품인 만큼 이번 초연 무대의 캐스팅도 그런 다채로운 성격을 십분 반영했다. 주인공인 팬텀 역은 뮤지컬 배우 류정한과 보컬리스트 박효신, 그리고 크로스오버 테너 카이가 맡았다. <오페라의 유령>의 초연 캐스트였던 류정한은 <팬텀> 초연에도 참여하며 다시 한 번 존재감을 과시했다. 로맨스보다는 노래 실력이 중요해진 크리스틴 역은 고(古)음악계의 프리마 돈나 임선혜와 소프라노 김순영, 그리고 뮤지컬 배우 임혜영이 연기한다. 두 주요 배역이 트리플 캐스팅인 만큼 조합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전망이다. 이들 외에도 팬텀의 어머니인 벨라도바 역에 프리마 발레리나 김주원과 황혜민이 출연해 클래식 발레의 진면목을 보여주게 된다. 이번 공연의 연출은 EMK뮤지컬컴퍼니와 많은 작품을 함께해 온 로버트 요한슨이 맡았다.
한줄평 카리스마 넘치는 안티 히어로 대신 슬픈 운명의 남자가 보인다.
4월 28일 ~ 7월 26일 충무아트홀 대극장 1577-6478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9호 2015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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