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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그램 머피의 지젤> 안무가 그램 머피 [No.141]

글 | 송준호 사진 | 김수홍 2015-07-14 4,410

당신이 처음 만나는 지젤

로맨틱 발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지젤>은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와 더불어  한국 관객들에게 무척 익숙한 발레 중 하나다. 

그런데 이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  그램 머피의 안무로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연된다. 
31년간 시드니 댄스 컴퍼니 예술감독을 지낸 머피는 <호두까기 인형>을 제정 러시아의 발레리나가  호주로 망명해 죽음을 앞두고 지난날을 회고하는 이야기로 바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 <백조의 호수>는 영국 찰스 왕세자와 정부 카밀라,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삼각관계로  파격적으로 재해석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럼 그의 <지젤>은 어떤 모습일까.  공연을 앞두고 무용수들에게 열정적으로 안무를 지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원작보다 넓어진 머피표 <지젤>의 세계
                       
이번 공연이 초연이고 개막도 얼마 안 남아서 예민하고 긴장된 모습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편안한 모습이다.
정말 급한 상황에서도 항상 이렇게 평온한 상태로 일한다. 왜냐하면 내가 패닉이 되면 그게 주위 사람들에게 금방 전염병처럼 퍼져버리기 때문이다. 혼란 상황에서도 나는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 원래도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이고 굉장히 평온하게 사는 편이다.  


동반자인 자넷 버논 조안무와 계속 눈을 맞춰가면서 의견을 나누며 안무의 큰 그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내가 작품 전체의 큰 그림을 그려 나가는 동안, 자넷은 좀 더 디테일하게 보충할 부분을 다듬는 편이다.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하기 위해서는 일단 앞을 보고 달려가게 되는데, 자넷은 내가 작업한 뒤를 보완하며 완성도를 끌어올리려 노력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무용수들도 눈빛만으로도 움직임을 이해하니까 작업이 즐겁다. 내가 시범을 보여주면서 눈빛으로 말하면 그걸 보고 무용수들이 정확히 이해해서 표현한다. 영어권 컴퍼니와 일을 할 때도 언어 자체에 의존하면 움직임을 이해하기 힘든데, 여기서는 일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오스트레일리아 발레단과 이미 세 편의 인상적인 재해석이 담긴 작품을 만들었다. 이번에 유니버설발레단에게 또 한 번의 리메이크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그동안 자넷과 함께 새로운 스토리로 창작하는 작업을 많이 해왔다.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로미오와 줄리엣>을 제외하면 창작 작업을 더 많이 했다. 이번이 네 번째 리메이크 제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이걸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건가, 아니면 부탁을 받아서 하는 건가’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래도 내가 기존 클래식에 어떤 새로운 점을 덧붙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다른 지젤을 보여준다는 건 기존의 스토리와 다르거나 더 매력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때 떠올랐던 생각과 실제로 변화된 부분들이 궁금하다. 
<지젤>은 내가 오스트레일리아 발레단에 있을 때 처음으로 프로페셔널하게 춤을 췄던 작품이어서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자신의 신분을 속인 남자의 배신에 대한 이야기라 현대적인 성격도 작품에 이미 담겨 있다. 또 클래식 <지젤>은 독일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혼이 다시 와서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는 다분히 동양적인 느낌도 준다. 원작에 충실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긴 여행을 떠나는 느낌으로 만들고 있다. 원작을 새로운 세계로 가져갔다고도 말할 수 있다. 지젤과 알브레히트 외에도 바틸드와 그 아버지까지 춤을 추는 등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댄스 신이 있다. 원작은 1막만 남성 군무가 나오고 2막은 여성 군무 중심인데, 이번에는 남성 군무를 1막, 2막 모두에서 볼 수 있다.


미르타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다루면서 원작의 프리퀄로 설정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원작의 이야기를 확장한 느낌인데, 이처럼 미르타에게 주목한 까닭은 무엇인가?
원작에서는 초점이 지젤에 맞춰져 있다 보니 미르타가 왜 악의 화신이 되었나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이 캐릭터가 입체적인 인물이 되려면 그 사람의 역사를 좀 더 설명해야 했다. 그래서 미르타가 악의 화신이 된 배경에 집중하다가 지젤의 부모 이야기까지 끌어들이게 됐다. 사람이 극단에 치달으면 돌아버리는 순간이 있는데,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지젤 어머니 베르테에게 빼앗겨서 미르타가 그랬던 거다. 언뜻 두 사람이 선과 악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동전의 양면 같은 사람들이다. 무용수들에게도 그런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물이 더 설득력 있고 좋다고 생각했다. 원작에서 미르타는 영혼이라 부드러운 음악을 썼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파워풀한 음악을 쓴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사랑하는 캐릭터다.


원작이 동화 같았다면, 이 작품은 지금의 현실적인 인간관계를 반영한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이 작품은 호러물이다. (웃음)


음악도 원작과의 차이 중 하나다. 기존 음악은 전혀 사용 안 하고 다 창작하는 건가?
기본적으론 처음부터 끝까지 다 바뀐다. 원작 클래식 발레 음악의 느낌을 주는 부분이 두 번 있는데, 지젤이 알브레히트와 처음 만날 때, 바틸드(알브레히트의 약혼자)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약혼반지를 발견할 때다. <지젤>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느낄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얻는 영감과 재능
                       
당신뿐만 아니라 무용수들에게도 이번 작품은 하나의 도전이다. 평생 알아왔던 익숙한 이야기와 캐릭터, 호흡, 움직임을 다 잊고 새로 시작해야 하니까. 잘 따라오고 있나?
신뢰의 문제인 것 같다. 무용수들이 나를 믿는다고 느낄 때, 나도 그들을 좀 더 과감하게 밀어붙이며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다. 춤을 춘다는 건 항상 어려워야 하고 도전적이며 과감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앞을 봐야지 뒤를 보아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무용수는 좋은 연기는 물론, 클래식한 움직임과 컨템퍼러리한 움직임을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무용수들이 나를 믿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면 기분이 좋은데, 지금 실제로 그러고 있어서 만족스럽다.  


영화 <마오의 라스트 댄서>의 안무에도 참여했고, 시드니 댄스 컴퍼니에 있을 때 중국인 무용수와 작업도 많이 해왔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동양의 정서에 익숙해졌을 것 같다.
중국과 일본 등에 내 작품을 가지고 자주 갔는데 그때마다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무용수들 각각의 개성이나 분위기가 독특해 많은 영감을 얻는다. 특히 아시아 무용수들은 좀 더 다른 감성과 태도를 지니고 있어서 작업하는 게 정말 즐겁다. 가끔 아시아 무용수들이 테크닉만 좋고 감정 표현이 약하단 평판이 있는데,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당신이 재해석한 작품들은 많은 발레 팬들을 매료시켰다. 이번 <지젤>도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데, 매번 이렇게 새로운 해석에 도전하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어떤 고전이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있다면 그건 강한 힘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항상 클래식에 경의를 표하지만, 그런 작품도 100년, 200년이 지나면 참신하게 재해석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 예전 음악도 옛날 악기로 연주될 때와 현대 악기로 연주될 때 다른 맛이 느껴지는 것처럼 춤도 마찬가지다. 그 옛날 처음 <백조의 호수>가 공연됐을 때는 다들 놀랐겠지만, 이제는 나의 <백조의 호수>도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이번 <지젤>도 시간이 지나면 클래식이 될 거다. (웃음) 이런 게 이 일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고 낯설게 재창조하는 예술가의 재능은 타고나는 거라고 생각하나.
(잠시 고민) 음,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만 그런 재능이 발현된다고 믿는다. 내 경우에 그것은 커뮤니케이션 능력 같다. 자넷이 무용수일 때부터 그녀를 위해서 작품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많은 도움이 됐다. 


실제 나이(65세)보다 훨씬 더 젊어 보인다. (웃음) 나이와 별개로 이런 창의성이 가능하려면 영감을 계속해서 얻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텐데, 어디서 어떻게 영감을 얻는지?

정말 다양한 색깔의 페인트 상자가 있는 것처럼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영감을 얻고 새로운 작업을 할 동기가 생긴다. 


이제 춤의 장르보다 컨템퍼러리 댄스라는 이름 아래 모든 춤이 하나로 모아지는 것 같은 시대다. 그렇다면 컨템퍼러리 댄스는 뭘 말해야 할까.
모르겠다. (웃음) 나도 그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장르와는 상관없이 정말 특별하게 느껴지고 영감을 준다면 좋은 춤인 것 같다. 지방시, 구찌, 에르메스 등등 브랜드의 종류는 많지만 그런 레이블에 상관없이 좋게 느껴지면 좋은 제품이듯이 말이다.  


영화(<데이브레이커스>), 뮤지컬(<러브 네버 다이즈>), 오페라(<베니스에서의 죽음>) 등 다양한 작업들을 해왔다. 그런 왕성한 활동을 통해서 추구하는 건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건 음악과 움직임의 관계다. 음악을 들으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가 눈에 보인다. 난 정말 춤을, 움직임을 좋아한다! 다른 장르의 안무를 하는 건 그걸 통해 다음 작업에 대한 정보와 느낌, 원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지젤>에서 어떤 성과를 기대하나.
기본적으로 여기서 같이 춤을 췄던 무용수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해서 좋은 아티스트가 된다면 가장 행복할 것 같다. 또 한국, 호주 간의 큰 협업인 만큼 여기서 배운 것들이 호주에 가서도 내가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1호 2015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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