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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김성희 아시아 예술극장 예술감독 [No.144]

글 | 송준호 사진제공 | 아시아예술극장 사무국 2015-09-23 4,290

이제는 아시아가 서로를 바라볼 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9월에 광주에서 드디어 개관한다.  수도권에 편중된 문화 예술의 균형 발전을 위해 10년 이상 추진해 온 노력의 결실이다. 
이 중 예술극장을 기획 총괄하는 김성희 예술감독은 차이밍량,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프리 라이젠 등  한데 모으기 어려운 각국의 거장들을 모아 아시아 예술의 현재와 비전을 확인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에게 극장과 아시아의 동시대 예술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아시아 예술의 허브를 위한 첫걸음
       
2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개관을 앞두고 있다. 유독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아시아에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이 일의 중요성을 점점 더 크게 느꼈다. 내 역할은 그동안 해온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시아가 아시아를 바라보고 우리 스스로 담론도 만들면서 작품을 제작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이 기회가 고맙다.


예술감독 취임 당시와 지금,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콘텐츠는 처음에 비전을 그렸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방법론, 시스템, 아티스트의 퀄리티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걸 제외한 조직 구성은 끝없이 계속 변하고 있다. 지금 개관이 2주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조직이 해체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어쨌든 나는 콘텐츠 메이커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처음의 비전과 세부 프로그램들을 지켜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목표한 걸 실현시키는 것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나름대로 잘 해낸 것 같다.  


당시 서구의 모방에서 벗어나 아시아적 가치를 표현하는 데 방향성을 잡겠다고 했다. ‘아시아적 가치’는 다소 추상적인 말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지난 근대에 서구인들이 설정한 기준에서는 서구가 세계의 중심이고 그 외는 다 야만이었다. ‘아시아’라는 것도 자기들의 판타지 안에 있는 것이었다. 이런 서구적 시각에서의 아시아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아시아에 대해서 스스로 비평적으로 바라보고 얘기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한 아시아의 동시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극장 운영의 큰 그림을 그리고 세부 프로그램들을 꾸렸다. 어떤 과정을 거쳤나.
비전과 프로그램은 사실 한 몸이다. 이 극장은 제작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동시대 예술의 허브 또는 창이 되는 게 목적이고 비전이다. 그런데 지금 아시아 작가들은 국립 단체의 지원을 제외하면 제작할 기회가 없다. 일단 만들어놓은 작업들도 2~3회 공연하고 나면 사라진다. 장기간 공연하면서 생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순환 구조가 없다. 아시아 작가들이 성공하고 나면 다 유럽을 바라보는 이유다. 해외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아야만 인정을 해주니까. 그래서 아시아가 마주 보고 얘기하면서 공유할 수 있는 공동 제작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우선이었다. 각국 단체가 투자해 제작한 후 이 작품이 투자한 곳들을 돌며 공연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페스티벌 기간에 선보이는 33편 중 16편이 이런 시스템으로 제작한 것이다. 


진행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생각보다 일이 굉장히 쉽게 진행됐다. 아시아 곳곳에 이런 프로그램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구도 나서지 않던 상황에서 우리가 깃발을 들어주니까 짧은 시간에 일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반면 국내에서는 ‘한국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광주가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라는 요구가 많아서 난감했다. 우리가 아시아의 허브가 되겠다는 건 우리의 바람이지, 결국 남들이 인정을 해주지 않으면 되기 어렵다. 아시아에서 그런 평가를 듣기 위해서는 우리가 중심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다 같이 잔치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형님 마인드’를 보일 때 아시아 중심으로서의 한국의 위상이 생길 것이다.  


그런 철학의 차이 때문이랄까. 준비 기간에 이런저런 외부의 압력과 갈등도 있었을 듯싶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원래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굳이 기관에 들어온 이유는 여기서 하고 싶은 게 있어서다. 새로운 기관에서 새로운 비전과 시스템을 만들고 국제적으로 예술적 결과물을 얻는 경험은 굉장한 축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감수하고 타협할 건 타협해야 했다. 하지만 다른 건 다 타협하더라도 물러나지 않았던 게 비전과 아티스틱한 부분들이었다. 


축제와 시즌으로 구분해 프로그램을 구성했는데, 벤치마킹한 모델이 있었나.
축제나 시즌 프로그램이라는 포맷은 사실 특별한 건 아니다. 이미 웬만한 해외 제작 극장은 당연히 갖추고 있는 기본적인 구조다. 하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콘텐츠나 비전은 다 고유의 가치가 있어야지 다른 걸 따라 하면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가령 우리가 ‘작은 아비뇽 페스티벌’을 만들었다면 유럽인들이 왜 아시아의 동시대 예술을 우리 극장에서 찾겠나. 싱가폴이나 일본에도 중요한 페스티벌이 많은데 차별성을 띠지 않으면 이곳에 올 필요가 없다. 결국 비전과 관점이 독특하고 흥미로울수록 관심받는 단체가 되고,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  




인식의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시아 예술극장의 역할을 ‘아시아 동시대 예술의 허브’라고 정의했는데, 사실 이건 굉장히 어려운 말이다. 그동안 컨템퍼러리 예술 담론이 ‘우리가 본 서구’에 있었다면, 이 극장은 동시대의 아시아를 바라보자는 건데 이는 오히려 ‘서구 보기’보다 낯선 경험이 될 듯싶다. 
맞다. 당연히 낯설 것이다. 우리는 아시아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서양보다 더 멀리 있는 게 아시아다. 지금 사람들은 히잡만 쓰면 IS이고 무슬림이 적인 것처럼 인식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 복잡한 맥락을 이해하는 건 당연히 쉽지 않고, 그 과정을 쉽게 극복할 생각도 없다. 그래서 교육의 기능이 중요하다. 세상이 단순하지 않다는 걸 얘기하는 장소가 바로 극장이다. 우리가 얘기하는 극장이나 페스티벌은 단순히 공연을 보는 데가 아니라 공연을 통해 아고라가 만들어지는 장소다. 작가와의 대화를 마련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공연은 트리거일 뿐이고, 그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나아가 사회를 바꿀 수 있게 된다.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이자 극장의 역할이다. 


전당 본래의 존재 이유와 대중성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광주라는 지역에 대한 혜택 요구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해법이 있을까.  
당장 이해하기 쉽고 즐겁고 오락적인 것을 처방하는 게 광주 시민들을 위하는 건 아닌 듯싶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건 결국 이 지역 사람들이 누구보다도 동시대 예술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서울이나 아시아 각국에서 컨템퍼러리 아트를 이해하려면 광주를 떠올릴 수 있도록 이곳 사람들이 그걸 주도하는 게 이상적인 그림이다. 장기적으로는 여기에서 나오는 많은 프로그램을 충분히 누리고, 그걸로 다음 세대들이 현대 예술을 리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그들에게 더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페스티벌 봄 예술감독 재직 시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거장과 비주류 예술을 함께 조명하는 거였는데, 이런 성격이 이번 프로그램에서도 보이는 것 같다. 
나는 그게 좋다. 사실 내가 가장 관심있는 건 알려지지 않은 젊은 예술가다. 그 사람들이 지닌 비전이 무척 흥미로워서, 그걸 세상에 내놓고 싶어서 이제까지 이 일을 해온 거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을 거장 옆에 놓으면 그들의 가치가 보석처럼 빛난다. 물론 실력이 없으면 안 되겠지. (웃음)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와 거장의 만남은 사회가 만든 기존 구획 안에서 재배치되면서 다른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런 걸 기획하는 일은 항상 흥미롭다. 


그동안 각국의 아티스트들과 일종의 동료의식도 생기고 아시아적 시각이 확립됐을 것 같다. 아시아를 하나의 공동체로 본다면, 아시아 예술에서 가장 시급한 사안이 뭐라고 생각하나.
이제 아시아는 스스로 얘기를 할 때가 됐다. 그러려면 자기 위치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이것만이 아시아’라고 얘기하면서 그 안에만 머무는 것도 위험하고, 반대로 바깥으로만 가는 건 더 위험하다. 세상을 다양하게 보면서 계속해서 우리 위치를 재설정하는 지점에서 동시대적인 아시아, 국제적 수준의 아시아가 형성될 것이다. 그래서 아시아의 동시대에 대한 관점을 다른 방식으로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 이제 이런 기관이 생겼으니 서구인들이 설정해 놓은 셀프 오리엔탈리즘의 덫에서 벗어나 ‘우리는 이런 얘기를 한다, 너희가 알아듣든 말든’ 하는 배짱과 자신감으로 자기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양질의 프로그램들이 있어도 아무래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역의 한계가 있다.
그 말대로 양질의 프로젝트는 더 많은 인구가 있는 곳에서 진행돼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광주는 공장 역할을 하고 거기서 만들어진 건 일차적으로 지역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지만, 나아가서는 서울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은 정책이나 감사 같은 이유 때문인지 기본적으로 공동 작업하는 마인드나 시스템이 안 돼 있는 게 너무 아쉽다. 지금으로서는 단체 간의 컬래버레이션이 하나의 대안이 될 것 같다. 


개관 이후에는 참신한 프로그램 개발과 일정한 퀄리티의 유지가 관건이 될 텐데, 벌써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아시아예술극장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현재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다. 나머지는 시간이 만들어주는 거다. 내 역할은 개관 프로그래밍만 하는 게 아니라 아시아예술극장의 비전을 설정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 결과물로 페스티벌과 시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거였다. 그런데 한국의 아쉬운 점은 만날 새로운 걸 좋아하는 거다. (웃음) 3년의 임기가 끝나면 새로운 사람이 와서 또 비전을 바꾸고 시스템을 고치느라 3년이 지날지 모른다. 그렇게 비전을 매번 다시 세팅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하나의 비전에 10년 이상 약속이 꾸준히 지켜질 때 그 단체의 브랜드가 조금씩 형성되는 것이다. 아비뇽 페스티벌도 30년에서 60년에 걸쳐 약속을 지키면서 현재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 자체가 10년 이상 엄청난 세금을 투자해서 여기까지 온 만큼, 실효성을 갖기까지 흔들지 말고 일단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4호 2015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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