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음악으로 탄생시킨 인간적인 영웅 이야기
알렉산더 해밀턴은 10달러 지폐에 얼굴이 찍혀있는 미국 금융 산업의 기초를 닦은 중요한 인물이다. 하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인물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맥락이 워낙 달라서 해밀턴과 비교할 만한 대한민국의 건국 초기 인물을 꼽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굳이 예시를 들자면 장면이나 윤보선 같은, 역사책에 이름은 등장하지만 그들의 얘기가 대중문화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진 적이 없는 그런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해밀턴>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2008년 <인 더 하이츠>를 통해 성공적으로 브로드웨이에 이름을 올린 린 마누엘 미란다가 알렉산더 해밀턴을 소재로 신작을 구상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진 것은 2009년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워싱턴의 각료들 앞에서 초청 공연을 할 때였다. 당시 린 마누엘 미란다는 미국 내 남미계 이민자를 대표하는 목소리를 내주길 기대하며 초청되었고, <인 더 하이츠>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았던 시점이기에 백악관 관계자들이 <인 더 하이츠>에 나왔던 뮤지컬 넘버를 한 곡 불러달라고 언지를 주었는데, 예상을 깨고 새로운 노래를 한 곡 준비해 왔다며 부른 곡이 뮤지컬 <해밀턴>의 제일 첫 곡으로 쓰이는 ‘알렉산더 해밀턴’이었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이유라며 덧붙인 말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 할 말은 하고 살았던 해밀턴의 삶에 힙합만큼 어울리는 음악이 없다는 것이었다. 맛보기로 보여준 이 공연은 백악관 관객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고 신작에 대해 사람들의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2013년 여름, 몇 년간의 개발 과정을 거친 <해밀턴>은 뉴욕의 바사대학교(뉴욕의 많은 공연들은 상업 공연을 올리기 전 바사대학교에서 신작 발표 형식의 리딩/워크숍 공연을 연다)에서 리딩 공연을 올린 후 2014년 겨울 사람들의 기대 속에 오프브로드웨이의 퍼블릭 시어터에서 선보였다. 퍼블릭 시어터 공연은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연장 공연까지 전회 매진돼 막을 내리기도 전에 브로드웨이행이 결정됐다. 퍼블릭 시어터 공연을 마무리 짓고 두 달 정도의 휴식기를 거친 후 지난 7월 리처드 로저스 극장에 올라간 <해밀턴>은 인기 공연 <펀 홈>과 <북 오브 몰몬>을 제치고 8월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티켓을 구하기 가장 어려운 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게다가 지난 8월 6일 정식 공연 오픈 후 “이제 그만 얘기하고 싶은데 안 할 수가 없다”며 리뷰를 쓴 <뉴욕 타임스>의 벤 브랜틀리의 말처럼, <해밀턴>은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당시의 극찬을 뛰어넘어 이제 막 시작하는 2015-2016 시즌의 가장 뜨거운 공연으로 일찌감치 입지를 굳히고 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데?
소재와 장르적인 유사성으로 <해밀턴>과 함께 언급되는 작품은 힙합계의 전설 투팍 샤쿠르의 음악을 가지고 야심차게 만든 힙합 뮤지컬 <홀러 이프 야 히어 미>와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을 소재로 한 록 뮤지컬 <블러디 블러디 앤드루 잭슨(Bloody Bloody Andrew Jackson)>이다. 지난 2월 개막한 <홀러 이프 야 히어 미>는 대본의 짜임새에 대한 혹평과 함께 6주 만에 막을 내렸고, 오프브로드웨이에서 호평받으며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블러디 블러디 앤드루 잭슨>은 브로드웨이에서 관객을 찾지 못하고 3개월 만에 막을 내려, 두 작품의 핵심 요소를 담고 있는 <해밀턴>의 흥행을 의심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얘기하자면, 린 마누엘 미란다는 분명히 달랐다.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이민자 알렉산더 해밀턴이 어떻게 젊은 나이에 미합중국의 초대 재무장관이 되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그리고 18세기 말 미합중국이 어떻게 세워졌는지에 대해 힙합과 팝, 그리고 뮤지컬 음악까지,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을 통해 알기 쉽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 나고 재미있게 극을 풀어냈기 때문이다. 한동안 신 나고 재미있는 뮤지컬의 가뭄에 빠져있던 브로드웨이에(극찬받은 <펀 홈> 역시 재밌는 뮤지컬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해밀턴>이 주는 에너지는 상대적으로도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독립운동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조지 3세가 “나의 공연을 즐기도록 하라”며 공연의 시작을 알리면, 무대에 에런 버(Aaron Burr Jr.)가 나와 알렉산더 해밀턴을 소개한다. 캐리비언 작은 마을의 가난한 집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해밀턴이 어떻게 미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소개하는 첫 곡이 끝날 때쯤 해밀턴이 등장한다. 그렇게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해밀턴은 ‘자기에게 찾아온 기회는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새로 만난 친구들과 뉴욕에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해밀턴은 파티에 갔다가 스카일러 가의 세 자매 중 첫째 딸인 안젤리카와 둘째 딸 엘라이자를 만나는데, 자신과 비슷한 안젤리카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집안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그녀와 이어지지 못하고 해밀턴에게 첫눈에 반한 엘라이자와 결혼한다. 조지 워싱턴의 총애를 받는 해밀턴은 미국의 독립전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기여하고, 미국의 헌법을 제정하는 데 일조한다.
2막에서는 신생 국가 미국의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하는 해밀턴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알렉산더 해밀턴과 토마스 제퍼슨이 그들의 정치적인 이견을 랩 배틀로 풀어내는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해밀턴은 미합중국 연방 경제의 기초를 닦았고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이 미국의 3대 대통령이 되는 데 일조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적인 꿈이 좌절된 에런 버와의 결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공연은 그보다 50년을 더 살아간 해밀턴의 아내 엘라이자가 어떻게 해밀턴의 업적을 이어 나가는지에 대해 노래하는 것으로 끝난다.
해밀턴의 삶을 들여다보면 왜 린 마누엘 미란다가 작품의 주인공으로 알렉산더 해밀턴을 선택했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관객의 눈을 바로 보며 자기의 이름 ‘알렉산더 해밀턴’을 무게감 있게 공표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첫 노래의 가사처럼, 공연 내내 거침없고, 도전적이고, 신념을 굽히지 않는 모습은 뮤지컬의 주인공으로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불륜 스캔들에 휩싸였을 때도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와 아내와의 관계를 위해 대중에게 먼저 자신의 잘못을 밝히고 사죄를 구하는 모습이나, 그런 자신이 조롱받는 것에 분노한 아들이 결투 끝에 죽음을 맞이하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상처받는 인간적인 영웅의 이야기는 긍정적인 미국인의 정서에 잘 맞아떨어진다. 무엇보다도, 일반적으로 별다른 고찰 없이 ‘백인 기득권층’으로 여겨지는 건국의 아버지들을 유색 인종 배우들과 힙합이라는 음악으로 그려냈다는 점과, 미국의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유색 인종의 이민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노력을 했다는 데에서 이 작품은 더 큰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인 문법에 더해진 새로움
힙합이라는 장르가 품고 있는 불안정한 젊음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생각하면 이제 막 태동하는 미국과 그 중심에서 젊음을 불태웠던 해밀턴이라는 인물이 힙합과 어울리는 면이 있지만, 사실 18세기 말을 살았던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를 힙합, 특히 랩으로 풀어내는 것은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선택이 아니긴 하다. 린 마누엘 미란다가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말했듯이 그에게 <해밀턴>과 힙합의 유사성은 성품이나 배경뿐 아니라 쉬지 않고 글을 써서 자신의 뜻을 표현했던 데서도 발견된다. 펜을 무기로 삼아서 그들의 전투를 펼치는 랩퍼처럼, 해밀턴 역시 신문 지면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전투를 펼쳤던 것이다. 게다가 힙합과 랩은 재미를 위한 도구라기보다 드라마적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앞서 말한 정치 랩 배틀뿐 아니라, 정치적인 대결 구도라든지 긴장감이 조성되는 장면마다 랩이 들어가 긴장감을 더 극대화시킨다. 힙합 라임의 구성과 퍼포먼스가 더해져 일반적인 노래로 부르는 뮤지컬 넘버의 가사보다 랩 가사의 가청성이 더 좋았던 것도 브로드웨이의 다양한 관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Going Back to Cali’나 ‘Party Up’, ‘Ten Crack Commandments’ 등 힙합의 고전을 비트에 맞게 리믹스해서 미국의 역사뿐 아니라 힙합의 역사도 아우르며 음악과 내용의 유기성을 증대시킨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하지만 <해밀턴>을 ‘힙합 뮤지컬’이라고 말하기에는 이 작품에서 사용된 음악은 훨씬 더 다양하다. 힙합의 고전을 피처링했을 뿐 아니라,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남태평양>에서 나온 ‘You’ve Got to Be Carefully Taught’, 제임스 로버트 브라운이 쓴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의 ‘Nobody Needs to Know’, 길버트와 설리번의 오페레타 <펜잔스의 해적들>에 나오는 ‘Modern Major General’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뮤지컬 넘버들도 피처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 3세의 노래는 힙합과 대비되는 가벼운 브릿팝 풍이고, 남편의 부정을 알게 된 엘라이자가 남편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태우면서 부르는 ‘Burn’은 멜로디가 풍부한 발라드 곡이다. 퍼블릭 시어터 공연 마케팅부터 ‘힙합 뮤지컬’이라고 명시하지 않을 것을 염두에 두었다는 대목이 충분히 이해가는 이유는 <해밀턴>은 힙합 뮤지컬이라는 뮤지컬의 하위 범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전통적인 뮤지컬 문법을 정확하게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린 마누엘 미란다의 음악과 글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인 더 하이츠> 때부터 함께해 온 앤디 블랭큰뷰엘러의 안무와 토마스 카일의 연출, 그리고 음악감독 알렉스 래카모어의 작업인데, 특히 비보잉과 소위 말하는 파워 힙합 무브먼트가 적절히 섞인 안무는 작품 곳곳에서 긴장감과 에너지를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인 더 하이츠>에서 그랬던 것처럼 린 마누엘 미란다가 주인공 해밀턴으로 무대에 서는데, 필자가 보러 간 날은 언더스터디가 공연하는 날이라 아쉬웠지만, 그 아쉬움을 상쇄할 정도로 배우의 앙상블이 매우 좋았다. 역할 자체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스카일러 자매 중 안젤리카와 엘라이자를 맡은 르네 엘리스 골즈베리와 필리파 수, 카메오같이 등장하는 조지 3세를 맡은 조나단 그로프의 연기가 특히 빛난다. 하웰 빙클리의 조명과 데이빗 코린스가 만들어낸 이중 회전무대는 무대전환 없이 소도구만을 활용해 장면이 전환되는데, 이때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의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때로는 전율을, 때로는 웃음을 자아낸다. 움직임과 음악, 그리고 언어가 현대적이었다면, 18세기의 창고를 연상시키는 무대와 당시의 복장을 재구성한 의상은 현대적인 사운드와 대비되는 고전적인 비주얼을 보여줘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해밀턴>이 인정받는 가장 큰 이유는 종합예술로 여겨지는 뮤지컬의 여러 요소들이 제대로 잘 엮여 두 시간 반 동안 완벽한 환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물론 <해밀턴>에 비판할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인 더 하이츠>에서 그랬듯 <해밀턴>에서도 여자 캐릭터는 남자 캐릭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인물에 지나지 않다는 것은 린 마누엘 미란다가 앞으로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 또한 미국 내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유색 인종을 내세워 백인으로 기억되는 건국의 아버지를 연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후 몇백 년간 계속되고 있는 백인우월주의적인 시스템을 만든 역사적인 주체를 바꿔놓는 결과를 야기하기도 했다. 미국 내에서 이 작품과 린 마누엘 미란다라는 창작자가 지닌 정치적 함의를 생각할 때 작품이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고 웃어 넘기기가 쉽지 않다.
‘틴 팬 앨리(전문적인 대중음악 작곡가)’의 뮤지컬 음악이 20세기 초 미국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퍼져 나간 장르라면, 힙합 음악은 20세기 말의 그곳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진 장르이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전통적으로 백인들의 공헌을 기려왔다면 21세기 현재 그곳은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섞여 살고 있는 나라이다. 그중에서도 뉴욕은 유색인종의 숫자가 스스로 ‘백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넘어선 도시다. 그렇기에 뮤지컬 업계에서 <해밀턴>이 극찬받는 것도 이해는 간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돌연변이가 아니라 지금까지 있었던 전통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창작자들은 <해밀턴>에 대해 “마치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라고 평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해밀턴>은 분명 여태까지 봐왔던 뮤지컬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새로운 시도에 집착해 관객을 놓치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해밀턴>의 성공이 한국 창작뮤지컬계에 시사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 아닌가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4호 2015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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