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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불역쾌재> 작·연출가 장우재 [No.157]

글 |나윤정 사진 |심주호 2016-10-12 4,769


<불역쾌재> 작·연출가 장우재

뒤집으면 보이는 것들



최근 연극계에서 작가이자 연출가 장우재가 보여준 존재감은 돋보였다. 2013년 <여기가 집이다>를 기점으로 <환도열차>, <미국아버지>, <햇빛샤워>로 이어진 그의 작품들은 부조리한 세상을 거울처럼 비추며 깊은 인상을 남겼고 다시금 그의 이름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극단 이와삼을 이끌며 타고난 이야기꾼의 재기를 보여주고 있는 장우재. 그간의 무대들은 자연스레 그의 신작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란

의미를 담고 있는 제목의 신작 <불역쾌재>. 조선 시대의 기행문 『관동만유』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 작품에서 그가 펼칠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뒤집음의 이유

                    

<불역쾌재>! 이번 작품 역시 제목부터 눈길을 끌어요. 보통 제목을 먼저 떠올리고 작업을 시작한다고 들었는데, 이 작품도 그랬나요?

맞습니다. <햇빛샤워>나 <미국아버지> 등 최근 제 작품들이 다 어둡고 아픈 이야기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작업하면서 제 마음도 힘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관동만유』라는 한문 수필을 보게 됐죠. 조선 시대 문인 성현이 쓴 기행문인데, 두 대감이 껄껄대며 관동 지방을 여행 다니는 내용이에요. 웃으면서 재밌게 읽었어요. 참 휴식 같더라고요. 나도 이런 글을 써보면 좋을 텐데 생각만 하고 있었죠. 그런데 의문이 들었어요. 두 대감의 여행담일 뿐인데, 이걸 왜 소중하게 남겨놓은 걸까? 여행을 떠나야 했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어떤 심각한 사건을 역설적으로 밝게 표현한 게 아닐까? 그러다 정약용 선생의 「불역쾌재행」이란 시를 읽게 됐어요. 딱 이 느낌이 들더라고요. 찾아봤더니 ‘불역쾌재’라는 말이 중국 문인 김성탄의 시에서 나왔는데,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더라고요. 이걸 제목으로 달면 작품을 쓸 수 있겠더라고요.


작품의 배경은 조선 시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의 상황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는 듯해요. 특히 어떤 점을 잇고 싶었나요?

요즘 사람들을 보면, 참 많이들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밝은 것을 좋아하고요. 노는 것에 더 감흥을 느끼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근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마음이나 세상이 어둡기 때문에 역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어두운 세상을 뒤집어 보고 싶은 마음인 거죠. 조선 시대 이야기지만, 이 마음의 뒤집음이 현대와 흡사하다고 봐요. 이런 면에서 동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겠죠.


<불역쾌재>는 어두운 세상을 뒤집어 밝게 보려는 마음에 관한 작품이라 설명했는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사실 그냥 밝은 건 많잖아요. 그런데 이유가 있는 밝음이랄까요? 그 밝음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이야기예요. 단순히 ‘즐거운 이야기야’라기보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밝음을 한번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보자는 것이죠. 무엇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어둠과 밝음을 뒤집어서 공유할 수 있는 삶을 생각해 보고 싶어요. 어둠을 뒤집어 밝음을 보는 방법을 다 같이 찾아봅시다!


이 작품은 겉은 밝은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행간마다 의미가 느껴져요. 어쩌면 어두운 분위기의 전작들보다 더 쓰기 어려웠겠다 싶어요.

더 힘들었죠. 어두움을 뒤집어 밝게 본다는 것! 사실 이건 연륜이거든요. 삶을 바라보는 연륜에서 나오는 태도죠. 게다가 작품에 등장하는 두 대감, 기지와 경숙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학자이면서도 사상가거든요. 이들의 말을 어렵게 쓰지 않고, 내 말처럼 일상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어려운 뜻을 담고 있지만, 이를 쉬운 말로 풀어내야 하거든요. 내가 학식이 참 짧구나 싶었죠.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특별히 참고했던 자료가 있었나요?

『관동만유』와 「불역쾌재행」을 참고한 것 외에 작품으로 끌어들인 문헌이나 인용이 몇 개 있어요. 명나라 말기의 양명학자 이탁오의 『분서』라는 책을 인용했고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기도 했죠. 또 특이할 만한 게 하나 있어요. 제가 방준석, 백현진 씨가 결성한 그룹 방백을 좋아하거든요. 최근 앨범 중 ‘어둠’이란 곡의 가사를 인용했어요. 방백은 굉장히 유니버설하고 모던한 작업을 하거든요. 그런 만큼 이 작품의 결과 잘 맞겠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작품에 모던한 감각이 들어오는 게 설레요.




어둠과 밝음의 공존

                     

무대 연출도 궁금해요. 과거의 이야기지만, 그 배경을 사실적으로만 표현할 것 같진 않아요. 어떤 방향을 염두에 두고 있나요?

단순히 재현하는 방식은 아니에요. 무언가를 빌려서 현대적인 걸 표현하려고 해요. 그중 가장 중요한 건 배우죠. 제가 연출적으로 화려한 볼거리를 넣는 방식에는 능력이 없다보니, 이번에도 역시 이야기와 배우에 집중하려고 해요. 다만 전작들과 차이가 있다면 끌어온 이야기에 여백이 많다는 거예요. 해석의 여지가 있는 틈들이 벌어져 있는데, 이런 부분을 관객들이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주장하고 싶은 점은,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감각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감각을 회복해 보자는 거예요. 이를 여백이란 방식으로 제안하는 거죠.


풍류를 즐기는 호인 경숙과 실용 학문의 대가 기지, 이들은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찾아오라는 어명을 받고 금강산으로 여정을 떠나요. 이 상반된 인물들을 통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었나요?

둘 다 각자의 분야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죠. 경숙은 예술가적인 태도가 있고, 기지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에요. 그런데 결국 이들은 서로를 알아봐요. 자기 것을 버리고 상대의 것을 재발견해 주죠. 서로의 마음이 전이되었다고 할까요. 이런 행위가 바로 현대인들이 놓치고 있는 ‘공존’이예요. 기지와 경숙의 관계는 공존이란 감각에 대한 직접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해요.


두 스승 경숙과 기지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젊은 왕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에요. 왕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현대인들은 많이 놀고 싶어 하잖아요. 이는 가슴 안에 해소되지 않은 답답함이 있기 때문이에요. 특히 젊은 세대들이 그렇죠. 이걸 직접적으로 표현한 인물이 바로 왕이에요. 이 연극의 등장인물을 구세대와 신세대로 나눴을 때, 젊은 세대의 선두에 서 있는 인물이 왕이에요. 왕이야말로 할 일이 태산이잖아요. 마음속에 있는 슬픔을 뒤집어 백성들에게 나누고 싶은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요. 왕의 이러한 성향이 지금 현대의 관객과 만나는 지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젊은이들이 느끼는 어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역설적으로 더 많은 가능성이 사람을 옥죄는 현상. 스스로를 더 최적화해야 하는 상황. 이걸 지금 젊은이들이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신자유주의의 명암의 암이 이 시대의 어둠인 셈이죠.


이런 시대의 어둠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 계기가 있나요?

현대 사회에서 제일 싫은 것 중 하나가 업그레이드예요. 저는 이 휴대전화를 오 년 넘게도 쓸 수 있거든요. 그런데 몇 달에 한 번씩 계속 업그레이드를 하라는 거예요.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앞으로 가다가 어느 순간 멈추고, 그 안에서 다시 삶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세상이 자꾸 욕망을 자극하는 거죠. 정말 힘들어요. 그러던 중 최근에 한병철 교수의 『심리정치』, 『에로스의 종말』 등을 읽으면서 전체적인 생각을 정리하게 됐어요. 지금 철학적으로 제게 가장 영향을 끼치고 있는 글이죠.




앞으로 나아가는 힘

                     

2013년 <여기가 집이다>를 시작으로 ‘장우재가 돌아왔다’는 말을 들으며, 다시금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죠. <환도열차>, <미국아버지>, <햇빛샤워> 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인상적인 무대를 보여주었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그간 산맥같이 작업을 했던 분들이 지금 활동을 많이 안 하셔서 그래요. 그러다 보니 제가 그냥 보이게 된 것이라 생각해요. 제가 계속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작업을 계속하게 된 계기는 있어요. 옛날엔 정말 유명해지고 싶고 성공하고 싶어서 작업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안 된다는 걸 알아버렸어요. 그 이후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죠. 대신 있는 것을 소담한 그릇에 담아내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냥 되는대로 조금씩 조금씩 내놓아야지. 그게 제 한계이고, 깜냥인 거 같더라고요.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한 거죠.


한 인터뷰에서 ‘연극을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바로 질문을 던지는 거였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이 말을 듣고 궁금했어요. 그간의 작품 중 스스로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 것은 무엇이었어요?

음…. <불역쾌재>였던 것 같아요. 마음속에 계속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세상은 어둠이 있어. 세상은 힘들어. 세상은 내가 상대에게 준 만큼 되돌아오지 않아. 그래 좋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어둠에 다시 들어가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들에 다시 마음을 열게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이 계속 숙제였어요. ‘이걸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흔히 말하는 ‘사랑’이 아닌 뭔가 인간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는 말이 있을 텐데 그게 뭘까? <불역쾌재>에서 기지와 경숙이 넘어갔던 그 턱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이런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거예요.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도 전작들의 정서와 연결되는 고리들이 발견돼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제 작품에 계속 따라붙는 게 있어요. 삶을 바라보는 역설적인 시선이죠. 부조리한 세상, 역설, 이게 다 뒤집는다는 거잖아요.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죠. 이런 점은 오태석 선생님을 비롯해 연극하는 선배님들에게 영향을 받은 거예요. 또 옆에서 보기에 제가 비약을 많이 한대요. 그런 비약 또한 이 작품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비약 사이를 이야기로 채우는 방식도 다름이 없죠.


사실 역설이라는 게 말처럼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기질이겠죠. 가끔 연극을 왜 하느냐고 누가 물어봐요.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다들 똑같이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고, 삶의 초점이 계속 먹고사는 문제에 맞춰 있잖아요. 한 번이라도 증명해 보고 싶었어요. 먹고사는 문제 말고도, 삶에서 중요한 게 있다는 걸요. 그래서 연극이란 걸 하게 됐어요.


지금 가장 주목하고 있는 소재는 뭐예요?

신자유주의가 빚어낸 현대 젊은이들의 어둠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이에 모티프를 얻어 극단 이와삼의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가제이긴 한데, <내가 자유가 싫을 때>란 작품이죠. 정확하게는 ‘내가 신자유주의가 싫을 때’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자유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 않잖아요. 이런 사회적 고민을 내년에 무대화하려고요. 드라마틱한 재현보다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것들을 낱낱이 묶어보는 작업을 해보려고 해요. 그다음은 3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어요. 10년 내에 3차 산업혁명이 오는데, 그때 없어지는 직업들이 많이 생길 거란 예견이 많죠. 혁명이 갑자기 일어나면 사람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거기에 적응해야 해요. 그럼 마음이 많이 힘들어요. 그런 만큼 예술가로서 3차 산업혁명을 예술적으로 한 번 겪어보고. 그 시대를 맞아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죠.


직접 극을 쓰고 연출을 맡다 보니, 작품을 위한 취재도 남다르게 하는 듯해요.

<미국아버지>의 경우 결말을 다 써놓고 취재차 미국에 갔다가 결말을 새롭게 바꿔버렸어요. 실제로 극 중 주인공의 모델이 된 인물은 죽지 않고, 살아서 사회 운동을 하며 지내거든요. 초고도 이렇게 썼는데, 취재 후 결국 그가 죽는 것으로 결말을 바꿨죠. 그 이유는 ‘이것은 연극이다’라는 걸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이는 연극에서 죽음일 뿐이고, 실제 그 사람은 살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그런 변화를 주었죠. 보통 저는 대충 초고를 써놓은 다음 취재를 가요. 그렇게 해야 대상에 의도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그냥 만날 수 있거든요. 절대 현실에 안 속으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실제 현실이 이렇듯 영향을 주면, 극이 크게 바뀌는 것 같아요.


공연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생긴 변화도 있나요?

<햇빛샤워>를 공연하면서 작업 과정에 변화가 생겼어요. 배우들과 연극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조금 변했죠. 사실 제 희곡은 편집이 많아요. 배우 입장에선 연기하기 힘들죠. 그래서 배우들과 연습할 때 방법론을 바꿨어요. 가장 큰 변화가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서브 텍스트를 쓰게 됐다는 거예요.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사실까지 모두 써서 각 역할의 배우들에게 줘요. 그러면 배우들은 그만큼 열리거든요. 지금도 이런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창작자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느껴지네요. 지금 창작자를 꿈꾸는 예비 연극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작가는 결국 하나의 세계관을 지닌 사람인 것 같아요. 극작술만큼이나 내가 이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해요. 작가라고 하면 보통 작법에만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역사나 철학 등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하고, 세상을 향한 질문들도 함께 더해져야 해요. 나이를 먹기 전에요. 나중에 오염될 수 있거든요. 글을 쓰는 테크닉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을 때, 그다음 단계에서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이 있잖아요. 우리는 매력적인 세계관을 지닌 작가를 기다리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7호 2016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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