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은 한국 사회 전반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공연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그동안 공연 제작사가 후원 기업과 언론 등을 상대로 초대권을 제공해오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공연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업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영란법이 유독 공연계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란법과 관련해 현재 공연계에서 오가는 논의와 쟁점을 짚어보았다.
사라지는 기업 후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국내 공연계의 허약한 제작 구조 때문이다. 관객층이 좁은 국내 공연 시장에서는 유료 티켓 판매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힘들다. 그래서 공연 제작사들은 부족한 수익과 제작비를 기업 후원으로 충당한다. 그 후원의 대가로 기업에 제공하는 것이 바로 초대권이다. 기업은 이 초대권을 다시 거래처, 임직원, VIP 고객 등에게 선물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그런데 만약 이 초대권이 공직자 등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게 흘러 들어간다면, 기업은 김영란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김영란법 시행 이후 기업들은 공연 후원에 몸을 사리고 있다. 초대권을 받으면 문제가 생길지 모르고, 초대권을 받지 않으면 딱히 이익이 없으니 아예 후원을 기피하는 분위기다.
기업 후원이 끊기면 당장 공연 제작이 어려워지는 제작사들은 근심에 빠져 있다. 특히 제작비가 높고 관객 수요가 적어 기업 후원 의존도가 높은 클래식계에 비상이 걸렸다. 일부 공연은 아예 김영란법에서 허용하는 선물 상한금액 5만 원에 맞춰 티켓 가격을 대폭 낮추었다. 12월 내한하는 바이에른 교향악단의 공연은 최고 30만 원까지 판매하던 예술의전당 2~3층 좌석을 모두 2만 5천 원에 내놓아 충격을 줬다. 후원 기업에서 초대권 2장을 선물해도 5만 원이 넘지 않게 가격을 책정한 것이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는 때 아닌 예매 전쟁이 일어났다. 더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자리에서 공연을 볼 수 있게 된 유료 관객들은 이러한 변화를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금껏 제값을 주고도 초대 관객에게 좋은 자리를 빼앗기고, 공연에 관심이 없는 초대 관객의 불량한 관람 태도 때문에 방해를 받고, 중고 거래 사이트에 싼 가격으로 올라온 초대권을 보며 억울했을 유료 관객의 마음을 생각하면 자연스런 반응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는 내년 초부터 클래식 시장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중론이다. 기업의 후원이 끊기면 거액을 들여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의 공연을 유치하기도 힘들고,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아티스트의 소규모 독주회 또한 열리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고액의 제작비 부담이 유료 관객에게 돌아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티켓 값이 상승하게 된다. 클래식만큼은 아니지만 대형 뮤지컬 제작사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기업 후원 문의가 확연히 줄었으며, 티켓 가격 책정에 있어서도 고심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기업의 후원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후원의 대가로 초대권을 요구하는 대신, 좋은 공연을 후원함으로써 사회에 공헌하고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일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공연 시장의 규모가 작다보니 현실적으로 기업이 후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미지 제고 효과는 미약하다. 이익을 우선시하는 기업이 순수하게 대가 없는 후원에 나설 가능성은, 물론 희박하다.
기업의 접대용 초대권 사용을 제한하는 건, 그간 세제 혜택을 주면서까지 문화 접대를 적극 권장해온 국가 정책과도 모순된다. 문화체육광광부는 2007년 9월, 기업이 거래처와 고객 접대를 위해 공연·영화·스포츠 관람권 등을 구입하는 경우, 사용 금액에 상관없이 추가로 접대비 한도액의 10%까지 세법상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하는 문화접대비 제도를 도입했다. 건전한 접대 문화 조성과 문화 예술 진흥을 위해서다. 올해부터는 이 접대비 한도액을 20%까지 늘렸지만, 김영란법 시행과 함께 실효성을 잃어버렸다. 때문에 문화 접대에 한해 선물 상한액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프레스 티켓은 초대권인가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공직자뿐 아니라 언론인이 포함되면서 공연 담당 기자가 취재 목적으로 제공받는 티켓 역시 5만 원 이하로 제한되었다. 국립극단, 롯데콘서트홀, LG아트센터를 포함한 많은 공연 단체, 제작사, 공연장이 ‘공연 담당 기자에 한해 5만 원 이하 공연 티켓 1매만 제공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아예 모든 공연 담당 기자를 대상으로 한 전막 시연회를 열기도 한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공식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 숙박, 음식물 등의 금품’은 김영란법의 예외 항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와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등이 이 같은 전막 시연회를 열었으며, 세종문화회관은 자체적으로 지정한 출입기자단을 특정 공연일에 한해 초청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취재를 위한 공연 관람이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의 사례로 여겨지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언론사가 아닌 모든 언론사 공연 담당 기자에게 일률적으로 제공되는 프레스 티켓을 부정청탁으로 보긴 힘들며, 실제로 티켓을 받아 공연을 봤다 해서 호의적인 기사만 올라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연에 대해 소개하고 평가하는 기사는 그 자체로 공연 예술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공익적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해외 공연계에서도 취재 기자에게는 가격에 상관없이 프레스 티켓을 제공하고 있다.
뮤지컬, 오페라, 클래식 공연 중에는 티켓 최저가가 5만 원을 넘고, 전막 시연을 올리기 어려운 공연도 많다. 이 경우 기자들은 취재를 포기하거나 회사에 따로 티켓 비용을 청구해야 한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이 적은 공연 분야에 고가의 관람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기사를 내보낼 의향이 있는 언론사는 많지 않다. 결국 언론 보도는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소수 공연에 편중되기 쉽다. 공연 제작사가 울며 겨자 먹기로 티켓가를 5만 원 이하로 낮추는 것은 기업 후원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만이 아니라, 프레스 티켓을 제공하지 못해 공연 홍보에 지장이 생길 것을 우려해서이기도 하다.
프레스 티켓을 선물 초대권으로 봐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기자가 쓰는 공연 리뷰 기사의 필요성 자체를 의문시하기도 한다. 어차피 전문성 있는 리뷰 기사보다는 보도자료를 적당히 윤색한 어설픈 리뷰 기사가 판을 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공연 리뷰는 기자보다 전문성 있고 법에서도 자유로운 평론가에게 맡기고, 제작사 또한 변화된 시대에 발맞춰 홈페이지, SNS, 동영상 사이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직접 작품을 알리고 관객과 소통하면 된다는 대안이다. 하지만 평론가와 별개로 실력 있는 전문 기자를 육성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공연 담당 기자는 공연 리뷰뿐 아니라 공연계 내 화제와 인물을 폭 넓게 기사로 다루므로, 관련 기사를 쓰기 위해 다양한 공연 관람은 필수라는 것이다.
공연계 관계자들이 부정청탁을 막자는 김영란법의 취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업계의 현실을 무시한 채 획일적인 기준으로 법을 강행한다면 공연계를 위축시키게 된다. 업계 관계자들 간에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적극적인 의견 수렴을 통해 법의 취지에 맞는 방향으로 시행 방안을 개선해나가야 할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8호 2016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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