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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무대 위 피아니스트 [No.160]

글 |박보라 사진제공 |김영기 사진제공 | 달컴퍼니, 쇼노트, HJ컬쳐 2017-02-08 5,286

<쓰릴미>, <라흐마니노프>, <더맨인더홀>, <구텐버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무대 위에 피아노와 피아니스트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배우 못지않게 섬세한 감성과 열정적인 연주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피아니스트. 작품의 또 다른 배우로 자리매김한 무대 위 피아니스트를 살펴본다.





또 다른 주인공                       

최근 무대 위로 피아노가 올라온 작품들이 많아졌다.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중심으로 피아노와 피아니스트의 존재가 뚜렷하게 강해지고 있 는 것. 이렇게 피아노가 무대 위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로에서 두터운 마니아층을 거느린 <쓰릴미>부터다. 남성 2인극이자 피아노 선율만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이기 때문에 피아니스트에 관심이 집중됐다. 제작사 달컴퍼니 측은 “<쓰릴미>에서 피아노 연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고, 캐릭터의 감정선까지도 표현해 작품의 또 다른 캐릭터로 여겨진다. 그래서 작품에서 피아니스트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이유로 피아노가 관객들에게 노출될 경우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들었고, 결국엔 무대에 피아노를 설치하게 됐다. 비슷한 맥락으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배우들과 피아니스트의 긴밀한 호흡이 필요하고, 섬세하고도 슬픈 음악을 강조하기 위해 무대에 피아노를 놓았다.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의 삶을 재조명한 <라흐마니노프>에서는 피아노가 주인공들에게 주요한 매개체다. <라흐마니노프>의 오세혁 연출은 “작품의 첫 리딩 당시, 피아니스트와 라흐마니노프라는 인물을 동등하게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피아노를 무대에 올릴 것을 결정했고, 경사를 설치해 무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두었다. 그래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무대를 내려다보는 피아노에 시선이 갔다.


그런가 하면 피아니스트를 작품 안으로 끌어온 <구텐버그>와 <더맨인더홀>도 있다. 브로드웨이 진출을 위해 뮤지컬 리딩 공연을 올리는 것이 주요 내용인 <구텐버그>는 피아니스트가 리딩 공연 참여자로 등장한다. 이는 원작에서부터 의도된 것으로 피아니스트가 단순한 연주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다른 공연과는 달리 피아니스트도 찰스라는 이름이 부여됐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찰스는 관객을 향해 유의 사항을 설명하고, 작품의 주인공인 버드와 더그를 소개한다. 찰스는 피아노 연주뿐 아니라 효과음이나 간단한 특수 효과를 담당하며 리딩 공연을 진행하는 스태프 역할까지 겸하고 있어, 때론 연주자로, 때론 등장 인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더맨인더홀>은 배우처럼 피아니스트를 무대 정중앙에 세웠다. 제작사 파파프로덕션의 관계자는 “작품에서 피아니스트는 사회자다. 유일하게 피아노 반주로 진행되는 공연이기 때문에 피아노의 위치가 정말 중요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더맨인더홀>의 경우 무대 정중앙에 피아노를 놓아, 피아니스트가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피아니스트 캐스팅      

뮤지컬에 참여할 피아니스트를 캐스팅하기란 쉽지 않다. 피아니스트를 찾기 위해 음악감독이 직접 캐스팅에 열을 올리거나 알음알음 주위에서 소개를 받는다. 연습을 함께한 조감독이 피아니스트를 겸하는 경우가 있지만, 보통은 배우 캐스팅과 마찬가지로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이 이뤄진다. 극히 일부지만 공연을 상당히 매력적으로 본 피아니스트가 직접 해당 음악감독에게 연락해 출연이 성사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피아니스트는 배우와 마찬가지로 작품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무대에서 혼자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제작사는 작품, 배우와 잘 어우러질 수 있는 피아니스트를 선호한다. <라흐마니노프>의 경우엔 어렵기로 소문난 라흐마니노프의 연주곡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특출한 실력을 가진 피아니스트를 캐스팅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더맨인더홀>의 캐스팅 공개 당시엔 배우보다 피아니스트에 더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제작사 내부에서도 상당히 놀랐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다른 공연과는 달리 <더맨인더홀>의 경우엔 배우 스케줄 공개 때 피아니스트의 스케줄까지 공개했는데, 일부 마니아층은 피아니스트의 스케줄에 맞춰 공연을 관람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피아노에 의한, 피아노를 위한         

무대에 피아노가 자리하게 되면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긴다. 피아노의 위치는 보통 무대 디자인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정해진다. 이후 공연 직전, 리허설하면서 배우들의 동선과 겹치지 않는 곳에 피아노를 최종적으로 배치하고, 반복적으로 배우들의 동선을 확인한다. 관객의 시선, 음향 그리고 피아니스트가 공연에서 어떤 역할로 빛날 것인지 많은 것을 고려한다. 또 이때 연출자나 제작사에 따라서 피아니스트가 배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등장인물이 될 것인지 혹은 무대에 없는 사람처럼 존재할지가 결정된다.


특별히 <라흐마니노프>의 경우엔 피아노가 단순히 악기라는 것을 넘어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이진욱 음악감독은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악기지만 속은 굉장히 복잡하던데요’라는 대사가 있다. 피아노 자체를 통해 이러한 의미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의 방에 있는 업라이트 피아노는 아랫부분이 해체된 상태다. 피아노가 라흐마니노프의 불안정한 정신세계를 표현함과 동시에 그가 품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무대장치인 셈이었다.



피아니스트를 향한 애정        

피아노와 피아니스트의 등장은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구텐버그>의 김동연 연출은 “피아노가 무대 위에 있으면 음악과 드라마가 함께하는 뮤지컬의 묘미를 좀 더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다. 피아니스트는 때에 따라서 배우이자, 관객 그리고 극을 진행하는 사회자도 될 수 있으므로 극에 잘 녹인다면 흥미로운 역할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라흐마니노프>의 이진욱 음악감독은 “살아 있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무대에서 직접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통해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격정적이고 예민한 선율들이 관객들에게 더 잘 전달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통해 뿜어 나오는 에너지가 작품에 상당한 매력을 더한다.





오성민 피아니스트


2009년 <쓰릴미>를 시작으로, 오페라 <리타> 그리고 <더맨인더홀>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한 오성민은 뮤지컬계의 단연 독보적인 피아니스트다. 피아노 반주만으로 진행되는 <쓰릴미>에서는 배우가 실수로 뮤지컬 넘버의 한 절을 통째로 넘겼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단번에 반주를 맞춰 ‘오마리아’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오성민의 무대를 보기 위해 많은 뮤지컬 팬들이 제작사에 그의 스케줄을 문의하고, 일부러 공연을 찾는 팬도 있다. 뮤지컬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오성민이 그리는 아름다운 선율은 어떤 모습일까.



피아니스트로 뮤지컬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누군가에게 ‘뮤지컬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어요. 사실 뮤지컬은 오케스트라가 주를 이룰 줄 알았는데, 피아노 한 대만 있다는 거예요. 오디션을 갔는데, 음악감독님과 작품에 얼마나 마음을 쏟을 수 있는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사실 처음부터 원대한 계획이나 꿈을 가지고 시작했다기보다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거였어요. 그렇게 인연이 되어 2009년부터 <쓰릴미>에 참여했죠.


보통 연습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배우들과 연습 기간엔 늘 함께 있어요. 연습과 무대는 상당히 달라서, 공연이 올라가기 직전까지도 완벽하게 작품을 준비하고 다듬어요. 그러다 보니 연습 기간이 충분하지는 않아요. 보통 6주 정도의 연습 기간에 여러 곡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죠. 또 무대에 피아니스트로 선다고 해도, 다른 작품과 연습 방식이 특별히 다를 건 없어요.


피아니스트로 무대 위에 직접 오르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엄청난 부담이었죠. 클래식은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는 게 일반적이니까 뮤지컬도 그렇게 큰 부담감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특히 뮤지컬 피아니스트로 처음 데뷔한 작품이 <쓰릴미>인데, 이 작품은 워낙 마니아층이 두텁잖아요. 제 몸짓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도 신경을 쓰게 됐어요. 심지어 2009년 처음 무대에 섰을 당시에는 관객석하고 무대 사이에 피아노가 있었어요. 관객이 손만 뻗으면 저를 만질 수 있는 거리였죠. (웃음) 그래서 더 부담됐죠.


무대 위에서 피아니스트로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특별히 퍼포먼스나 보이는 부분에는 욕심이 없어요. 무대에 올랐던 초반에는 제 손짓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계셔서 신경을 쓰기도 했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죠. 지금은 무대 위에서 철저하게 반주에 집중해요. 매력이라면…, 음…, 사실 공연을 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위기에 대처하는 경우도 있고, 뮤지컬 특성상 그날의 공연 분위기에 따라 약간씩 변화하는 디테일이 생기잖아요. 그 사이에서 배우와 제가 오밀조밀하게 맞춰 나가는 게 보일 때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실수나 애드리브 같은 경우엔 어때요?
배우들이 집중을 하다 보면 공연이 살짝 변할 때가 있어요. 초창기에는 정말 당황해서 저도 대놓고 틀렸죠. (웃음) ‘어, 왜 다르게 하지? 연습 땐 이랬는데.’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저 인물이 저렇게 생각하게 됐다면, 내가 순간적으로 맞춰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순간순간 판단을 하면서 연주를 이어 나가죠. 이럴 때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피아니스트는 특히 무대에서 배우들과 호흡이 중요한데, 어떻게 맞춰 나가나요?
사실 연습하는 과정은 계속 작품을 반복하면서 서로의 호흡을 굳혀가면서 약속을 하는 거죠. 저만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공연 전에 배우들의 심리 상태를 체크하고 대화를 많이 해요.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하더라도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가 꼭 나오거든요. 그런 식으로 작은 소스를 얻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오늘은 배우가 이렇게 할 수도 있겠다’며 예상을 미리 해놓는 편이에요.


무대 위에서 유의할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말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특히 <쓰릴미>나 <더맨인더홀>은 피아노 하나로 음악이 진행되잖아요. 그래서 피아노에도 마이킹이 상당히 세밀하게 되어 있는데, 숨소리나 악보 넘기는 소리가 빨려 들어갈 때가 종종 있어요. 기침이 많이 나는 날엔 공연 시작 직전에 사탕을 물고 들어가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기침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또 소극장에서 공연되니까 악보를 넘기는 경우에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상당히 신경을 쓰죠. 악보를 넘기는 구간의 앞뒤 몇 마디를 정해 놓고 표시를 해놔요. 조심조심 넘기려고 하지만 혹시라도 악보 넘기는 소리에 방해를 받으실까봐 정말 많이 신경 써요. (웃음)




악보가 꼭 필요한가요? 연습 기간과 공연을 통해 피아노 연주를 상당히 많이 해, 저절로 음악이 외워졌을 것 같은데요.
음악은 다 외웠지만, 혹시나 대비해서 악보는 늘 펴놓아요. 그래서 넘기면서 하는 거죠.


그동안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선 작품은 지휘자가 없어서 배우를 보면서 연주를 했잖아요. 
그래서 배우들이 다 잘 보이는 위치에 피아노를 놓아요. 사실 악보를 안 보고 배우들에게만 시선이 가 있으면 좋은데, 순간순간 악보는 봐야 하니까요. (웃음) 최대한 배우들을 바라보면서 악보랑 건반에 시선을 안 두려고 해요. 그래서 유달리 연습 기간이 짧게 느껴지기도 하죠. 그 과정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무대 위에서는 배우들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순간마다 그들의 몸짓, 눈빛, 작은 숨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배우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듣나요?
인이어를 착용하는 경우도 있고, 피아노 주변에 모니터링 스피커를 설치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공연장에 따라 스피커를 놓게 되면 배우들의 마이크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그땐 스피커 대신 인이어를 착용하죠.


뮤지컬에 세션으로 참여하는 것과 홀로 피아니스트로 참여하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일단 부담감이 다르죠. 세션은 지휘자가 있고 다른 악기들도 있어서 제 소리를 잘 묻혀 가면 되는데, 피아노가 홀로 쓰이는 공연은 제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져요. 그래서 정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올라가야 해요.


무대에 올라갈 때 특별히 준비하는 의상이나 메이크업, 헤어가 있나요?
연출가나 제작사 측에서 피아니스트의 역할에 상당히 고민하시는 편이에요. 무대에서 피아니스트를 주목하게 만들지, 아니면 아예 무대에서 잘 안 보이게 할지, 그 결정에 따라 의상이나 헤어가 달라지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피아니스트는 작품의 분위기에 어울릴 수 있도록 깔끔한 의상이나 헤어를 하는 편이에요. 저 같은 경우엔 그동안 제작사 측에서 의상을 준비해주셨어요.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작품이나 곡이 있다면요?
가장 많이 참여한 작품인 <쓰릴미>에 애착 가는 넘버가 정말 많은데, 한 곡을 꼽자면 맨 마지막에 부르는 ‘파이널 쓰릴미’요. 짧은 곡이지만 그 곡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서 결말을 다르게 생각하시는 관객도 많아요. 그리고 작품을 관통하는 배우들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피아노를 치면서 ‘아, 저런 생각으로 이렇게 작품을 끌고 왔구나’라고 생각하게 돼요.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을까요?
무대에 오를 때마다 매 순간 떨리고 긴장되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은 있죠. 보통 제가 참여한 작품은 커튼콜에서도 인사를 할 수 없어요. 커튼콜 때도 피아노를 치고 있으니까 감사한 마음을 눈빛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는데, 2015년도 <쓰릴미>의 마지막 공연에서는 그냥 음악을 끊고 일어났어요. (웃음) 인사를 하려고. 그런데 그때 관객도, 배우도 정말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는데 ‘<쓰릴미>의 한 시즌을 정말 잘 이끌어왔고, 내가 열심히 공연을 해왔구나!’ 싶었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0호 2017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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