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FOCUS] 샤프롱과 아역 보호 규정 [NO.170]

글 |안세영 2017-11-10 7,095

무대 위 아역의 활약상이 커지면서 이들의 육체적·정신적 안전을 보장하는 보호 방침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아역 배우가 주연을 맡는 대표적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중심으로 아역 배우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에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아역의 보호자, 샤프롱


‘샤프롱’의 존재는 아역 보호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샤프롱’은 과거 젊은 여성이 사교장에 나갈 때 따라가서 보살펴주던 사람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현재 공연계에서는 아역 배우를 전담 관리하는 스태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아직 낯선 단어지만, <킹키부츠>, <원스>, <모차르트!>, <레 미제라블>, <서편제> 등 국내에서 공연한 많은 뮤지컬이 샤프롱을 배치해 왔다. 초기에는 ‘보모’로 부르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해외 공연계의 용어를 받아들여 ‘샤프롱’이라는 명칭이 정착되어 가는 추세다.


샤프롱은 보통 공연 연습이 시작됨과 동시에 투입되어 언제 어디서나 그림자처럼 아역과 함께한다. 아역 배우의 부모는 원칙적으로 연습실과 분장실, 백스테이지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아역을 보호하는 것은 오롯이 샤프롱의 몫이다. 부모는 콜타임에 맞춰 아역을 샤프롱에게 인계하며, 연습 및 공연이 끝나면 다시 샤프롱이 부모에게 아역을 인계한다. 연습과 공연 기간에 샤프롱은 그야말로 아역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수행한다. 스케줄을 관리하고, 컨디션을 체크하고, 식사를 챙기는 건 물론, 배운 내용을 숙지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까지 한다.


<빌리 엘리어트>의 배인숙 샤프롱 팀장은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장면을 연습할지 미리 알려주고, 함께 대본을 맞추며 대사를 외워왔는지 확인한다. 또 지난 연습에서 받은 노트를 정확히 필기했는지 확인하고 빠트린 부분은 다시 상기시켜 준다”고 연습실에서의 업무를 설명했다. 샤프롱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백스테이지에 머물며 아역들에게 등퇴장 순서와 위치, 동선을 알려준다. 장면에 따라 필요한 의상과 소품도 꼼꼼히 챙긴다. 이 밖에도 샤프롱은 각종 공식 행사와 인터뷰 현장 등 아역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동행한다. 아역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상담자의 역할을 하는 것, 아역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 또한 모두 샤프롱의 일이다.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등 인기 아역 주연 뮤지컬의 본고장인 영국에서는 샤프롱으로 일하기 위해 지역 행정당국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2개의 추천서를 제출하고, 아동 학대 전력 조사에 통과하고, 안전 관리 교육을 이수한 사람만이 샤프롱으로 일할 수 있다. 또한 3년마다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한 명의 샤프롱이 관리하는 아역 수가 12명을 넘어서도 안 된다. 현재 영국에서는 13세 이하 아역이 미리 지정된 법적 보호자인 샤프롱이나 부모 외의 다른 사람과 단둘이 있는 일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샤프롱의 자격 조건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개 제작사 측에서 기존에 함께 작업하며 신뢰를 쌓아온 스태프에게 샤프롱 일을 맡기는 편이다. 무대 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한 만큼 공연 관련 경력이 가장 중요한 채용 조건으로 꼽힌다. <원스>에서는 현직 뮤지컬 배우가, <킹키부츠>에서는 의상 팀 스태프가 샤프롱 역할을 맡았다. <빌리 엘리어트>는 30여 명의 아역을 돌보기 위해 무려 6명의 샤프롱을 두고 있다. 모두 샤프롱 일을 맡는 건 처음이지만, 각자 의상 팀, 조연출, 티켓매니저 등으로 최소 1년 이상 공연계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배인숙 샤프롱 팀장은 소품 팀 경력은 물론 2개의 교사 자격증까지 갖고 있다. <빌리 엘리어트> 제작사인 신시컴퍼니의 정소애 기획실장은 “샤프롱은 그동안 함께 일하며 알아온 상대의 인성을 고려해 채용한다. 유아 교육을 전공하거나 교사 자격증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필수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내에 샤프롱이라는 직업이 낯선 만큼 신시컴퍼니는 사전에 <빌리 엘리어트>의 아역 배우와 부모, 성인 배우, 스태프에게 샤프롱의 역할을 충분히 주지시키기 위해 애썼다. 정소애 기획실장은 “아이들이 샤프롱을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도록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 특히 아이들이 샤프롱을 하인처럼 여기는 일이 없도록 꼭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하고, 자기 짐은 자기 손으로 옮기라고 가르친다. 성인 배우와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먼저 샤프롱의 권위를 존중해야 아이들도 본받는다”라며 사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역 보호를 위한 규정


아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샤프롱을 두는 것 외에도 다양한 사고 예방책이 필요하다. 아역이 타이틀롤을 맡고 무대에서 고난도 안무를 소화하는 <빌리 엘리어트>의 경우, 오리지널 프로덕션에서 제시하는 아동 보호 지침이 따로 있을 정도다.


가장 기본이 되는 지침은 물론 해당 국가의 법규를 준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13세 이하의 연소자가 7시간 이상 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연령대별로 최대 리허설 및 공연 시간, 최소 휴식 시간까지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세세한 휴식 시간까지 따지는 법규는 없다. 보통 1~2시간 연습한 뒤 15~30분 휴식을 갖는데, 이 또한 연습 진행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또 국내법상 18세 미만의 청소년은 원칙적으로 밤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에 야간 노동이 금지된다. 하지만 평일 공연이 8시에 시작해 11시경에 끝나기 때문에 제작사는 이에 대해 아역 배우의 부모에게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한다.


어린아이가 보기에 적합지 않은 장면에 대한 지침도 나와 있다. <빌리 엘리어트>에는 욕설과 성적인 뉘앙스의 농담이 나오는데, 이런 장면은 9세 이하의 어린아이에게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해당 장면이 극장에서 공연될 때는 9세 이하 아역이 사용하는 대기실의 스피커 볼륨을 완전히 꺼야 한다. 현재 국내 프로덕션에도 스몰보이 역할로 9세 이하의 아역이 참여하고 있어 이러한 규정을 준수할 예정이다. 욕설, 성적인 발언, 신체 노출, 마약, 흡연, 음주 등의 행위는 설혹 대본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일지라도 공연 또는 계획된 리허설에서만 허용된다. 분장실과 백스테이지를 비롯한 그 밖의 사적인 자리에서는 금지다. 아역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멀티 캐스트와 스탠바이를 두는 것은 <빌리 엘리어트>뿐 아니라 많은 아역 출연 뮤지컬에서 지키고 있는 사항이다. <빌리 엘리어트>
는 주 8회 공연에서 한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을 고려해 주인공 빌리 역에 4명의 배우를 캐스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여기에 1명을 추가해 총 5명의 빌리를 선발했다. 만약 공연 도중 아역이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는 언제든지 공연을 중단하거나 배우를 교체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환불 요청은 받지 않는다는 점이 티켓 예매처의 공연 안내 페이지에 명시되어 있다. 공연 기간에는 매일 3명의 빌리가 공연장으로 출근한다. 한 배우가 무대에서 공연하는 동안, 다른 한 배우는 혹시 모를 사고와 배우 교체 상황에 대비해 무대 뒤에서 대기한다. 나머지 한 배우는 전날 공연에 출연했던 배우로, 자신이 보완해야 할 점을 노트하면서 다음 공연을 준비한다.


아역에게도 프로 배우로서 책임감 있는 행동이 요구된다. 다른 아역을 따돌리거나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되지 않으며, 이러한 행위가 발각될 경우 퇴출까지 당할 수 있다. 신시컴퍼니는 이 밖에도 아역 배우 간의 과열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내부적인 지침을 마련해 두고 있다. 인터뷰에는 가능한 빌리 역의 다섯 배우를 다 함께 참여시키고, 팬에게 받은 선물은 연습실이나 공연장에 가져오지 못하게 해 소외감을 느끼는 아이가 없도록 한다. 또 아역 배우의 부모에게도 다른 배우나 스태프에게 음료수 하나 건네지 말 것을 사전에 당부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