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둔 얼굴을 다 보여줄 때까지
2011년에 그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창대했던 창작뮤지컬이 한 편 있었으니, 이름 하여 <셜록홈즈>. 추리 소설의 특징을 잘 살린 드라마와 음악, 매력적인 캐릭터와 배우들의 호연 등 골고루 칭찬을 받았으나, 신인 배우 조강현에게 특히 더 많은 관객의 이목이 집중됐다. 쌍둥이 형제인 두 배역을 혼자 맡아서 상반된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냈고 노래로 인물의 감정을 충분히 전달했다. 새로운 인물의 출현에는 관객들이 먼저 반응하는 법, 개막 후 쏟아진 그에 대한 호평은 또 다른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조강현은 <지킬 앤 하이드>의 앙상블로 뮤지컬에 데뷔한 후, 지난 2년여간 <김종욱 찾기>와 <쓰릴 미>, <셜록홈즈>,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까지 네 편에서 연달아 주인공을 맡고 있다. 초고속으로 승진한 이 젊은 배우는 그를 둘러싼 분위기에 초연했다. 누가 연기해도 멋있는 역할을 맡았을 뿐이라며, 그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실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겸손하게 말했지만, 이는 일부러 자신을 낮추어 예의를 갖추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판단할 줄 아는 현명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아직은 경험치가 적어 조강현은 매 작품마다 배우고, 또 스스로 달라짐을 느끼고 있다. “배우는 결국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잖아요. 예전엔 저를 위해서 연기했어요, 저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객관적으로 작품을 봐주는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하려 하고, 호기심을 갖고 그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또 많이 들으려고 해요. 소수의 마니아들이 즐기는 공연이라면 우선 그들을 설득시켜야만 더 많은 관객들 앞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배우로서의 자존감이 강해질 수 있는 시점에 그가 자신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짧은 경험으로 얻은 이해라기보다는 직관에 가까워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시종일관 차분하고 진지하게, 그렇지만 따분하지 않게 털어놓는 이야기는 ‘이 사람이 어디서 깨달음의 열매를 따먹었나’ 의심케 했다.
조강현은 단번에 답하지 않고 일보 후퇴와 이보 전진을 반복하곤 했다. 아직은 본인의 강점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선, 은연중에 알고 있다 하더라도 잘하는 것만 하고 싶진 않아서, 또 더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테니, 그만의 카드를 미리 내보이긴 싫어했다. 하지만 어떤 질문에는 주저 없이 답했다. 무대에서 조강현이 아닌 극 중 인물이 되어 관객을 만날 때, 관객이 연기라는 거짓말을 믿도록 만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그리고 자신 있다고.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배우가 돼서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는 조강현은 더디더라도 똑똑하게 제 갈 길을 찾아가며 천천히 자산을 쌓아갈 거라고, 덤덤한 말투였지만 다짐하듯 마음속에 제 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를 더 많이 만나야 할 것 같다. 그 역시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지금부터 오래도록 생각하고 또 행동할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0호 2012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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