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PERSONA] <베어 더 뮤지컬> 고상호의 제이슨 [No.173]

글 |박보라 사진제공 |쇼플레이 2018-02-22 6,857

유리가면


얼마 전, 성 세실리아 기숙 학교의 졸업 공연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훈훈한 외모에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많은 친구들과 허물없는 우정을 나누었던 제이슨이 비극적인 사고로 눈을 감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사고 전, 제이슨이 동급생이었던 절친한 친구 피터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던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여기 하늘에서 제이슨의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이 글은 제이슨 역을 맡은 고상호와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피터와 어떻게 처음 만났나요?
성 세실리아 기숙 학교의 입학식에서 피터를 처음 봤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첫눈에 반한다는. 눈만 보아도 나랑 같은 존재라고 느껴지는 순간. 피터를 봤을 때, 바로 그랬어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무언가를 느꼈죠.

 

이젠 피터와 함께한 추억이 그립겠어요.
방학엔 학교와 멀리 떨어진 우리만의 공간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했지만, 우린 늘 기숙사 방 안에서 함께했죠. 그곳이 우리의 유일한 안식처였어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둘만의 공간이요. 답답한 학교의 분위기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피터와 제가 연인이라는 걸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은 피터를 얼마만큼 사랑했나요.
음, 얼마나 피터를 사랑했냐고요…, 제 머리에는 늘 피터밖에 없었어요. 아시다시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엔 장애 요소들이 많았어요. 전 그런 날카로운 세상 속에서 피터를 지켜주고 싶었어요. 그가 다치는 걸 바라볼 수가 없었어요. 사랑하기 때문에, 피터를 위해 제가 내린 모든 선택이 우리가 안전한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 믿었죠.

 

하지만 피터는 당신과 커밍아웃을 하길 원했다면서요.
커밍아웃하고 싶어 하는 피터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가 우리의 사랑이 세상 뒤에 숨은 거라 생각하고 아파하는 것도 알았고요. 그런 피터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렸어요. 하지만 전 우리의 사랑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죠. 전 피터만 있으면 행복했으니까 빨리 졸업을 하고 싶었어요. 졸업한 후에 피터와 함께 이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싶었죠.

 

 

원래는 졸업 공연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다고요.
피터는 작년에도 그렇고 학교 공연이 있을 때마다 저를 졸랐어요. 함께 연극 무대에 서자고요. 솔직히 전 싫었어요. 모든 사람 앞에서 연기하고 있는데, 또 다른 연기라니…. 그런데 피터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언제 우리가 함께 무대에 서보겠어요. 사실 공연에 참여한다기보다는 피터의 부탁이니까 오디션이라도 보자 이런 생각이었어요.

 

그랬는데 덜컥 주인공을 맡았죠.
기대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요. 전 어렸을 때부터 남들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항상 익숙했으니까요. 연기는 자신 있었죠.

 

기숙사 방 안에서 피터와 당신이 연기 연습을 했다고요.
맞아요. 연극 대사를 외우는데, 피터는 제 상대역이 돼주었죠. 연극이지만 마치 피터를 향해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서서히 마음속에 작은 파동이 전해지더라고요. 아, 이런 식으로 대사를 말하고 연기를 하면 되는구나. 그렇게 피터와 장면을 연습할수록 설레고 재미있었어요.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조금의 충돌이 있었어요. 게다가 봄 방학을 맞이하면서 피터가 먼저 떠났고요. 빈방에 홀로 남겨진 당신의 마음도 착잡했을 것 같아요.
당시에 피터에게 ‘끝내자’고 말을 했던 상황이었어요. 사실 그 말에 대한 확신은 없었어요…. 피터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내뱉었지만요. 그런데 봄 방학을 맞이하고 나니, 2주 동안이나 서로를 못 볼 테고 연락도 못 하겠단 생각이 그제야 들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전 사실 피터를 안 볼 자신이 없었거든요….

 

봄 방학을 무사히 마친 후 학교로 돌아와서 다시 피터를 만났잖아요.
학교로 돌아와 피터를 연습실에서 보았어요.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에 ‘맞아, 내가 이렇게 피터를 좋아했지. 이렇게 행복했지’라는 생각이 파도처럼 몰려오더라고요. 피터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었어요. 내가 뱉어버린 말에 대한 미안함과 우리 사이를 예전처럼 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엔 피터와 당신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졌어요.
내 세상이, 내가 만들어 왔던 세상이 한꺼번에 무너졌어요…. 어느 하나 기댈 곳이 없었고,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피터마저도 제게 등을 지고 가버렸으니까요. 이 세상에 혼자만 우두커니 남겨진 기분이었죠.

 

그래서 당신은 무대에 오르기 전에 약을 먹은 건가요?
그 약을 한 번에 먹으면 죽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제게 약을 건네던 루카스가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기에 무언가 잘못될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죽으리라고는…. 갑자기 내 몸에 이상한 변화가 느껴지니까 피터가…, 피터가 생각났어요. 다른 무엇보다도 제가 눈을 감기 전에 꼭 피터에게 ‘내 마지막 사랑은 너’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죠.

 

당신이 하늘로 떠난 후, 피터의 소식은 들었나요?
피터는 동부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어요. 요즘은 인권에 대해 공부하는 것 같더군요. 얼마 전 피터가 기도하는 걸 들었어요. 또 다른 제이슨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거라고 하더군요. 이게 제가 원하는 길일 거라면서요. 하늘에서 그런 피터를 응원해 주려고요.

 

마지막으로 피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미안해, 피터. 너를 혼자 남겨두게 되어서 정말 미안해. 내가 없더라도 꿋꿋하게 잘 살아. 늘 강하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던 너의 성격은 여전하더라. 넌 언제나 나보다 강했으니까. 내게 너무 많이 미안해하지도 말고, 죄책감도 느끼지 말고….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모습 그대로 지냈으면 좋겠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3호 2018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