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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이상이의 <레드북> 브라운 [No.174]

글 |나윤정 사진제공 |PRM 2018-03-07 5,538
그녀의 완벽한 신사
                   
 
보수적이었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뒤흔든 작가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슬플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한다’는 여류 작가 안나입니다. 『레드북』을 발표했을 당시만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그녀는, 세상의 편견을 깨트리며 이제 명실상부한 스타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런 안나 곁에는 그녀를 묵묵히 응원해 준 한 남자가 있었는데요. 안나의 뮤즈이자 그녀의 완벽한 신사로 살아가는 브라운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이 글은 브라운 역을 맡은 이상이와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안나를 만나기 전, 브라운 씨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나요?
잭과 앤디랑 친하게 지내면서, 허구한 날 파티를 다녔어요. 사실 그땐 ‘남자가 최고다’란 남성우월주의를 갖고 살았어요. 물론 겉으론 그걸 드러내지는 않았어요. 신사의 도리를 지켜야 했으니까. 상대방을 향한 배려와 매너,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신사의 도리거든요. 흠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안나를 만난 것 자체가 충격이었죠. 
 
안나를 처음 만난 때, 첫인상이 어땠나요?
뭐 이런 특이한 여자가 있지? 어떻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까? 안나는 다짜고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했어요. 친한 친구에게도 하기 힘든 말이잖아요. 또 자신을 고용해 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내일 사무실로 나오겠다고 선포를 하더라고요.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었죠. 긴가민가했는데, 며칠 전 시장에서도 본 기억이 나더라고요. 소리 지르고 욕하고 싸우고 있던 그 여자! 완전 제멋대로인 여자였어요. 
 
그런 여자와 한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을 땐, 어떤 기분이었나요?
그땐 제가 연애를 한 번도 못해 봤거든요. 그러다 보니 여자라는 존재 자체가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완전 가시방석이었죠. 급기야 『여자 다루는 법』이란 책까지 읽게 되었어요. 왜냐고요? 어떻게든 안나를 내쫓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책에서 배운 대로 안나를 응원하며, 서점에 데려간 거죠. 
 
불편한 존재였던 안나가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안나가 새로운 꿈을 찾았다고 할 땐, 정말 기뻤어요. 드디어 내 사무실을 나가겠구나! 그런데 작가라니…. 타이피스트인 그녀가 계속 글을 쓰겠다는 건, 제 사무실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는 거잖아요. 미쳐버릴 것 같았죠. 이 여자를 어떻게 내보내야 하나? 또다시 『여자 다루는 법』을 읽어야만 했죠.
 
처음에는 그렇게 안나를 밀어내려고 했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그녀가 브라운 씨의 마음속에 들어온 건가요?
잭과 앤디의 고모인 존슨 부인의 이혼 소송 덕분이에요. 당시 안나가 했던 말 때문에, 처음으로 사랑에 대한 제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사랑은 날씨와도 같다! 그때 안나에게 호감을 느꼈어요.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렸죠. 전 감정 제어를 잘하도록 훈련된 사람이었으니까! 그 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재판정에서 안나의 말이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전 매사를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만 생각해 왔는데, 안나가 그걸 처음 깨트려줬어요. 안나를 생각하면 머릿속에 온통 물음표뿐이에요. 도통 답을 내릴 수 없는 여자거든요. 그래서 점점 더 그녀에게 끌린 것 같아요. 
 
이후 안나가 바이올렛 할머니에 대해 쓴 글 때문에 두 사람이 다투게 되잖아요. 막상 안나가 사무실을 나가버렸을 땐, 어땠어요?
그땐 안나가 할머니를 모독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녀가 사무실을 나갔을 때도 전혀 속상하지 않았어요. 이상한 여자였으니까! 하지만 존슨 부인의 이혼 소송 재판정에서 안나의 말이 떠오른 순간, 그녀를 향한 제 마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점점 안나의 빈자리가 슬프고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죠. 전 정말 바보였어요!
 
그러다 안나가 쓴 『레드북』을 보게 되었잖아요. 소설 속 올빼미를 보고 자신이라고 확신했다던데,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죠?  
책을 여러 번 읽다보니 저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알게 모르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한편으론 내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안나에게 고집을 피운 거예요. 안나를 다시 만나고 싶고, 붙잡고 싶은 마음에 올빼미가 내가 아니냐며 괜한 핑계를 된 거죠. 안나에게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할 자신은 없었거든요. 
 
그래도 여장을 하고 여성 문학회 ‘로렐라이 언덕’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까지 찾아간 용기가 대단해요. 직접 가보니 그곳은 어떤 곳이었나요?
그곳은 마치 종교 집단 같았어요. (웃음) 여장 남자 로렐라이를 보며 모두가 미소 짓고 열렬한 환호를 보내더라고요. 처음엔 다들 미친 게 아닐까 싶었죠.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들이 건네준 술을 마시니 안나를 향한 마음을 이야기할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제가 그곳에 간 이유는 하나였거든요. 안나를 찾기 위해서였죠. 
 
『레드북』 때문에 안나에게 위기가 찾아왔지만, 당신이 멋진 변호를 해줬어요. 안나가 재판정에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을 거란 예상을 했나요?
처음엔 그녀를 설득하고 싶었어요. 변호사가 아닌 남자친구로서 말이죠. 당신을 잘 알고 있는 내가 옆에서 노력할 테니, 세상이 바뀔 때까지 조금만 참자고요. 하지만 안나는 제 진심을 몰라주더라고요. 그땐 너무 속상했죠. 그래서 차선책으로 그런 변론을 준비한 거예요. 결국 그녀가 고집을 꺾지 않을 거란 걸 알았으니까. 그것이 내가 지켜본 안나의 모습이거든요. 특히 헨리 아저씨를 만난 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헨리 아저씨의 말 덕분에 안나의 생각을 존중하며 도울 방법을 찾게 된 거죠. 
 
안나와 브라운, 두 사람은 지금 행복하죠?
그럼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때로는 연인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저희는 그렇게 살고 있어요. 저는 충성심 많은 골든 리트리버처럼 안나가 싫어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아요. 그녀 덕분에 변호사로서도 한층 성숙해졌답니다. 최근에 『레드북』이 완결되었는데, 그 후속작이 나와 인기를 얻고 있어요. 안나와 로렐라이 언덕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드는 중이죠. 
 
변함없이 안나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뭐예요?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는 사실 이유 같은 건 없잖아요. 재고 따질 것 없이, 그냥 안나가 좋아요. 굳이 그녀의 매력을 꼽으라면 당돌함과 솔직함이에요. 저는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안나의 솔직함에 매력을 느껴요. 안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4호 2018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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