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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회전목마> [No.177]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제공 |Julieta Cervantes 2018-06-27 4,853

문제작이 된 고전 명작

<회전목마>  Carousel 

 


 

뮤지컬 <오클라호마!>를 시작으로 <남태평양>, <왕과 나> 그리고 <사운드 오브 뮤직>에 이르기까지 열 편이 넘는 작품을 함께 작업했던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는 미국 뮤지컬의 황금기를 이끈 듀오였다. 이들은 풍부하고 유려한 멜로디와 고전적인 분위기의 이야기, 무엇보다 작품의 배경이 어디든지 미국적인 메시지를 담아 당시 미국인들의 낭만을 잘 그려냈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작품은 지극히 미국적이어서 지금도 미국 전역에서 활발히 공연되고 있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인권 운동이 빛을 발하기 전, 백인 남성 예술가의 시각으로 작품을 썼기 때문에 이들의 작품 속 인종적·젠더적 시각은 지금 감성과 뒤떨어진 구시대적인 지점도 있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이 재공연할 때마다 현세대가 수긍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가 늘 문제였다(지난 2018년 4월 호 <더뮤지컬> 이수진 칼럼니스트의 글도 이런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특히나 이런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은 지난 4월 브로드웨이 임페리얼 극장에서 오픈한 <회전목마>다. 리처드 로저스가 자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꼽았을 정도로 음악적, 구성적 완성도가 뛰어난 <회전목마>는 20세기 초에 쓰인 <릴리온>이라는 헝가리 연극이 원작이다. 작품은 뮤지컬로 재탄생하면서 미국 동북부 제일 끝 메인주 바닷가 마을로 배경을 옮겨왔다. 또 결론을 조금 다듬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원작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부인은 그를 한결같이 사랑한다. 남자 주인공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죽음을 맞지만, 잘못을 반성하고 회개할 기회도 주어지는 이야기다. 
 

<회전목마>는 전쟁이 마무리되던 시기인 1945년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였고 큰 사랑을 받아 3년간 공연했다. 그리고 거의 50년 만인 1994년 링컨센터에 돌아왔다. 소름 끼치는 가창력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인지도가 높은 흑인 배우이자 토니상을 무려 여섯 번이나 받은 오드라 맥도널드는 이 작품으로 첫 토니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1994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연출상, 최우수안무상 그리고 최우수리바이벌상에 이르기까지 다섯 부문을 휩쓸며 작품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했다. 작품은 이제 25여 년 만에 다시 브로드웨이로 돌아왔다. 특히 <나타샤, 피에르, 그리고 1812년의 대혜성>이 캐스팅 관련 문제로 급하게 막을 내려 6개월쯤 비어 있던 임페리얼 극장을 일찌감치 대관해 놓아, 오랫동안 <회전목마>의 간판을 내걸어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가 컸다. 그리고 지난 4월 정식 오픈 이후, <회전목마>는 작품 본연의 매력을 한껏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그냥 한 번 때린 걸로 가정 폭력범이라고 할 수는 없다? 

<회전목마>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주인공 빌리 비글로는 카니발 공연장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인물로, 남성적인 매력으로 여성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빌리와 결혼을 하게 되는 줄리 조던은 어느 날 카니발에 갔다가 그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늦게까지 그와 함께 있다가 공장 기숙사의 통금 시간을 맞추지 못해 공장에서 쫓겨난다. 빌리 역시 충동적으로 카니발을 그만두면서 일을 새로 찾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빌리에게 마을의 문제아인 지거가 그에게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살인강도를 제안한다. 빌리는 처음에 지거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지만, 마침 줄리의 임신 소식을 듣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강도질에 가담한다. 결국 지거는 도망가고 빌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후의 이야기는 빌리가 하늘에 올라간 후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던 빌리는 15년이 지난 후에 이승에 잠시 들른다. 빌리는 딸의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가족들에게 자신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작품은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전반적인 내용만 보면 빌리는 어느 정도 용서할 수 있는 인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들이 있다. 바로 줄리가 빌리의 폭력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싸 안아주는 부분들로, 이는 가정 폭력을 미화한다. 줄리는 그녀의 단짝 친구 캐리에게 빌리에게 맞았다고 고백하는데, 캐리는 그런 사건 이후에도 빌리 곁에 있는 그녀를 다그친다. 그런데 줄리는 빌리가 평소엔 상냥한 사람이라며 오히려 그를 변호한다. 줄리는 캐리와의 대화에서 빌리가 화가 나고 슬프기 때문에 자기한테 손찌검을 했다 한다. 성장한 딸에게는 너무 사랑하면 때려도 아프지 않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또 빌리도 줄리를 한 번 때린 것이라면서 가정 폭력범은 아니라고 말하는데, 극의 마지막엔 딸에게도 자신의 성미를 이기지 못하고 폭력성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다. 한 인터뷰에서 이런 문제 장면에 대해 프로듀서 스콧 루딘의 의견을 물었는데, 그는 공연의 역할은 질문하는 것이지 대답을 주는 것은 아니라며 직접적인 답변은 회피했다고 한다. 스콧 루딘은 올바르지 않은 관계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심각할 수 있는 문제지만, 극 중에서는 뚜렷한 목표를 지닌 극적 장치라며 대본 그대로 공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있는 부분을 최소화하다

작품의 내용은 원작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좁은 한도 내에서, 어느만큼은 이런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들이 보인다. 우선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서 빌리와 줄리의 관계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이 작품에서 빌리를 맡은 조슈아 헨리는 최근 시카고에서 공연한 <해밀턴>에서 좋은 평판을 얻은 배우다. 그의 폭발적인 성량과 깊은 연기는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빌리라는 인물에 대해 관객들이 조금은 더 공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 
 

1막 마지막 곡인 ‘Soliloquy(독백)’에서 빌리는 이제 곧 아빠가 될 자신의 미래를 신나서 그리다가도, 현실의 어려움을 깨닫고 급격히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로 딸을 위해서 무엇이든 하겠다며 다짐한다. 조슈아 헨리는 이런 빌리의 심경 변화를 너무 잘 담아냈고, 빌리를 미성숙하지만 악하지 않은 인물로 그려냈다. 다시 말해, 빌리의 폭력적인 성향은 ‘변명의 여지’는 없지만, 평범한 악인이 아닌 입체적인 캐릭터로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한 줄리 역시 자칫 순종적이고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질 수 있는데, <뷰티풀>과 <웨이트리스>로 잘 알려진 제시 뮬러는 작은 몸짓이나 빌리와의 대화에서 의도적인 공백을 주며 줄리가 빌리의 행동을 그저 사랑으로 감싸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 작품의 내용적인 측면은 크게 손대지 않았지만, 현시대의 관객들을 위해 작지만 강렬하게 업데이트한 것은 꽤 인상적이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바닷가에서 조개 가게를 운영하는 네티를 연기한 오페라 배우 르네 플레밍이었다. <회전목마>의 가장 큰 매력은 호소력이 짙지만 클래식한 매력을 담은 음악이다. 르네 플레밍은 남편을 잃고 실의에 빠진 줄리에게 마음속 깊은 곳까지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데에 적합한 목소리를 가진 최선의 선택이었다. 

 

로맨틱하고 효과적인 무대, 조명, 그리고 소품

<회전목마>는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본질은 사랑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작품을 위해 산토 로콰스토가 디자인한 무대는 꽤 완벽했다. 막이 오르기 전, 무대 위에는 프로시니엄 아치를 따라서 바닷가에서 흔히 보이는 굵은 밧줄이 있고, 그 아래에는 성게를 연상시키는 별들이 조명이자 장식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연은 연주곡으로 시작하는데 그냥 연주가 아니다.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줄리와 빌리가 만나기 전의 이야기가 무언극과 군무로 펼쳐진다. 카니발에서 일하는 빌리가 어떤 인물이며, 줄리와 빌리가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는지에 대한 서사가 진행된다. 또 무대 뒤엔 큰 보름달이 떠 있어 이야기에 낭만을 더한다. 곡이 끝나갈 무렵엔 하늘에서 뒤집어진 우산 같은 모양으로 카니발의 뾰족한 텐트 천막이 내려오는데, 천 없이 별과 조명으로 이루어진 뼈대만 있다. 이 곡이 끝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며 주인공들이 서로를 마주치는 순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펼쳐진다.

달과 별은 첫 장면뿐 아니라 공연의 여러 장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다. 전반적으로 은은한 조명과 함께 무대를 비추는 밝은 달은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함으로써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빌리가 죽으면 하늘나라에서 별을 받아 그 별을 줄리에게 가져다주는데, 여기서 별은 말 그대로 ‘별이라도 따서 가져다줄 만큼 깊은 사랑’을 상징한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그가 별을 선물할 때엔 그의 사랑과 성격을 문제 삼기보단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게 된다. 이런 디테일을 통해 관객들은 빌리와 줄리의 관계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낭만의 토대가 되어준 음악과 안무 

빌리와 줄리의 사랑 이야기를 낭만적으로 전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했던 요소를 꼽자면, 리처드 로저스의 음악과 조나단 튜닉의 오케스트레이션 그리고 뉴욕 시티 발레단의 전속 안무가인 저스틴 펙의 안무, 잭 오브라이언의 연출의 조화다.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진 빌리와 줄리가 서로의 마음을 떠보면서 함께 부르는 ‘If I Loved You(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나 빌리의 죽음으로 마음 아파하는 줄리를 위로하며 네티가 불러주는 ‘You’ll Never Walk Alone(절대로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을 비롯해서, 네티와 앙상블이 그들의 바닷가 가게에서 다가오는 여름을 기리며 함께 부르는 밝고 경쾌한 노래 ‘June is Bustin’ Out All Over(6월이 팡팡 터져요)’와 선원들이 함께 부르는 ‘Blow High, Blow Low(바람아 불어라)’에 이르기까지 웅장한 25인조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2시간 반이 넘는 시간을 감싸며 이야기의 빈 부분들을 빠짐없이 채워준다. 여기에 이제 갓 서른이 된 젊은 안무가 저스틴 펙은 발레와 현대 무용의 움직임을 적절히 섞어 고전적인 작품을 현대화했다. 그 결과 움직임을 통해 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면서도 작품의 분위기가 처지지 않게 해주었다. 이런 안무가 특히 돋보였던 장면은 선원들과 빌리 그리고 지거가 함께 노래하는 앙상블 넘버인 ‘Blow High, Blow Low(바람아 불어라)’였는데, 선원들의 역동적인 모습과 바닷사람들의 배포를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작품으로서의 완성도

이런 여러 이유로 <회전목마>는 지난 몇 년간 브로드웨이의 리바이벌 중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작품을 보고 그 속에서 드러난 문제들에 대해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에 내재된 폭력을 정당화하고 낭만화하는 내러티브는 작품을 새로 쓰지 않는 이상 지워낼 수 없고, <회전목마>는 분명 명작이자 문제작인 지금의 위치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극장을 나서면서 ‘지금 이 시점에 왜 <회전목마>가 브로드웨이에 올려졌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찾지 못했다. 어쩌면 답이 나왔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건 별과 달이 휘영청 떠 있는 <회전목마>의 세상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대답일지 모르니 말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7호 2018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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