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우, 모처럼 자신의 나이를 찾았다. 아담한 체구에 앳된 미소, 애교 어린 말투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한참 어리게 보이는 배우,그래서 톡톡 튀고 귀여운 이미지의 캐릭터 또는 정말 어린아이를 주로 맡았던 배우 오소연, 그녀가 매일 밤 엣지스 바에서 벼랑 끝에 몰린 20대 후반 청춘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소연은 무대에서 보여준 나이와 캐릭터의 스펙트럼으로 인해 배우 자체보다는 그녀가 맡았던 배역으로 기억하게 되는 독특한 배우다. 그래서인지 보통 이름보다 얼굴로 기억하게 되는 것이 배우임에도, 그의 얼굴을 비로소 제대로 보고 그만의 행동과 말투, 노래를 각인하게 된 것은 <엣지스>에서다.
소풍 가면 꼭 앞에 나가 춤추고 노래 부르던 작고 예쁜 아이, 오소연은 학교 앞 제과점에 붙어 있던 공고를 본 친구들의 추천으로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처음 뮤지컬 오디션에 지원했다. 바로 1996년에 있었던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오리지널 팀 첫 내한 공연에 출연할 아역 오디션이었다. “뮤지컬이 뭔지도 몰랐을 땐데 왠지 해보고 싶었어요. 엄마를 졸라서 원서를 넣고,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 노래를 배워서 준비했죠. 오디션 곡은 한국어로 불러도 되는데, 왠지 영어로 불러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야무진 소녀는 인생의 첫 오디션에서 코제트 역을 맡게 되었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천안과 서울을 오가야 했다. 하지만 집과 공연장을 오가는 시간도, 무대에 오르는 시간도 늘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억이 생생하죠. 지금도 전주가 흐르면 동선까지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해도 어쩌면 그렇게 안 떨고 공연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땐 이게 얼마나 소중한 일이고,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정말 몰라서 그 자체를 즐거워했던 것 같아요.”
그 일을 계기로 몇 차례 TV출연도 하고, 콘서트에도 설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녀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다. 요즘 같으면 ‘뮤지컬 영재’라며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땐 그저 평생 기억에 남을 하나의 이벤트였을 뿐이고, 순수하게 즐긴 거라 부모도 아이도 욕심이 없었다.
이 열두 살 때의 추억이 인생을 결정할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학창 시절 지독한 방황의 시간을 거치게 된 그는 너무 어린 나이에 마주하게 된 인생의 벼랑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욕심을 품게 되었다. “그때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뭘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무엇을 하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레 미제라블> 음반을 듣기 시작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열두 살 때의 기억이 음악을 통해서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이게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겐 이것밖에 없구나.’ 그래서 다시 해보기로 했어요. 제 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였죠.”
긴 방황의 터널을 벗어나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뮤지컬과에 입학하여 처음 받아보는 연기 수업, 보컬 레슨, 발레, 탭, 재즈 댄스 수업 등 모든 게 새로웠다. 연습실 외에는 갈 곳이 없어 2년 간 정말 열심히 실기 연습에 주력했다. 하지만 졸업 후 닥치는 대로 보러 다녔던 오디션에서 뚜렷한 이목구비, 예쁘고 시원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160cm가 채 안 되는 작은 키 때문에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정말 열심히 오디션을 봤는데 제가 몸이 작고 왜소해서 화려하고 멋지게 춤을 춰야하는 앙상블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고요. 대체 어느 길을 가야 하나 싶었어요.”
그러던 2005년 <찰리 브라운>의 조역 샐리로 데뷔한다. 이후 중소극장에서 <빙고>, <러브 앤 블라인드> 등에 출연하면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오다 2008년, 작지만 당찬 그에게 딱 맞는 역할과 만난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였다. “대극장에 주역으로 서는 건 처음이었어요. 공연 전에 극장에 갔는데, 이 넓은 곳에서 제가 ‘Over the Rainbow’를 부를 생각을 하니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첫 공연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두 번째 공연엔 정말 큰 각오를 하고 갔는데, 그때까지 소극장에서는 느껴본 적 없었던 감정을 느꼈어요. 관객도 아무도 없고 오직 나만 혼자 있다는 느낌. 그러다 박수 소리로 내가 공연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이후로는 그 상황 자체에 집중해서 잘했어요. 그런 면에서 제게 큰 의미를 준 작품이죠.”
이후 그는 <슈샤인 보이>의 민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테아, <피맛골 연가>의 함이 등을 거치며 귀엽고 어려 보이는 이미지의 역할을 주로 맡게 된다. 이십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는 정서상으로나 이미지 고착에 부담이 될 듯도 하다. “제 나이에 맞고, 여성스럽고, 현실적인 역할을 맡고 싶다는 고민을 선배들에게 털어놓은 적이 많아요.” 이런 그의 조바심을 다독여준 선배가 바로 조정은이다. “내가 바꾸려 하지 않아도 바뀌는 시기가 있으니 그때를 기다리면서 현재 할 수 있는 것을 잘하라고 하셨죠. 그리고 나만의 것을 가지고 있는 것도 참 좋은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앞으로 ‘오소연이라면 잘해 낼 거야’ 이런 믿음을 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은 오소연은 데뷔 7년 차, 한번도 쉼 없이 달려온 스케줄을 잠시 접고 이번 공연이 끝나면 잠시 휴식을 가지려 한다. 가능성을 품기 위해, 자신을 옭아매는 굴레에서 자유로운 배우가 되기 위해 잠시 갖는 쉼이다. “계속 조급한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스스로가 조금 바뀌어야 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여행을 다녀오려고요. 생각도 정리하고, 좋아하는 공연도 직접 보고 그 나라의 정서를 체험해보고 싶어요. 그러다 정말 좋아서 덜컥 유학 결정을 해버리면 어쩌죠?(웃음)” 어쩌긴, 좋은 거다. 아직 스물일곱이니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8호 2011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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