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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스트레이트 화이트 멘>, ​백인 남성이자 이성애자라는 인간상 [No.180]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8-09-06 4,737

<스트레이트 화이트 멘>  STRAIGHT WHITE MEN, 백인 남성이자 이성애자라는 인간상

 


 

불편함과 더 불편함

한국계 미국인 극작가 영진 리의 브로드웨이 데뷔 공연인 연극 <스트레이트 화이트 멘>이 공연되고 있는 헬렌 헤이스 극장에 들어서면 클럽에서나 들을 법한 힙합 음악이 관객들을 반긴다. 조금 큰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하는 힙한 분위기의 음식점처럼 공연장 전체를 가득 채우는 음악은 어떤 관객에게는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신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지만, 일부 관객에게는 소음처럼 불편함을 조성하기도 한다. 무대 앞에 내려져 있는 은색 반짝이 커튼도 마치 클럽이나 카바레를 연상시킬 만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한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과 짧은 대화를 나누며 관객을 반기는 인물은 자신을 관리자라고 소개하는데, 관객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이야기하라면서(예를 들어 음악이 너무 시끄럽다는 관객들에게는 주머니에서 스티로폼 귀마개를 꺼내서 준다든지) 친절하게 대한다. 관리자는 두 명인데, 한 명은 아래층에서 다른 한 명은 위층에서 관객들을 맞이한다. 이들은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면 무대로 올라가 공식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소개하고 어떻게 이 작품을 봐야 할지 틀을 짜주는 역할을 한다. <스트레이트 화이트 멘>에서 관리자라고 말하는 그들은 백인도, 남성도, 이성애자도 아닌 인물인데, 여기에 작품의 메시지가 있다. 관리자는 작품의 제목과는 동떨어진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이다. 미국 인디언의 후예이자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를 벗어난 배우 타이 데포와 백인 남성이었지만 성전환 수술을 받은 배우 케이트 본스타인이 그들이다. 이 둘은 오프닝 외에도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조명이 어두워진 무대 위에 올라와서 무대와 배우를 세팅해 준다. 다시 말해,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을 살펴보는 작품의 책임자가 이성애자 백인 남성이 아니며 이들의 존재와 역할에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들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

 

익숙한 것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작품에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들의 대다수는 중산층, 백인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브로드웨이의 주류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브로드웨이 입성 전인 2014년 오프브로드웨이의 퍼블릭 시어터에 올라간 초연에서는 관리자가 무대로 나와 대화하고 무대를 세팅하는 설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퍼블릭 시어터의 관객층은 상대적으로 훨씬 젊고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졌지만, 브로드웨이의 관객층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편이기 때문에 관객 성향의 차이를 고려해서 추가된 설정일 것이다. 또한 초연 당시 작가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았다던 리뷰를 반영한 것일까. 이번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시작부터 작가의 의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스트레이트 화이트 멘>은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이 쓴 작품도, 그들이 세상의 중심인 공연도 아니다. 이성애자 백인 남성을 그린 작품이지만, 그들을 관찰자적 시점에서 바라보고 연구한 작품이다. 마치 인류학적인 연구를 하듯이 말이다. 프롤로그를 통해서 관리자가 작품을 소개하며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고, 본격적으로 무대가 드러나면 이 부분은 좀 더 명확해진다. 커튼이 올라가고 보이는 무대 중간에는 커다란 나무 액자 틀이 놓여 있고, 액자 아래에 붙여진 금색 철판 위에 작품의 제목인 ‘Straight White Men’이 적혀 있다. 가운데에 소파와 탁자가 놓여 있어 여느 평범한 집의 응접실을 연상시키는데, 이것들은 모두 액자 틀 안에 세팅이 되어 있다. 다시 말해 관리자의 소개로 시작되는 이성애자 백인 남성의 삶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처럼 보인다. 
 

짧은 3막에 걸쳐 공연되는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다룬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세 아들 매트, 제이크, 드루가 아빠의 집에 다 같이 모인다. 매트는 어렸을 때부터 똑똑한 백인 남성으로서 자신이 가진 특권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었던 맏형인데, 몇 년 전부터 아빠 집에 들어와서 특별한 직업 없이 작은 오피스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고 있다. 제이크는 전형적인 월가에서 일하는 은행원으로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왠지 재수 없는 스타일이다. 그는 자신의 특권에 대해 알고 있지만, 가족과 개인의 성공을 우선순위에 둔다. 막내인 드루는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작가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생활한다. 이들이 자신의 특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은 일찍 돌아가신 엄마의 영향이 크다. 다들 잘 알고 있는 보드게임인 모노폴리를 ‘특권(Privilege)’으로 바꿔서 미국 사회의 인종주의와 경제적, 성적 불평등에 대해서 가르칠 정도로 진보적인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나온다. 아빠는 엔지니어로 퇴직할 때까지 가족을 부양하는 평범한 인물이다. 이 가족들의 특징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정도 된 세 형제가 함께 노는 모습들이 굉장히 유치하다는 점이다.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드루가 소파에 앉아 비디오 게임에 푹 빠져 있는 제이크를 귀찮게 해 결국 서로 조금 치고받으며 싸우기까지 하는데, 이런 관계는 공연 내내 계속된다.  
 

이야기는 다 같이 밥을 먹다가 매트가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눈물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백인 이성애자 남성의 삶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이 펼쳐진다. 일단 아빠와 두 동생이 하버드를 졸업하고 앞길이 창창했지만 별다른 커리어 없이 사는 매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드러난다. 아빠는 매트가 학자금 대출을 받았던 것을 못 갚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빚을 갚아주겠다고 제안한다. 제이크는 매트가 사회에서 억압적인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 드루는 그가 분명 심리적으로 풀어야 할 부분들이 있을 거라며 심리 상담을 받아보라고 조언한다. 결과적으로 매트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서 사는 것이 나쁘지 않으며 괜찮다고 하는데, 여기서 가족들은 벽을 느낀다. 제이크는 매트가 아무 이유 없이 ‘루저’로 살면서 인생을 낭비한다고 비난한다. 드루는 매트에게 이런 식으로 삶을 포기하지 말라며 그를 떠난다. 아빠 역시 도대체 뭐가 문제냐며 대체 네가 누군지 모르겠다며 자신이 아빠로서 실패한 것 같다고, 더는 자신을 핑계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매트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으로 공연이 끝난다.



 

온정적이지만 미묘하게 비판적인 묘사

이렇게 끝나는 이야기는 특별함이 없는 일상 이야기처럼 들린다. 앞길이 창창해 보였던 인물이 주위의 기대와는 다르게 자신의 잠재력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주변에서 아쉬워하는 모습과 현재 자신에 만족하는 모습은 이성애자인 백인 남성이라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진 리가 관리자를 통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에게 꽤 온정적인 측면이 있다. 이성애자이고 백인이고 남성인 삼중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자들에게 자신의 잠재력을 펼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낙오자로 보인다는 것, 그리고 이런 압력이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무대의 액자 안에서 공연하고, 장면 전환에서 관리자가 배우들의 손을 잡고 나와서 이들을 세팅한다는 특징은 익숙할 수 있는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보이게 한다. 이성애자 백인 남성 배우들이 사실주의적인 전통을 따라서 이야기를 진행하지만, 이야기의 틀을 짜주는 것은 이성애자도, 백인도, 남성도 아닌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네 명의 남성들이 전해 주는 이야기는 어떤 부분에서는 화자와 내용이 분리되어 들린다. 다시 말해 네 명의 남성들은 그저 이야기를 전해 주는, 말 그대로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연극 바깥에 존재하는 관리자와 달리 그들의 역할에 갇혀 있는 (실제로 액자에 갇혀 있으니) 이성애자이자 백인 남성인 이 배우들은 관리자보다 자각이 적은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특정 그룹의 인간 군상을 향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브로드웨이에서, 아니 미국 사회에서 백인, 남성, 그리고 이성애자는 아주 오랫동안 미국 사람의 기본값으로 여겨져 왔다. 때문에 온갖 소수 민족에 대해서는 논의가 이뤄졌지만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기본 중의 기본인 인물들을 특정해 논의해 본 적은 없었다. 영진 리가 때로는 비판적으로, 때로는 온정적으로 연구하듯이 써 내려간 작품은 여태까지 연구되어 오지 않았던 그룹을 여러 뉘앙스로 묘사했다는 데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이는 한국계 미국인 극작가로 뉴욕 다운타운에서 오랫동안 자기의 재능을 드러냈던 영진 리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한국계 미국인 여자 작가인 자신이 미국 사회에서 자라면서 겪었던 얘기들을 콘서트 형식으로 엮은 공연인 <우리는 다 죽을 거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진 리의 이전 작품들은 미국 사회의 동양인뿐 아니라 여성, 흑인 등 다양한 집단을 온정적이자 한편으로는 자극적으로 묘사해 냈다. 여러 작품을 통해서 보여줬던 그녀의 탐구적이고 재치 있는 극작이 <스트레이트 화이트 멘>에서도 잘 드러난다.
 

물론 브로드웨이의 역사를 통틀어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의 작품이 올려진 것이 처음이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가치를 갖고, 많은 매체가 이런 이유로 큰 관심을 보였다. 아마 오프브로드웨이의 역사 깊은 프로덕션인 세컨드 스테이지 시어터가 그들의 첫 브로드웨이 작품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것도 이런 여러 이유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에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이름을 알린 아미 해머를 드루 역에 캐스팅하고 드라마 <굿 와이프> 등에서 비슷한 느낌의 백인 캐릭터를 맡아왔던 조쉬 찰스를 제이크로 캐스팅한 것은 브로드웨이에서 더 다양한 관객들을 모으는 데 효과적이었다.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영진 리가 직접 연출을 한 반면, 이번에는 시카고의 역사 깊은 극단 스테판울프의 예술감독인 안나 샤피로가 연출을 맡았다. 그녀는  여러 중층적인 메시지가 있는 작품에서 관객들이 네 남자의 이야기와 내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브로드웨이답지 않은 브로드웨이 작품

영진 리의 이번 작품은 내용이나 메시지를 볼 때 브로드웨이와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실제로 많은 관객이 시끄러운 노래에 불쾌감을 표시했을 정도다. 또 공연 중에 한 여자 관객이 무대 위에 있던 관리자 케이트 본스타인에게 “너는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어!”라고 소리쳤는데, 브로드웨이의 관객층이 작품의 가치관과 부딪힘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이런 점에서 브로드웨이스럽지 않은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꽤 고무적이긴 하다. 또 영진 리가 작품을 통해 미국 공연계에 화두를 던진 것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관리자를 통해서 관객에게 틀을 짜주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일차원적이고, 직접적이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마저도, 지금의 브로드웨이 관객에게는 필요하다는 점에서 작품은 이번 시즌 브로드웨이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0호 2018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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