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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천국의 눈물> 전동석(3) [No.88]

글 |김영주 사진 |김호근 스타일리스트 | 하상희 2011-01-17 8,612

어쩌면 당신이 생각한 그 이상,  전동석

 

한국인을 연기하는 건 처음이네요.  편해요. 한국 사람이고, 또 군인이다 보니까. 제대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일 년 반이 좀 넘었어요. 막 제대했을 때보다 요즘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더 많이 꾸고 있어요. 작품도 이런 내용이지만 최근에 북한과 그 사건도 있었고. 게다가 해병대 병사가 전사했으니까 아무래도 마음이 더 안 좋아요. 해병대에 있을 때, 해안 근무를 나갈 때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북해군이 침투해서 전사자가 났던 곳에 있었는데, 그때는 그럴 수도 있다는 게 두렵지는 않았어요. 너무 힘이 들 때였으니까, 차라리 그런 일이라도 터져서 이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학교에서는 이질감이 들지는 않았어요? 한예종에 해병대 출신 학생은 정말 없을 것 같은데. 

거의 없죠. 군대를 그렇게 갔다 오니까 확실히 사회생활은 편하게 느껴져요. 아무리 작품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도 군대에 있을 때보다는 이게 훨씬 더 편하니까요. 입대하고 꽤 오랫동안 거울도 보면 안 되는 곳이었어요. 저는 주일만을 기다렸어요.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니까. 정말로 간절하게 기다렸고, 교회에 있을 때는 한없이 편했어요. 그런 경험이 빨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친구들을 보면 이상할 정도로 풋풋해 보여요.(웃음) 이번 학기는 휴학을 했는데 가끔 학교에 가서 친구가 피아노를 치고 제가 옆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다른 친구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굉장히 행복해요. 그립기도 하고. 하지만 이 길을 선택 했으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고 하죠. 괜히 미련을 못 버리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해요. 나만 더 괴롭잖아요.


성악전공자면서 해병대에서 군생활을 한 경험이 작가 지망생이면서 베트남전의 한복판에서 싸우게 되는 준의 혼란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준이라는 인물에게 중요한 요소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베트남전에 참전 중인 군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린과의 멜로잖아요. 둘 중 어느 쪽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어려워요? 

솔직히 저는 멜로와 좀 안 맞는 것 같아요.(웃음) 아, 사랑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딱 한 사람을 사랑했죠. 준에게도 린은 단 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한국에 돌아와서 결혼은 했을 것 같아요. 티비에서 이산가족 다큐를 봤는데, 남한에서 재혼한 할아버지가 북에 두고 온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한 거예요. 그런데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자리에는 딸이 나왔더라고요. 아마 준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왜냐하면 준이 50대가 되어서 자기 딸 티아나를 만나러 갔을 때, 그 자리에 자기에게 거짓말을 해서 린과 갈라놓은 여자 퀴엔이 같이 있거든요. 만약 준이 그때까지 결혼도 하지 않았고 다른 자식도 없었다면, 거짓말을 한 그 여자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작품 속에서 준은 그 여자를 보면서도 감정을 누르고 있어요. 단지 나이를 먹은 것만으로는 그러지 못했을 것 같아서, 준도 자기 가정을 꾸리고 가장이 되어서 그만큼 연륜을 쌓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사실 나도 잘못했으니까. 내가 린을 마지막까지 믿었다면,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린을 다시 만나려고 했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으니까 나 역시 퀴엔을 탓할 자격이 없는 거죠.


준은 린을 어떻게 사랑하게 되죠? 

린은 클럽에서 노래하는 여자, 게다가 아주 예쁜 여자, 상사의 여자이기도 하죠. 준은 군인이잖아요. 군인은 원래 여자를 좋아합니다.(웃음) 처음에는 사랑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런 마음으로 좋아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린이라는 이 여자는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하고 주목받고 싶어 하는, 흔히들 예술가적인 기질이라고 말하는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슬픔이 있어요. 준은 린이 갖고 있는 상처와 슬픔을 알게 되면서 지켜주고 싶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 마음이 사랑이 되는 거죠.

프랭크 와일드혼의 작품을 연이어서 하고 있어요. 

사실 <지킬 앤 하이드>나 <몬테 크리스토> 곡들을 부를 때면 이 곡들이 정말 나랑 잘 맞구나 싶어서 스스로 감탄을 할 정도였는데 이 작품은…  노래가 정말 어렵더라고요.(웃음) 특히 앙상블 곡들이 대단해요. 고음이 계속 나오는데, 이 작품이 올라가면 앙상블상은 무조건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뮤지컬 콘서트에서 <엘리자벳>의 루돌프 황태자 역으로 노래를 했죠.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전체 작품을 연기해 보지 않은 인물로 노래를 하는 게 어렵지 않던가요?

독일어는 성악과 수업에서 배운 거죠? 딕션이 좋아서 놀랐어요.  처음에는 저는 한국어로, 우베는 독일어로 부르는 거였는데 아무래도 어색할 것 같아서 혼자 사전 찾아가면서 독일어로 준비를 해서 그렇게 불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어요. 사실 저는 <엘리자벳>이라는 작품 속의 루돌프 캐릭터를 연기한다고는 생각을 안했어요. 대결 구도로 갔죠. 콘서트인데다가 루돌프라는 인물로는 한 곡을 부르는 건데, 작품 속 설정에 충실하게 가는 게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죽음과 맞대결을 하는 구도로 가면 어떨까 생각을 했죠.


우베 크뢰거가 뭐라고 하던가요. 

존중한다고. 우베와 루돌프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저는 루돌프가 죽음을 바라본다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루돌프의 입장에서 죽음 역인 우베에게 말을 했어요. 나는 죽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당신에게서 벗어나고 싶고, 당신을 적대할 것 같다고. 그래서 그런 구도로 가게 된 거에요.

 

1년 반 동안 이만큼 빨리 달려온 배우가 있을까 싶을 정도에요. 스스로 돌이켜 보면 어떤 생각을 해요? 

<천국의 눈물>전까지 네 편을 했는데 하나하나 할 때마다 너무 많은 것을 얻어서요. 나한테는 네 작품이 모두 터닝 포인트에요. 작품마다 방향을 바꿔서 돌고 또 돌아요. 한 작품을 할 때마다 정말 많이 가르쳐주시고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다 다시하고 싶어요.(웃음) 제일 다시  하고 싶은 작품은 <노트르담 드 파리>고요.

 

전동석이 그랭구아르로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섰던 그 공연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낯선 곳에서 큰 역할을 짊어진 신인의 당혹스러움이 언뜻언뜻 스쳐지나갈 때마다 그는 남자라기보다는 소년처럼 보였다. 뮤지컬 배우보다는 오페라 가수로서 배우고 단련해온 시간이 훨씬 길었던 새로운 그랭구아르는 솔로곡을 부를 때면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 듣기 좋은 미성으로 서정적인 노래를 들려주었다. 전동석의 첫 무대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힘들이지 않고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였다. 어쩌면 지나치게 아름답다고 지적받을 수도 있을 만큼 도드라지는 ‘대성당들의 노래’와 ‘달’을 들은 지 1년 반이 지났다. 두 편의 유럽 뮤지컬과 한 편의 연극을 경험한 후, 수 천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우베 크뢰거와 팽팽한 대결 구도를 만드는 전동석은 1년 반 전에 그랭구아르를 연기하던 소년과는 다른 배우처럼 보였다. 분노와 당혹감, 투쟁심 같은 어둡고 뜨거운 감정들이 그 노래에서 생생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첫인상과 상당히 다른 사람인 듯하다. <천국의 눈물>에서 준이 린에게 들려주는 비둘기를 사랑한 젊은 호랑이의 모험담은 그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아슬아슬하다 싶을 만큼 솔직하고 거침없는 이 신인은 다음 무대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기대와 호기심은 불러일으키는 젊은 배우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8호 2011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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