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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젠틀맨스 가이드:사랑과 살인편> 이규형, 각양각색 조각의 매력 [No.182]

글 |박보라 사진 |배임석 2018-11-28 9,360

<젠틀맨스 가이드:사랑과 살인편> 이규형, 각양각색 조각의 매력

 

올해 초 <팬레터>의 무대에 오른 이규형이 새로운 신작으로 다시 무대를 찾는다. 대중에겐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미워할 수 없는 ‘해롱이’로 익숙한 이규형은 사실 긴 시간 동안 무대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전한 배우다. 그가 그저 좋은 드라마와 캐릭터로 ‘빵’ 떠버렸다고 말하기엔 억울할 정도로, 그가 걸어온 발자국은 진지하고 묵묵하다. 이번에 그가 나선 도전은 1인 9역의 까다롭고 재미있는 역할 변신을 선보이는 것이다.  


 

아홉 명의 분신과 함께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 생활>과 <라이프> 이후에 많은 인기를 얻었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고, <젠틀맨스 가이드:사랑과 살인편>(이하 <젠틀맨스 가이드>)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라이프>를 무사히 끝내고, 지금은 영화 <증인>과 <디바>를 촬영 중이에요. 바쁜 스케줄 중 열심히 <젠틀맨스 가이드>를 연습하고 있죠. 올해 초 초연에 이어서 <팬레터>의 재연 공연에 참여했는데, <슬기로운 감빵 생활>을 마치고 한 거라 많은 회차에 참여하지 못했어요. 대만 공연도 참여하긴 했지만요. 드라마와 영화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무대가 그리워지더라고요. 감사하게도 여러 작품을 제안받았는데, 고민 끝에 <젠틀맨스 가이드>를 만난 거죠.
 

<젠틀맨스 가이드>는 1900년대 서양이 배경이에요. 서양 시대극은 처음이지 않아요? 

맞아요. 서양의 시대극과 고전극은 학생 때 많이 했는데, 프로 무대에서 하는 건 처음이네요. 2인극에 비하면 대사량이 많다고 할 수는 없어요. 대신 대사량보다도 제가 맡은 다이스퀴스는 1인 9역을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죠. 
 

연극 <날 보러 와요>에서는 1인 4역을, <도둑맞은 책>에서도 1인 다역을 한 적이 있어요. 이번 다역은 그때와 어떻게 다른가요?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도 최병호 외에도 중간중간 다른 캐릭터로 나오기도 했어요. 이번 작품은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각각 캐릭터(다이스퀴스)의 특징이 뚜렷해요. 또 시대 배경과 인물에 대한 소개가 내레이션으로 나오기도 하죠. 전 최대한 텍스트에 나와 있는 부분을 잘 만들려 하고 있어요. 뮤지컬이다 보니까 캐릭터마다 각기 다른 음색으로 불러야 하는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또 움직임이나 얼굴 표정 같은 것도 변화를 주어야만 하고요. 지금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웃음) 다이스퀴스가 트리플로 캐스팅이 됐는데, 오만석 선배와 한지상 형과 연습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어요. 
 

아홉 캐릭터마다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럼 지금까지 구상한 캐릭터에 대해 힌트를 줄 수 있나요?

이 아홉 명은 굉장히 돈이 많은 귀족, 백작 집안의 사람들이에요. 공통적으로는 안하무인의 성격에 거의 다 죽고 말죠. 작품을 잠깐 설명하자면, 주인공 몬티가 백작이 되기 위해 백작의 후계자인 다이스퀴스를 죽여요. 1막에서는 다양한 다이스퀴스가 나오고, 2막에는 한 명의 다이스퀴스로 조금 오래 나와요. 2막에 나오는 이 다이스퀴스는 아홉 다이스퀴스 중에 제일 이야기가 많아요. 사실 어제 막 2막의 연습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래서 중요한 다이스퀴스의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1인 9역이다 보니까 상당히 빠른 변신이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각오는 되어 있나요?

퀵 체인지는 의상 팀과 분장 팀의 스태프들께서 큰 도움을 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서둘러야만 해요. 그것밖에 방법이 없더라고요. 여러 스태프들과 손발이 착착 맞아야만 해서 많은 연습이 필요하죠.
 

다이스퀴스들은 차례로 죽잖아요. 그중 가장 임팩트 있는 죽음이 있나요? 

스포해도 되나요? (웃음) 일단 물에 빠져 죽는 것도 있고 심장 마비도 있고 벌에 쏘여 죽는 것도 있어요. 진짜 총을 소품 총인 줄 알고 자기 머리에 쏴서 죽기도 하고 식인종에게 잡혀 먹힐 뻔하다가 살아났는데도 결국 죽게 되는 다이스퀴스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다이스퀴스의 죽음은 운동을 하다가 바벨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죽을 때예요. (등장하면 죽어요. 혹시 억울하지는 않나요?) 아니요. 다이스퀴스가 기깔나게 죽어야 작품이 살아요. 
 

반전이 있더라고요. 이걸 극적이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나요?

마지막 엔딩의 합창곡에서 마지막 다이스퀴스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반전이 될 것 같아요. 이런 반전을 위해서 전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가 있죠. 사실 요즘 관객은 워낙 수준이 높고 작품을 많이 보잖아요. 눈치 빠르신 분들은 바로 반전을 알아 차릴 수 있어서 제가 더 집중해야만 하겠더라고요. 
 

열린 결말이기도 해요. 

딱 정해진 결말을 보여주진 않아요. 관객이 생각하기 나름이죠. 사실 몬티는 백작이 되기 위해 여덟 명의 다이스퀴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극악무도한 살인자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관객들이 몬티라는 인물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바라보고, 몬티를 응원하게 만들어야만 해요. 그래서 다양한 다이스퀴스가 몬티보다 더 나쁜 인물처럼 보여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코미디 장르는 무대화하는 게 상당히 어렵잖아요. 어떤가요? 

<젠틀맨스 가이드>는 대놓고 코미디를 표방하는 작품이에요. 기본적으로 대사들이 정말 유머러스해요. 완전히 서양식 코미디인데, 우리가 이해 못하는 코드나 역사적인 배경이 있어요. 사실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은 이런 모든 지식을 인지하고 오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번안, 각색을 맡은 작가님께서 시대적인 배경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적인 코미디 코드를 많이 접목하려 부단히 노력 중이세요. 하루에도 몇 번씩 장면에 대한 수정본이 나오고,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연출님이 읽고 피드백하고, 그리고 또 수정하고! 거의 매일 이렇게 보내고 있죠. 아무래도 초연이니 거의 창작극을 만들듯이 덤벼드는 것 같아요. 아, 안무도 기존에 브로드웨이 공연의 큰 틀은 유지한 채 저희 안무 선생님께서 배우들과 함께 계속 디테일을 만들고 있어요. 


 

애드리브에 강점을 가진 배우라는 평을 받고 있어요. 이번 <젠틀맨스 가이드>에서 애드리브는 어느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사실 뮤지컬은 음악 안에서 놀아야 하기 때문에 애드리브가 많아지면 전체적인 템포를 놓치고 갈 수 있어요. 또 다이스퀴스는 세 명의 배우가 번갈아 연기하니까, 대사를 통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대사에 물려 음악이 나오기도 해서, 배우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다 섞어 조합을 하거나 그중 가장 괜찮은 걸 선택하고 있죠. 

작품의 매력 포인트를 알려줄 수 있나요?

진지하게 접근하면, 주인공 몬티는 사이코패스라 볼 수 있어요. 안 그래도 어제 그 장면을 연습했는데, 몬티의 감정 변화가 한 노래 안에서 변화무쌍하게 보여요. 슬퍼하다가 당황하다가 화내다가 인물이 한 노래 안에서 극단의 감정을 계속 표현하는 장면이 있어요. 이 부분을 코믹하게 풀어냈죠. 어제 연습하면서 그 장면을 다이스퀴스 배우들이 지켜보는데, 동시에 정말 멋진 장면이라고 감탄했다니까요!  
 

몬티 말고 다이스퀴스의 매력 포인트는 너무 많죠.

다이스퀴스의 매력 포인트를 말하자면 아홉 개나 이야기를 해야 해요. (웃음) 그런데 공통의 매력 포인트를 꼽자면, 각각의 다이스퀴스는 어딘가에 꽂혀 있어요. 전쟁, 상황극, 운동, 자선사업, 양봉, 건축 양식 등등에요. 이런 특별한 애정 포인트를 잘 표현해 내면 다이스퀴스의 매력을 더 잘 보여줄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젠틀맨스 가이드>는 대단한 배우들과 함께해요. 연습실 분위기가 정말 재미있다고 하던데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게 저희끼리만 있어서 웃긴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중요한 것은 관객까지 함께 재미있어 해야만 하니까요. <젠틀맨스 가이드>가 우리나라 관객을 처음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계속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도전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연습실 분위기는 정말 재미있어요! 

 


 

버티는 삶을 넘어

 

드라마를 통해 규형 씨를 알게 된 팬들이 공연에도 관심을 갖더라고요.

어휴, 정말 감사하죠. 드라마는 접하기 쉽잖아요. 집에서 TV를 켜고 보면 되니까. 그런데 공연을 보는 건, 티켓을 예매하고 먼 거리까지 차비를 들여서 이동을 해야 해요. 밖으로 나오면 밥도 먹어야 하고 그렇잖아요. 이렇게 공연을 보러 공연장에 오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니에요.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로 인해 저를 알게 된 분들이 제 공연을 보러 오시고 그러다 공연의 매력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요. 제가 출연하는 공연뿐 아니라 대학로나 다른 곳에도 정말 좋은 공연이 많으니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동국대학교 재학 당시에 수업 시간에 맨 앞에 앉아 공부하고, 장학금 받으려고 상당히 노력했다고요. 심지어 수업 준비를 안 해온 후배들에게 상당히 엄했다는 소문도 들었어요. 

아니, 그때는 기본적인 부분을 안 지키는 후배들을 조용히 불러서 이야기했어요. ‘조용히’의 의미는 정말 ‘조용히’였죠. (웃음) 기본적인 부분을 안 지키면 꼭 짚고 넘어갔어요. 예를 들자면, 트레이닝을 해야 하는데 위험한 액세서리를 하고 있다거나 할 때요. 왜냐면 다칠 수도 있잖아요.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이었을 때인데, 군대에 있는 동안 얼마나 연기를 하고 싶었겠어요. 연기 열정이 불타오르던 시절이었죠. 특히 공연은 개인만의 힘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어요. 단체로 완성되는 무대죠. 그래서 아주 사소하고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은 어긋나더라고요. 정말 그땐 조용히 이야기했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정말 조용히! (웃음) 
 

그런 열정 넘치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 어때요?

‘조금 더 느슨했어도 됐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시는 너무 절실했기 때문에 즐기지도,  놀지도 못 하고 살았는데 돌아보면 ‘돌아오지 않는 이십 대’더라고요.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그렇게 안 살 것 같아요. 조금 더 마음을 여유 있게 가지고, 여행도 다니고 그러고 싶어요.
 

프로 무대에 데뷔하고 나서도 직접 프로필 사진을 들고 영화사나 제작사 투어를 다닐 만큼 열정을 쏟아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는 무조건 기회를 따내야만 했어요. 버티는 것에 에너지 소모가 심했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는 기본이었고, 한 8년 정도 입시생들 레슨도 했어요. 학교 다니면서 대학로에서 공연했고, 시간 날 때마다 프로필 투어를 돌았고요. 와, 정말 그때는 놀 시간이 없었어요. 스무 살 때부터 집에서 한 푼도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았고, 등록금도 제 힘으로 해결해야 했거든요. 원체 독립적인 성격이기도 했고. (웃음) 그러다 보니까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연기는 하고 싶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 찾아주지 않는 업계니까 이 모든 걸 병행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사실 감사하게도 지금은 예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죠. 그 당시에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의 제가 있는 거라 생각해요. 방금 과거로 돌아가면 조금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이십 대를 마냥 여유롭게 보냈다면 삼사십 대가 어려워졌을 거예요. 사실 주변에도 연기를 포기하는 친구가 많아요. 살아남는 게 정말 쉽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아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만 하죠. 
 

그럼 마지막으로 배우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덕목은?

뻔한 대답이긴 하지만 꾸준함이요. 꾸준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도태되고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되더라고요.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하고, 무엇이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고민해야만 해요. 물론 인성은 기본이고요. 공부라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재미를 붙일 수 있는 걸 찾아서 하다보면 신기하게도 언젠간 배우로서 필요한 순간들이 오더라고요. 배우는 뭐든 다 조금씩, 조금씩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2호 2018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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