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뮤지컬 결산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됐다. 올해 뮤지컬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기록할 만한 이슈 되짚기와 한 해의 작품 점검까지, 2018년 세밑에 마침표를 찍기 전, 올해의 뮤지컬계를 결산해 본다.
올해의 뮤지컬 GOOD & BAD
*작품 선정 기준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개막한 작품 가운데 초연 또는 대본이나 음악, 연출에 큰 변화가 있었던 재연.
*외부 참여자 <스테이지톡> 최영현 기자
GOOD <타이타닉>
2017년 11월 8일~2018년 2월 11일
1997년 작품이지만, 특정한 주인공 없이 여러 승객의 일화를 뒤섞은 <타이타닉>의 대본은 지금 봐도 실험적이다. 이번 국내 공연은 파편화된 드라마에 따라붙는 산만함을 깔끔한 연출과 독창적인 무대로 상쇄했다는 점에서 칭찬하고 싶다. 특히 극장 천장까지 닿는 층계는 거대한 배를 연상하게 하면서 선실의 격차까지도 한눈에 표현했다. 작품은 타이타닉의 침몰이 인재였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등장인물 가운데 누구 하나를 콕 집어 단죄하거나 영웅으로 돌리지 않는다. 비극 속에 놓인 다양한 인간 군상을 바라보는 이 작품의 시선은 기본적으로 관조적이다. 관찰 카메라를 보는 듯한 냉정함이 <타이타닉>의 매력이지만, 그 냉정함이 가라앉은 배에서 또 다른 비극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국내 관객의 정서와 불화한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안세영
BAD <타이타닉>
2017년 11월 8일~2018년 2월 11일
당대 최고의 배였던 타이타닉처럼 뮤지컬의 시작은 화려했다. 해외 유명 뮤지컬 상 수상 내역, 국내 제작진의 브로드웨이를 향한 야심 찬 포부, 어떻게 이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았을까 싶은 캐스팅 등등 개막 전부터 작품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하는 요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기대감은 타이타닉을 형상화한 독특한 무대와 오프닝 넘버까지 계속됐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어난 비극을 이야기하면서 억지 눈물 뽑아내는 설정 없이 담백하게 전달하는 시도까지도 좋았다. 하지만 비극적인 재난 현장에 있던 인간 군상을 반복해서 나열하는 동안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들의 자기소개만 듣다가 끝난 것 같았다. 작품에 마음 붙일 만한 무언가는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최영현
BAD <안나 카레니나>
1월 10일~2월 25일
방대한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칫 욕심을 부리다간 모든 것이 산만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나 카레니나>는 실망스럽다. 원작의 내용을 무리하게 전부 다 집어넣으려고 했던 탓일까. 모든 캐릭터는 중구난방으로 널뛰고 스토리는 함축과 생략으로 점철돼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불륜이란 자극적인 소재를 희석하기 위해 주인공들의 사랑을 열정으로 포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타당성을 주입하니 드라마는 공허해졌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러시아 뮤지컬이란 이유로 기대감은 높았지만, 유일한 특징은 러시아가 배경이란 것. 황량한 무대, 매력 없는 음악, 평범한 연출은 안타깝지만 객석에 피로감을 안길 정도였다. 굳이 반가운 점을 찾자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여성 원탑 주연극의 등장이랄까. 박보라
GOOD <레드북>
2월 6일~3월 30일
지금까지 나온 창작뮤지컬 중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150여 년간 고민한 극과 음악의 유기적 결합 방식을 가장 잘 습득한 작품이다. 작품은 빅토리아 시대의 안나라는 여성이 편견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그려 나간다.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명확히 전달하는 확실한 주제곡을 가지고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이 작품은 여성의 주체성을 말한다는 측면에서 시의적이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는 측면에서 보편적 메시지를 전한다. 주체적이면서도 개성 강한 안나 캐릭터뿐만 아니라 로렐라이, 바이올렛, 도로시 등 인상적인 조연 캐릭터들이 작품의 유쾌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한몫했다. 안나 역의 아이비와 유리아뿐만 아니라 롤레라이 역의 지현준, 바이올렛/도로시 역의 김국희는 캐릭터가 표현할 수 있는 베스트를 찍어 놓았다고 할 만큼 다음 배우들에게 고민과 숙제를 남기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박병성
BAD <닥터 지바고>
2월 27일~5월 7일
초연 <닥터 지바고>는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와 무대,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만들어진 뮤지컬이라고 할 순 없었다. 나쁘게 말하면 지바고의 우유부단함을, 좋게 말하면 지바고의 시를 닮았던 작품은 이야기의 얼개가 아쉬웠다. 하지만 어떤 뮤지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로 단점을 상쇄해 일부 관객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재연 무대는 이야기를 손봐 초연보다 많은 관객이 이해하기 쉽게 바뀌었다. 덕분에 대중성을 좀 더 획득했는지 모르겠지만, 작품의 빈틈을 애써 덮어줬던 특유의 분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작품의 단점이 더 드러나고 말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시를 기대했건만 돌아온 것은 메마른 설명문이었다. 최영현
GOOD <전설의 리틀 농구단>
3월 9일~4월 15일
왕따 고등학생 수현이 실수로 손목을 그었다가 학교를 떠도는 귀신을 보게 된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이었던 세 명의 귀신들이 빙의를 통해 농구단의 멤버였던 세 친구와 살아남은 한 친구의 사연이 밝혀진다. 귀신을 보는 왕따 학생과 빙의라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코믹하게 잘 버무려 하이틴물의 유쾌함을 잘 살렸다.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숨겨진 사연들이 드러날 때는 숙연하게 만드는 코미디와 드라마의 결합이 어색하지 않게 잘 이루어졌다. 다만 왕따 수현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농구 코치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극 구성은 메인 플롯을 모호하게 해서 관객들의 집중을 방해한다. 스포츠물답게 농구 장면을 안무로 연출한 장면에서는 건강한 에너지가 넘쳤고, 전체적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잘 이끌어갔던 황예슬의 음악을 주목하게 했다. 박병성
GOOD <용의자 X의 헌신>
5월 15일~8월 12일
살인 사건을 둘러싼 두 천재의 두뇌 싸움을 소재로 사랑과 헌신을 풀어낸 작품. 원작 소설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충분히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함이 있다. 대사나 가사 속에 버무려진 수학 공식이 낯설기보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도 매력이다. 수학 공식이 적힌 노트를 형상화한 세트나 조명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양한 공간을 교차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 연출 또한 큰 인상을 남겼다. 특히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해 인생의 전부를 바치는 주인공의 마지막 장면은 작품의 메시지를 관통하며 큰 감동을 전한다.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뮤지컬 넘버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음악도 좋은 인상을 남겼다. 원작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의 좋은 예다. 박보라
BAD <도그 파이트-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
6월 1일~8월 12일
영화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을 기억한다면 이 음악에 참여한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이라는 이름에 믿음이 생겼을지 모른다. 두 창작자가 만든 <도그 파이트>의 음악은 이름값을 충분히 했으니, 이들의 이름을 내세운 건 괜찮은 노림수였다. 적재적소에 활용한 영상도 눈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낡은 시대 관념과 정형화된 인물들을 내내 마주해야 했다. 헐거운 드라마를 채우기엔 배우들의 역량도 이에 미치지 못했다. 전쟁에 희생된 청년들을 통해 분단국가라는 현실의 비극성을 전하려 했다면 ‘도그 파이트’ 같은 시대착오적인 소재가 아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안시은
GOOD <태일>
6월 6~18일
‘목소리 프로젝트’가 택한 첫 번째 인물 <태일>은 ‘스팅’의 테드 영상에서 착안한 구성으로 새로운 형식을 탄생시켰다. 두 배우가 작품의 목소리가 되었다가 극에서 빠져나와 배우 자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때론 연기로, 때론 내레이션으로 여러 인물을 구현한다. 연출은 뜨거우면서도 담담하게, 음악은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한 사람으로서 전태일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무대를 마주하고 본 객석은 타임슬립을 한 것처럼 사실적으로 꾸며 객석까지 공연의 일부가 되게 했다. 이 모든 것이 입체적으로 아우러지며 <태일>은 진심을 전하는 데 성공했다. 안시은
BAD <미인>
6월 15일~7월 22일
주크박스 뮤지컬은 보통 해당 노래가 탄생한 시대의 감성을 작품에 최대한 담는 선택을 많이 한다. 하지만 <미인>은 1970년대를 관통한 거장 신중현의 음악으로 일제강점기 시대를 다루는 어려운 선택을 했다. 이 같은 제약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던 탓일까. 길을 잃은 듯 인물들은 유기적으로 결집되지 못하고 파편처럼 각자 흩어져 극적 긴장을 떨어뜨린다. 그럼에도 김성수 음악감독의 편곡과 서병구 안무가의 안무는 빛났다. 엔딩의 역할을 극대화한 마지막 뮤지컬 넘버 ‘아름다운 강산’의 등장은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면이다. 안시은
GOOD <붉은 정원>
6월 29일~7월 29일
원작의 아우라에 함몰되지 않고 뮤지컬의 목소리를 지켜낸 아주 좋은 예.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원작 소설을 3인극으로 각색한 뮤지컬은 사랑에 빠진 소년의 심리를 농밀하게 그려낸다. 소설의 특징을 인물의 감정을 세심하게 포착한 음악으로 승화했고, 소년의 처음 사랑은 진정한 사랑을 통해 성숙하는 세 인물의 이야기로 확장했다. 원작을 그대로 무대에 구현하기보다 뮤지컬에 알맞게 다듬어 재창조했다는 데 박수를 보낸다. 무엇보다 원작이 궁금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잘 만들었다. 최영현
BAD <웃는 남자>
7월 9일~8월 26일
작품에 필요하다면 과감히 자본을 투자하는 결단력과 실제 그만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자본력. EMK뮤지컬컴퍼니는 두 번째 창작뮤지컬인 <웃는 남자>에서도 이 두 가지의 힘을 보여줬다. 최근 공연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캐스팅 실력 또한 EMK뮤지컬컴퍼니가 갖추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파워다. 하지만 <웃는남자>에서 이 세 가지 힘이 의미를 가졌는가 하면, 글쎄. 우선 공연만 보면 175억의 제작비를 들인 작품으로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선택한 의도를 알 수 없고, 장면마다 다른 세트가 등장할 만큼 무대에 많은 돈을 쓴 듯 보이지만 오히려 그만큼 상상력의 미학은 휘발됐기 때문이다. 또한 어렵게 캐스팅한 스타 배우의 매력이 제대로 발휘되는 작품이었는가 하는 면에서도 아쉬움을 남긴다. 배경희
BAD <바넘: 위대한 쇼맨>
8월 7일~10월 28일
윤리적 논란에 싸인 실존 인물 바넘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는 건 위험이 예고된 시도였다. 영화 <위대한 쇼맨>의 흥행에 힘입는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영화와 비교당하는 또 다른 위험이 따를 터. 그래서 제작사가 서커스 단원을 동원했단 얘길 들었을 때 ‘지상 최대의 쇼’로 승부수를 띄우려는구나 생각했다. 바넘의 인성은 부정해도 쇼 뮤지컬의 재미를 부정할 수 없는 화려한 쇼를 눈앞에서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건 해볼 만한 도박이니까. 하지만 무대에서 기대했던 서커스는 배경처럼 산발적으로 스쳐 지나가고, 김새는 음악과 조악한 무대 또한 쇼 뮤지컬로서 실격이었다. 작품은 바넘의 오명을 넘어서기 위해 쇼로 정면 승부를 하는 대신 엉뚱하게도 다정한 남편이었던 바넘의 모습을 어필하는 데 열심이다. 그러니까 뮤지컬이 보여주는 바넘은 한마디로 이렇다. 나는 차가운 비즈니스맨,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 안세영
GOOD <천사에 관하여: 타락천사 편>
9월 4일~11월 18일
무대에는 두 명의 배우가 등장하지만, 이야기 속 인물은 모두 네 명이다. 배우들은 각각 1인2역을 소화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독특한 소재와 이야기 구성이 돋보이는 가운데 작품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건 뮤지컬 넘버다. 귀에 쏙쏙 박히는 가사는 오랜만에 가사를 음미하는 즐거움을, 록 음악을 기본 장르로 장면에 따라 분위기를 달리하는 음악은 듣는 기쁨을 준다. 극 초반에 깔린 복선이 흐지부지되지 않고 공연 마지막에 회수되는 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발렌티노의 선택의 이유와 동기가 명확하지 않아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아쉽다. 최영현
GOOD <마틸다>
9월 8일~2019년 2월 10일
한국 뮤지컬 팬들에게 웨스트엔드에서 꼭 챙겨 볼 뮤지컬로 손꼽혔던 작품. 관람의 이유야 다양했겠지만, 부모의 자격을 심판하는 여자 아이가 주인공이며, 그 여자애가 사회에서 ‘조그마한’ 취급을 받는 성인 여성과 연대해 주체적인 삶을 쟁취하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어 일단 매력적이다. 게다가 모두 여덟 명의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야 한다. 때문에 공연 소식이 발표됐을 때만 해도 다들 놀라는 눈치였는데, 제작사 신시컴퍼니가 바로 이전에 또 다른 대표 아역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올린 경험이 있어서인지 능력 있는 아역 배우들을 훌륭하게 트레이닝해 무대에 세웠다. 단, 재치 있게 잘 쓰인 가사가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작품의 매력을 백 퍼센트 살리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작품성을 우선 가치로 두는 제작사답게 잘 만들어진 작품을 정성스럽게 무대에 올리려 노력한 것이 한눈에 보인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배경희
GOOD <다윈 영의 악의 기원>
10월 2~7일
9백 쪽에 달하는 방대한 원작 소설의 내용을 과연 2시간 40분이란 러닝타임에 다 보여줄 수 있을까? 박지리 작가가 쓴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무대화 소식에 첫 번째로 든 생각이었다.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러너에서 니스, 다윈으로 이어지는 세 부자에 집중하는 각색으로 이야기가 다소 거칠어도 몰입도를 높였다. 서정적으로 쓴 가사와 영민하게 흘러가는 음악은 계속 곱씹게 한다. 서울예술단이 표방하는 가무극의 매력은 희석되었지만 서울예술단이어서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시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재연을 기대하게 했다. 안시은
BAD <다윈 영의 악의 기원>
10월 2~7일
묻혀 있던 한국 작가의 소설을 발굴해 무대에 옮긴 서울예술단의 시도에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짧지 않은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하면서 악의 근원을 파헤친다는 원작의 주제 의식이 흐려진 점은 못내 아쉽다. 원작에서 주인공 다윈이 변화하는 계기가 다윈 자신의 특권적 위치에 대한 자각이었다면, 뮤지컬에서는 이 부분이 생략돼 단순히 사랑하는 아버지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 헌신한 불쌍한 아들처럼 그려진 면이 없지 않다. 또 추리자로서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루미를 마지막 순간 희망의 불씨처럼 내세운 엔딩은 새롭다기보다 뜬금없었다. 음악은 실험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줄곧 갈팡질팡해, 차라리 불협화음을 이용한 어둡고 생경한 음악으로 끝까지 밀어붙여 작품의 색깔을 확고히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안세영
GOOD <베르나르다 알바>
10월 24일~11월 12일
스페인의 문제적 작가 가르시아 로르카 원작, 전형적인 뮤지컬과 거리가 있는 음악극적 구성, 출연진 열 명 전원이 여성인 작품. <베르나르다 알바>는 이런 요소들만 보면 상업 예술인 뮤지컬 시장에서 기획되기 힘든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한국 시장에 올라간 것만으로도 사건인데, 무대, 음악, 안무, 연출, 연기 등 모든 부분이 올해 본 뮤지컬 중 베스트로 뽑힐 정도로 세련되게 만들어졌다. 극을 지배하는 인물은 한 여자이자 엄마인 베르나르다 알바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극을 지배하는 정서는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와 폭력성이다. 여성들만 출연했다는 점이 가부장적인 권위에 희생되는 여성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뮤지컬 넘버 가운데 극 진행과는 거리가 있는 감정에 매몰되는 곡이 많았음에도 이야기를 흐트러짐 없이 전개하는, 즉 서사 중심의 원작을 노래 중심의 작품으로 바꾼 작곡가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능력에 새삼 감탄했다. 하지만 극 진행의 루즈함은 옥의 티였다. 박병성
GOOD <라이온 킹> 대구 투어
11월 7일~12월 25일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 세계를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라이온 킹>은 작품에 퍼펫 인형극을 접목한 아이디어로 이런 난제를 해결하며, 무대 공연의 예술적 가치를 증명해 준다. 벨트 컨베이어처럼 돌아가는 누떼 영상과 누의 가면을 든 배우들을 원근법으로 보여주는 누떼의 질주 장면이나 무대 중앙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파란 천으로 물이 다 말라버릴 만큼 황폐해진 프라이드 랜드를 연출하는 장면은 아이디어가 더없이 돋보인다. 무대 위에 상상의 재료들을 완벽히 준비해 놓고 관객들로 하여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공연은 관객의 상상력으로 완성된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하는 작품이다. 또한 퍼펫과 배우를 하나로 만들어낸 연출력은 순간순간 애니메이션 속 그 동물을 보는 듯한 묘한 황홀감을 선물한다. 왕위 계승자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는 가부장적 이야기는 이제 조금 낡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라이온 킹>의 명성은 앞으로도 굳건할 것이다. 배경희
GOOD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
11월 9일~2019년 1월 27일
올해 최고의 코미디 뮤지컬. 다소 엉성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재치 넘치는 연기가 더해져 유쾌함을 선물한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적당한 애드리브는 작품의 재미와 매력을 한껏 올리는 ‘킥’이다. 백작이 되기 위해 후계자들을 차례로 살인한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임에도, 정신없이 사건을 따라가면 긴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주요 캐릭터 외에도 든든한 앙상블의 합은 작품의 완성도에 높이 기여한다. 영상을 활용해 단순한 무대를 다양한 공간으로 연출한 것도 볼만하다. 아쉬움을 찾자면,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다는 것. 그리고 배우들이 지닌 대단한 능력에 기댄 작품인 만큼, 그 능력치가 조금이라도 떨어진다면 이 정도의 흥미를 단언할 수 없을 것 같다. 박보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3호 2018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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