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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수수께끼 같은 공연 관람 등급 [No.185]

글 |안세영 사진제공 |오디컴퍼니, 신시컴퍼니 2019-03-04 7,723

수수께끼 같은 공연 관람 등급 

 

여기 같은 날 개막한 두 편의 뮤지컬이 있다. 두 로봇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어쩌면 해피엔딩>과 이중인격 살인자의 이야기를 그린 <지킬 앤 하이드>다. 두 작품의 관람 등급은 각각 만 7세 이상, 만 13세 이상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만 7세 이상, <지킬 앤 하이드>가 만 13세 이상이냐고? 아니, 그 반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공연에는 관람 등급 심의 규정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8세이상관람가 믿어도 될까?

영화를 비롯해 국내에서 유통되는 영상물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관람 등급이 결정된다. 영상의 주제, 선정성, 폭력성, 모방 위험 등의 요소를 고려해 전체관람가, 12세이상관람가, 15세이상관람가, 청소년관람불가, 제한상영가의 다섯 등급으로 분류한다. 이렇게 영상물에 등급을 매기는 목적은 청소년을 유해 매체로부터 보호하고 국민들에게 영화 선택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공연물은 관람 등급에 관한 규정이 따로 없다.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는 이유로 1988년 공연윤리위원회가 폐지되고, 1999년 사전각본심의제도도 없어진 후 공연물 관람 등급은 제작사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예외적으로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청소년 유해성을 확인하는 공연이 있다. 바로 해외 프로덕션의 내한 공연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내한 공연의 청소년 유해 여부를 검토해 추천서를 발급하는데, 이 추천서가 있어야만 외국인 공연자의 입국 비자 신청이 가능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내한 공연의 청소년 유해 판정 여부를 조회할 수 있다. 현재 내한 공연 중인 <라이온 킹>(8세이상관람가)과 <플래시댄스>(중학생이상관람가)를 조회해 보니 모두 무해 판정을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지난해 19세미만관람불가로 공연했던 <치펜데일쇼>는 유해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내한 공연 역시 무해와 유해로만 구분될 뿐 세부적인 등급 분류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연 제작사에서는 관람 등급을 어떻게 분류하고 있을까? 2월 공연 중인 뮤지컬을 중심으로 관람 등급을 살펴본 결과, <그날들>, <팬텀>, <엘리자벳> 등 대중을 타깃으로 한 대극장 뮤지컬 대부분이 8세이상관람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작품 내용과 별개로 장시간 한자리에 앉아 공연에 집중할 수 있고, 주변 관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최소한의 나이대가 8세 이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가지 의아한 건 살인자와 매춘부가 등장하고, 공포를 유발하는 장면이 많은 <잭 더 리퍼>(8세 이상)와 <지킬 앤 하이드>(만7세이상관람가) 역시 관람 등급을 낮게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지킬 앤 하이드>의 예매처 공지 사항을 보면 ‘일부 장면은 초등학생 및 청소년이 관람하기에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보호자 및 인솔자의 동반 관람이 필요합니다’, ‘일부 장면의 음향 효과음은 임산부나 심약자, 어린이가 관람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명시되어 있긴 하다.

제작사가 임의로 관람 등급을 정하다 보니 같은 작품이 공연 시기와 지역에 따라 관람 등급이 달라지기도 한다. <쓰릴 미>는 2007년 충무아트홀 초연 당시 만13세이상관람가였다가, 같은 해 대학로 공연에선 만18세이상관람가가 되었고, 2009년부터는 만15세이상관람가로 공연하고 있다. 2018년 공연한 <빨래>의 경우, 서울 공연은 만13세이상관람가지만 부산 공연은 만7세이상관람가가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화와 달리 공연은 프러덕션마다 연출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관람 등급 조정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연출에 큰 차이가 없는데도 관람 등급이 달라진다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브로드웨이에는 권장 관람가가 따로 있다?

일관된 관람 등급 기준이 없는 건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역시 마찬가지다. 영미권에도 영화와 달리 공연 관람 등급을 심의하는 기관은 따로 없어, 제작사나 공연장에서 자체적으로 관람 등급을 설정한다. 보통 예매 페이지나 공연의 공식 홈페이지 FAQ 섹션에서 관람 등급을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보다 관람 규제가 더 느슨한 편이다. 브로드웨이에서는 만 4세가 되면 대부분의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다. 대표적인 가족 뮤지컬인 디즈니의 <라이온 킹>, <알라딘>은 브로드웨이에서 만 4세 이상, 웨스트엔드에서 만 3세 이상부터 관람이 가능하다. 국내와 다른 점은 거의 모든 작품이 관람 제한 연령과 관람 권장 연령을 구분해서 제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살인을 소재로 하고 노출 있는 의상을 입는 <시카고>, 왕따를 소재로 하고 비속어가 나오는 <디어 에반 한센>은 브로드웨이의 여타 작품과 마찬가지로 4세 이상관람가다. 하지만 관람 권장 연령은 만 12세 이상으로 설정해 예매 시 참고할 수 있게 했다. 추가로 보호자 동반 규정이 따라붙기도 한다.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만 10세 이상 관람을 권장하지만 만 15세 이하의 청소년은 성인 보호자를 동반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 웨스트엔드에서 공연 중인 <북 오브 몰몬>은 욕설과 성적인 내용, 공격적인 내용 때문에 예외적으로 만 15세 이상 관람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에서는 만 4세 이상이면 <북 오브 몰몬>을 관람할 수 있다.


 

권장 관람 연령을 고려한다 해도 영미권 공연은 대체로 우리나라보다 관람 등급이 낮은 편이다. <마틸다>의 한국 공연 제작사인 신시컴퍼니의 최승희 홍보 팀 실장은 그 이유로 관람 문화의 차이를 꼽았다. “영미권 극장에서는 공연을 관람하며 스낵을 먹고 음료를 마시는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공연 관람 시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중요한 매너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에서 관람 연령에 차이가 발생하지 않나 생각된다.” 실제로 <마틸다>의 한국 공연은 웨스트엔드보다 관람 등급이 높게 설정되었다. 최승희 실장은 “웨스트엔드에선 <마틸다>의 권장 관람 연령이 만 6세 이상이다. 심지어 그보다 어린 관객이 와도 입장을 막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공연은 국내 공연 관람 문화를 고려하여 8세 이상 관람가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공연물 심의 규정을 마련하는 문제는 해외에서도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민감한 사안이다. 국가 기관에 의한 관람 등급 제한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판단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관객은 제작사가 자체적으로 매기는 관람 등급을 신뢰하기 힘들 것이다. 향후 국내 뮤지컬 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주 관람층인 20~30대 여성 외에 다른 연령대로 소비자층을 넓히고 가족 단위 관객을 유치할 필요가 있다는 게 공연 관계자들 사이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나 수수께끼 같은 관람 등급으로는 자녀와 함께 공연을 관람하려는 부모들에게 혼란만 안겨줄 뿐이다. 강제적인 규정이 아니라도 뮤지컬협회 같은 영향력 있는 단체가 나서 모든 제작사에서 참고할 만한 등급 분류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제작사는 해당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여 관람 등급을 매겼다는 인증 마크로 관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영미권처럼 관람 제한 연령과 권장 연령을 함께 표시하고, 청소년이 관람할 경우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미리 명시하는 방안을 보편화하는 대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이가 자신에게 맞는 공연을 관람하고 이를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한다면, 자라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공연장을 찾을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공연 관람 등급은 이러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2월 공연의 관람 등급

연극 <자기 앞의 생> 8세이상관람가 

국립극단은 8세(초등학생)이상, 14세(중학생)이상, 17세(고등학생)이상, 20세이상(미성년자 관람 불가)으로 관람 등급을 구분한다. <자기 앞의 생>은 파리 슬럼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마약, 음주, 매춘, 폭력에 대한 묘사가 일부 등장한다. 하지만 인종과 세대를 뛰어넘은 교감을 그린 작품 전체의 내용을 고려할 때 미성년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단, 초등학생의 경우 보호자의 관람 지도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함께 공지하고 있다.
 

뮤지컬 <마틸다> 8세이상관람가

<마틸다>의 제작사 신시컴퍼니는 초등학생관람가, 혹은 중학생이상관람가로 관람 등급을 구분한다. <마틸다>는 동화를 원작으로 한 만큼 어린이 관객도 무리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지만, 장시간 공연 관람이 어려운 8세 미만은 입장을 제한하여 다른 관객의 피해를 방지하고자 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만13세이상관람가

<어쩌면 해피엔딩>은 건전한 내용임에도 만13세이상관람가를 내세웠다. 제작사 더웨이브는 열린 결말을 이해하고 작품의 정서와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는 연령층을 고려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110분이라는 공연 시간 동안 인터미션이 없는 점, 암전을 포함하여 어두운 장면이 다소 포함되어 있는 점도 고려했다.
 

뮤지컬 <더 데빌> 만16세이상관람가

제작사 알앤디웍스는 소재와 장르는 물론 개별 장면이나 대사의 뉘앙스까지 고려하여 보수적으로 관람 등급을 정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더 데빌>은 분위기가 어둡고,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폭력을 행사하거나 자살을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점을 고려해 만 16세 이상이라는 높은 관람 등급을 설정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5호 2019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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