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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비 모어 칠>, 공상 과학 B급 청소년 뮤지컬 [No.187]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Stephanie Berger 2019-04-08 6,277

<비 모어 칠>, 공상 과학 B급 청소년 뮤지컬 



 

신데렐라처럼 떠오른 고등학생 이야기

이번 시즌 브로드웨이에서는 일명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신데렐라’로 불리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뮤지컬 <비 모어 칠>이다. 2004년 출판된 동명 청소년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이 작품은 2015년 뉴저지의 작은 극장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후 2018년 가을, 오프브로드웨이의 시그니처 시어터에서 두 달가량 공연했고, 지난 3월 10일 브로드웨이의 리릭 시어터에서 정식 오픈했다. <비 모어 칠>의 첫인상은 사회성이 낮은 소심한 고등학생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디어 에반 한센>의 시끄럽고 괴짜 같은 B급 사촌 느낌이다. 제목에 쓰인 ‘Chill’이라는 단어의 일차적인 의미는 냉기, 오한, 소름 등을 뜻한다. 그런데 이 뜻으로부터 파생되어 조급하지 않은 여유롭고 안정적인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뜻을 종합해 보면 작품에서 ‘Chill’의 의미는, 할 수 있다면 바깥 상황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과 주위 사람들을 멋있게 볼 수 있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결국 ‘Be More Chill’은 진정하라거나 조금 진득해지라는 뜻에서 더 나아가 결국은 멋있어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 모어 칠>은 <디어 에반 한센>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존재감 없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고등학생이 경험하는 우정과 외로움을 다루지만, 문제 해결 방식이 B급 공상 과학 만화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현실적인 <디어 에반 한센>과 차별화를 이룬다. 



 

OST를 통해 형성된 젊은 팬덤의 파워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후 같은 시즌에 곧바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다. 가장 최근의 예로 2015년 초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해밀턴>이 그해 여름 브로드웨이로 극장을 옮겼지만, 공연이 오픈한 타이밍 때문에 정확히 따지고 보면 같은 시즌은 아니었다. 어쨌든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이 곧바로 브로드웨이로 오려면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당시 엄청난 확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흐름에서 볼 때, <비 모어 칠>의 브로드웨이 입성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2015년 뉴저지 초연 당시만 해도 관객의 호응이 나쁘지 않았지만 평이 좋지 않아 뉴욕으로 공연을 옮길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5년 공연 이후 발매했던 초연 캐스트 앨범이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해밀턴>과 <디어 에반 한센> 등의 뮤지컬 앨범을 듣던 젊은 관객층의 관심을 끌게 되고 2017년 즈음에는 큰 폭으로 청취 횟수가 늘면서 <비 모어 칠>의 팬덤이 형성됐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팬덤은 2018년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비 모어 칠>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비 모어 칠>은 두 달간의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이 거의 전 회 만석이었고, <해밀턴>이 그랬던 것처럼 원화로 백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암표가 판매되기도 했다. 작품의 주된 관객은 사춘기 청소년에서 이십 대 초반으로, 브로드웨이의 일반적인 관객층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OST를 통해 처음 형성된 젊은 팬덤은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전후로 이 작품의 젊은 배우들(과 그들의 SNS)을 만나 그 세력을 키웠고, 이 팬덤의 힘으로 <비 모어 칠>이 브로드웨이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때나 브로드웨이 공연에 대한 평단의 리뷰는 그다지 좋지 않다. <뉴욕타임스>의 수석 평론가인 벤 브랜틀리는 오프브로드웨이의 <비 모어 칠>을 스물다섯 살 미만의 사람만 들을 수 있는 고음에 비유했으며(그래서 나이가 많은 관객들은 이 작품에 공감할 수도 즐길 수도 없다는 의미로), “어쩌면 현재 브로드웨이에 올라간 작품 중에 십 대들이 보고, ‘나도 집에서 저런 거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는 말로 리뷰를 마무리할 정도로 브로드웨이 공연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다. 브로드웨이 공연이 얼마나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현재 뉴욕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케이스로도 가치가 있다.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풀어가는 이야기

물론 작품 자체는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군중 속 외로움과 친구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 그렇다. <비 모어 칠>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꽤 허무맹랑하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이미 공상 과학 만화 속의 TV 프레임을 연상시키는 흰색 틀이 프로시니엄 아치를 대신하고 있다. 초창기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나왔을 법한 신시사이저의 불협화음과 함께 막이 오르면 8비트 컴퓨터 게임 배경 음악을 연상시키는 단순한 전자 음악 멜로디를 타고 무대 중앙으로 침대가 들어온다. 침대 위에는 주인공 제레미가 앉아 있는데 그가 노트북을 바라보며 답답함에 ‘커, 커, 커, 컴 온’이라는 랩 같은 가사를 반복해 외치는 것으로 노래가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 노트북을 보며 자위행위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려다 로딩이 느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답답해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 장면은 제레미라는 인물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첫 뮤지컬 넘버인 ‘More than Survive’는 뮤지컬의 전형적인 ‘아이 원트 송(I Want Song)’으로 이 노래를 통해 존재감 없는 학생 제레미가 소위 잘나가는 아이들한테 치이면서 하루를 보내는 게 그의 일상이라는 것, 그와 비슷하게 존재감이 없지만 상대적으로 삶에 만족도가 높은 마이클이라는 단짝이 한 명 있다는 것, 제레미가 크리스틴이라는 자유분방한 여학생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하루하루 고등학교 생활을 버텨내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이후 무대를 통해 전해지는 제레미의 문제는 굉장히 익숙하다. 예를 들면, 크리스틴이 교내 연극반에서 주최하는 연극 오디션에 참가 신청을 한 것을 보고 제레미 역시 크리스틴과 친해지려는 계획으로 오디션에 참가한다. 그러나 크리스틴은 제레미가 아닌 학교에서 잘나가는 학생들 무리 중 한 명인 제이크와 친해지고, 제레미는 그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게 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제레미는 마이클에게 답답함을 털어놓고 마이클은 낙관적인 시각으로 제레미를 달래준다. 여기서 <디어 에반 한센>이나 <프롬>과 다른 큰 차이가 있다. <비 모어 칠>은 주인공이 처한 답답한 상황을 풀어가는 방식으로 공상 과학적인 요소를 차용했다. 학교에서 제레미를 괴롭히던 리치가 어느 날 제레미에게 말을 걸고, ‘스큅(Squip-Super Quantum Unit Intel Processor)’이라는 장치를 소개해 준다. 스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본에서 만들어졌지만 아직 품질이 보증되지 않은 장치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스큅이 담긴 알약을 먹으면 몸에서 녹은 알약이 혈관을 따라 뇌로 흘러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인기 있는 학교의 ‘인싸’가 될 수 있는지 복용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해 준다. 즉, 스큅은 허무맹랑하지만 다분히 공상 과학스러운 도구가 되겠다. 지금 이 시점에 제레미에게 스큅을 추천해 주는 것도 모두 스큅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 하는 리치의 말이 조금 못 미덥긴 해도 이미 학교의 잘나가는 아이들 무리에 속한 리치를 보며 제레미는 마음이 흔들린다. 제레미는 마이클과도 스큅에 대해 고민을 나누는데, 마이클은 제레미의 결정을 지지한다. 마침내 제레미는 든든한 마이클 덕택에 스큅을 받아들인다. 

무대 위에서 스큅은 제레미에게만 보이는 직설적이고 강압적인 가이드로 등장한다. 스큅의 도움으로 제레미는 학교에서 인기를 끌게 되고,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있듯 단짝 마이클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데, 스큅이 제레미뿐 아니라 학교 전체,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를 조종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제레미는 아빠와 마이클의 도움으로 스큅의 사악한 계획을 무너뜨리고, 스큅의 지배에서 벗어나 크리스틴과 풋풋한 관계를 시작한다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허무맹랑함과 B급 레트로 감성의 만남

그 해결책이 허무맹랑하지만, <비 모어 칠>은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느꼈을(특히 학창 시절에) ‘인싸’가 되고 싶은 욕망 또는 나보다 나은 누군가가 되어보고 싶은 마음을 다룬다. 그리고 이 작품의 매력은 프로덕션이 이런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재미있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점이다. 앞서 언급한 벤 브랜틀리가 그의 리뷰에서 마지노선으로 잡았던 스물다섯 살을 한참 넘긴 나이인 필자는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졌고, 소소하지만 자주 웃었다. 물론 벤 브랜틀리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브로드웨이 공연이라고 하기에는 어떤 면에선 B급 유튜브 감성을 담고 있긴 하다. 한동안 유튜브에서 돌았던 미국 SNL의 레이저 고양이라든가, 거기에서 파생된 고양이 제다이가 연상된다면 설명이 될까. 그리고 이런 감성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레트로적인 요소들과 어우러져 무대와 연출, 배우들의 연기, 움직임과 안무, 음악과 스토리텔링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모든 면을 관통한다. 어느 한 부분도 특출나게 뛰어나지 않지만 이런 소소한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관객들과 공감대를 만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 모어 칠>의 가장 큰 강점인 유머를 만들어내는 데 가장 큰 일조를 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극작을 맡았던 조 트레이스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관객을 타깃으로 잡고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황과 말장난으로 관객들의 말초적인 웃음 코드를 자극했다. 그러나 작품의 유머를 위해서 사족이 설명되고 이로 인해 공연이 길어진 느낌도 없지는 않았다. 또 제레미의 가족 배경을 대충 설명해 준 것은 좀 아쉬웠다. 극 중에서 제레미의 아빠는 아내가 가족을 버리고 떠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집에서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무능한 인물로 그려진다. 제레미는 그런 아빠를 안타깝지만 한편으로 한심해하는 모습이 아주 잠깐 보인다. 이후 제레미가 어려움에 처한 듯 보이자 아빠가 옷을 차려입고 마이클을 찾아가서 그를 도와주라고 설득한다. 이 덕택에 스큅을 물리치고 아빠와 제레미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부분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 꽤 중요한 설정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인물 설정에 의지한 것 같아 아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이 작품의 시각이 너무나 사춘기 남성의 시선에 맞춰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제레미 중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극 중 엄마 역할은 이미 존재하지 않고, 앙상블로 등장하는 여학생들은 미국 틴에이저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남자를 밝히고 가십을 좋아하는 백치미 넘치는 인물들로 그려져 있다. 제레미가 좋아하는 크리스틴은 그나마 조금 다르지만, 그녀 역시 약간 독특할 뿐 굉장히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었다. 조금 더 풍자적으로 이야기를 전했으면 유머와 이야기의 깊이 둘 다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웠다.



 

다른 결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주로 혼자 작사, 작곡, 극작을 맡아 작품을 선보인 조 아이코니스의 음악과 가사는 굉장히 유려하거나 깊지는 않다. 그러나 고등학생의 에너지와 불안감, 풋풋함 등을 그려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앞서 설명했던 첫 곡 ‘More than Survive’의 에너지도 그렇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장면은 이거다. 제레미의 절친 마이클이 그를 구하기 위해 초대받지도 않은 핼러윈 파티에 가서 다른 아이들 몰래 숨어 있느라 화장실에 갇혀 부르는 ‘Michael in the Bathroom’은 4/4박자의 단순한 멜로디로 제레미를 지키고 싶은 마이클의 마음을 귀여우면서도 애잔하게 잘 담아낸다. 물론 마이클 역할을 맡은 조지 살라자르의 감칠맛 나는 연기도 이 뮤지컬 넘버가 사랑받는 데 큰 몫을 한다. 또한 조 아이코니스가 중간에 삽입하는 8비트 컴퓨터 게임 효과음은 주인공과 그의 친구가 구식 게임을 좋아하는 인물이라는 설정과 더불어 스큅이라는 공상 과학다운 설정을 음악적으로 꽤 멋지게 표현해 냈다. 

극작과 음악을 살린 것은 스티븐 브랙켓의 연출과 타일러 마이콜로의 조명에 어우러진 채드 브록의 안무와, 이 모든 것을 잘 구현해 낸 앙상블의 에너지였다. 체이스 브록의 안무는 과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최근 십 대들이 겪는 불안감과 소외감을 그려냈고, 비현실적인 스큅을 의인화해 시각적으로 구현해 냈다. 2019년의 고등학생들을 현란한 조명과 정신 사나운 움직임으로 적나라하게 본 느낌이었다. 또 앞서 언급했던 조지 살라자르와 더불어 크리스틴 역할을 맡은 스테파니 수, 그리고 스큅 역할을 맡은 제이슨 탐은 앙상블 중에서도 상당히 돋보였다. 특히 조지 살라자르나 스테파니 수는 2015년부터 <비 모어 칠>과 함께해 왔는데, 그래서인지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듯 보였다. <디어 에반 한센> 오리지널 캐스팅에서 에반의 가장 친한 친구 역할을 맡았던 윌 롤랜드가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인 제레미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제레미라는 인물의 복합적인 마음을 연기하는 데 연기의 폭이 좁아 보였던 점은 아쉬웠다. 

<비 모어 칠>은 다른 브로드웨이 공연들과 확실히 다른 점이 있고, 기존의 평단이나 브로드웨이의 나이 지긋한 관객에게는 그만큼 다르게 또는 부족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작품을 통해 젊은 관객이 브로드웨이를 찾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오프닝 이후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좋지는 않아서 브로드웨이에서는 오랫동안 공연할 수 없을지 몰라도, 분명 미국의 전역에서, 특히 학교 연극반의 공연에 적합한 소재와 내용을 담고 있어 브로드웨이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동안은 계속 팬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10년 후 브로드웨이에서 <비 모어 칠>을 계기로 공연계에 발을 딛었다는 배우나 연출, 디자이너가 기대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7호 2019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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