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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다름이 빚어낸 아름다움, 국내 주요 장애인 극단 [No.187]

글 |김소연 연극 평론가 2019-04-20 5,546

포용적 공연 예술의 필요성

 

‘4월’ 하면 어떤 기념일 먼저 떠오르는가. 식목일? 임시정부 수립일? 4·19 혁명 기념일?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기념일은 여기까지일 것이다. 하지만 4월에는 하나의 기념일이 더 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말이다. 국내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장애인 관객을 위한 최대 배려인 휠체어석 이용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장애 관객을 위한 관람 문화가 형성되는 일은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포용적 공연 예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도 인식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름이 빚어낸 아름다움, 국내 주요 장애인 극단

 

공공기관 복지 프로그램, 사회적 기업, 창작 집단 등 장애인 예술 활동의 장이 넓어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장애를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통념은 완강하고 사회적 제도와 관습은 장애인 활동에 억압적이거나 무관심하거나 보호하려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장애는 결핍이 아닌 다름이다.

 

손으로 노래하는 뮤지컬, 극단 난파

지난해 연말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 <너의 손이 빛나고 있어>는 수어 뮤지컬 <미세먼지>를 준비하는 농인들의 모습을 담아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수어 뮤지컬은 음성 대신 수어로 노래한다. 공연 시 수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들을 위한 음성 통역이 병행되긴 하지만, 음성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다. 수어 뮤지컬에서 수어는 말을 대신하는 표현이 아니다. 노랫말을 고르고 표현을 다듬듯, 이들은 연습 과정에서 수어의 표현을 골라 음악에 입힌다. <너의 손이 빛나고 있어>의 한 장면. 공연을 앞두고 최종 완성된 음악에 대해 김지연 연출(그 역시 농인이다)은 지금까지 연습해 온 음악과 최종 편곡의 느낌이 달라 고민한다. 개막일은 다가오고 시간은 부족하지만 다시 작곡가, 음악감독과 음악을 조율한다. 수어 뮤지컬은 단순히 박자에 맞추어 수어를 율동으로 전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농인극단 난파 10기 공연이었다. 서울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 슈퍼데프에서 활동하는 극단 난파는 매해 팀을 구성해 공연을 준비한다. 꾸준히 참여하는 이들도 있고 그때그때 새롭게 합류하는 이들도 있다. 이번 공연에는 농문화 예술 활동 사회적 기업 핸드스피크가 공동 제작으로 참여했다. 김지연 연출은 핸드스피크 아티스트다. 그는 힙합 댄스 그룹에서 활동하고 수어랩, 수어시 공연도 한다. <너의 손이 빛나고 있어>를 보면 단원들은 주중에 직장에서 일하고 피곤할 터인데도 주말 밤을 연습으로 꼬박 새운다. 연습실을 나서는 이들의 모습은 초췌하지만 맑게 빛난다. 이들의 열정 덕분에 우리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과 감각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강렬한 몸의 언어, 극단 애인

극단 애인은 2007년 창단한 장애인 극단이다. 중증 장애인들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윤정환, 이양구, 이연주 등 외부 작가, 연출과의 협업도 활발하다. 극단 애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이연주 연출)는 2011년 나눔연극제 대상, 2013년 밀양연극제 젊은연출가전 대상, 연출상, 연기상을 석권해 큰 주목을 받았다. 잎을 떨군 마른 나무 앞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 이들이 자리한 벌판에 머물다 떠나는 포조와 럭키, 그리고 고도의 소식을 전하는 소년 등 작품의 등장인물은 모두 극단 애인의 배우들이 연기했다. 이들은 뇌병변장애를 지녔거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다. 공연에서 비장애인과 다른 이들의 몸 자체가 도드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절된 움직임, 말과 말 사이의 급작스러운 단절, 집중되었다 흩어지는 시선, 몸의 방향과 동선의 어긋남 등은 무대 언어로서 폭발할 듯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하여 황량한 벌판에서 내내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인물들의 고독과 절망을 진실되면서도 아름답게 완성해 낸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저자 김원영은 이들의 무대에 대해 ‘예측 불허하지만 강하고 절박하게 움직이는 몸’이라 말했다. 

극단 애인은 난해한 현대극, 특히 부조리극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무대를 보여준다. 2017년 공연한 페르난도 아라발의 <전쟁터 산책>(이연주 연출) 역시 ‘전쟁터’라는 것 외에는 장소나 시간을 특정할 수 없는 배경에서 맥락 없이 인물이 등장하고 상황이 전개되는 부조리극이다. 이 작품에서도 극단 애인만의 강렬한 무대 언어는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황과 인물을 구체적인 존재로 구현해 낸다. 

기존에 쓰인 희곡만 공연하는 건 아니다. 극단 애인은 최근 <3인3색 이야기>를 연속 공연으로 올리고 있는데, 단원들이 직접 극작과 연출을 맡았다.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손님>, <나는 너다> 등 장애인 정체성과 억압적인 사회적 현실을 이야기하는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장애 여성의 삶을 말하다, 극단 춤추는허리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는 역동적인 퍼포먼스 집단이다. 극단 애인이 희곡을 토대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공연 언어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보여준다면 춤추는허리는 장르나 형식에 매이지 않고 극장 안팎을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장애인 이동권 시위 현장, 세월호 참사 현장인 진도 팽목항 등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곳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퍼포먼스를 벌여왔다.

2018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하는 ‘서울 미디어시티 비엔날레’에 초청 작가로 참여해, 퍼포먼스 <마침, 좋은 삶>, 영상기록 <불화不和>, 전시 <일평단심2, 一平丹心2>를 선보였다. 프로그램북에 춤추는허리는 ‘장애 여성의 몸과 경험으로 남다른 몸짓과 언어를 만들며, 또 다른 소수자들과의 만남을 모색’하는 단체라고 소개되었다. 퍼포먼스는 10월 3일부터 3일 간 계속되었다. 그간의 작업을 재연하는 작품도 있었지만, 장애인 주거권에 대한 토론회 등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이슈가 도드라지는 작업도 있었다. 이들의 퍼포먼스는 준비 과정 자체가 퍼포먼스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매일 휠체어로 울퉁불퉁한 진입로를 오르고 퍼포먼스를 위한 설치 작업을 진행하는 등,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공공장소에 이들의 낯설고 불편한 몸을 드러냄으로써 미술관, 공공미술관이 배제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소윤의 렉처 퍼포먼스 <숏컷>은 전시와 렉처 퍼포먼스로 구성된 작품으로, 장애인 주거 시설에서 관리를 위해 강요되는 짧은 머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자신의 경험을 통해 강요된 짧은 머리와 스스로 선택한 짧은 머리를 대비시키며, 헤어스타일이라는 구체적인 소재로 장애인에 대한 통념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지 드러낸다. 그런데 그의 퍼포먼스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렉처라는 매우 건조한 형식 안에서도 그의 말하기는 익숙하고 쉽게 이해되는 기호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의 분절된 말, 모호한 음성 기호는 현장에서 문자, 수어, 음성으로 통역된다. 하지만 그 낯설고 불편한 말하기 안에서 관객은 몸짓, 손짓, 표정, 침묵 등 대화에 개입하는 다양한 기호를 경험하게 된다.

 

국내에는 극단 난파, 극단 애인, 극단 춤추는허리 외에도 많은 장애인 공연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창작뿐 아니라 장애인의 사회 참여, 치료, 문화 접근권 등에 중점을 둔 단체들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이 활성화될 때 다름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무대 역시 늘어날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7호 2019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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