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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니진스키> 조성윤, 즐겁지만 진지하게 [No.188]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9-05-30 7,740

<니진스키> 조성윤, 즐겁지만 진지하게

 

요즘 들어 ‘위스키’라는 단어만 봐도 맹렬한 웃음이 터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올 초 뮤지컬계에 위스키 웃음주의보를 내린 조성윤의 이 인터뷰를 읽을 자격이 충분하다. 아니, 읽어야만 한다. 위스키 바에서 벌어진 시끌벅적한 TMI 인터뷰!

 


 

타협하지 않는 힘

 

그래서, 정원영과 위스키는 마셨나요? 네, 마셨습니다. 정확히는 중국술 수정방이란 고량주를 마셨죠. 하지만 알코올 도수 높은 술, 그게 위스키 아닌가요. 하하! 그날 저랑 원영이랑 (이)창용이 이렇게 셋이 마셨던 건데, 조만간 다시 진짜 위스키 한잔하자 그랬어요. 요즘 저희가 다 공연 연습하느라 대학로 부근에 있거든요. 원영이가 자기 집에 저희랑 같이 마시려고 위스키 사놨대요. 비싼 걸로. 
 

이번 <니진스키> 팀에서 같이 위스키를 마시고 싶은 사람은 누구예요? 한 명만 골라주세요. 아…. 너무 고민되지만, 저한테 하루밖에 없다면 역시 원영이를 데리고 마셔야겠습니다. 왜냐면 저한테 새로운 모습을 찾아줬거든요. 사실, 저는 약간 과묵한 타입이에요. (네?) 원래는 좀 과묵해요, 제가. 근데 원영이하고 창용이를 만나면 가벼운 맥주와 함께 아침 7시까지 수다를 떨어요. 중간에 지쳐서 가끔 뻗을 때도 있는데, 그럼 둘이 저를 막 깨워요. “지금 이렇게 잘 때가 아니라고!!!” 이러면서 계속 말을 시키죠. 저희 셋이 만나면, 저도 말이 많아지고, 그 둘은 더 많아지고. 와, 진짜 엄청나요.  
 

세 분은 옛날부터 친했어요? 아뇨, 원영이는 예전부터 알았던 동갑내기 친구였지만 작년 겨울에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하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그때 저희가 연습실에서 거의 매일 봤거든요. 원영이는 그 작품을 처음하는 뉴 멤버라 늘 연습실에 있었고, 저는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연습실에 늘 있었죠. 자꾸 보다 보니 이 친구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또 저희가 개그 코드가 굉장히 비슷해요. 같이 있으면 계속 웃게 되니까 가까워졌죠.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해서 함께 나눌 수 있는 고민도 많았고요. 
 

요즘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데요? 저나 원영이나 둘 다 일찍부터 배우 활동을 시작해서 어느새 삼십 대 중반이 됐잖아요. 저희 또래 배우들이 다 비슷한 고민을 한 번씩 겪을 텐데, 어느 순간 작품이 일로 느껴지는 때가 와요. 보통 배우들한테는 일한다는 말을 잘 안 쓰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특히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면, 일하는 기분으로 작품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거죠. 꿈만 좇을 순 없으니까. 그래서 원영이랑 종종 하는 이야기가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배우가 직업이란 생각을 경계하고 초심을 잃지 말자는 거예요. 아무렇게나 마구 살고, 아무렇게나 연기할 수도 있겠지만, 단추 하나를 끼우더라도 제대로 잘 끼워보자 그러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배우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상담도 서로 많이 해주고요. 
 

그럼 작품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니진스키>를 선택한 이유는 뭐예요? 작년에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하고 있을 때였을 거예요. 제작사 대표님께서 한번 읽어보라고 대본을 주셨어요. 저는 공연예술을 하고 있지만, 솔직히 제 자신이 예술가라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아직 거기까진 못 갔죠. 그래서 이렇게 작품을 통해서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살아보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뜻 하겠다고 했죠.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현대 무용수가 니진스키 안무를 추는 영상을 보는데, 지금 봐도 다소 기괴해 보일 만큼 혁신적이었어요. 대체 어느 크기의 창조적 어두움을 가졌으면 이런 안무가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요즘 니진스키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가 많이 안타까워요. 시대를 너무 앞서갔잖아요. 
 

이번에 맡은 디아길레프는 어떤 인물인 것 같아요? 제가 캐릭터에 다가가는 법 중 하나는 이 인물이 무엇을 쟁취하려는 사람인가를 파악하는 거예요. 그런데 디아길레프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프라이드가 대단한 사람이에요. 범접할 수 없는 자존감을 지닌 제작자죠. 자기 생각에 대한 확신도 뚜렷하고요. 사실 저는 이전에 디아길레프에 대해 잘 몰랐어요. 실제 그에 대해 알려진 정보도 많이 없다고 하고요. 하지만 저희 작품에서 중요한 건, 실존 인물과 얼마나 닮아 있느냐보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가져와서 만든 인물 간의 관계예요. 니진스키, 디아길레프, 스트라빈스키, 세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어떤 몰락을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게 이야기의 핵심이죠.
 

작품 속에서 세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그려지는지 힌트를 좀 줄래요? 제가 니진스키를 굉장히 많이 좋아합니다. (웃음) 디아길레프는 천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졌다고 설명되는 인물이라 니진스키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거든요. 참고로 니진스키가 활동할 당시에 지금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대요. 그런데 디아길레프가 니진스키에게서 발견한 것은 단지 재능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뜨거운 무엇이었던 거죠. 제작자가 자기가 데리고 있는 아티스트를 사랑한다는 설정에서 제 캐릭터에 대한 많은 영감을 얻고 있어요. 디아길레프가 니진스키에게 느낀 감정이 뭔지 저도 확실하게 느끼는 게 중요할 듯싶어요. 특히 저는 이성애자이다 보니 좀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죠.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 채로 막연하게 연습하는 건 영혼 없이 입만 벙긋하는 것과 다를 게 없잖아요.
 

캐릭터 연구를 위해 자료 조사를 하고 있는 게 있나요? 저는 평소에 무용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니에요. 실제로 춤도 잘 못 추고요. 그런데 발레 제작자 역할을 하려면 그래도 춤에 대해 좀 알아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틈틈이 춤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고 있어요. 제작자다운 눈빛을 익히려고요. 예를 들어 춤추는 장면에서 제가 그 춤에 대해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 눈빛에 차이가 있을 테잖아요. 최소한 저게 어떤 동작인지는 알고 작품에 임하고 싶어요.
 

만약 디아길레프처럼 제작자가 돼서 배우들과 뭔가 한다면 어떤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2학년 때인가 학교에서 워크숍 연출을 한 적이 있어요. 자발적으로 했던 건 아니고 가위바위보에 져서 하는 수 없이. 이왕 연출하는 거 과감하게 벽에 그림 하나 걸어두고 그림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실험극을 해보려고 했더니, 모든 애들이 반대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대안으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을 각색하게 됐는데, 학교에서 매일 셰익스피어나 안톱 체호프 희곡 같은 고전만 공부하다 현대 작품을 하니까 재밌었어요. 비록 그때의 경험으로 제 자신이 각색과 연출에 재능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라이선스를 획득해서 공연해 보고 싶어요.  


 

자신에게 솔직하기 

 

아까 디아길레프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배우 생활을 하면서 자존감이 가장 낮아졌을 때는 언제였어요? 그럴 때 너무 많죠. 왜냐면 공연이라는 게 현장성이 강해서 관객들의 반응을 바로바로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뭐 하나 실수하면 ‘사람이 실수할 수 있지’ 하고 훌훌 털기가 힘들어요. 예를 들어, 제가 계속 같은 부분에서 틀린다고 해요. 그럼 그 작은 부분 하나 실수하지 않으려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연습을 한단 말이죠. 근데 그러곤 다음 날 또 틀리잖아요? 그때 차가운 관객 반응이 느껴지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최악의 상태로 생각을 확장하게 되는 거예요. ‘왜 나는 해도 안 될까’에서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까지 생각이 번지는 거죠. 그럴 때면 자존감이 정말 낮아져요. 작품 할 때마다 자존감이 낮아졌다 높아졌다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 
 

불특정 다수에게 매번 평가받는다는 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것 같아요. 저 진짜 상처받았던 기억 있어요. 예전에 <김종욱 찾기> 할 때였는데, 어떤 사람이 댓글에 어디서 이런 촌뜨기를 데려왔냐고 쓴 거예요. 다음 날부터 연기할 때 관객들을 못 쳐다보겠더라고요. 이제는 그런 댓글을 봐도 ‘내가 생긴 게 이런 걸 어떡해’ 하고 넘길 수 있지만, 이렇게 받아들이기까지 꽤나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어요. 근데 그런 말에 상처받는 배우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아요. 물론 오랜 시간 활동하다 보면 웬만한 말에는 상처받지 않지만, 절대 굳은살이 생기지 않는 말도 있어요. 그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반대로 나한테 어떤 말이 한 줄기의 빛처럼 다가왔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겠죠? 공연 끝나고 관객들한테 잠깐씩 인사하고 갈 때, 그때 정말 엄청난 힘을 얻어요. 막,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자존감이 위로 올라와요. 사실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거든요. 관객분들이 “공연 잘 봤습니다” 해주시면 저는 “고맙습니다” 그래요.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인데도 그게 그렇게 힘이 나더라고요. 면전에서 해주셔서 그런가. (웃음) 특히 작년부터는 관객분들하고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먼저 오늘 공연 어땠냐고 물어보는데, 처음에는 “좋았어요”라고만 답해 주시던 분들이 그날 공연에서 특별히 느꼈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제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들을 알아차려 줄 때, 배우로서 정말 기쁘죠. 그런 분들은 꼭 다시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안 그래도 화제의 퇴근길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는데, 조성윤만의 퇴근길 원칙이 있다면? 후배들에게 팁을 좀 주시죠. 아휴, 화제까지는 아니고요, 제가 작년에 다리 수술을 해서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아프기에 의자에 앉아서 퇴근길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게 재미있었나 봐요. 퇴근길에서 중요한 거라면, 글쎄요, 저도 이제 퇴근길 새내기라…. (웃음) 그래도 제 생각에 첫 번째로 중요한 건 이거 같아요. 자기가 하고 있는 작품을 사랑해야 한다는 거요. 그리고 두 번째는 관객과 소통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여유 없이 퇴근길을 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요. 아, 저희 <니진스키> 팀의 정동화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이 두 가지를 정말 잘 지키세요. 작품도 사랑하시고, 마음도 열려 있으시죠. 성심성의껏 한 사람, 한 사람과 교감하려고 하시는데, 그게 너무 진심이라 되게 존경스러워요. 
 

생각해 보니 음악 이야기를 안 했네요. <니진스키>에서 제일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는 뭐예요?  니진스키가 부르는 마지막 곡 ‘어디에나’요. 너무 좋아서 연습실에서 맨날 따라 부릅니다. 저도 어떻게든 껴보려고 듀엣으로 하면 안 되냐고 했는데 니진스키가 솔로로 불러야 한대요. 왜 전 안 되죠! 나도 어디에나 있는데! (웃음) 그런데 저희 작품 음악 기대하셔도 좋아요. 소극장에서 쉽게 못 느낄 법한 웅장함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8호 2019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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