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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뮤지컬 코미디의 계보 [No.189]

글 |조용신 공연 칼럼니스트 2019-06-05 6,348

뮤지컬 코미디의 계보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전쟁의 속보는 시시각각 미국 매스컴을 장식했지만 진주만 공습을 제외하고는 포탄과 화염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 미국인들은 전쟁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그을림을 피해 전 세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몰려든 예술가들과 예술품들, 그리고 그것을 안전하게 향유할 수 있는 예술 소비자들로 예술이 꽃을 피웠다. 미국은 대서양 건너의 비극을 계기로 유일무이한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궤도에 올랐던 것이다. 오늘날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양대 산맥인 뮤지컬 코미디와 뮤지컬 플레이가 주류로 자리 잡은 것도 바로 이 전쟁 시기였다.


 

미국 뮤지컬의 양대 산맥, 뮤지컬 코미디 VS 뮤지컬 플레이

사실 ‘뮤지컬 코미디’는 오래전부터 명칭으로 존재해 왔다. 1870년대에 미국 배우 겸 제작자 해리건/하트(Harrigan/Hart) 콤비는 단막극 모음인 코믹 버라이어티 쇼를 뮤지컬 코미디라 불렀다. 1880년대 영국의 조지 에드워즈의 <명랑 처녀> 시리즈는 이를 좀 더 발전시킨 것이고, 미국에서는 조지 M. 코핸(1878-1942)이 출연한 <리틀 조니 존스>(1904), <브로드웨이로부터 45분 떨어진 곳>(1906) 같은 작품이 엑스트래버갠저, 벌레스크, 오페레타, 레뷰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뮤지컬 코미디의 효시로 불린다.

엄밀하게 말해, 하나의 미학적인 장르라기보다는 동시대 가장 인기 있는 공연 상품을 뮤지컬(가장 인기 있는 공연에는 음악이 빠지지 않았으므로, 음악을 주요소로 춤이 동반되는 극)이라고 불러왔듯이 그 시대에 가장 웃기고 재미있는 배우나 이야기들을 모아서 돈을 받고 관람하게 하는 공연들이 뮤지컬 코미디의 계보를 이어온 것이다. 음악이 빠진 코미디를 상상할 수 있는가? 뮤지컬은 코미디의 가장 환영받는 표현 재료이고 코미디는 뮤지컬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 양식이다.

19세기 후반부터 길버트-설리번 스타일의 대사가 많은 유럽 코믹 오페레타를 즐겼던 세대들 중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 이민자로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은 중장년층이 되었다. 그들의 자녀들은 포성도 들리지 않는 먼 유럽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미리 염증을 냈고 브로드웨이는 이들을 전쟁 소식 없는 낭만의 공간으로 이끌기 위해 애썼다. 종전 후 195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급격한 보수주의의 물결로 매카시즘이 판치는 냉전 시대로 돌입하며 심각한 주제의 작품은 더더욱 주춤하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하나의 똑같은 사회적인 현상을 두고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인간의 ‘취향’이라는 점이다. 숨 막히는 전쟁 시기와 매카시즘을 거치면서 웃음과 풍자보다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우아한 양식에 얹어서 동시대 뮤지컬로 만들고 이를 향유하고자 하는 취향도 존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공연되었던 <오클라호마>(1943)는 시골의 평온한 일상을 무대로 했는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군인들에게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솜사탕 같은 뮤지컬 코미디가 재미를 준다면 <오클라호마>에서 보여준 평온한 미국의 일상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 ‘뮤지컬 플레이’는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가족, 애인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뮤지컬 플레이는 연극에 기반을 두고 고대 그리스 신화, 셰익스피어, 유진 오닐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초월한 주제와 소재로 내용을 채웠고, 음악도 뮤지컬 코미디의 재즈보다는 클래시컬 오페레타 스타일이 득세하여 아름다운 멜로디가 주를 이루었다. 이런 뮤지컬 플레이의 유행은 북 뮤지컬(Book Musical)의 발전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으며 동시에 뮤지컬 코미디에서도 대본의 완성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1940년대 이후 전반적인 작품성의 상승기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황금기를 꽃피우며 창작의 전성기를 이끌게 되었다.



 

브로드웨이 황금기 시대를 이끈 뮤지컬 코미디

뮤지컬 코미디는 1940~1960년 브로드웨이 황금기 시대에 뮤지컬의 중심 장르가 되어 인류가 만든 상업적인 쇼의 장점들을 마치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엑스트래버갠저에서 화려한 무대 세트와 의상, 합창곡을 가져왔고, 벌레스크에서는 코러스 걸의 섹시함과 풍자를, 오페레타에서는 권선징악, 해피엔딩, 주인공 남자가 여자의 사랑을 얻는다는 로맨스와 우아함을, 레뷰와 보더빌에서는 스타를 전면에 내세워 관객을 끌어들이는 스타비히클 장르를 만들었다.

이 시대의 주요 뮤지컬 코미디 리스트를 들추어 보면 음악의 높은 완성도 덕분에 아직까지도 단골 리바이벌 목록에 있는 작품들이 많다. 콜 포터의 <키스 미 케이트>(1948)는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공연하는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한 기발한 극중극 형식 도입해서 고전과 현대의 자연스러운 컬래버레이션을 완성했다. 리처드 아들러와 제리 로스 콤비의 <파자마 게임>(1954)은 파자마 공장 노조의 파업과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엮은 수작이며, <빌어먹을 양키스>(1955)는 프로 야구라는 현대적인 소재에 파우스트와 오딧세이의 모티프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프랭크 래서의 <아가씨와 건달들>(1950)은 도박과 쇼걸, 우정과 배신이 교차하는 1920~1930년대의 기본 정서로 1950년대 폭발적인 대중문화에 물든 젊은 세대의 입맛까지도 사로잡은 신작이었다.

1970년대 이후 연출가 시대의 뮤지컬 코미디는 대본뿐 아니라 ‘연출’도 만났다. 대표적인 작품이 한물간 보더빌 시대를 현재에 소환해 오늘날까지 명작으로 남은 밥 포시 연출의 <시카고>(1975)다. <시카고>는 시카고 쿡 카운티의 살인 사건 공판 기사를 썼던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 출신의 희곡 작가 모린 달라스 왓킨슨이 1926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존 칸더와 프레드 엡 콤비의 음악은 재즈의 선율이 흠뻑 적셔진 관능적인 춤을 완성한다. 보더빌 시대를 배경으로 한 또 다른 대표작으로는 고워 챔피온 연출의 <브로드웨이 42번가>(1980)가 있다. 극중극으로 설정된 보더빌 쇼 ‘프리티 레이디’를 준비하는 배우와 스태프 등 백스테이지 사람들을 주요 캐릭터로 설정하고, 어리지만 실력 있고 당찬 코러스걸인 페기 소여가 오디션을 통해 앙상블에서 여주인공 도로시 브룩의 대역을 거쳐 일약 여주인공으로 도약한다는 신데렐라 테마를 담았다. 



 

2000년대 이후 뉴 뮤지컬 시대의 뮤지컬 코미디

21세기 뮤지컬 코미디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작품은 메가톤급 히트작인 <프로듀서스>(2001)다. 원로 코미디 배우 겸 영화감독인 멜 브룩스가 감독을 맡아 1968년에 개봉됐던 동명의 영화를 뮤지컬로 제작한 <프로듀서스>는 2001년 토니 어워즈 12개 부문에 15명의 후보를 노미네이트시켜 전 부문 수상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쇼 비즈니스 동업 사기꾼 맥스와 레오는 완전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공연을 함께 기획한다. 공연이 흥행에 성공하면 투자자에게 이윤을 돌려주어야 하지만 실패하면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2백만 달러를 투자액으로 모아 공연을 일찍 종연시키고 달아날 계획을 세운다는 이야기다.

2000년대 전반기는 뮤지컬 코미디의 새로운 전성기였다.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출발하여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토니어워즈를 휩쓴 <유린타운>(2001)과 <애비뉴 Q>(2003)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작곡가 마크 샤이먼의 <헤어 스프레이>(2002)와 <캐치 미 이프 유 캔>(2011)은 대극장 뮤지컬 코미디의 음악을 시대에 맞게 장르적 전환을 이루게 하였다. 즉, 재즈에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1920년대부터 뮤지컬 코미디를 상징하는 음악이 1950년대 이후의 팝 음악으로 바뀐 것이다.

<스팸어랏>은 영국 영화 <몬티 파이톤의 성배를 찾아서>(1975)의 뮤지컬 버전으로 200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어 토니어워즈 작품상, 연출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지나치게 의지가 강한 아서왕과 지나치게 엉뚱하기만 한 원탁의 기사들이 함께 성배를 찾아가는 패러디 극이다. 계급과 인종 문제를 유쾌하게 건드리며 현대 사회를 풍자하고 여기에 뮤지컬 장르까지 패러디하는 게 특징이다. 영국식 바보 캐릭터 사극이 미국에서도 성공할까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뮤지컬 코미디를 좋아하는 미국 관객의 기호를 잘 살렸다. 엔딩곡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의 가사 중 “인생 뭐 있나요, 웃어봐요”는 이 작품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뮤지컬 코미디

2010년 이후 현재까지도 뮤지컬 코미디 수작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 기간에 평단과 관객의 고른 지지를 받은 세 작품 중 하나는 <북 오브 몰몬>(2011)이다. 미국의 몰몬교 선교사들이 특유의 낙천적 이미지로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포복절도할 상황을 그린 <북 오브 몰몬>은 2011년 토니어워즈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9개 부문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프로듀서스>에 버금가는 작품으로 등극한다. 이 작품을 만든 로버트 로페즈와 제프 막스 콤비는 <애비뉴 Q>의 창작자이기도 하다.

또 다른 수작으로는 지난해 11월 국내 라이선스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2013)이 있다. 1909년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낮은 신분의 백수 몬티가 어느 날 자신이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앞 순위의 친척을 제거하기 위해 벌이는 좌충우돌 스토리다. 다이스퀴스 가문의 후계자들을 한 명의 배우가 맡으면서 1인 9역이라는 극강의 다역 연기를 펼치는 것이 웃음 핵심 포인트다.

그리고 <썸씽 로튼>은 지난 10년 중 가장 따끈따끈한 작품이다. 연출가는 <북 오브 몰몬>으로 토니상을 받은 케이시 니콜로며, 프로듀서는 <애비뉴 Q>와 <렌트>의 케빈 맥컬럼이다. 또한 <스팸어랏> 이후로 영국인 작가가 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흥행한 유일한 사례인데, <스팸어랏>이 영국의 고전 시리즈물을 각색한 것이라면 이 작품은 현대적이다. 영국의 코미디 작가 존 오 페럴과 캐리 커크패트릭, 웨인 커크패트릭 형제의 기발한 상상력은 이 작품의 소재를 르네상스 시대의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이야기로 확장시켰다. 특히 당대 최고의 문학가이자 ‘셀럽’이기도 한 셰익스피어와 경쟁하기 위해 뮤지컬 장르를 ‘고안’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수많은 뮤지컬들의 대사와 음악을 차용해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웃기고자 패러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스티븐 손드하임은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이 더 대중적이라고 했다. 왜냐면 사는 동안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을 더 많이 겪기 때문에 사람들이 새드엔딩에 쉽게 공감한다는 것이다. 뮤지컬 코미디는 춤과 노래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표현하기에 그보다 더 적합할 수는 없지만,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이 슬프게 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현실의 아이러니를 잘 포착하는 게 뮤지컬 코미디라면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9호 2019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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