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의 이름으로
<넥스트 투 노멀>의 댄은 지금 이 배우에게서 가장 훌륭한 연기가 나올 캐릭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작 남경주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완전히 비워내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평범하면서도 강인한 가장 댄을 연기하는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공연을 마친 그의 옆에는 더 이상 다이애나도 나탈리도, 게이브도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쳤던 한 남자는 그의 이야기 속에 여전히 존재했다.
<넥스트 투 노멀>이라는 공연을 마치면서 특별히 경험하거나 느낀 것이 있나.
>>이런 무거운 주제의 작품도 우리 관객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따라와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 공연은 결과보다는 준비과정이 더 중요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밀도 있고 충실했다면 결과 역시 만족스럽다는 것을 이번에도 실감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배우가 무언가를 위해서, 또는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니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연기를 하는 것보다는 주어진 극 중 상황이나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한 다음, 자기를 비우고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야 실제로 무대에서 맞부딪히는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상황에 대처해 나갈 수 있다.
장기 공연이었는데 연습 때와 무대에 올라간 후에 생각이 바뀐 것이 있나.
>> 처음에는 아무래도 ‘잘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너무 열심히 하려다보니까 긴장을 하고 힘이 들어가고, 그게 오히려 연기를 방해한다는 느낌이 왔다. 후반으로 갈수록 진짜로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최대한 나를 버리고 힘을 뺀 채로 무대 위에 올라갔다. 무대에서 내가 할 일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 이야기에 반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그렇게 하니 오히려 내가 할 일이 더 많이 생기고, 해야 할 것들을 더 많이 찾게 되더라.
공연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오케스트라와 처음 합을 맞춘 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작품을 위해 함께 소리를 만들어낸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줄 때가 있다. 그게 공연을 하는 배우를 좋아하는 팬이라서 치는 건지, 진심으로 공연에 감동을 받은 건지 배우들은 느낄 수 있다. 우리의 공연에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날의 기립 박수는 정말 다르다. 그런데 그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주는 이유는 단지 이 작품에 공감을 했다, 잘 봤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 자신도 살아가기가 힘들지만, 극 중의 저 사람들이 살기 위해 애를 쓰고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도 다시 일어서보자는 희망적인 욕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립 박수를 보내는 그 사람들의 마음이 무대 위에 있는 나에게 또 와 닿아서 공감이 된다. 그런 순간에 오는 전율을 느꼈을 때, 이 일을 하는 보람을 찾게 된다. 하지만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동안 나 자신으로서 감동을 받는 건 안 될 일이다. 작품 안에서는 오직 댄으로서 느끼는 감정이어야 하니까. 물론 그런 순간은 있다. 와이프의 병이 낫고 앞으로 가족들의 삶도 더 잘될 거라는 기대로 댄이 혼자 노래를 할 때, 그때는 정말 행복하다. 불행을 아는 사람이 오히려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말처럼 매일이 너무나 힘겹고 치열하기 때문에 그 작은 희망만으로도 댄이 갖게 되는 기쁨은 그 배역을 연기하는 나도 느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2호 2012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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