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사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
한국 뮤지컬사에서 결정적 장면을 고른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2001년 12월 2일 LG아트센터의 <오페라의 유령> 첫 공연을 꼽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보다 뮤지컬 시장이 큰 나라는 미국과 영국, 일본 정도밖에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긴 지 몇 해 되지 않고 인구 5천만 명밖에 되지 않는 대한민국이 전 세계 뮤지컬 시장 5위권 안에 든다는 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한국민의 뮤지컬 사랑은 특별한 구석이 있다. 지금의 한국 뮤지컬이 있게 한 출발점에 바로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 있다.
2001년에 올라간 <오페라의 유령> 공연은 기적 같은 일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최소 60억 원 이상의 제작비와 대형 공연장에서 3개월 이상의 장기 공연이 보장되지 않으면 올릴 수 없는 공연이다. 1995년 쌍방울그룹 자회사인 EX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의 유령> 내한 공연을 검토했다. 기업 투자로 제작비는 마련하였으나 국가 소유의 공연장을 3개월간 대관 받아야 하고, 공연을 위해 극장 구조 변경이 필요했다. 결국 이러한 점이 해결되지 않아 1995년 공연은 성사되지 못했다. 2001년에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대형 뮤지컬을 올릴 수 있는 공연장은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한전아트센터, 그리고 2000년 개관한 LG아트센터 정도였다. 국공립 공연장은 장기 대관이 어려웠고 LG아트센터는 연극이나 무용 등 세계 유명 아티스트의 초청 공연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오페라의 유령>을 LG아트센터에서 올리기 위해서는 지은 지 1년밖에 안 되는 공연장의 하수 벽면을 헐어내야 할 상황이었다. 이처럼 불가능한 듯 보였던 장벽들을 하나씩 극복해 내며 <오페라의 유령>이 올라갔다.
2000년 한국 뮤지컬 시장은 약 140억 원으로 추정된다. 대형 뮤지컬의 경우 R석 가격이 5만 원 선이었고, 길어야 2주 정도의 공연을 했다. 이런 뮤지컬 시장에서 <오페라의 유령>은 R석 10만 원, VIP석 15만 원을 책정했다. 비싼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7개월간 공연하여 객석 점유율 94%를 기록해 24만 명 관객을 동원했다. 제작비가 120억 원, 순매출이 192억 원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한국 뮤지컬 시장의 한계라고 여겼던 수치를 가볍게 도약하면서 새로운 한국 뮤지컬 시대의 문을 열었다.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치밀한 시장 조사와 철저한 마케팅 접근이 있어 가능했다. 제작사는 공연 전 세 차례의 철저한 사전 리서치를 통해 대형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는 잠재 관객을 조사하고 발굴했다. 공연 관객 분석이 전무했던 시기에 직업별, 학력별, 가구 소득별, 공연 관람 빈도별 각 관객들의 관람 패턴을 분석하고 목표 관객에 맞는 구체적인 공략법을 연구해 접근했다. 이러한 마케팅 방식은 <오페라의 유령>의 원제작사인 RUG가 제공한 홍콩과 싱가포르에서의 데이터를 기초로 이루어졌다. 공연 4개월 전에 한 달치 티켓을 오픈하고 예매율이 70%에 이르면 다음 시즌을 오픈하는 방식도 RUG의 노하우였다.
9차례에 걸친 오디션, 뉴욕 현지 프레스 투어, 호텔에서 열린 화려한 제작 발표회,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활용했던 전체를 랩핑한 대형 버스, 철저한 스케줄 관리로 3주 만에 연습실 런스루를 실시하는 제작 방식. <오페라의 유령>은 공연 전부터 모든 행보가 한국 뮤지컬사에서 처음 있는 일들이었고, 이후 대형 뮤지컬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오페라의 유령>은 한국 공연계의 인식을 바꾸어 주었다. 2000년 전까지만 해도 뮤지컬 공연계에 뮤지컬 붐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지만, 뮤지컬을 폄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상업예술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연기나 춤, 노래의 실력이 다른 장르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였다. <오페라의 유령>은 뛰어난 작품성으로 뮤지컬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았다. 클래식에서 활동하던 성악가 윤이나와 윤영석이 칼롯타와 유령 역에 캐스팅 되었으며, 촉망받던 신예 성악가였던 김소현이 크리스틴 역에 전격 발탁되면서 클래식계에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뮤지컬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만 해도 성악 전공자가 뮤지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오페라의 유령> 이후 그러한 편견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코리아픽쳐스, 산은캐피탈, 본 엔터테인먼트 등 5개 투자사가 110억 원을 투자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뮤지컬이 문화 상품으로서 투자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이후 일신창투, 한솔창투, 세종기술투자 등 창투사들의 공연 투자가 늘어났다. 공연 투자가 늘자 <맘마미아!>, <지킬 앤 하이드>, <아이다> 등 대형 뮤지컬이 들어오는 속도가 빨라졌고, 이는 곧 뮤지컬 시장의 가파른 성장으로 이어졌다.
<오페라의 유령>이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구조 변경을 감수하면서까지 LG아트센터가 장기 대관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대형 뮤지컬의 경우 초기 제작비가 워낙 높기 때문에 일정 기간 이상 공연을 할 수 없으면 수익이 나지 않는다. <오페라의 유령>이 성공하면서 뮤지컬 전용 극장의 필요성이 업계의 숙원 사업으로 떠올랐다. 대형 뮤지컬 제작사가 지자체와 협업으로 뮤지컬 전용 극장을 지으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2003년 SJ엔터테인먼트가 정동이벤트홀을 리모델링하여 팝콘하우스를 개관하였으며 이를 신호탄으로 샤롯데씨어터, 코엑스아티움, 디큐브씨어터, 블루스퀘어, 광림아트센터 등 지금까지 대형 뮤지컬을 올릴 수 있는 뮤지컬 전용 극장들이 속속 생겨났다. 공연장 인프라가 확장되면서 한국 뮤지컬은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고, 이 자그마한 땅덩어리에서 전 세계 5위권 안에 드는 큰 뮤지컬 시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2001년에 국내 초연한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6호 2020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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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ASTERPIECE] <오페라의 유령>, 한국 뮤지컬사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 [No.196]
글 |박병성 2020-01-22 11,922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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