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앤틀러스>
어둠의 한 가운데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자정, 시공간의 엇박자
하루의 시작이 자정부터라는 사실 안에는 의미심장한 생각 거리가 담겨 있다. 시간으로는 분명 ‘다음’ 날이지만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은 어제의 어둠이니 말이다. 현실(어둠!)과 진실(새날!)의 완벽한 괴리이다. 그런데 그 밤의 한가운데(Mid-night!)에서 새날은 시작되나니. 단 한 번의 예외도 어김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자정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모든 새로움은 어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삶의 철학이 담긴 아이러니 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질문이다. 이 어둠이 어떻게 새로운 시작으로 바뀌는지를 물어야 하는 거다. 자고 일어나면 아침이 되던데요, 이런 식의 가벼운 대답에는 묵직한 생각이 담길 수 없다. 아이러니의 복잡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어둠의 심연을 들여다봐야 한다.
뮤지컬 <미드나잇: 앤틀러스>(이하 <미드나잇>)은 제목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작품이다. 서너 음절의 영어 제목을 사용한 작품들이 즐비한 가운데서 자칫 시류에 편승한 제목처럼 들리기 쉽지만, 이 제목은 작품의 의미를 한 마디로 함축하는 충분한 상징이요 적확한 은유이다. 원작의 제목은 훨씬 더 직설적이다. 자료도 찾기 힘든 아제르바이젠의 작가 엘친의 희곡 『지옥의 시민(Citizen of Hell)』. 희곡의 지옥은 뮤지컬의 어둠이 되었다. 지옥은 어디이며 지옥의 시민은 누구일까. 그들을 둘러싼 어둠의 실체는 무엇일까. <미드나잇>은 가볍지 않은 질문을 무겁지 않은 이야기로 쌓아 나간다. 무대 위에 실시간으로 흐르는 시계의 분침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이야기를 몰아가는 이 작품의 솜씨는 만만치 않다.
이야기의 지옥은 어두운 시대의 한 시점으로부터 시작된다. 1937년이라는 시간과 NKVD라는 비밀경찰의 호칭은 이 작품의 배경이 이념을 빌미 삼아 정적을 숙청했던 스탈린 치하의 소련임을 알려준다. 실제로 이 당시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사람들이 많았으니, 밤늦게 문을 두드리는 비밀경찰의 노크 소리는 곧 죽음의 예고와도 같았다. 줄리안 반스의 소설 『시대의 소음』에도 똑같은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비밀경찰이 들이닥칠까 맘 졸이며 아예 가방을 들고 복도에 서서 끌려갈 준비를 하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모습은 이 당시의 사람들이 느꼈던 공포와 모멸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젊은 부부 역시 체포의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자정만 넘기면 된다, 우리는 무사할 것이다! 기쁨의 샴페인을 터트리며 음악을 즐기는 순간, 비밀경찰이 문을 두드린다. 오랜만에 맛보는 두근거리는 시작이다.
진실, 우습고도 잔혹한
언뜻 심각한 시대극처럼 보이지만 시작을 여는 이 작품의 태도는 오히려 여유롭다. 집 안으로 밀고 들어온 비밀경찰의 모습부터 그렇다. 위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체포 할당량을 무조건 채워야 하는 피로감을 토로하느라 주머니에 숨겨둔 보드카를 꺼내 마시며 눈치 없이 소파에서 비비적거리는 모습은 직장 생활에 찌든 평범한 직장인과 다를 바가 없다. 긴장감과 우스움은 묘하게 공존한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 부부가 함께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하지만 선율은 왈츠의 사랑스러움과 스윙의 경쾌함이 주도하는 식이다. 이 작품의 시작은 의도적인 엇박자로 자주 우스워진다. 비록 공연에서는 거의 살려내지 못했지만, 이 작품의 곳곳에는 블랙코미디의 호흡이 깔려 있다.
이런 호흡은 이야기의 궤도가 바뀌는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비밀경찰이 슬쩍슬쩍 풀어놓는 남편과 아내의 숨겨진 행적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진실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 반전의 속도감에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그 재미에 반비례하게 밝혀지는 진실은 잔혹하고 서늘한 바. 이제 지옥의 어둠은 폭력적인 시대에서 평범한 사람의 내면으로 자리를 옮기기 때문이다. 아내를 위해, 남편을 위해, 서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꺼이 친구를 고발하고 자발적으로 이웃을 위증하는 사람들. 상대방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을 위해 언제든지 타인을 죽음의 자리로 내몰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이 적나라하게 밝혀진다. 꽃과 음악을 좋아하는 곱고 여린 아내가 어떤 괴물로 변하는지 보라.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자마자 그 진실을 폭로하는 비밀경찰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고 눈알을 뽑는 이 여자에게서 문득 보이는 것은 광기이다.
묵직한 질문은 여기서 던져진다. ‘너는 누구인가?’ 이 질문의 첫 번째 대상은 비밀경찰이다. 애초부터 비밀경찰은 정체가 수상했다. 이들 부부의 숨겨진 진실을 낱낱이 아는 것도 그렇고, 눈알이 뽑히거나 목이 졸려도 절대 죽지 않는 것도 그렇거니와,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시간이 멈춰버린 것은 그가 단순한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악마일까? 이런 낯설고 기괴한 느낌을 살리는 데 젠더밴딩의 시도는 효과적이다. 비밀경찰을 연기하는 비지터 역의 유리아가 아내를 붙잡고 느닷없이 키스를 해댈 때 이야기의 일상적 맥락은 흔들려버리지 않던가. 우아함과 불길함이 동시에 배어 나오는 유리아의 존재감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제법 잘 어울린다. 비밀경찰의 정체가 밝혀져도 ‘너는 누구인가?’의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이 질문은 남편과 아내, 서로를 향한다. 가장 가까운 사이기에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소름 끼치도록 낯선, 너는 진짜 누구인가? 서로에 대해 혼란스러워질 때 끝내 흔들리는 것은 나 자신이다. 질문은 종착점에 다다른다. 나는 진짜 누구인가.
선택, 악마와 인간의 기로에서
이 작품의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서 생겨난다. 악마는 속이는 존재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인간은 거짓을 증언하지만 악마는 진실을 증언한다. 악마의 추궁에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너 자신을 위해 기꺼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존재가 바로 너다! 죽어가는 이웃들의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게 바로 너다! 끔찍하도록 소름 끼치는, 악마는 바로 너다! 악마의 취조는 양심의 목소리와 자주 겹친다. 젊은 부부가 악마라고 치부했던 존재는 어쩌면 그동안 외면해 왔던 그네들 마음 안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양심이 악마가 되는 역설은 여기에 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양심들이 악마화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다. 이 진실의 소리 앞에서 악마가 될 것인지 아니면 양심이 될 것인지, 이들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의 순간에 무대 중앙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순록의 뿔은 상징적인 의미를 선명하게 전달한다. 사회극일 때는 스탈린 정권의 폭압을 상징하다가 심리극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악마의 손아귀가 되니 말이다. 안온한 ‘거실’은 이 조형물 하나를 통해 초현실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그 뿔 위에서 뛰어내리는 사람과 그 뿔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선명한 의미의 대비를 이루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남편과 아내는 각각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효과적인 무대 설정의 좋은 예이다.
<미드나잇>의 젊은 부부는 끝내 자정을 넘기지 못했고, 비밀경찰의 옷을 입은 존재는 또 다른 집을 노크할 것을 예고하며 극은 끝난다. 여운은 길다. 그는 우리를 찾아올지도 모른다. 생존의 공포와 불안에 짓눌려 타인을 향한 혐오와 배제를 서슴지 않는 것은 지금 여기도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 그러니까 악마가 지배하는 지옥의 시대를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앞서 언급한 쇼스타코비치의 삶이 대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매번 끌려갔고, 매번 모욕당했으며, 매번 살아남았다. 때로는 비겁함으로, 때로는 기회주의로 비난받았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의 언어인 음악을 지켰다. 시대는 이념과 갈등의 소음으로 가득해도 소음보다 강한 것은 음악임을 믿었던 거다. 악마의 진실은 죽음으로 이끌지만 양심의 진실은 견디는 삶으로 우리를 이끄나니. 이 세상은 한 번도 천국인 적이 없었지만 어둠에 영원히 사로잡히지 않는 힘 역시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음을 생각한다.
<미드나잇>은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소극장 뮤지컬의 재미와 통찰이 어떤 것인지를 넉넉히 환기시켜준다고나 할까. 블랙코미디의 여유보다는 이야기의 몰입감에 집중한 공연이지만 그 집중이 이야기의 결을 해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버전인 <미드나잇: 액터 뮤지션>에서는 조금 다른 호흡이 느껴질까?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9호 202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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