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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마우스피스> 김신록·장률, 배우라는 대변자 [No.202]

글 |안세영 사진 |배임석 2020-07-17 8,231

<마우스피스> 김신록·장률
배우라는 대변자 

7월 국내 초연을 앞둔 연극 <마우스피스>는 슬럼프에 빠진 중년의 극작가 리비와 어려운 환경 탓에 예술적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데클란의 만남을 그린 2인극이다. 두 사람은 나이와 계층을 뛰어넘어 가까워지지만, 리비가 데클란의 삶을 소재로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서 관계가 삐걱이기 시작한다. 리비 역에는 <비평가>와 <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작년과 올해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후보에 연이어 이름을 올린 김신록이, 데클란 역에는 <킬롤로지> 이후 매체 활동을 펼치다 2년 만에 무대에 돌아온 장률이 캐스팅되었다. 리비와 데클란 만큼이나 다른 개성을 지닌 두 배우. 이 작품으로 처음 한 무대에서 만나는 이들은 어떤 케미를 보여줄까. 




두 분은 작품에서 만나기 전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라고 들었어요. 
김신록_
같은 시기에 한예종을 다녔어요. 저는 대학원생이고 률이는 학부생이었는데, 학부 수업에 청강을 갔다가 률이를 만났죠. 그때 률이를 보고 우수에 차서 강의실에 앉아있는 저 친구는 누구인가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뒤로 률이가 제 남편인 박경찬 배우와 한 작품에 출연하면서 오며가며 인사하고 지내는 사이가 됐어요. 
장률_ 저는 학교 다니면서 누나의 공연을 봤어요. 워낙 출중한 배우라 잘 알고 있었죠. 
김신록_ 어째 문어체다? (웃음) 함께 연기해보기 전에는 률이에게 이렇게 날카롭고 저항적인 면이 있는 줄 몰랐어요. 평소에는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은 인상이었는데, 거친 역할을 잘 소화해서 새로운 면을 봤어요. 
장률_ 저는 누나가 이렇게 재밌는 사람인 줄 몰랐어요. 첫인상은 차갑고 다가가기 힘들어 보였거든요. 그런데 누나가 순발력 있게 웃음 포인트를 잘 캐치하고 표현해서 같이 연습하면 너무 즐거워요. 자꾸 웃음이 나서 연기를 못하겠다니까요. 

정말요? 대본만 봐서는 이 작품에 웃긴 장면이 있을까 싶은데요. 
김신록_
뉴욕에서 공부할 때 만난 연기 선생님에게 모든 장면을 활동적, 긍정적으로 해결하란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저한테 큰 자극이 됐어요. 그전까지 감상적으로, 또는 감정을 억누르는 식으로 장면을 설계하다가 어떻게든 모든 장면을 활동적, 긍정적으로 풀어나가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웃긴가? 
장률_ 근데 그게 정말 도움이 돼요. 함께 연기하는 저까지 긍정적인 힘을 얻거든요. 슬프고 외로운 장면일수록 연기하는 배우가 긍정적으로 접근했을 때 더 좋은 방향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누나가 연습실에서 조금 덜 움직일까 묻기도 하셨는데 저는 지금이 좋다고, 많이 움직여달라고 했어요.  

이 작품의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어떤 점이 흥미로웠어요? 
장률_
제가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처럼 좋은 어른과의 만남을 그린 이야기를 좋아하거든요. 이 작품도 어른인 리비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데클란의 만남을 그리지만, 다른 작품처럼 좋은 어른이 미성숙한 청년을 이끌어주는 이야기로 전개되지 않는 게 흥미로웠어요. 처음에는 단순한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다시 읽을수록 숨겨진 코드가 많더라고요. 
김신록_ 저도 여러 겹을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느 한 편의 손을 쉽게 들어줄 수 없는 논쟁적인 질문을 계속 던지거든요. 한 가지 관점에서 직선적이고 통합적으로 사유할 수 없고, 많은 질문이 거미줄처럼 다층적으로 얽혀있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작품으로 느껴졌어요. 

가장 먼저 찾아낸 질문은 뭐였는데요? 
김신록_
처음에 저희 모두가 천착했던 문제는 ‘예술가가 소수자를 소재로 삼을 때 얼마나 그들을 대상화시키기 쉬운가’였어요. 이 문제만 놓고 보면 리비는 명백히 데클란을 대상화한 가해자죠. 그런데 이렇게 어느 쪽이 착하고 어느 쪽이 나쁘다 단정지어 버리면 극을 끌고 갈 힘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렇다면 모든 예술은 당사자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것인가? 모든 예술가는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두 인물 사이의 균형이 맞춰지기를 바라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리비와 데클란이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은 매우 낭만적이에요. 두 사람 사이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장률_
데클란이 거친 욕을 많이 쓰잖아요. 그게 사실은 살려달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강한 사람은 그렇게 센 척할 필요가 없잖아요. 리비가 그 사인을 알아차리고 다가와 준 거죠. 데클란은 색연필 살 돈도 없는 어려운 환경에 있다가 자신의 미술적 재능을 발견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을 만났으니 고맙고 즐거웠을 거예요. 
김신록_ 리비는 데클란에게 ‘공연을 본다는 건 다른 관객과 심장박동을 맞추는 일’이라고 설명하는데, 두 사람 사이에 바로 그런 심장 박동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존재한 것 같아요. 도움이 필요했던 두 사람이 만나 본의 아니게 자기 안의 결핍과 두려움을 내비쳤고, 그 뒤 서로가 서로를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얻은 거죠. 그런 안전함을 느꼈을 때 마음이 확 열린 게 아닌가 싶어요. 나중에는 그 모든 게 위선이고 허구였던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되지만요. 

두 사람의 관계에서 리비가 일방적인 가해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있나요? 
김신록_
그 어떤 행동도 의도적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일이 순간순간 즉발적으로 일어나고, 리비는 그 오류를 지성의 힘으로 바로잡으려고 무던히 애쓰지만 계속 실패하게 되는 이야기여야 해요. 데클란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상처를 주게 되고, 최대한 어른스럽게 굴려고 했지만 결국 가장 유치하게 굴게 되는 거죠. 이런 즉발성을 잘 살려서 이 사람이 악의를 갖고 데클란을 이용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관객이 납득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데클란을 연기하는 데 고민되는 점은 뭐예요? 
장률_
어려운 환경 속에 고립되어 있는 인물이지만 관객이 이 인물을 불쌍히 여기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연민의 감정으로 인물에 접근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어요. 
김신록_ 작품 자체가 예술가가 어떻게 소수자를 대상화하는가라는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 둘 다 연기할 때 인물을 대상화하는 걸 경계하고 있어요. 리비가 교육 수준이 높은 중년 여성은 이렇다는 식으로 대상화되지 않기를, 데클란이 아무리 표범처럼 으르렁거려도 결국 불쌍한 피해자라는 식으로 대상화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둘 다 자기의 정당성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려 노력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면 좋겠어요. 어느 한 쪽만 나쁜 게 아니라 양쪽 모두 어떤 면에서는 나쁘고 그러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가면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슬럼프에 빠진 리비처럼 누군가의 평가와 기대에 휘둘려 자신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나요? 
김신록_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레퍼런스 삼아 책을 한 권 읽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서로에게 욕망을 투사하고, 진짜 자기 욕망과 연결되지 못하게 만든다고. 리비도 그래요.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남들이 원하는 게 뭔지를 신경 쓰죠. 리비의 긴 독백은 그가 타인으로부터 욕망을 투사당하고 또 타인에게 욕망을 투사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스스로에게서 소외되어 버렸는지 말해 줘요. 리비는 이 극이 끝날 때까지도 그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데클란에게 자기 욕망을 투사해서 연극의 결말을 쓰잖아요. 물론 어떤 게 진짜 결말인지는 모르지만, 리비는 그날 관객과의 대화를 망치고 나서야 자기연민에 빠진 고독 말고 진짜 자기를 확인하는 시간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배우는 리비처럼 자기중심을 놓치기 굉장히 쉬운 직업이에요. 자꾸 인물에 나를 넣어보고, 연출가에 의해 무언가를 요구받고, 또 관객이 내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즉각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저에게도 그런 시간이 당연히 있었고, 지금도 역시 그 파도 위에 있죠. 다만 서핑보드를 탄 것처럼 그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쓸 뿐이에요. 
장률_ 배우로서 끊임없이 피드백을 듣는 게 두렵진 않아요. 오히려 듣고 싶어요.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는 저 자신의 기대치 때문에 힘든 것 같아요. 왜 이것밖에 못하나, 더 잘해야지 생각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버릇이 있거든요. 좀 더 즐기면서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그게 힘들어요. 어쩌면 저도 모르게 즐기는 순간이 있겠죠. 지나고 돌아보면 그때 내가 무대를 즐겼구나 생각할 지도 모르겠어요. 앞으로는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 보려고요. 산을 오르면서 정상이 해발 몇 천 미터에 있다고 생각하면 거기까지 어떻게 가나 하는 생각에 더 힘들어지잖아요. 그냥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도달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게다가 내 연기만 생각하다 보면 옆 사람을 못 보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같이 연습하는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즐겁게 연습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극 중 리비와 데클란은 연극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혹시 평소 배우로서 고민하던 것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나요? 
김신록_
데클란이 연극이 뭐냐고 물었을 때 리비는 ‘TV 보는 거랑 똑같은데 극장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다같이 보는 거’라고 답해요. 그러자 데클란이 이렇게 되묻죠. ‘그게 중요해요?’ 코로나19로 인해 연극이 실황 영상으로 대체되고 있는 요즘 꼭 필요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왜 굳이 극장까지 와서 불편한 마스크를 쓰고 공연을 봐야 하는가. 연극인과 관객 모두 생각해 볼 문제죠. 
장률_ 극 중에서 리비가 ‘예술과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는 얘기를 하는데, 나는 어떤가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배우로서 제 일은 이야기 속의 감정과 감각을 충분히 느끼고 그걸 관객 앞에 꺼내놓는 건데 ‘그래서 뭘 할 수 있지?’라는 질문이 따라오는 거예요. 여전히 답을 찾고 있지만 지금으로선 내가 한 톨만큼이라도 관객의 감정을 건드린다면 제 몫을 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결국 그게 모여서 변화를 낳는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연기를 하다 보면 그 작품이 내 마음이 움직여서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제가 연기하는 작품을 본 관객도 그런 마음을 느끼면 좋겠어요. 

그럼 률 씨는 연극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거예요? 
장률_
와, 이 질문은 ‘장군이요’ 하고 던진 건데. 잘 방어해야 하는데. (웃음) 연극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연극을 통해 현실의 이슈를 포착하여 이야기하는 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배우는 현실 속 누군가의 대변자(Mouthpiece)가 되는 셈인데, <마우스피스>는 ‘내가 과연 그 대변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에요. 물론 거기에는 한계가 있죠. 하지만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배우에게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봐요. 지금도 연습하면서 제가 확신했던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그 과정이 불안하고 힘들지만 그걸 견뎌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신록 씨가 전작 <비평가>에서 연기한 스카르파는 ‘연극은 절대 그 누구도 바꾸지 못해왔다’고 말하잖아요. <마우스피스>의 리비는 ‘예술과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하고요. 평소 신록 씨의 생각은 어느 쪽에 가까워요? 
김신록_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견해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연극을 보는 경험이 어떤 견해를 듣는 경험에 그치면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런데 예술은 견해로 다 수렴될 수 없는 총체적인 경험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극 중에서 데클란이 리비랑 같이 갤러리에 가서 미술 작품을 보는데, 그 경험이 이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거든요. 그 장면의 대본을 보면 ‘본다(See)’라는 글자가 이탤릭체로 기울어져 있어요. 이걸 왜 기울여 놨을까 우리끼리 얘기를 나눴는데, 여기서의 ‘본다’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바로 이 총체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배우는 어떻게 연기해야 관객이 그런 경험을 하게 만들 수 있을까. 말 이면에 있는 잠재된 것들을 어떻게 경험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극이 뭐냐는 데클란의 질문에 두 분이라면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장률_
저는 사실 리비가 말하는 ‘극장은 공감의 기계’라는 이야기에 동의하는 편이에요. 아, 동의하면 안 되는데. 난 데클란인데. (웃음) 근데 데클란도 극장에서 리비가 쓴 연극을 보고 거기 내 이야기가 다 있었다고 말하거든요. 자기의 지난 시간이 극장에서 되살아난 거죠. 책이나 영화와 달리 극은 살아있는 이야기예요. 눈앞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삶의 한 순간을 연기하고, 그 시간을 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공유하잖아요. 그래서 극장에 가는 것 같아요. 살아있고 싶어서. 
김신록_ 극은 부딪힘이라고 생각해요. 만드는 과정에서 배우가 인물과 부딪히기도 하고, 배우와 배우가 서로 부딪히기도 하는데, 이때 부딪히면서 감각이 깨어나고, 알고 있던 걸 다시 보게 되죠. 사실 오늘은 이렇게 대답했지만, 극이 무엇인가에 대한 제 생각은 계속 변할 거예요. 리비가 찾아낸 답도 시간이 지나면 바뀌겠죠. 관객분들이 저희 공연을 보고 연극이 뭔지에 대해 새롭게 사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도 연습 과정을 통해서 연극이란 뭘까, 연극한다는 행위가 뭘까, 극장이란 뭘까 사유해 봐야겠어요. 




마지막으로 작품을 보러 올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김신록_
공연을 보고 나서 ‘이 작품은 이런 이야기야’ 생각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다음날 또 다른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르며 계속해서 새로운 질문을 낳는 작품이 되면 좋겠어요. 어떤 작품이든 인물이든 그걸 연기하는 사람의 관점과 이해가 반영되어야 보는 사람도 자신의 관점과 이해를 투영시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이 작품을 삶의 고민과 더 연결시킬 수 있을지 탐구해 보겠습니다. 
장률_ 관객분들에게 이 이야기가 닿을 수 있도록, 살아있는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도록 열심히 부딪히면서 준비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2호 2020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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