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COLUMN] <지킬 앤 하이드> 다중인격자의 범죄를 처벌할 수 있을까 [No.210]

글 |고봉주(변호사) 사진 |오디컴퍼니 2022-09-02 2,791

<지킬 앤 하이드>

다중인격자의 범죄를 처벌할 수 있을까

 

 

다중인격은 심신장애에 해당할까


<지킬 앤 하이드>의 주인공 헨리 지킬은 인간의 본성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실험을 하기 위해 스스로 피험자가 된다. 그리고 실험 결과 악한 본성만 지닌 새로운 인격 하이드가 탄생한다. 그렇다면 지킬은 자신의 또 다른 인격 하이드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까?


형법상 범죄자가 심신장애에 해당하면 형을 감면받을 수 있다. 심신장애는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을 상실한 상태인 ‘심신상실’과 능력을 상실한 것은 아니지만 부족한 상태인 ‘심신미약’으로 구분된다. 심신상실자는 처벌받지 않고, 심신미약자는 형을 감경받는다. 일반인도 누구나 일시적으로 심신장애자가 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만취하거나 마약 등 약물을 주입하거나 수면 중인 경우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피의자 및 피고인이 범죄를 일으킨 뒤 술에 취해 저지른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킬도 하이드가 저지른 다수의 살인 행위에 대해 같은 변명을 할 수 있을까. 하이드는 결국 지킬과 같은 사람이지만, 살인은 약물을 주입하고 심신장애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었다고 변론한다면 과연 효과가 있을지 따져 보자. 판례의 원칙적인 입장은 부정적이다. 판례에 나와 있는 표현을 그대로 살펴보는 게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피고인이 살인죄를 포함해서 다수의 범죄를 저지른 사안에 대해 판례는 이렇게 설명한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성격장애의 일종이다. 설령 피고인에게 충동 조절과 관련하여 다소간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충동 조절 장애와 같은 성격적 결함은 형의 감면 사유인 심신장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또한 피고인의 위 인격장애가 매우 심각하여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만한 사정이 없어 보인다. 그 밖에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동기, 범행 방법 및 태양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즉, 하이드가 되어 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것은 일종의 성격장애라고 볼 수 있는데, 판례는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동등한 정도가 아니면 성격장애를 가진 것만으로 심신미약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는다. 게다가 하이드는 성격이 문제일 뿐 만취자처럼 범행 당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심신이 통제 불능 상태인 것은 아니었으므로 약물에 의한 명정 상태(육체적·정신적 조절 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한 상태)였다는 핑계도 인정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범죄자가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을 가졌다고 인정하여 처벌하지 않은 사례도 있을까. 피고인이 조현병으로 인하여 피해자를 ‘사탄’이라 생각하고 그를 죽여야만 천당에 갈 수 있다고 믿어 살해한 사건에서 범행 당시 피고인이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본 사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처럼 피고인의 심신상실 상태를 인정한 사례는 많지 않다. 하이드는 범죄를 저지를 때 그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인식했다는 점에서도 심신상실 상태라고 보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지킬은 하이드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터슨의 살인일까, 지킬의 자살일까


결말에 이르러 지킬은 더 이상 하이드를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는 완전히 하이드로 변하기 직전, 지킬의 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친구 어터슨이 자신을 향해 겨눈 칼에 찔려 죽음을 맞는다. 이 경우 어터슨을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먼저 이것이 어터슨의 살인이냐 아니면 지킬의 자살이냐부터 판단해야 하는데,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어터슨이 지킬을 칼로 찔렀다기보다 지킬이 스스로 칼에 뛰어들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듯하다. 그렇다 해도 어터슨에게는 자살관여죄 혐의가 남는다.


타인에게 자살을 결의하게 하는 ‘자살교사’ 또는 이미 자살을 결의한 자의 자살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자살방조’는 형법상 범죄로 규정된다. 지킬이 자살하겠다는 의사를 먼저 표시했다면 어터슨의 행위는 자살교사가 아닌 자살방조로 보는 게 맞지만, 어느 쪽이든 형량이 같아서 구별의 실익은 크지 않다. 물론 어터슨은 하이드를 향해 칼을 겨눈 것이지만 하이드와 지킬이 동일 인물이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착오 또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범행 당시 하이드가 지킬의 약혼자인 엠마를 해치려고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설령 어터슨에게 자살방조죄가 성립한다 하더라도 정당방위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법률 용어 ‘증거불충분’의 의미


범죄와는 무관하지만 필자의 관심을 끈 장면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대사에 직접적으로 형사 법률 용어가 쓰인 장면이다. 작품 초반에 지킬이 병원 이사회 앞에서 정신 분리 임상 실험을 허락해 달라고 호소하자 이사 중 한 명이 반대표를 던지며 ‘법률 용어로는 증거불충분’이라고 말한다. 이사는 왜 뜬금없이 법률 용어를 사용했을까? ‘증거불충분’은 본래 검사가 피의자의 혐의 사실에 대하여 수사한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하면서 혐의 없음의 불기소처분을 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피의자의 혐의를 증명할 객관적인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의미다. 극 중에서 이사가 ‘증거불충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찬성표를 던지기에는 실험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0호 2022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