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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평양성>의 정진영 - 다시없을 환희로부터 한 걸음 더 [No.89]

글 |김영주 사진 |심주호 2011-02-08 5,786

광기 어린 패주 연산의 고독과 베트남 특수를 노린 장사치의 약삭빠름, 강직한 검사의 엄정함과 꿈을 되찾은 기러기 아빠의 흥분을 모두 진짜처럼 보여주는 중견 배우로 정진영 아닌 누구를 생각할 수 있을까.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 이후 지난 8년간 정진영의 행보는 대중으로 하여금 그를 독특한 존재감을 지닌 진중한 배우로 기억하게 했다. 마키아벨리즘의 화신 같았던 비장하고 잔혹한 <황산벌>의 영웅 김유신이 속편 <평양성>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호기심도 그 때문일 것이다.

 

 

8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속편이 제작되는 일이 흔치는 않은 것 같다. <황산벌>을 찍을 때 속편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나?
(이준익 감독이) 그때도 그런 이야기를 하기는 하셨다. 평양성에서 고구려랑 싸우고 매소성 전투에서 당나라랑 싸우는 것까지 속편으로 가면 재미있을 거라고. 그런데 영화를 만들 때, 후반부쯤 되면 ‘얘들이 이다음에는 어떻게 살까?’ 그런 이야기를 농담처럼 많이 한다.  극 중 인물들에게 애정이 있으니까. 가령 <즐거운 인생> 같으면 ‘주인공들이 만든 밴드가 진짜 잘되어서 다 같이 투어도 돌고 그럴거야’ 하는 식으로. 그러니까 <황산벌> 때 감독님이 속편 이야기를 했어도 진짜 만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2009년에 다시 진지하게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나는 우려를 좀 했다. 왜냐면 2003년에 <황산벌>이 독특한, 전대미문의 코미디로 사랑을 많이 받았고 나름의 주제 의식까지 보여주었는데, 8년 후에 속편이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걱정을 했다. 그때는 아직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촬영 전에 최종 대본이 나온 걸 보면서 ‘아, 이 정도면 새로움을 도모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아쉽게도 아직 완성된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3/4 지점까지 현장 편집본을 확인한 바로는 작품이 잘 나왔다. 이야기가 새지 않고 아이디어를 잘 살렸다.

 

<황산벌>의 김유신은 작품의 주제 면에서 비판받는 위치에 있는 캐릭터인데도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국익을 위해서 어린 조카의 목숨을 도구처럼 쓸 수 있는 냉혈한인데도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평양성>의 김유신은 그 후로 한참 나이를 먹은 노인인데 캐릭터에 어떤 변화가 있나?
거칠게 이야기를 하자면 <황산벌>의 김유신은 거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 인식에 대해 분명하게 표현을 했고 또 페이소스가 있는 장군이었는데, 이번에 김유신은 아주 많이 다르다. 극의 구조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에 김유신이 해야 할 몫 역시 변화가 크다. 마케팅상 ‘노망’, ‘치매’라고 표현이 되었는데 그게 코믹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평양성>에서 김유신이 해결해야 하는 주된 갈등은 당나라와의 관계에 있다. 약소국 신라의 대장군이 강력한 대(大)당나라의 총사령관 앞에서 신라의 입장을 관철시키고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쇼를 하고 속임수를 쓰는데, 그게 ‘치매’로 표현된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이런 장치가 영화의 코미디를 강화해주기도 한다. 초반에 감독님께 김유신이 보이지 않는 해설자 같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왜냐하면 이쪽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취합해서 저쪽에 가서 툭 던지기도 하고, 영화의 마지막에는 정리를 하는 인물이어서, 힘을 줘서 비장하게 가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편안하게 전달할 수 있는 할아버지, 치열한 싸움투성이의 영화 속에서 보는 사람들을 살짝 풀어줄 수 있는 캐릭터여야 했다. 그래서 김유신의 의상 컨셉도 ‘산신령’으로 잡아서 마치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할아버지처럼 보이도록 했다. 이전 <황산벌>에서와 같은 위엄이나 카리스마는 필요하지 않았고, 명대사를 날리지도 않는다. 대신 헛소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음흉하게 딴소리를 하는 것 같기도 한 김유신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황산벌>의 김유신은 일종의 영웅적인 이념형 인간이었는데 <평양성>의 김유신은 영웅이 아니라, 역사를 관통하는 시선을 가진 다소 관조적인 인물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김유신을 포함해서, 사극 속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많이 연기한 것 같다. 사극을 선호하는 편인가.
역사 드라마에는 극적인 요소가 더 많다. 현대를 다룬 드라마는 아주 엽기적인 이야기가 아니고서야 아무래도 현실이 많이 정리가 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역사 드라마에는 일단 극적인 상황과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그렇다고 사극을 특별히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대박을 친 작품이 <왕의 남자>이다 보니까 사극에서의 이미지로 나를 기억해주시는 경우가 많다. 또 영화와 관객층이 다른 드라마로 사극을 두 편 했으니까 계속 사극만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사극 속 캐릭터가 가진 강렬함에 끌리는 것인데 앞으로 드라마를 하게 된다면 현대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그런데 내 의도대로 캐스팅이 되는 건 아니니까.

<왕의 남자>의 연산은 전작인 <킬러들의 수다>나 <달마야 놀자>의 엄격하고 칼 같은 캐릭터들과 굉장히 다른 인물이라 신기했다. 연산이라는 복잡한 인물은 연기를 하는 배우를 힘들게 하는 면이 많았을 것 같다.
글쎄… 그게 벌써 5년이 됐네. 기억이 아사모사한데, 결국 우리 같은 배우는 다른 이의 감정을 느끼면서 연기를 하는데 연산은 워낙 정신적 상처가 많고 내력이 복잡한 인간이라서 많이 힘들고 괴로웠다. 그 영화를 찍고 나서 캐릭터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고, 의식적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 배우가 촬영을 할 때는 그 인물 비스름한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데, 연산 같은 경우에는 그 내면이 가지고 있는 복잡함 때문에 나도 그런 우울함과 분열적인 면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할리우드에서는 작품이 끝나면 배우들이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는다고 하는데 우리야 그렇게 하면 별나다고 하겠지. 자기 분석을 하면서 스스로 나를 치료해야 한다.

 

국문과 출신이고 극작 경험도 있다고 들었다. 극작에 미련은 없나.
연극할 때 대본 각색을 좀 했던 거고, 크리에이티브를 한 적은 없었다. 대본을 쓴 적이 없는 건 아닌데, 그걸 무대에 올린 적은 없으니까. 내가 연극을 했던 20대 때는 멀티플레이어여야 하는 시대였다. 조그만 극단에서 연기를 하다가 연출도 하고 극작도 다 같이 해야 하는 식으로 역할이 미분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고, 프로페셔널한 능력을 갖지 못한 나로서는 지금은 무리다. 내 꿈은 영화감독이었는데 능력이 안됐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이력서 한번 쓴 적 없고 취직한 적도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이쪽 언저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뮤지컬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지만,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 확고한 목표가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닐까? 과정을 즐기지 않으면 이쪽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고시 공부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건 무조건 결과가 중요해서 합격을 하면 좋고, 못하면 거기 쏟은 시간들을 원망하면서 살아가야 하지만 우리 쪽의 쟁이들은 흥행이 안 되더라도 내가 재미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뛰어난 예술가가 역사에 남을 작품을 만들겠다는 분명한 목표 아래 펜을 들어서 걸작이 나오는 게 아니라, 하지 않고 못 견뎌서 만든 작품들이 결과적으로 역사에 남게 되는 거지. 결국 여기에 있는 우리는 목표 지향이 아니라 존재 지향적인 인간들이 아닌가 싶다.

 

출발점이었던 연극 무대에 다시 설 계획은 없나.
연극을 한 게 한참 전이라 그 욕망이 물밀듯이 오거나 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생의 대부분은 예정표대로 가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살지도 않고.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마음이 불현듯 밀려올지도 모르지.


작품을 끝낸 후 공백기에 재충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하나.
특별히 뭘 안 한다. 작품 하나 끝나면 여행을 다녀오기는 한다. 작업을 하지 않을 때의 배우는 한없이 게을러지기 쉽다. 며칠 세수도 하지 않고 속옷 바람으로 버틸 수도 있다.(웃음) 그렇게 게을러지다 보니까 월세로 조그만 오피스텔을 얻어놓고 촬영을 하지 않을 때는 그곳에 나가서 책이라도 보고 생각도 좀 하려고 한다. 집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한 1년도 잘 살 거다. 그게 문제다.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어떤 책을 좋아하나.
역사서와 에세이, 자서전을 좋아한다. 소설은 옛날만큼 안 읽게 된다.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을 아주 좋아하는데 최근에 새로 냈다는 책은 아직 못 봤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작가 입장에서는 좀 싫을 수도 있지만,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김연수 작가와 인터뷰 때문에 접촉을 한 적이 있는데, 자신의 글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작가는 몰라. 작가는 배우 이상의 배우다. 거짓말 제조가 아닌가.(웃음) 위대한 창조자지. 배우는 거기 비하면 각색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류에 따르면 창작 예술가가 있고, 재현 예술가가 있다고도 하더라. 작가가 전자고 배우는 후자에 해당하는 직업이다.


같은 재현 예술가라도 해도 가수나 연주자와 연기자는 다른 것 같다. 연기는 자기가 아닌 누군가의 이름으로 한 삶을 구체적으로 되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까 이야기가 나왔던 연산 역을 했을 때의 어려움도 그래서인 것 같고.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서든 어디서든 대중들이 연기자의 재능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를 많이 한다. 그런 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구체적인 작업이라는 말이 맞다. 그리고 사실은 대중이 배우의 ‘재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최종 표현물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 안에 재능이 있고, 노력이 있고, 또 다른 무엇이 있을 텐데, 어쨌든 나는 스스로 재능이 부족한 배우라고 생각을 한다. 그걸 노력과 인내심으로 메우고 있다. 노력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인내심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냐면,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버티는 게 인내심이다. 정말 재능이 있고 훈련을 잘 받은 배우들과 작업을 하다보면 내가 그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재능도 그렇지만 처음 연극을 하면서 연기를 배운 곳이 연기 기술이나 예술적인 완성도에 가치를 뒀다기보다는, 의식이나 뜻을 중요시한 집단이었기 때문에 배우로서 훈련이 부족하다. 상업 영화판에서 각지에서 수련한 진짜 고수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괴롭다. 그럴 때마다 인내심을 갖고 버텨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노력을 해서 근근이 버텨오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직업 배우로 살아오는 내내 그런 결핍감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야 하는 일이니까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런데 어쩌겠나. 재능은 운명적인 것인데 없는 재능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부여받은 재능으로 일을 하는 것이니까 할 수 있는 한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실하다는 것 또한 아주 결정적인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잘한다. 국가 대표급이다.(웃음)

 

그렇다면 배우의 환희는 어떤 것인가.
환희라. 옛날에 연극을 할 때는 그 환희가 굉장히 강렬한 것이었다. 아주 강렬한 원색의 것. 잊지 못하는 환희는 내가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처음으로 연극을 했는데, 그날 밤에 공연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금처럼 이렇게 눈이 펑펑 왔다. 그게 나에게 잊지 못할 순간이다. 지금도 여전히. 이제 나이를 먹고 기억력이 많이 감퇴되어도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첫 경험이었잖나. 더군다나 그날 눈이 왔고. (크리스마스 때 성극을 한 것이었나?) 크리스마스 때였는데 성극은 아니었다. 우리는 <금관의 예수>(김지하 작)를 했지. 그때의 환희는… 그때 비록 내 나이가 열여섯 아니면 열일곱이었지만, 정말로 세상이 꽉 찬 것 같았던 그 환희를 나는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거다. 지금 내가 연기를 통해 느끼는 것은 그 첫 경험, 그리고 20대 때 대학에서 연극을 할 때에 비하면 훨씬 색이 옅다. 그렇다고 해서 환희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옛날 같지는 않다. 아마 장르의 차이도 있을 거다. 영화나 드라마는 다음에 결과물을 확인하는 거고 연극은 무대에서 끝나는 거니까. 어쨌든 원색에서 시작해서 점점 더 무채색의 세계로 가는 거다. 처음에는 그 환희가 오직 원색으로만 의미를 발했다면 이제는 무채색으로 가까워지는 가운데서 채도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거나,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거겠지. 물론 죽음의 그 순간까지도 원색의 세계로 갈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피카소처럼. 그런데 난 그런 엄청난 예술가가 아니니까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색깔의 강렬함은 점차 옅어지더라도 그 색들이 더 다채로워지를 바란다.


연기가 아닌 다른 일을 해본 것은 시사 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 밖에 없나?
그것도 사실은 배우의 입장에서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한 건데, 나중에는 다른 쪽이 커지더라. 한 4년을 하다보니까 원래 내 정체성이 배우인데, 영화는 1년에 한 번 나오고 시사 프로는 매주 하니까 이 일이 너무 크게 보이는 거다. 그리고 점점 더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해야 하나, 일이 자꾸 쉬워졌는데 나는 어떤 일이 너무 쉬워지면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매주 돈이 들어오니까 자꾸 안정이 되려고 했다. 그때 내 나이가 40대 중반이었는데 나름대로는 배수의 진을 친다고 생각하고 배우로서 승부를 봐야겠다고 마음을 잡고 그만뒀는데, 다행히 그 뒤에 바로 <왕의 남자>가 잘되면서 배우로서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이 더 좋아졌다.


배우가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상은 뭐라고 생각하나?
자기 긍정이 가장 큰 상이다. 염려해야할 것은 자기 연민. 특히 예술 쪽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연민은 경계해야 할 큰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벗어나기 어려운 병이기도 하고. 생명력을 잃고 자기 이야기밖에 못하거나, 자기변호를 하려고 들다보면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일기를 쓰는 것이 된다. 기본적으로 예술이라는 것이 자기를 바로 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거라고 믿는데, 내가 대중적인 작업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일은 자기만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은 아닌 듯하다.


자기 연민의 함정에 빠질 뻔한 적이 있었나.
있었다. (언제?) 중요한 시기에. 산다는 것은 자기를 돌보는 작업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긍정은 참 좋은 자신에게 주는 상이고, 자기 연민은 스스로를 객관화시키지 못하고, 따라서 상대방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병이라는 말이다. 내가 대단한 일을 하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막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건방진 것 같은데.(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8호 2011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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