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Queen!
<식스> 박혜나·김지선
<식스>의 오디션을 보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박혜나 <식스>라는 작품을 처음 알게 된 건 서문탁 언니를 통해서예요. 언니가 좋은 뮤지컬을 발견했다면서 이 작품을 소개해 줬거든요.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저랑 잘 어울리는 역할이 있으니 오디션을 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는데, 그게 바로 <식스>의 시모어였어요. 문제는 이 작품이 그동안 제가 출연했던 작품들과 달리 춤을 많이 추고, 또 잘 춰야 한다는 거였죠.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도전 정신을 자극했어요. 더 나이 먹기 전에 내 몸을 불살라 보자는 각오로 도전했죠. (웃음)
김지선 뮤지컬 가운데 여자 배우가 이끌어가는 작품이 드물잖아요. 그런데 <식스>는 여자 배우만 여섯이 나온다고 해서 흥미가 생겼어요. 나한테 어울리는 배역이 있을까 알아보려고 해외 공연 영상을 찾아봤는데, 클레페의 솔로곡 ‘Get Down’을 듣는 순간 이거다 싶었죠. 클레페의 음악적 모델이 니키 미나즈, 리한나같은 흑인 가수들인데, 제가 어릴 때부터 흑인 음악과 스트리트 댄스를 좋아했거든요. 그동안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 클래식한 발성과 발레에 기반한 안무를 선보일 일이 많았다면, 클레페는 제가 가진 본연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기억에 남는 오디션 에피소드가 있나요?
김지선 1차 오디션 때 지정곡과 자유곡을 준비해 갔는데, 심사 위원분들이 지정곡만 듣고는 됐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유곡까지 부르겠다고 버텼어요.
박혜나 언니, 그건 자유곡까지 안 들어봐도 합격이란 뜻이야!
김지선 그래도 애써 준비한 노래를 불러보지도 못하고 돌아가긴 아쉽잖아. 신나는 노래니까 여흥 삼아 들어달라 말씀드리고 <드림걸즈>의 ‘Love You I Do’를 부르기 시작했죠. 그때 심사 위원 중에 마스크를 쓴 남자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쪽을 향해 “You're the perfect man for me” 하고 노래하다가 “결혼하셨어요? 아유, 미안합니다!” 그랬더니 다들 박장대소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분이 김태형 연출님이셨어요. (웃음)
박혜나 최종 오디션 때는 실제 공연처럼 여섯 명씩 팀을 이뤄서 오디션을 봤어요. 임시로 묶인 팀이지만 함께 땀 흘리며 안무 합을 맞추다 보니 자연스레 동료애가 싹트더라고요. 여섯 명이 다 함께 합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어서 아쉬웠어요.
<식스>는 역할별로 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콘서트 형식의 뮤지컬이잖아요. 배우로서 색다른 형식에서 느끼는 애로 사항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혜나 공연 시간 80분이 무대에 서 있는 배우들 입장에서는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아요. 다른 배우가 노래하는 동안에도 계속 뒤에서 코러스를 넣고 춤을 춰야 하거든요. 안무도 어찌나 어려운지! 박자를 잘게 쪼개서 시시각각 다른 동작을 취하고, 상체와 하체가 따로 움직여야 해요. 엄청난 폐활량과 근육량과 집중력을 요하죠. 그런데 정작 제가 연기하는 시모어의 솔로곡 ‘Heart Of Stone’은 가만히 서서 부르는 노래예요. 그때는 다른 배우들도 가만히 앉아 있기 때문에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죠. 저한테는 쉬는 시간이 없는 셈이지만, 제가 노래하는 동안 동료 배우들이라도 쉴 수 있어서 기뻐요. (웃음)
김지선 공연 때는 핸드 마이크를 쓰기 때문에 춤을 추면서도 마이크의 위치를 잘 계산해야 해요. 실수로 마이크를 다른 손에 들거나 입에서 떨어트리고 노래하면 갑자기 소리가 사라지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거든요. 마이크의 위치를 일일이 따져가며 춤을 추려니 더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체력적으로 힘든 작품이다 보니 고충을 함께하는 동료 배우들과 더 끈끈해지겠어요.
박혜나 맞아요. 서로 바라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다니까요. 이 친구도 나처럼 등이 뻐근하겠지, 무릎이 쑤시겠지…. (웃음) 저희끼리 뮤지컬배우가 아니라 ‘뮤지컬 선수’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는 농담을 해요. 정말 국가대표 운동선수가 된 것처럼 연습하고 있거든요.
김지선 오디션을 볼 때부터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어요. 이제는 연습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수다도 안 떨고 누워 있어요. (웃음) 그러면서도 다들 입을 모아 하는 말이 너무 재미있다는 거예요. 힘들어 죽겠는데 너무 즐겁다! 모두가 멋진 공연을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서 일종의 전우애를 느껴요.
여섯 왕비는 헨리 8세로 인해 가장 고통받은 사람을 리드 보컬로 뽑기로 하잖아요. 본인이 맡은 캐릭터는 어떤 고통을 겪었나요?
박혜나 시모어는 헨리 8세가 그토록 원하던 아들을 낳았지만, 그 아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산욕열로 세상을 떠났어요. 꿈꾸었던 단란한 가정을 눈앞에 두고 죽어버린 거죠. 하지만 시모어가 리드 보컬이 될 가능성은 낮다고 봐요. 시모어는 헨리 8세가 가장 사랑한 왕비거든요. 여섯 왕비 중 유일하게 헨리 8세와 같은 장소에 안장된 인물이죠. 심지어 헨리 8세는 시모어가 죽고 캐서린 파라는 다른 왕비와 살고 있을 때에도 가족 초상화에 시모어를 그리게 했대요. 이혼당하고 참수당한 다른 왕비들에 비하면 덜 고통스러운 삶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시모어가 시대의 요구에 맞춰 너무나 순종적인 여성으로 살았다는 점이 안타까워요.
김지선 클레페는 실물이 초상화와 다르다는 이유로 헨리 8세에게 이혼당했다고 알려진 왕비예요. 하지만 클레페가 밉보인 진짜 이유는 헨리 8세가 낭만적인 첫 만남을 기대하며 변장을 하고 클레페 앞에 나타났을 때 시큰둥한 반응으로 왕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더라고요. 외모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 관계 때문에 이혼했다는 설도 있고요. 분명한 건 클레페가 이혼에 합의한 대가로 리치먼드성을 포함한 여러 채의 성과 막대한 연금을 받고 풍족한 여생을 보냈다는 거예요. 심지어 왕의 여동생으로 대우받으며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공주를 비롯한 왕실 사람들과도 사이좋게 지냈다고 해요. 어쩌면 클레페는 대단히 영리하고 처세술이 뛰어난 사람이었을지도 몰라요. 결론은 클레페에겐 고통이 없었다는 겁니다. (웃음)
왕비마다 각자 자신을 소개하는 키워드가 있어요. 시모어의 키워드는 ‘성실, 코미디 소질 없음, 마르고 닳도록 사랑’, 클레페의 키워드는 ‘위풍당당, 초상화 환멸, 정략결혼’이죠. 본인의 캐릭터에 키워드를 하나 추가한다면 뭐라고 덧붙이고 싶은가요?
박혜나 눈치 없음. 시모어가 상황에 안 맞게 혼자 해맑은 면이 있거든요. 코미디에 소질이 없다고 하지만 은근히 웃긴 캐릭터예요. 근데 이거… 시모어가 아니라 내 성격인가?
김지선 그러니까 네가 시모어가 된 거야! 클레페는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어요. 벼락부자. (일동 웃음)
여섯 왕비 가운데 본인의 캐릭터 외에 특별히 마음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박혜나 연습하면서 여섯 왕비가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공부했는데, 하워드의 삶이 특히 안타까웠어요. 하워드는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남자를 사로잡고 만족시키는 방법만을 교육받았다고 해요. 그런 삶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다가 겨우 열아홉 살에 간통죄로 참수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김지선 저도 하워드의 솔로곡 ‘All You Wanna Do’의 안무를 연습하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하워드가 자신을 가지고 논 남자들에 대해 노래하는 동안 나머지 배우들은 무표정하게 춤추면서 하워드를 얽매고 옥죄는 주변 상황을 안무로 표현하거든요. 안무에 담긴 함축적 의미가 관객에게 잘 전달되면 좋겠어요.
<식스>를 본 관객분들이 무엇을 느끼고 돌아가길 바라나요?
김지선 <식스>는 즐겁고 신나는 뮤지컬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아요. 특히 여성 관객이라면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거예요.
박혜나 <식스>에는 억압과 차별의 시대를 살다 간 여자들의 자유를 향한 외침이 담겨 있어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죠. 공연을 본 관객분들이 세상과 부딪쳐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힘을 얻어 가시면 좋겠어요. 여섯 왕비의 삶은 이미 끝나버렸지만, 이 공연으로 인해 관객의 삶이 바뀌길 바라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식스>의 매력을 여섯 글자로 소개해 주세요.
김지선 터지는 에너지!
박혜나 안 보면 안 될 걸? 저희 모두 데뷔를 앞둔 아이돌처럼 열심히 훈련하고 있으니 꼭 보러 와 주세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3호 2023년 4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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